성령을 거스르는 죄

성령 : 2017. 3. 17. 17:16

성령을 거스르는 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3:28-29).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2:10).

참고 성구: 12:22-31, 3:22-30, 10:45, 18:10-14, 3:14-16, 고전 15:3, 딤전 1:15, 2:9.

 

I.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성

성경의 난해 구절 중 성령을 거스르는 죄는 가장 어려운 구절들 중 하나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을 생각할 때, 심지어 십자가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살인, 근친상간, 교만, 간음, 도둑질, 우상숭배와 심지어 말로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12:21-32)까지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한다(3:29)고 하셨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란 무엇이냐에 관심이 집중된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란 개념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수많은 일을 정확히 이행하신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지식과 너무나도 상반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영원한 정죄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29), 진지하게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II. 성령 모독 죄의 예비 단계

A.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 성령을 슬프시게 함1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

 

성령은 인격적 존재로 슬퍼하실 수 있는 분이다.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은 그분의 감화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성령께서 슬퍼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가?

우리는 성령의 사역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눈을 열어 죄를 보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16:8).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께로 우리를 이끄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그래서 그분을 거룩하다고 일컫는다. 이는 그분이 죄를 미워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께 순종하고 순결하고 거룩한 것을 생각하며 말할 때에 성령은 기뻐하신다. 반면 이는 우리가 우리의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때에 성령께서 슬퍼하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죄를 간직하기로 하거나 죄의 심각성을 가볍게 보는 우리의 결정은 그분을 슬프시게 한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성령의 슬픔에 관해 언급하는 엡 4:30의 문맥은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기 전의 한 사람의 삶의 방식과 회심 이후의 삶의 방식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인내하며 온유하고, 사랑 가운데 오래 참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4:2~3). 성령으로 새롭게 되었으므로(4:23) 우리는 이제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고(4:15) 이방인들처럼 마음의 허망한 것 가운데 행하지 아니한다(4:17). 대신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산다(4:24~31).

4장에서 언급하는 어떤 부정적인 요소라도 우리가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도록 허용할 때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날 때 성령은 슬퍼하시고 침통해 하신다.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의도적인 죄를 계속 범함으로 성결하게 하시는 그분의 임재와 삶을 변화시키는 그분의 능력을 배척한다는 뜻이다.

 

B. 성령을 슬프시게 함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5~27).

 

성령이 슬퍼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의 행위에 무관심하지 않으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우리의 삶의 방식에 마음을 기울이신다.

 

4:25~5: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하는가? 이러한 성경의 명령을 따른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져야 하는가?

 

[4:25~5: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인간의 지정의의 전 영역 활동에서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살 것을 가르치고 있다. 생각과 말과 감정과 태도가 다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한다. 긍정적인 표현으로 우리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죄에 대해 분노하되 죄를 범하지 않으며, 스스로 일하고 수고한 결과를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며, 덕을 세우는 태도로 말하고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친절하고, 인정이 많으며, 용서할 때에 우리는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그리스도께서 한 번도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던 것처럼 살면서 우리의 삶이 그분의 인도와 사랑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이신 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우리의 행동 방식이 그런 고백과 모순된다면 우리는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진실성의 결여 또한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우리의 선교적인 노력과 우리의 윤리적인 행위 사이에 괴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을 반사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령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4:3~4, 15~16, 32의 말씀은 성령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삶의 특성에 관하여 어떤 점들을 가르치는가? 다른 신자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성령 충만한 삶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4:3,4,15,16,32]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교회가 같은 사상, 같은 믿음, 같은 사랑과 같은 소망으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도록 권고한다. 연합하여 서로 사랑하는 생활 속에 성령 충만이 드러난다.

에베소서 4장에는 하나의 뚜렷한 공동체의 특성이 있다. 연합이라는 개념이 여러 번 언급된다. 바울은 우리가 서로”(4:32)라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아가면서 성령의 연합을 유지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교회 안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4:3)며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않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성령의 전인 교회 안에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께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를 가장 중요하게 보신다.

 

C. 성령을 소멸시키는 일

살전 5:19~21을 읽어 보라. 어떻게 성령이 소멸될 수 있는가?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19~21).

소멸하다는 스벤뉘미(sbennumi), “끄다”, “억누르다”, “억압하다의 뜻을 지녔다. 성령이 불과 관련이 있으므로(3:11; 2:3), 스벤뉘미는 특별히 적절한 어휘가 된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열성적으로 영적 은사들을 활용해 오던 교인 중 일부의 열심이 식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참조 고전 12:1; 14:1 주석). 그들이 성령을 쫓아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은 그들 속에 타고 있는 영적인 불꽃을 꺼버리지 말도록 권고를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곧 이어 나오는 예언의 은사를 배척하지 말고 오히려 그 감화를 따라 범사에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대로 상아가야 한다. 이것이 성령을 소멸시키지 않는 길이다. 이는 남은 교회가 예언의 선물을 살려나가라는 권고도 된다.

성령의 불길을 살려 내기 위해서는 죄를 깨닫게 해 주시고, 그다음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살려가야 한다.

성령은 우리가 거룩한 생애를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런 지식에 따라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내재하시는 능력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신다. 성령을 소멸시키지 않는 한 가지 길은 예언을 멸시하지”(살전 5:20) 않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분별력을 요구했다(살전 5:21). 교회 생활을 할 때, 우리는 성령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그분의 사역을 소멸하지 말아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짓 교훈과 거짓 선지자가 출현하여 계속해서 교회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분별력도 필요하다.

모든 영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의 등이고 우리 길의 빛이다(119:105). 우리는 말씀에서 새로운 예언을 가늠할 기준을 얻는다. 성경 시대에 밤길을 걷는 사람의 앞을 밝혀주는 등불에는 빛을 내는 심지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할지 가르쳐 준다(5:2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우리 자신을 굴복시키고 살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그분 안에서 행하게 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이 성경의 실제적인 권위를 거의 제거하고 우리의 삶 속에 아무 능력도 미치지 않는 것처럼 성경을 해석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고 그것을 무례하게 취급하거나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를 게을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길을 밝히고 선한 일들을 향하여 우리의 양심을 각성시키기 위해 주신 이 등불을 끄고 있는 것이다.

 

III. 성령을 모독하는 죄

한글 개역에서는 성령 훼방죄로 개정 개역에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pneu'mato" blasfhmiva, the blasphemy against the Spirit)이다.  모독한다는 것은 욕되게 하고 더럽힌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2:10).

 

1. 3:28~29, 12:10, 12:31~32을 읽어 보라. 모든 죄와 모독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을지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을 모독하는 죄만큼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크나큰 모호함과 고뇌를 야기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죄목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극악무도한 어떤 죄악들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죄들은 다른 죄들보다 더욱 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든 죄가 하나님께 흉악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언급하신 용서 받지 못할 죄란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은 이 성경절들 중 어떤 것도 이 죄가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용서되지 않을 뿐이다. 성령의 사역은 죄인들이 죄를 깨닫도록 그들을 이끌고 그들 안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픈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 모독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고의적이고 일관성 있는 거부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성령의 증언을 자의로 완강하게 거부할 때 발생한다.

예수님은 몇 마디 모욕적인 언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 모독죄는 지속적인 불신의 태도와 예수님에 대한 공개적인 적개심을 바탕으로 저질러진다. 성령 모독죄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단호한 삶의 방식이다.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증거를 받고도, 그리스도의 사역들이 하늘의 은총임을 깨닫고도 그들은 오직 그들의 악한 목적들에 매달려서 그분이 마귀를 통해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였다”(Loma Linda Messages, 156).

인간의 마음이 고집스럽게 하나님의 반대편에 고정되어서 의식적으로 예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리기를 거부할 때에 마음은 완고해지고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성령의 증언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죄가 용서의 범위를 넘어서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그분이 용서할 뜻이 없어서도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통한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태도에는 영원한 결과가 따른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 구주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루신 은혜스러운 일을 유대인들이 바알세불로 말미암은 것으로 간주했을 때에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통하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서이다. 그런데 이 역사를 사단의 것이라고 고의로 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과 하늘 사이의 통로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PK 404).

 

IV. 사도들의 교훈

복음서에 나와 있는 다른 모든 죄들은 용서받을 수 있으나, 유일하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성령 모득죄와 유사한 표현을 사도들은 어떻게 묘사하였는가?

1. 바울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6:4~6).

성령의 역사로 구원과 능력의 참된 체험을 한 사람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해야 하는데 배도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그리스도와 생명의 관계를 단절하는 경우에 그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전락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6, 27).

신자가 그리스도의 희생의 보혈과 성령의 감동으로 구원 받은 후에 고의적으로 죄를 범한 경우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의 보혈을 거절하는 죄를 구성한다.

 

여기서 다시는 회개로 새롭게 될 수 없는 죄또는 짐짓 범한 죄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사람이 타락하여 범한 죄 또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사람이 범한 죄가 된다.

 

2. 요한

사도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죄를 범하고 있는은 문자적으로 곧 실제로 죄를 행하고 있는 중에 있음을 뜻한다.

Andrews Study Bible은 이 죄를 마태복음 12:31의 성령을 거스리는 죄와 동격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을 따르는 자들이다(요일 4:1-3).

 

V. 사례들을 통하여 본 성령 거역죄

A. 지도자들의 성령 거역죄

a. 사울왕 삼상 10:6, 9

그는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고 말하였다. 그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때에 숨어 있던 그의 모든 힘이 솟아올랐다.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사울은 소 두 마리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쫓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부조, 612)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을 거절함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하였다.”(부조, 635)

하나님의 말씀이나 당신의 영의 책망과 경고를 경시하는 것은 위험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사울처럼 유혹에 굴복하여 마침내 죄악의 진정한 성격에 대하여 눈멀게 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저희가 어떤 좋은 목적을 계획했고 여호와의 요구에서 떠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혼자 속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은혜의 성령을 멸시함으로 마침내 성령의 음성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고 저희가 선택한 기만에 빠져 버리게 된다.”(부조, 635)

 

b.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 마태복음 12:22-31; 3:22-30; 5BC 1093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행위로 여김으로 축복의 근원에서 자신을 차단하고 있다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예수의 신적인 신분을 식별하지 못하고 예수를 반대하던 자들은 사유하심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이 회개하고 믿는다면 죄가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으나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는 자는 회개하고 믿을 수 없는 자리에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심령에 역사하시는 것은 성령을 통하여 하시는 것인데 사람이 고의로 성령을 거절하고 이를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들과 교통하실 수 있는 통로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성령을 끝까지 거절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위하여 더 이상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소망, 321-322)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잘못을 시정하고 안전한 길로 저들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빛을 보내신다. 눈이 멀고 마음이 강퍅하여지는 것은 이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흔히 그 과정은 점차적이요 거의 알아챌 수 없다. 빛은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종을 통하여 혹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통하여 사람에게 임한다. 그러나 한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에 영적 감각력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서 두번째에 나타나는 빛은 그만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암흑은 증가되고 마침내 영혼이 밤과 같이 어두워진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으나 진리를 대적하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를 사탄에게 돌렸다. 이렇게 행함으로 그들은 고의로 기만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사단에게 굴복하였으며 그 때 이후로 그의 능력에 지배당했다.”(소망, 322-323)

 

c. 바로-출애굽기 1BC 1100

연이은 하나님의 모든 증거들을 바로가 완강히 거절하자 그 증거들은 계속해서 그로 더욱 강하고 완고한 하나님의 도전자가 되게 하였다. 이리하여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명시된 뜻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이 계속되었다. 바로의 이 경우는 성령을 거스리는 죄에 대한 분명한 예증이 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주께서는 조금씩 조금씩 성령을 거두어 가셨다. 당신의 제어하시는 힘을 옮겨 가신 후에 하나님은 그 왕을 모든 폭군들 중 가장 포악한 자의 손에 그를 넘기셨다(리뷰 1897. 7. 27). ”(화잇주석, 4:21)

 

B. 평신도의 성령 거역죄

a. 고라, 다단, 아비람- 16

루스벨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자기를 높이고 싶은 욕망을 일으켜 시기와 불신과 반역을 선동하는 일을 하게 했다. 사단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들을 거절함으로 그들의 지도자이신 하나님을 거절하게 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불평을 품고 하나님을 모독하면서도 자기 자신들은 의롭고, 그들의 죄를 충실히 책망하는 사람들은 사단으로 말미암아 행동한다고 생각할 만큼 기만당하고 있었다. ”(부조, 403).

 

고라와 그 동료들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인간이나 사단의 작용에 돌리게 되기까지 그 빛을 거절했다. 그같은 일을 백성들도 행하였다. 그들은 고라와 그의 무리들이 멸망을 당한 그 다음날 모세와 아론을 찾아와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라고 말했다. 그들을 속인 사람들의 멸망에서, 그들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셨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히 하나님의 심판을 사단에게 돌리고 악한 자의 능력을 힘입어 모세와 아론이 선량하고 거룩한 사람들을 죽게 했다고 선언했다. 그들의 운명을 확정한 것은 바로 이러한 행위였다. 그들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실제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을 받지 못하도록 강퍅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고 말씀하셨다. ”(부조, 405)

 

b. 아나니아와 삽비라 5:3-4; 6BC 1056

그리스도 없이 우리가 용서함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양심을 일깨우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이는 회개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심으로 죄인을 이끄시고, 감정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그리고 영혼 속에 영감을 주셔서 자복하고 회개하게 하신다(리뷰 1890. 4. 1).”(화잇주석, 5:31)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성령을 슬프시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큰일을 하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 아름다운 축복의 감화를 잃었다. 그들은 저희가 너무 조급하게 결정하였으므로 그들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 문제를 여러번 이야기하였고, 그들의 서약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형제들을 돕기 위하여 그들의 소유를 나누어 준 사람들이 신자들 중에 크게 존경을 받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께 엄숙히 헌납하였던 것을 바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형제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행적, 72)

 

3.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성령거역죄 행 7:51; 63:10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7:51).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63:10)

 

VI. 성령을 거스르는 죄의 본질

1. 성령께서 하시는 회개의 초청 거절

성령께서는 우리가 회개에 이르게 하는 통로가 되는데 이 통로를 스스로 차단해버리면 회개를 할 수가 없고 그래서 용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3:29).

구원받을 후보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해야 한다. 사람은 필요를 인식하지 못하면 구주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우리의 가장 중대한 필요는 죄에 대한 개인적인 자각이다. 우리는 스스로 이 자각을 가질 수 없다. 우리로 하여금 죄를 자각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권한이며 그분의 직무이다. 그분의 우선적인 사역은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된 모습과 잃어버린바 된 상태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위로자이실 뿐 아니라, 먼저 죄를 자각하게 하시는 분이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자백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에게 성령께서는 위로자가 되신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성령께서는 구주를 모욕하고 슬프시게 한 감사하지 아니한 마음을 드러내어 우리로 십자가 밑에서 통회하게 하신다. 모든 죄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다시 상처를 입으시는 바 우리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예수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뇌를 안겨 준 죄로 인하여 슬퍼하게 된다. 이러한 애통이 죄를 버리게 하는 것이다.”(DA 300).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는 자는 회개하고 믿을 수 없는 자리에 자신을 두는 것이다”(DA 322).

모든 불결한 생각은 심령을 더럽히며 도덕심을 해치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다”(DA 302).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반복적으로 거절함으로 그분의 인자하심을 보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만약 그의 도덕적 가치관이 전도(顚倒)되어 악을 선으로 보고 선을 악으로 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심지어 예수님을 대면하고도 죄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게 되면, 그는 회개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이다”(윌리엄 바클레이, 마가의 복음, 1976, 81).

 

2. 하나님의 능력을 마귀의 일로 폄하하는 일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 구주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루신 은혜스러운 일을 유대인들이 바알세불로 말미암은 것으로 간주했을 때에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통하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서이다. 그런데 이 역사를 사단의 것이라고 고의로 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과 하늘 사이의 통로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PK 404).

 

무엇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가? 그것은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역사를 목격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그 일이 성경과 일치된다는 것과, 성령께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그의 마음에 증거해 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유혹을 받아 타락한다. 그리하여 그 역사의 거룩한 특성에 대한 모든 증거를 거절하고, 그는 그가 이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인정했던 것이 사단의 능력이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즐겨 그들에게 주신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비취고 있던 빛을 꺼 버린다. 그 결과로 그들은 어둠에 묻히게 된다”(교회증언, 5, 633).

 

3. 지속적으로 빛을 거절하는 일

고라, 다단, 아비람처럼 지속적으로 빛을 거절하는 경우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또는 성령을 거역한 죄가 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성령을 거절하는 죄가 된다. 이러한 거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경우와 같이 불가피하게 영적인 시력을 상실하게 하고, 성령의 애소(哀訴)에 대하여 마음을 완고케 한다. 그는 성령의 속삭임에 대한 자기 영혼의 지각력을 말살시켜 왔기 때문에 마침내 영혼의 완전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되고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되고 만다.

자신을 성령의 감화력 밖에 두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없게 만드는 행위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회개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강요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 구원으로부터 끊어진 것이다.

마태복음 12:32(참고 막 3:29)에서 예수께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와 말씀이라는 개념을 서로 연결시키셨다. 성경적 개념에서 말은 행동으로 간주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세상이 존재하게 되었고(1), 예수께서도 친히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1:14). 말과 행동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참고: 4. 구속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

구속 사업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멸망의 길이 된다.

죄는 우리의 존재에 피할 수 없는 파멸을 가져왔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기뻐하신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3:23), 우리는 멸망당할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들을 용서하실 권리를 얻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 한 가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회개로 이끌기 위해 베풀어진 하나님의 인자하심(2:4)에 반응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자비의 호소를 계속적으로 거부하면 결국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고 자신에 대한 이 같은 지식이 우리로 통회하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용서와 화평을 얻을 수 없다. 바리새인은 죄에 대한 자책을 느끼지 않았다. 성령께서 그에게 역사하실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이 스스로 의롭다는 갑주에 싸여 있었으므로 천사의 손이 정조준해서 던지는 날카로운 하나님의 화살도 그것을 꿰뚫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만을 구원하실 수 있다”(COL 158).

개인적인 구속 사업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다양하다. , a. 칭의와 중생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 b.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 (인간 안에서의 하나님의 형상 회복자); c. 성령의 중보자적 대도(8:26-27)에서 성령의 각 개인에 대한 구속적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런 성령을 거절하는 것은 자신을 용서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전락시킬 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에 관한 이상을 보게 되면, 선지자 이사야처럼(6:5-6),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죄된 모습을 자각하게 되고, 예수님의 개입 없이는 오직 심판과 완전한 파멸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성령의 감화력은 참으로 중요하다.

더 나가서는 교회는 역사적으로 이른비 성령 강림으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늦은비 성령의 사역의 권능 부여를 통하여 최후적 구속적 추수 사업이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성령의 역사를 모독하거나 거절하는 사람은 사망의 심판으로 전락된다.]

 

VII. 맺는 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성령을 근심케 하는 일이나, 성령을 소멸하는 일은 성령 모독죄의 전 단계로 결국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고의로 죄를 범하는 일을 극히 경계하여야 한다. 항상 신중한 자세로 자기 자신을 살펴 무서운 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만일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는 때에는 지나친 두려움에 짓눌리지 말고, 지체 없이 회개하여야 한다. 더 나가서는 성령의 변화시키는 권능에 순복하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가야 한다. 그리고

 

독서 과제: 엘렌 G. 화잇의 부조와 선지자 621-622, 시대의 소망 321-324, 565-568, 사도행적 75-76, 실물교훈 제13두 예배자’(15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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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