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족보 (1:1-17)

 

마태는 신약의 첫 번째 책, 마태복음의 저자이다. 4복음서는 각기 다른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그 중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서 묘사하고 있다. 마태는 왕의 족보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처음 신약성경을 펴서 마태복음을 읽었을 때 재미가 도무지 없어서 책을 놓을 번했던 일이 있었다. 띄어쓰기도 안 된 옛 한글 어투가 더욱 짜증나게 했다. 마태가 타깃으로 삼고 있는 독자층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훗날에야 알았다. 유대인들에게는 긴 인명록이 자연스러웠고 흥미를 북돋는 역사기술방법이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이런 족보형식의 기록들이 산재해 있기도 하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마태는 14명을 한 그룹이 되게 하여 족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 다윗으로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14, 비극적인 바벨론 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14, 42대가 나온다. 이는 기억하기 쉽게 하는 장치다. 그 안에 더들어갈 조상들 이름이 각 그룹마다 있지만, 일부러 생략한 이유는 완전수 7을 살려내기 위한 의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완전수의 곱빼기라는 점이 더 그렇게 보이게 한다. , 마태는 완전함을 담고 있는 족보 기술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그는 위대한 왕 다윗을 중심으로 해야 왕가적 특성을 살려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다윗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자음은 DWD인데 이를 히브리 알파벳이 각각 지닌 수치로 계산하면 4+6+4가 되어 그 합이 14가 된다. 이런 다윗 자손이라는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인류의 구주, 왕의 왕이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민중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의 칭호이었다(12:23; 15:22; 20:31-32; 21:9-15). 마태는 42대에 나오는 분의 중요성을 부각시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은 구약 역사와 예언의 놀라운 성취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의도적으로 묘사된 왕의 족보에 어울리지 않는 여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4명의 여자의 이름과 그것에 한 사람을 더하여 5명의 여인이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대인 족보에서 법률상 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소유물에 불과한 여자들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기도문 중에는 자기들을 이방인, 노예, 그리고 여자로 만들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4명의 여자들의 전력은 부끄러움과 수치로 차있다.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자식을 낳은 며느리 가나안댁 다말(38), 여리고 기생 출신의 여리고댁 라합(2:1-7), 모압 출신의 과부로서 늙은 보아스에게 시집간 모압댁 룻, 다윗에게 살해당한 충신 우리아 장군의 아내 (예루살렘댁 밧세바 이름을 밝히지 않음)(삼하 11-12)와 유대인들이 처녀로 예수를 낳았다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 마리아이다. 마태는 숨기고 싶은 사람들, 더 나아가 부끄러운 여인들의 이름을 일부러 드러내고 있다.

마태의 족보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가계족보이다. 왕가의 족보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가 속한 왕가의 족보에는 지울 수 없는 허물과 흠으로 얼룩진 여인의 이름들이 들어가 있다. 이리하여 마태는 그리스도의 왕가 법통에 흠 많은 여인들을 등장시킴으로 의도적으로 족보를 훼손시키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마태가 가장 신성하고 권위 있는 족보를 다루는 솜씨에는 폭 넓은 거시적 영적 안목이 엿보인다.

1. 하나님의 구원은 순혈주의(pure-bloodism)적 거룩한 혈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 분이 정통 유대인 왕가 배경을 지녔다는 것을 제시하면 적대감을 해소시키면서도 설득력이 높았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헤롯왕의 에돔족 혈통을 문제 삼아 그를 경멸한 것을 보면 얼마나 순혈주의적 의식이 강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순혈주의를 추구하는 유대인들의 역사에도 흑점을 피할 수 없다는 증거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죄인들을 사용하시어 복되고 좋은 일을 일으키실 수 있다는 것이다. 흠이 많고 부끄러운 여인들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불행한 과거, 감추고 싶은 과거의 이력서를 지닌 인간들을 사용하시어 구속의 경륜을 이루어 가신다. 마태는 이런 족보 기술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성도와 죄인 사이에 가로 놓인 장벽들을 허물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족보기술에는 모두를 포용하시는 하나님의 큰 눈이 들어 있다.

 

2. 고상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여인들로부터 유래된 후손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네 명은 모두 결혼에 실패한 여성들이다.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아이를 낳은 가나안 여인 며느리, 민족 배신자가 된 여리고 화류계 여성, 노인과 결혼한 젊은 모압 과부, 남편을 죽인 사람에게 시집가버린 지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예루살렘 댁 밧세바가 바로 이 여인들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수를 가리켜서도 결혼하기 전에 임신한 처녀가 낳은 사생아라고 지탄했다.

 

3. 연약한 여인 하와의 후예로부터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남편에게 금단의 과실을 먹도록 굴복시킨 하와 때문에 죄가 이 땅에 들어 온 것을 두고 여성을 죄의 통용문으로 보았다. 인간 역사는 그만큼 여성비하적인 시각이 지배하여 왔다. 죄의 질서가 장악한 역사에는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성을 착취하는 대상으로 여겨 왔다. 유대인들에게 여인이란 남편의 소유물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구원의 통로가 된 것이다. 마리아는 원시복음(3:15)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이다. 아담-하와 실패를 승리로 이끌 여자의 후손이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당시에 죄의 통용문으로 여겨졌던 여인이 마침내 그리스도를 탄생한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것이다. 사단은 약한 존재인 여인들을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여성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일으켜 왔고 드디어 마리아를 통하여 대망의 메시야를 탄생케 하셨다는 것이다.

 

세리 마태는 왕의 족보에 담긴 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가슴에 밀려오는 영적 구원의 파도를 체험하였을 것이다. 레위인으로서 거룩한 일을 버리고 세리의 길을 걸으면서 지탄을 받아 왔는데 메시야의 족보에 담긴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보고 마태의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이집트에서 430년을 억압의 쇠사슬에 묶여있던 한 조그마한 민족이 탈출하여 새로운 나라를 이루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파멸을 자초하고 있는 인간 세상에 여인의 후손”(3:15)으로 오셔서 영원한 구원을 베푸시는 메시야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메시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을 여인의 후손 아들(7:14)의 도래 예언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현장에서 마태는 구원을 위하여 낮은 곳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다.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았다. 누구보다도 사회에서 버림당한 죄인으로 취급되던 세리인 자신에게 임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다. 마태는 이것을 믿음의 신비로 풀어 족보에 담은 것이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