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에 관한 새벽 묵상
<조영일 의학박사의 새벽 묵상>에서 <온전>에 관한 영감적 통찰을 여기에 옮김니다.
2018.06.07.목.
💚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
■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9-10,14) ■
아들아.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신 말씀에
곤혹스러움을 어찌하지 못하다가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 하시니
우리가 얼마나 크게 아멘 했었더냐?
그런데 그렇게 기쁨으로 아멘 하다가도
오늘 나의 형편과 나의 모습에
아멘 소리가 수그러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의 제사', 십자가의 피로써
거룩하게 하시고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데,
오늘 나의 모습은 왜 이런 것일까?
나는 정말로 온전케 된 것일까?
이런 내가 정말로
영원히 온전케 된 것일까?
그렇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는 말씀 바로 앞에
주께서 이 말씀(마 5:44-47)을 하셨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주의 이 말씀이 문제가 아니라
이 말씀과는 너무나도 다른
오늘 나의 모습과 형편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태복음 5:44,46-47)
아들아.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
저 세리나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과는 달리
신실하게 율법을 지키고
조석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니?
그렇기는 하다만,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하는 말씀 앞에서는
세리나 이방인과
별로 그다지 다를 바가 없으니,
이렇게 고민이 되고 곤혹스러운 것이다.
이 곤혹스러움을 어찌할 수 없으니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이라는 것이
'이 땅에서의 무죄함'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나님 수준에서의 온전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 수준에서의 온전'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온전치 못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온전 곧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입혀 주셨음'을 말한다 하기도 하고...
이 모든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온전이
정말로 그런 온전일까?
온전케 되었다는 오늘 나의 모습이
이렇게 형편없어 부끄럽기만 한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온전을 원하시는 것일까?
그런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주께서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고 계시지 않니?
그러니, 우리는 지금 혹시
이런저런 여러 말로
하나님의 뜻을 우리 편할대로 해석함으로
우리의 온전치 못함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절대 아니라고 부인할 수만은 없으니
이래저래 곤혹스럽기만 하구나.
이 곤혹스러움에 대한 답을
하나님은 히브리서 10장에서 주시는 것 같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14)
아들아.
'더 좋은 제사' 곧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 하시지?
거룩하게 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하시고....
그런데, 거룩과 온전을 말씀하시기 전에
주께서 먼저 하시는 말씀이 있구나.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뜻'(히 10:10)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또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하시잖니?
아들아.
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그건 물어 보나마나
'우리와 하늘에서 영원히 함께 사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뜻을 가지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더냐?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아니시더냐?
반면에 우리는 거룩하지 못한 죄인이요
온전치 못하고 부정한 죄인이다.
그런 우리와
하늘에서 함께 사시길 열망하셨으니
하나님은 온전치 못하고 부정한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하게 만드셔야만 하셨단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만
하늘 보좌에 비로소 우리를
앉게 하실 수 있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 거룩하신 여호와가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히 13:12)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3:12)
그렇게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은 십자가 자기 피로써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는
거룩하게 된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하'(히 10:14)신 것이란다.
그러니, 이 온전케 하셨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절대적인 무죄함을
주셨다'는 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한 '아들'(마 5:45)로
영원히 구별을 하셨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십자가로 하나님은
온전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진실로 우리는
십자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온전히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아들아.
말씀을 펴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온전케 하셨다'는 이 말씀과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는 이 말씀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기만 하구나.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에 대해서는
내일 새벽에 만나
다시 함께 생각해 보자꾸나.
어젠 날이 한여름 같더구나.
아마 훈련이 오늘 절정일텐데
오늘도 그렇게 더울까 염려가 되는구나.
하지만, 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니
무더위 속 훈련이 아무리 고되고 힘이 들어도
사랑하는 하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사 32:2)과
'마른 땅에 냇물'이 되어 주실 것이다.
하늘 우리 아버지 그 은혜 아래에서
오늘도 부디 평안하려무나.
(2018.06.0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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