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의 중요성

성령 : 2018. 10. 18. 06:56

성령론의 중요성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적용- 

A. 구원의 적용 주체와 시제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구원을 위한 희생은 단회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객관적인 희생 제물에 토대 위에서 하늘 성소에서 아버지께 인간을 위한 중재사역을 수행하신다. 구원을 위하여서는 구주의 삶, 죽으심, 부활과 천상성소에서의 봉사가 있어야 한다.

또한 구원을 위하여 성령님의 사역이 요청된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과 삶에 객관적인 구원을 주관적으로 적용하신다. 구원은 죄로 인하여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재창조하는 사역이다. 갈보리의 은총의 축복은 이중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 천상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지상에서 인간의 심령 안에서 성령님의 사역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위한(for) 구원을 제공하셨고, 성령께서는 인간 안에서(in) 그 구원을 적용하신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3;4-7).

하나님은 사람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그들을 죄 없는 생애로 회복하고자 의도하신다. 죄된 남녀들을 하나님의 생명의 도에 대한, 그리스도를 닮은 대표자들로 변화시키는 이 과정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성화로 알려져 있다(참조 롬 6:19 주석). 성화는 죄를 도말하는 구주의 계획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여기서 중생의 씻음은 영광스런 성화의 과정을 시작하는 첫 걸음이다.

 

구원은 칭의, 성화, 및 영광화를 요청한다. 인간 안에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 즉 사랑을 통하여 삼위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진다. 성경이 구원을 과거 시제로(8:24, “구원을 얻었으매,” εσωθημεν), 현재 시제로 (고전 1:18, “구원을 받는σωζομενοις), 그리고 미래시제로(24: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σωθησεται)

구원은 죄 용서 그 以上이다. 구원은 죄에 대한 승리, 곧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을 지향한다. 그래서 구원은 구원 받는 자가 하나님과 같아지는(homoios)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homoios)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바울이 어떤 때는 실제로 너희가구원을 얻었나니”(have been saved, 2:5, 8)라고 말하고, 때로는 문자적으로 너희가구원을 얻고 있다”(are being saved, 고전 15:2), 그리고 어떤 때는 네가구원을 얻으리라”(10:9; 참조 13)고 말한 것을 주목해 보면 의미심장하다. 그리스도인 신자에게 구원은 이미 시작된 상태 또는 경험이다. 그러나 또한 현재의 매일의 경험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는 온전히 성취되지 않는다.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7)는 말씀과 비교해 보라.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거듭났을 때 구원은 단지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그는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의 생애 그리고 미래의 온전한 구원을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구원이 확실히 보장되었고, 따라서 깨어 자신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덕망높은 사도 바울 이 스스로 한 증언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현재와 미래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본문들은 타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거룩한 형상의 회복의 성취를 가리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나(1:26), 죄가 그 모양을 파괴했다. 사람에게 죄와 모든 유혹에 승리하게 함으로써 그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8:29; 3:10; DA 37, 38, 38, 391, 827; COL 194). 그 회복은 재림의 때에 완성될 것이다(고전 15:51~53; 3:20, 21). 이 현재와 미래 구원에 관한 본문들은 성령의 우리 안에서의 주관적인 역사와 밀착되어 있다.

 

B. 성소 표상 - 구원의 실습

 

다음에 인용문들을 보면 Ellen G, White와 재림교회가 이해하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 속죄에 관한 이해를 바로 터득할 수 있게 한다.

Ellen G. White, Letter 201, 1899; 4BC 1173 -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는 기독교의 위대한 중심(the great center)”이다.

GW 315 -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은 다른 모든 진리들이 주렁주렁 달리는 위대한 진리이다.

EGWPrescott에게 보낸 서한(1895. 6. 21)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그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으심의 서론이 된다.

2T 200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대속사가 된다.

RH, Sept. 24, 1901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는 완전하다.

DA 25 -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의 속죄하시는 희생제물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정죄함을 입으신 것은 우리가 아무 공로 없이 당신의 의로 의롭다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속죄제물로서 죽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DA 626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성도가 하늘 집을 상속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이다.

COL 362 현세와 내세의 모든 축복에는 갈보리의 십자가가 찍혀 있다.

갈보리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며, 다오는 세상에서 우리의 (명상과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다음 인용을 하며 잘 못 판단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가 (중략) 죄를 완전히 없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종적 속죄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부조, 357)

 

이 진술을 근거로 재림교회가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좀 더 동 진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의 인용을 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피가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 줄 것이었지만 죄를 완전히 없이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종적 속죄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 ... “최후의 속죄 때에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도말되고 다시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진술은 천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천상의 기록들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져도 된다. 그 이유는 그 확신이 하늘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죄의 기록은 남아 있다. 그렇다고 번제단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한 사람은 죄책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표상적 대속죄일에서 최후로 처리되기까지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십자가 번제단에서 구원 받은 사람은 다가오는 심판에 앞에서 떨 이유가 없다. 죄 문제의 해결에 관한 천상성소 사역은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마지막 전개 과정이 된다.

 

따라서 속죄의 개념을 갈보리의 속죄라는 협의적 차원에서만 이해 할 것이 아니다. 구약시대 성소제도 에 담긴 <구속의 경륜>에 비추어 본다는 것은 성서학도가 취할 기초단계가 된다. 번제단이 상징하는 희생제물 넘어 그리스도께서 하늘성소에서 십자가의 속죄를 적용하는 중보사역을 하시는 광의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재림교회의 속죄개념이 아주 성서적이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라는 역사철학에 비추어 본다면 십자가 속죄와 하늘성소에서 중보는 한 묶음이 된다. 전자 없이 후자가 있을 수 없다. 후자가 결여된 전자만의 틀은 많은 문제를 수반할 것이다. 예컨대, 품성의 완전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강조 결여, 율법폐기론이 따라 오기 마련이다.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중재사역과 지상에서 성령의 인간 심령에 하시는 사역이 갈보리의 속죄를 적용하시는 것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여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놓쳐 진정한 재림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접근 방식을 이것이냐 아니면 저것이냐는 either...or... 방식이 아닌, 성서를 관통하고 있는 both... and...라는 접근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 십자가와 하늘성소 중보사역, 및 성령의 인간 내적 사역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니티를 이루고 있다. 최근 그리스도교계에서 성서학자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활동에 관심을 옮겨 가는 것은 바른 방향이 될 것이다.

엘렌 화잇 여사가 한번 구원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 받는다는 그리스도교계에 만연된 거짓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정차원에서 진술한 것을 두고 마치 재림교회에는 조사심판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진술의 문맥과 배경을 무시한 단정에 불과하다. 죄 용서라는 칭의, 매일 성령의 변화시키는 사역에 반응하여 나가는 매 단계가 다 완전하다.

 

C. 신앙 부흥의 열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들려오는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19:2). 만일에 우리의 대답이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한 에베소의 요한의 제자들의 대답과 같이 한다면 이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파의 장벽을 넘어서 이런 고백을 해야 할 신자들이 많을 것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성령에 관하여 전혀 못 들었을까? 그들이 침례 요한의 기별을 잘 경청했더라면 성령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는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강단에서 성령에 관한 설교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령의 지배와 역사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1. SDA의 사명완수의 필수 조건이다.

 

SDA는 잠자고 있는 거인이다. 전 세계적 조직과 그 통일성, 그 많은 기관, 성서적 교리, 및 세계적 선교 사명을 생각하면 분열된 타 교단들에 비하여 단연 선두 주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이 수반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위탁된 선교적 사명을 다 마칠 수 있겠는가? 복음이 무력성을 면치 못하는 것은 성령의 권능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제자들이 복음 선교의 권능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이는 예수께서 승천 전에 감람산정에서 자기의 승천을 바라보는 황망해 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잘 나타나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2000년 전 제자들에게 허락된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것도 된다.

 

사람들이 자신을 성령의 지배 아래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능력 있게 역사 하실 수 있다. 성령의 약속은 초기의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틀림없이 해당된다.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날에 구원의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 주셨던 것처럼 오늘날의 남녀들에게도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바로 이 시간에도 그분의 영과 그분의 은혜는 그것들을 필요로 하고 그분의 말씀 그대로 그분을 받아들일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8증언, 20).

 

3. 하나님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하나님의 사업은 성령의 권능으로 한다. , 조직, 교육 등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을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

인구 증가율은 기하급수적이다. 교인 증가보다 인구 증가가 훨씬 더 많다. 1년에 세계 인구가 7,000만이 증가한다. 교인 1인대 인구 비율을 생각하면 세계 선교의 전망이 흐려진다.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9:28)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1:23)

 

초기 교회가 복음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것은 이 성령의 권능 때문이었다.

 

4. 복음 사업 실패의 원인이 성령의 결핍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거룩한 감화가 끝 날까지 당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그 약속은 마땅히 인식되어야 할만큼 인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성취는 응당 나타나야 할 만큼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 결과는 예상된 바와 같이 영적 가뭄, 영적 흑암, 영적 타락과 죽음뿐이다. 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교회의 성장과 번영에 필수적이요 다른 모든 축복도 함께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은, 비록 무한하게 제공되었을지라도 부족하다.

복음사업을 그처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부재(不在) 때문이다. 학식과 재간과 능변과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온갖 재능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의 임재가 없으면 마음을 전혀 감동시킬 수 없고, 결코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다. 그 반면에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결된다면, 보잘것없고 무식한 제자라도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우주에서 가장 고상한 감화가 흘러 나가게 하는 통로로 삼으신다.”(8증언, 21-22).

 

5. 성령은 예수께서 좋아하신 주제였다.

 

위대한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선택하실 수 있었던 무한히 다양한 과제들을 가지고 계셨으나 그분께서 가장 크게 다루신 주제는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시는 문제였다. 주님께서는 이 권능을 부어주시므로 말미암아 일어날 어떤 놀라운 일들을 교회를 위하여 예언하셨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어떤 문제를 덜 취급하고 있는가? 어떤 허락의 말씀이 적게 성취되었는가? 가끔 성령에 대한 문제로 설교할 때가 있기는 하나 한 번 설교한 후에는 한동안 그 문제를 방관시한다(원고 20, 1891).”(1기별, 156-157).

 

6.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7. 성령은 교회부흥의 원동력이 된다.

 

경건주의, 웨슬리와 성결운동, 에드워드 어빙, 찰스 피니와 종교적 각성운동 등 배후에는 성령의 체험이 있었다.

 

8. 성령은 하나님 자녀 되는 조건이 된다. , 그리스도인 되는 조건이 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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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