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론

하나님 : 2011. 10. 25. 16:38

그리스도교의 아킬레스 건

요즘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 세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는 13세 때 '라이프'의 표지에 나온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들어 온 그는 다니던 교회 목사님에게 "모든 걸 다 알고 통치하는 하나님이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있는지" 물었다.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한 잡스는 이날부터 교회로 가는 발걸음을 끊었다. 성인이 되어서 그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다 했지만, '기부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 냉소했다. 어린 시절 교회 목사님이 대답을 잘 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신정론(神正論, Theodicy) 이슈를 어린 아이에게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철학자들은 우주 안에 있는 악의 실존을 그리스도교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보고 있다. 그들은 흔히 연역추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악의 존재가 상호 모순된다는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그 연역추리의 예를 하나들면 이렇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선하신 분이어서 악을 파멸시킬 수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분이어서 악을 파멸시키실 수 있다. 그런데 악이 파멸되지 않고 있으니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트의 신정론

세상에는 여러 악의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자연적 재난들과 도덕 도덕적 악의 폭증 현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자연 세계는 타락된 상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연적인 재난의 악들이 일어나고 있다. 도덕적 존재들의 의지의 결과로 오는 도덕적인 악도 있다. 신정론은 이 세상에 이런 자연적 재해나 도덕적 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정당하다고 설명한다. , 하나님이 악의 근원이 된다는 논법의 부당성을 주장한다.

루터는 하나님께서 구속적 계시를 통한 말씀이라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랑과 의를 나타내시는 일을 하시지만,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악한 현상들은 이 비정상적인 방식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악이 타락의 결과로 오는 것으로 본다. 이 악은 하나님의 뜻에 대립된다. 만물이 고통당하고 탄식하는 그 속에서 성령께서도 탄식하신다.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에게 고통을 주어왔다. 특히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는 이 죄악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하나님께서 죄악의 결과들을 친히 떠맡으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시어 배고픔, 배반, 거절과 조롱, 그리고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말미암은 악한 결과들을 부정하기 위하여 이런 고통을 당하셨다. 바르트가 말한 대로 YesNo를 극복하고 초월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이다.

 신정론의 성서적 근거

개신교 신학에서 논의되어온 신정론이 인간 세계에 역점을 두고 있어 왔다. 그러나 재림교회는 그 시야를 넓혀서 우주적으로 확장시켜서 이해하여 왔다. 신정론을 거시적으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전개되어 온 대쟁투의 역사철학에 입각하여 우주적(지상 인간 이외의 타 지성적 존재들--하나님, 선한 천사, 악한 천사 및 타 우주 거민들)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는 신정론일 때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3:25-26은 하나님의 정당성과 의로우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것들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들어 있다.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3:25)는 표현은 곧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사건에는 신정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신정론(theodicy)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공의)’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그런 의미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옹호 받는다라는 의미에서의 의로움을 가리킨다. 신정론은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시다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공의로우심은 인간에게 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고 있는 온 우주의 거민들 앞에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신정론 메시지를 시 51:1-4, 3:4, 3:10, 19:1-2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본문들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사단은 대쟁투 이슈로 하나님의 품성과 율법을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우주에 하나님을 참소함으로 자기의 정당성을 반증코자 했다. 온 우주가 하나의 배심원이 된 셈이다. 이런 우주에서 하나님은 배심 재판을 받으시는 형국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용하셨다. 예수의 십자가는 사단의 이 참소가 거짓이라는 것을 온 우주에 완전히 증명하는 데 있다. 드디어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의롭다고 확인되었다. 반면에 사단은 완전히 거짓말쟁이라는 것도 증명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옹호라는 대쟁투의 기본 이슈 개념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 예수께서 왜 죽으셔야만 했는지, 십자가 이후에도 우리는 왜 이토록 오래 여기에 머물러야 하는지, 왜 악은 여전히 존재하는지 등과 같은 많은 문제들에 대답할 수 있는 기본 틀을 마련해 준다. 재림 전 심판이라는 신학적 틀도 하나님께서 왜 자기의 공의로우심을 입증하셔야만 하는가 하는 점과 맥락을 맺고 있다. 다른 천적 존재들이 있는 온 우주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선포되어야 한느 것이다. 시인이 고백한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51:4)라는 것도 대쟁투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는 때에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3:10) 앞에서라는 사실이다.

  사랑과 의로운 품성의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께서 사단이 일으키는 자연적 재해라는 악과 그 하수인격인 인간들이 일으킨 도덕적 악들의 장본인을 그 때 마다 곧장 척결한다면 우주에는 공포분위기가 감돌아 사단이 애당초 하나님의 품성을 물고 늘어지는 사단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사단이 참소한 그런 품성을 지니신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하여 오래 참으실 뿐 아니라 사단에 대하여서도 오래 참으신다. 온 우주가 사단의 기만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길이와 넓이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참으신다.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증명하는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주적으로 증명하는 사건이다. 사단을 완전히 패배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히 드러나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의롭다하실 뿐 아니라, 이 일로 하나님도 의롭다는 사실을 완전히 증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이후 인간들을 향한 은혜의 기간을 넓혀 주시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kairos)를 주시면서 고난이라고 하는 악을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선의 도구로 삼아 징조라는 사인을 삼으시고 있다. 마침내는 사랑의 승리를 이루실 것이다. 그 때 각 사람의 눈물을 씻어 주시어 악의 득세와 횡포 때문에 흘린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취급하실 때 오직 의와 진리만을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는 아첨과 기만을 사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전하고 하나님의 정부의 방침을 천사들 앞에 잘못 나타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 주민들에 대한 율법과 법칙을 제정하실 때 공정하게 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복종과 순종을 요구하심으로 하나님 자신만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하늘 주민과 온 세계들 앞에서 하나님의 정부가 공의롭고 그분의 율법이 완전하다는 것이 실증되어야 한다. 사단은 자기 자신이 온 우주의 행복을 촉진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자처럼 보이게 했다. 그 찬탈자의 본성과 참 목적이 모두에게 알려져야 한다. 자신의 악한 행위에 의하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에게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GC 498).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