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새해

 

우리는 2017년을 못다 이룬 아쉬움을 남긴 채 2018년을 맞이했습니다. 시간은 선과 같아서 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불교는 윤회로 다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새해의 소원에 관한 꿈을 꿉니다. 여러 성도들께서 새해에 꿈꾸는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제 소원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 가족의 건강한 삶을 소망합니다. 토끼 띠 아내가 건강하여져서 호랑이 띠 나와 함께 잘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꿈이 무엇인지 혼자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희집 구호는 이것입니다. “비전이 미래를 창조합니다(Vision creates future.).”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2:17-21).

 

위기의 새해

2018년이 이미 시작 된지 벌써 7일째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시간은 바람처럼 스쳐가고 있습니다. 유수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 순간에 불과한 현재 시점은 내 시간이요, 내 인생입니다. 가는 시간은 멈춰 서서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던 옛 날 정적사회와는 달리 말세라고 불리는 오늘의 격동적인 사회에서는 늙음이 오기 전에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018년은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판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위태로운 사건들, 절망적 사건들이 교차할 가능성이 너무나 큰 한 해가 될 것입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곧 떨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해입니다. 언제 폭풍이 몰려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인생길을 어떻게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엘렌 화잇 여사가 핵 폭탄을 시사하는 불 공계시를 받은 일이 있는데 이 계시가 1945년에만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오늘날 세상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보았던 것과도 같이 희망의 살구나무와 심판의 끓는 가마가 교차하는 유대 역사 말기 시대와 유사합니다. 위태로운 큰 재앙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여 있습니다(1:13-130). 또한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 아침이 오리니 밤도 오리라”(21:11-12)는 두마에 향한 경고에서 보듯 어둠의 밤이 밀려오는 종말론적 사건들의 시나리오가 언제 전개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단적인 증거가 청와대가 자기들만 몰래 사들인 탄저병 백신 사건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최고 지도층이 생화학전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탄저병에 걸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한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해 받기 십상입니다. 핵미사일 같은 끓는 가마가 가져 올 흑암의 밤을 막아주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말세의 격변적 사건 속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제시하고 있는 소망은 비관 속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위기를 돌파케 하는 믿음의 꿈

아침이 오는 것 같은데 곧 흑임의 밤이 다가오는 절박한 상황에서 대답은 두 가지 뿐입니다. 뇌가 망가진 바보처럼 그저 멍하니 살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그 보호의 그늘 아래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새 땅으로 인도하시어 세초부터 세말까지 돌보아 주실 것을 믿고 나가는 길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 우리의 꿈을 이루어 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하는 모든 命令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强盛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祖上들에게 盟誓하여 그들과 그들의 後孫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長久하리라 10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播種에 발로 물 대기를 菜蔬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吸收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年初부터 年末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恒常 그 위에 있느니라”(11:8-12).

 

여러 성도들께서는 신년을 위한 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아무 꿈도 없이 2018년 정월 초하루를 맞이하지는 않았겠지요? 꿈이 없는 개인, 꿈이 없는 겨레에게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위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I have a dream”이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그 꿈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이 낳은 세계적 위인 5인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워싱턴, 제퍼슨, 프랭클린, 링컨과 함께 영웅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꿈은 흑인 오바마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드는 길을 마련하였습니다.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와 맞장을 뜨자고 했던 흑인 애드벤티스트 벤 카슨 트럼프 정부에 각료로 피택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베이징 대학 학생들에게 중국 을 칭찬하고 거기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중국몽이란 세계적 패권국이 되어 주변 나라들을 졸개로 굽실거리게 하겠다는 것인데...광개토대왕 꿈도 못 꾸는 지도자인가요?

믿음 외에는 내 꿈을 뒤받쳐 줄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음은 인생이 서 있는 반석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재물, 권세, 건강, 가족, 친구, 사회, 국가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러면 내 믿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바울은 믿음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2018년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선물을 받았습니까? 믿음의 선물을 받아서 살아가는 축복받은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은 시작이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축복은 마치 수험생이 시험 문제 답안지를 받고 앉아 있는 것, 화가가 그림 그릴 화폭 앞에 있는 것 같은 축복 사업의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그 믿음대로 밀고 나간다면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아무리 크고 심각해도 그것을 믿음으로 대처해 간다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러주실 것입니다. 새해 벽두 다가오는 2018365일의 화폭에 천고의 명작을 그려 넣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가오는 시간은 우리의 꿈과 미래의 환상을 믿음으로 그려 나가는 일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언제나 꿈이요, 환상입니다. 일 년 벽두는 그래서 꿈의 계절이요, 환상의 계절입니다. 이 성경을 귀담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세에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오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2:17)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초기교회를 탄생케 한 오순절 사건을 예언한 요엘 2;28-32은 사도들 당시에 제1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말세,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사도 시대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 둔 말세에 그 종국적 성취가 있을 것을 예기케 합니다.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하는 것은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내릴 것입니다. 특히 말세의 분기점이 되는 1260년의 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일어난 천체의 문자적 성취가 그 도래의 예고편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은 장벽도 경계도 없습니다. 그것은 남녀 성별, 나이 고하, 빈부귀천 신분의 장벽을 넘어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이른비 오순절을 연 환상과 꿈은 예언의 영의 열매입니다(1T 569-570). 하나님의 영이 주시지 않은 꿈은 아무 가치도 없는 개꿈에 불과합니다. 아니면 사단이 준 꿈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꿈을 통하여 가르치신 것처럼 아들 요셉에게도 꿈을 통하여 가르치시고 있다고 믿었습니다(참고, 3SG 139). 위기의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전과 꿈은 늦은비 선교의 기적과 개인적 원숙한 신앙 인품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태양이나 달, 그리고 별로 표상된 인간 메시야들은 빛을 잃어버렸고 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도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혼란상은 극한을 향하여 치닫고 있습니다. 피와 불과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말세란 갖가지 재난과 환란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절망의 먹구름이 덮쳐오는 시간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하나님의 비전과 꿈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몰아친 태풍을 만나 잘 대처한 꿈의 사람 구약의 요셉의 믿음을 들어 신년 벽두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각 꿈을 통하여 종말론적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

1. 소년 시대의 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창세기 37:5-11)

 

요셉은 십대 후반 아직 어린 나이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몰인정한 형들이 자기를 광야 구덩이에 내동이 쳤고, 마침내 애굽으로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꿈만 꾸고 기다리지 않고 기도했으며 강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아버지의 생애에서 베델의 꿈을 키워간 비밀과 신비를 배웠을 것입니다. 차자가 장자 되는 비전의 창조, 외삼촌 목장의 목동이 되어서도 거기서 부자가 되는 사업 승리의 꿈, 일생일대의 최대 위기를 앞두고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아 끝내 꿈이 현실화되는 기적을 보게 된 야곱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파란만장한 생애에서 꿈을 이루어 간 일들을 들었고 목도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강한 믿음과 계시 중에 조상들에게 하신 말씀을 명상하며 따랐고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꿈은 믿음과 성경연구와 기도를 통하여 영글어갑니다.

요셉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여호와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고 이스라엘의 수호자 하나님께서 그가 유랑하는 땅에서도 그와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였다.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하늘 왕의 신민(臣民)답게 행동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리라는 고결한 결심으로 그의 영혼은 감동되었다. 그는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운명의 시련을 인내로 당하며 날마다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하였다. 이 하루의 경험이 요셉의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무서운 재난이 그를 응석 부리는 아이에서 사려 깊고 용감하고 자제력 있는 어른으로 변화시켰다. ”(부조, 214).

곤경을 당할 때 요셉처럼 믿음의 결단을 하고 새해를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거짓 신의 숭배는 궁정의 모든 사치에 둘러싸여 그 당시 최고의 문명국의 부와 문화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단순성과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을 지켜나갔다. 그의 주위에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숱한 죄악들이 둘러 있었으나 그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생애하였다. 그의 생각은 금지된 문제들의 주변에서 머뭇거리지 않았다. 애굽인들의 환심을 사려는 욕망으로 자기의 원칙을 감추는 일도 없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였더라면 그는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조상들의 종교를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으며 그가 여호와를 경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의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와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39:2, 3). 요셉에 대한 보디발의 신임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져 마침내 그는 요셉을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주관하는 가정 총무로 삼았다.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39:6). ”(부조, 214

 

2. 감옥에서의 꿈 해석 이야기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는 자기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겼다. 그는 자신의 불행에 마음을 앓지 않고 다른 사람의 슬픔을 가볍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중에 자신의 슬픔을 잊었다. 그는 옥중에서라도 할 일을 찾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크게 쓰시기 위하여 고난의 학교에서 준비시키고 계셨으며 그는 필요한 훈련을 거절하지 않았다. 감옥 속에서 압박과 학대와 범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목격하고 그것을 통해 그는 정의의 동정과 자비의 공과를 배웠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지혜와 자비심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다. ”(부조, 218)

 

요셉이 애굽 감옥에 갇혔을 때 함께 갇힌 두 죄수가 꾼 꿈을 요셉이 해석해 준 일입니다. 한 죄수는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이며 다른 한 죄수는 떡 굽는 조리사입니다. 둘 다 반역죄에 몰린 사형수들입니다. 그 둘이 각각 꾼 꿈을 술 맡은 자는 다시 전직에 복귀되는 꿈 해석이요, 떡 굽던 조리사는 죽을 것이라는 꿈 해석입니다.

이 두 번째 꿈과 그 해석은 우리가 배워야 할 요셉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큰 교훈입니다. 요셉이 이웃과 동료 죄수에게 보인 지극한 관심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옥에 갇힌 요셉과 왕의 두 시종은 모두 사형이 확정된 것과 다름없는 중죄인들입니다. 더군다나 20대의 소년 요셉은 아무 죄도 없이 무고하게 갇혔고 자기를 변호할 그 누구도 없는 외국인이었습니다. 곁에 있는 죄수가 죽든 살든 상관할 바 없는 몸인데도,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냄에도 불구하고 같이 수감된 죄수 두 사람의 신변에 일어날 일에 관심을 보이고 힘닿는 대로 돕고자 애썼던 것입니다. 지난 밤 꾼 꿈을 불안해하며 지내는 그들의 꿈을 더 좋게 풀어준 이야기입니다. 살 수 있다, 산다는 희망의 말 한 마디 말을 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운동선수에게 잘 뛰라고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일을 늘 보았습니다. 시험 치러 가는 학생에게 잘 치르기를 격려 하는 일은 오늘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절망의 늪지대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요셉이 사형 집행을 앞둔 감방 죄수에게 그래도 어쩌면 살 길도 있지 않겠느냐며 희망을 보여 주는 꿈 해석을 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술 맡은 관원이 옛 신분으로 복직되었을 때 요셉의 인품의 고결성과 억울함을 모른 채 배은망덕하여 2년이나 지났지만 요셉은 낙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떡 맡은 관원에 대하여는 낙심해하며 고민할 때 영생의 길을 소개하며 기도해 주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3. 바로 왕의 꿈 해석 이야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신묘막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18세에 노예로 팔려가 요셉이 12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살아가는 동안 오로지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며 남을 배려하는 것을 보고 그를 삶의 현장에서 리더로 나설 수 있도록 섭리하시는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후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 해석을 하는 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중 그 술 맡은 궁중 집사가 자기 꿈 해석을 잘 맞춘 죄수 요셉을 소개하여 황제의 꿈의 정답을 찾아낸 이야기입니다. 애굽 황제의 꿈 해석으로 일약 외국 청년 요셉이 대제국 국무총리로 발탁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지금도 가끔 생겨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단초는 감방에서 술 맡은 죄수 관원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해준 일이 요셉의 운명을 바꾸는 기적 같은 일을 야기시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 내 꿈도 아닌 남의 꿈, 이웃의 꿈, 그 어느 누구이든지 자기 곁에 있는 이들의 경영과 계획과 사건에 꿈같은 생각에라도 관심하고 격려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조언을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요셉 같이 일인지하 만인지상 국무총리까지는 못되어도 놀라운 보답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꿈꾸는 소년 요셉은 소년 시절의 꿈을 청년이 되면서도 잊지 않았습니다.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렸을 때에도 꿈이 있었기에 하나님과 형들에 대한 불평이나 원망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었고,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인의 신임을 얻어 가정 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청지기의 중책을 맡게 되었고, 한창 젊은 시기에 자신이 섬기는 주인의 아내의 유혹에도 아무도 보는 이 없어도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하며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도 아무런 원망없이 감옥이라는 새롭고 억울한 상황에서 성실하여 신임을 얻었고, 그곳에서 마침내 왕의 두 신하 죄수들의 꿈을 해석하므로 꿈의 실현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직위는 높고 명예로운 것이었으나 어려움과 위험도 따르는 직위였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높은 지위에서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폭풍이, 골짜기에 피어 있는 나직한 꽃은 해치지 않으나 산꼭대기에 있는 높직한 나무를 뿌리째 뽑는 것처럼, 비천한 생활 중에서는 성실을 유지하던 자들이 이세상의 성공과 명예가 동반되는 유혹을 받고는 질질 끌려내려 가다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요셉의 성품은 역경에서나 순경에서나 한 결 같이 시험을 견디어냈다. 그는 바로의 궁전에 있을 때나 감방에 있을 때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냈다. 그는 여전히 친척들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있는 이국 땅의 나그네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한결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성실하게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요셉을 통하여 애굽의 왕과 고관들이 참 하나님께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조, 222)

 

요셉은 어둠 속에서 터트린 하나님의 섬광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꿈과 계획을 품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세계를 구원하고 땅을 자기와 화해시키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스런 현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영의 일꾼이 되어 그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그가 세운 토대 위에서 민족 해방자 모세가 나왔고, 이스라엘 민족이 민족다운 민족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꿈꾸는 한 소년의 꿈이 그 자신의 인생 운명을 바꾸어 놓고 그 가족, 그 민족, 그리고 당대 세계를 지배하는 한 제국의 운명까지, 역사를 변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우리 000교회에 나오는 어린이 여러분 이 교회는 여러분들에게 꿈을 키우는 온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가 꿈과 이상을 키워가는 산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맞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받아 비전을 키워가는 청년들이, 꿈을 꾸는 노인들이 되어 2018년을 믿음의 삶의 사명을 완수해 가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찬미가 403)

출처: http://kahn0211.tistory.com/398 [순례자의 여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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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