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자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자
(대하 21:20)
오는 금요일 내일 남북이 판문점에서 만나 어떤 협정을 체결할 것인지 초미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정전협정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혀 온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이는 북한 비핵화 마지막 단계에서나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핵보유국으로 선언한 상대일 뿐만 아니라, 각각 이념과 통치방식이 다른데 짧은 만남과 문서 몇 장으로 평화가 올 것인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구약성서시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사이에 민족공조 체제 시도와 그 결과에 관한 역사를 살펴보면서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성경본문 중심으로 생각해 보며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I. 남북 혼인동맹 공조 및 평화협정 체결 (대하 18장)
같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자손들이 분단국가로 치닫는 것은 비극이었다. 수많은 갈등과 투쟁이 이어지는 분단국가의 체험을 우리는 74년째 하여 오고 있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사이의 긴장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남북분열 왕국시대라는 후유증은 컸다. 그래서 상당한 세월이 지났을 때 비록 당장 한 나라로 합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민족끼리 공조체제나 불가침 조약, 이산가족 상봉 교류, 평화협정 등을 시도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A. 남 유다 제 4대 왕 여호사밧 왕과 북 이스라엘 8대왕 아합 왕(21년간 통치)과의 혼인동맹 (1-3절)
BC B.C. 931년에 남과 북이 갈라섰다. 그 후 60여년이 지난 대치상황에서 평화협정과 남북 공조와 교류가 시도된 것이다. 1945년 분단되어 73년이 지난 다음 우리의 남-북간의 평화무드 조성과 유사한 상황이다.
여호사밧 왕은 통치 초기에 종교개혁을 하고 국가의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는 위업을 달성해 국가를 견고하게 했다(대하 17:5). 더구나 북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그것도 두 왕조 사이에 평화협정과 공조 체제를 구축한 정도를 넘어섰다. 여호사밧은 자기 아들 여호람을 아합 의 딸 아달랴와 혼인을 시키는 혼인 동맹을 체결함으로 백성들이 전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 나라의 왕자와 공주를 결혼시켜서 동맹체를 만들어 평화체제를 정착시켰으니 이제 백성들로부터 남과 북은 사돈 국가 인연을 맺고 자녀들에게는 외가-친가가 되었으니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 평가를 들을 만큼 되었다. 혼인 동맹은 가장 강력한 동맹체일 것이다. 그래서 옛 왕국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진 동맹이었다.
1. 여호사밧 치적:
1) 산당과 우상들을 제하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다.
2)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예물을 드렸다.
3)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까지도 자발적으로 예물과 조공을 바쳤다.
2. 여호사밧의 대북 방문과 동맹 군사작전
연혼 얼마 후 북이스라엘 아합왕의 초청을 받아 사마리아로 방문과 아합왕의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길르앗라못(예전 도피성으로 전략 요충지) 탈환 제안에 동조 (대하 18:2-3)한다. 거짓 선지자들 400명의 거짓 예언적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참 선지자 미가야 예언을 무시한다.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있던 거짓선지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며 "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고 했다 (23절). 자기에게 임한 영이 거짓 영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참 영으로 착각한 시드기야는 미가야 선지자가 미혹하는 영에 의한 예언이라고 하자 분노를 버럭 낸 것이다. 미가야 선지자는 시드기야에게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바로 그 날에 보리라"고 했다 (24절). 하나님이 심판할 때에 골방에 숨게 될 때에 비로소 자신의 예언이 거짓예언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을 들은 아합왕은 미가야 선지자를 잡아 아몬 시장(성주)과 요아스 왕자에게 끌고 가서 옥에 가두게 하고 자신이 전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고 했다 (26절). 감옥에 가두어 떡과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미가야 선지자는 왕이 참으로 전장에서 평안히 돌아올 것 같으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런 계시를 주시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7절).
3. 여호사밧에 대한 질책(대하 19:1-2)
전쟁터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여호사밧은 귀로에서 선견자 예후의 호된 질책을 받는다. 여호사밧왕은 정치적 목적으로 우상숭배를 하는 아합왕과 연혼을 했기 때문에 책망 받기도 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참 예언자 미가야의 메시지를 받고도, 아합과 제휴하여 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게속하여 민족 공조나 “우리 민족끼리”라는 굴레를 뒤집어 쓰고 이념과 신앙이 다른 왕과 공조를 한 것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이다.
4. 아합 가문의 비극
미가야의 예언에 불안한 아합왕은 변장하고 싸웠으나 아람 군이 우연히 쏜 화살갑옷 술기 사이를 뚫고 들어가 중상을 입고 죽었다(대하 18:29-34).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이다. 북 이스라엘 계보는 아합왕->아하시야-> 여호람(요람)으로 이어진다.
5. 예후의 구데타(왕하 9-10장)
북 군대장관 예후가 아람과 전쟁을 하다가 엘리야의 사명을 받고, 구데타를 일으켜 여호람왕을 살해, 이스르엘 성읍 이세벨을 창밖으로 내어 던지라고 명령 내려 죽게 했다.
B. 교훈
여호사밧은 성군에 속하였으나 북 이스라엘과의 정치 역학을 인간의 힘으로 풀려고 도박을 한 한계성을 보여 주었다. 신앙 위에 정치가 있었다. 장차 자기 가문을 망하게 할 미운 물건 같은 며느리를 정치적 흥정으로 택한 것이다. 돈과 돈의 결합, 권력과 권력의 결합은 거의 비극적으로 끝난다. 우상 숭배자와 제휴하는 혼인은 가문의 파탄을 가져 온다. 자손들에게 저주를 불러온다. 이 사건은 하나님 백성이 불신자와 제휴할 때를 대비케 한 역사적 경계가 된 사건도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와중에도 사랑의 하나님을 절름 발이처럼 믿고 개혁을 단행한 그를 축복하고 보호한다. 그러나 그가 뿌린 타협은 비참한 종말로 이어지는 끄나풀이 되었다.
"너는 凡事에 그를 認定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指導하시리라)(잠 3:6).
나는 최근 한 재림신도의 장례행사에 조문 가서 위로의 기별을 전하였다. 평생을 재림의 소망을 안고 작은 예배소를 돌보면서 평생을 보낸 그분을 기렸다. 특히 고인이 남긴 “나는 준비되었다”는 고백을 중심으로 말씀을 증거했다.
II.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자
북 이스라엘 왕에는 아합-아하시야-여호람으로 이어지고, 남 유다는 여호사밧-여호람-아하시야가 나온다. 동맹 체제라서 그런지 왕의 이름까지도 공유하고 있어 성서학도들을 헷갈리게 한다.
A. 엘리야의 편지: 유다 제5대 왕 여호람에 대한 엘리야의 편지는 일종의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예언이었다( 대하 21:11-15 ).
1. 편지 보낸 이유
1) 등극 후 반대 세력에 대한 잔혹한 숙청 - 자기보다 더 선한 아우들과 방백들을 죽인 것이다. 남편을 조종하는 자는 아내다. 이에 동의하는가? 남편은 거의 부인의 아바타들이다. 아무 소리하지 말고 아내의 제안을 들어야 가정이 평안하다. 아내가 악하다면 그 남편은 망가진다. 아내의 책략에 따라 이런 잔혹한 살육이 일어난 것이다. 여호람 왕은 결국 혈혈단신이 된 것이다.
2) 속국(에돔, 림나)들의 독립과 블레셋과 아라비아 침공 아들들 죽임- 통치력 결여를 보여준다.
3) 아내의 사주로 악정 및 아합 집 우상 도입했다.
B. 통치기간: 8년
C. 결과- 여호람은 창자에 병이 들어 2년 동안 고통당하다가 창자가 몸 밖으로 빠져 나와 죽었다. 그는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자가 되었다(대하 21:20).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호사밧의 아들과 아합의 딸 아달랴 사이의 결혼은 남 유다의 몰락을 재촉하였다. 아합은 아주 악한 왕이어서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된 왕이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그와 혼인동맹을 체결한 것이다. 그리고 상호 교류하면서 공조 제휴하여나갔다.
여호사밧은 성군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민족주의 의식이 강한 왕이었으나 결국은 북 아합에게 이용만 당하고 나라를 몰락의 길로, 자녀들을 푸줏간으로 내 몰았다. 당장 눈앞의 평화를 이유로 나라의 미래와 자녀들의 미래를 망쳐 버린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이 이 동맹 체제로 인하여 비참하게 죽었다.
마지막 죽음의 모습은 인생의 결산이다. 고인에 대한 아쉬움, 그리움, 빚짐, 감사를 남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망스러운가. 살아 있는 동안이 얼마나 소중한가! 신앙 안에서 에서 산다는 것은 인생의 대박이다. 주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 삶은 죽음의 준비가 되고 죽음은 영생의 부활이나 영멸의 심판 중 하나로 이어진다.
기도하다가, 말씀 읽다가 주를 맞이하게 하옵소서. 예배드리다가 주를 맞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은혜가 내리게 하옵소서.
III. 아하시야(6대왕)와 아달랴(7대 왕)의 폭정 (대하 22장)
A. 여호람 막내 아들 아하시야가 42세 등극(왕하 8:22에는 22세 등극)
42세가 될 수 없는 이유- 부친이 40세에 사망했기 때문이다(대하 21:5, 20).
바람직한 이해:
1) 필사자의 傳寫 誤記로, “이십” 대신에 “사십”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주장이다.
2) 히브리어 문구 “42년의 아들”은 아하시야가 즉위할 때의 나이가 아닌 오므리 왕조를 창건할 때부터의 햇수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하시야는 “오므리[의 아들 아합]의 딸 아달랴”를 통하여 오므리 왕조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하시야가 오므리 왕가의 보호 아래 있 었기 때문이다. 남쪽이 자기 역사를 북의 역사에 종속 시킨 역사관 변질을 엿보여 준다.
B. 아하시야 악정 (대하 22:3-4)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行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惡을 行하게 하였음이라 그의 아버지가 죽은 後에 그가 敗亡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惡을 行하였더라. 통치기간 1년 동안 외가인 아합 가문의 신앙 사상적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C. 죽음(22:5-9)- 외삼촌 요람 왕 병문안 갔다가 엘리야의 사명 위촉에 따라 구데타를 일으킨 예후에게 외삼촌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제명대로 못살고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요람은 아합의 아들로 아하시야의 외삼촌이었다. 그가 전쟁 중 부상 입어 아하시야가 위로 차 북에 방문하였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북이스라엘에 예후 군대장관이 구데타를 일으켜 아합 가문을 도륙하고, 이세벨 등 모두를 죽였다. 이 피비린내 속에서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IV. 아달랴의 폭정 (왕하 11:1-16; 대하 22:10-12) 및 다윗 왕가 멸절 음모
아달랴는 자기 어머니 이세벨의 잔인성을 빼 닮았다. 아니 그보다 더 악독한 딸이었다. 남편을 조종하는 자는 아내다. 그는 남편이 죽자 아들을 조종했다. 악한 아내, 악한 엄마가 되어 그 남편과 아들을 망가트렸다.
A. 아달랴는 다윗 왕가 계승 가능한 모든 자를 진멸하였다. 특히 왕의 씨, 즉 아하시야의 어린 자식 (친 손자들)을 다 죽였다. 아달랴가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소식을 전해 듣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시킨 것이다. 아들이 문병 갔다가 죽고말자, 아달랴는 정서상태가 맨붕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아달랴는 그 동안 정치권력의 맛에 취하였다. 8년 동안 태후로서 통치하여왔는데 아들 아하시야의 아들들이 자기의 친 손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손자가 왕권장악하면 자기가 실권된다고 보아 할매 귀신이 되어 그들을 다 죽인 것이다.
아달랴는 온 나라를 우상숭배 나라로 만들었다. 우상숭배 들어오면 하나님의 징벌은 필연적이다.
아달랴가 친손자들을 몰살시킨 이유
1) 국가 권력에 대한 욕망, 2) 다윗의 등불을 꺼버릴려는 악한 동기
예후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자기 친정 아합 왕족의 씨를 몰살시켰다는 점에 반발, 그렇다면 나도 여호와께서 아끼는 다윗의 씨를 말리겠다고 한 것이다. 다윗의 등불을 꺼버려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출생하는 것을 막고자 한 악한 동기가 엿보인다.
B. 여호야다의 구데타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 야다의 합성어로 “여호와가 아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여호사브앗(여호세바)로 (대하 22:11), 여호람의 후궁 소생 딸이었다. 그의 미모가 출중하여 왕의 눈에 들었을 것이다. 아달랴와는 모녀지간이지만 친딸이 아니다. 여호세바는 아하시야 왕의 누이로 아달랴가 왕자들을 죽이는 와중에 요아스를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 양육하였다. 왕자에게 여호세바는 고모가 된 것이다. 6년을 몰래 숨겨 키운 것이다. 바로 옆이 왕궁이고, 성전에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목숨 걸고 한 일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성전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출입이 늘 있는 곳이라 발각되면 삼족이 멸하여질 위험한 일이었다. 6년간의 감시망을 피하는 일은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이들 부부가 목숨 걸고 한 이유는 다윗의 등불을 살려야 한다는 메시야 신앙 때문이었다.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을 불러 평소에 백부장들의 신뢰를 받던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맹세하게 한 후에 요아스 왕자를 보이고 다윗의 등불로 소개했다. 아마도 불의를 타도하고 다윗의 등불을 옹립하는 일은 거룩한 일로 부각시켰을 것이다. 악한 여자 아달랴가 왕족을 멸하고 성전을 우상의 집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제는 악의 통치를 끝장을 내자고 충성 다짐을 하였을 것이다. 만일 반역 실패 염려하여 신고하였다면 가담자 모두의 생명은 끝났을 것이다. 드디어 다윗 왕국을 다시 세운다. 안식일에 어린 요아스 왕자를 왕으로 추대하는 일을 하였다. 아달랴도 비참하게 죽는다. 요아스가 7살에 등극하므로 다윗의 등불이 이어진 것이다. 이는 메시야의 대망 신앙을 살려내는 거룩한 일이었다.
C. 역전의 의미
여호사밧이 불신 가정과 혼인 동맹하고 공조체제를 이루어 나간 결과 유다 나라는 황폐하여 지고 자녀들이 몰살당하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무너지는 듯이 보였다. 그의 자녀들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 사돈 가정도 풍파를 만나 무너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역전시켰다. 이 역전의 주인공은 여호야다 부부이었다.
제사장 여호디야, 여호세바 부부의 공로 배후에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가 있었다. 여호야다는 한 번도 왕권에 욕심을 내 그것을 찬탈하거나 휘두르지 않고 오로지 제사장 직무에만 충실하였다. 그는 어린 요아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왕권 세우기에 헌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130년 이라는 장수의 축복도 주었다.
여호야다와 여호세바 부부의 인생의 목표는 같았다. 서로가 믿음 안에서 합심하였다. 그들의 인생의 목표는 같았다. 여호야다 부부처럼 부부가 동역자로 서로 위로하며 메시야께 헌신하면서 살라. 브리스길라와 아볼로 부부처럼, 아름다운 부부, 훌륭한 부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부가 되라. 이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부부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메시야 대망의 신앙만이 우리의 최후의 보루가 된다. 하나님 사업에 목숨을 바친 이들 부부처럼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길을 열어 주시고 이적도 일으키신다.
여호람이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지만 사실상 아합도, 이세벨도, 아달랴도 모두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씨앗을 심은 왕이 여호사밧이다. 그는 나라를 근본적으로 파탄시키는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 협정을 체결했고 그 결과 자식들이 모두 다 도륙되고 손주들도 도륙당하는 열매를 거두게 한 것이다. 부모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나는 자손들을 만들어야 하는가? 불신 세상과 짝하면 자기 세대는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겠지만, 자녀들은 신앙 계승이 안 된 채 죄악의 조류에 떠내려간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길은 천국을 향한 순례길이다. 아끼는 자 없이 살아가는 삶은 삶을 마침내 無(nothing)으로 만든다. 천사들이 우리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삶의 길을 손에 땀을 쥐고 주목하고 있다. 부모가 내 삶의 키를 잘 못 잡아 이끌었다고 하면 절망치 말고 가던 길을 점검하면서 방향을 하늘로 돌리자.
"너의 行事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經營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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