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교회의 성령에 관한 시각
동방교회의 성령에 관한 시각
AD 1세기 초기교회에서는 교회가 당면한 제 문제, 특히 교리적 문제나 그리스도인 삶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사도들이 즉각적으로 계시와 영감에 토대를 둔 권위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2세기로 접어들어서는 비록 사도 교부들이 있었지만 교회 내에 교리적 이해를 하는 일에 있어서 다른 견해들이 제기 되어 감에 따라 그 일치를 위한 여러 회의들이 열려야 했다. 니케아회의나 갈게돈 회의에서의 일치된 견해는 교회의 정통성의 판단기준이 되기까지 하였다. .
이런 일치를 위한 교리적 논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에 그 초점이 있었다.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 거의 배타적이리만큼 지배하였다. 그리고 이 시각은 향후 서방 교회의 특징을 이루어 오늘 서구 신학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다.
성령에 관한 논의는 거의 제2선으로 여러 세기의 무관심 속에 물러나 있거나 비켜갔다. 그러나 동방교회 신학에 있어서 핵심은 성령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신학의 핵심으로 여기는 경향을 띄었다. 즉, 성령중심의 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방교회는 동방교회의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강조를 지나친 것으로 보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립은 심화되어갔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서방교회에서도 성령의 본성과 하시는 일에 관한 이해의 눈이 열러가다가 이른바 제1파, 제2파, 제3파 운동의 확산으로 성령의 세기가 되어갔다.
1. 삼위일체론
성령의 인격성이나 신적 본질을 부정한 주장들이 니케아 회의와 칼케돈 회의를 통하여 정리되었다. 그러나 삼위일체 주제에 관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는 삼위 내 초점에 관한 시각의 차이나 강조점의 차이가 있었다. 서방교회는 신적 본성과 본질의 통일성과 동질성을 강조하는 기류가 강하였다. 반면에 4세기 이래 바질, 니사의 그레고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같은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세 위체들이 동일 실체임을 강조하였다. 서방교회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filioque).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발현하여 아들로부터 받는다고 보았다.
2. 인간론
서방교회의 인간 이해는 테르툴리아누스와 아우구스투스 인간론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타락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그 대행자 되신 성령에 의존하여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있다는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타락으로 그 형상이 훼손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원래의 완전한 형상으로 회복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시고 일하신다. 인간의 본성이 사단에게 굴복, 그에게 예속되어 있지만, 성령께서는 인간의 본성의 의존성으로부터 해방시키신다. 성령의 권능으로 인간이 하나님, 인간, 및 피조세계와의 관계가 참되고 자연적 관계로 회복된다. 이 변화를 재창조라고 한다.
3. 창조, 재창조 및 신의 성품화
성령은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 그 분은 구원사역에 있어서 재창조의 주가 되신다. 창조와 재창조는 하나이다. 성령은 생명을 품고(창 1:2), 그 생명을 주시는 주가 되신다. 그 분은 아담의 코에 거룩한 생기를 불어 넣었다. 루아흐가 호흡이나 숨도 되지만 또한 성령의 칭호도 되신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 회복시키시는 성령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적 본성을 인간과 공유하기 원하신다. 동방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령을 통하여 theosis, 즉 신의 성품을 인간 안에 구현시켜 하나님 같이(Godlike) 되게 하는데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신적 본질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 안에 하나님의 윤리적 속성의 구현에 있다. 이 신적 속성의 공유는 영원을 향하여 확장되어 간다. 이런 신의 성품화 과정을 위한 성령의 활동이 곧 천국이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주의 기도문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어 우리를 정결케 하시며“의 뜻으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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