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원수(대적), 할례 및 예루살렘 총회

 

1. 서론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세상살이에서처럼 혼돈과 걱정 원수 맺는 것 등을 피하여 싸우지 않고 평화스럽게 살고 싶은 소원이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맑은 물처럼 티없는 생활을 염원해서 성서를 손에 잡기도 한다. 그렇다. 싸우지 않고 살고 싶은 소원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 그러나 성서를 보면 신앙처럼 놔두지 않는다. 교회에 문제의 광란을 주입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싸움 싸우는 전쟁터다. 싸워야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교회이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이런 싸움과 긴장이 갈라디아 교회들에 가득차 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들끓고 있는 반대세력을 개들, 사기꾼들, 자기 자랑에 빠진 사람들, 문제를 만드는 자들, 복음을 왜곡시키는 자들, 가짜 형제들, 정탐꾼들, 행악자들, 자행자지 하는 자들, 심지어는 자기 생식기까지 베어버리라는 극단적인 말까지도 사용하고 있다(5:12). 복음을 위협하는 존재들, 교회 안에 참으로 회심한 사람들을 간교하게 파멸시키는 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어떠한 심한 말이라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이토록 강력한 말을 동원하여 힐난하는 자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여 말한다면 그들은 유대화주의 자들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조화시킨 혼합주의 종교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민이었다. 그들 주장은 이방인이 구원받자면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할례를 받아 유대교로 입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토라(Torah)에 집착하는 자들이다. 바울이 그토록 강력한 말을 사용한 것은 그들의 동기도 문제지만 더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게 된 다음에 오는 결과에 있다. 바울이 그대로 방치하였다면 그리스도교는 유대주의의 한 종파로 끝났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갈라디아서가 세기적 분계선을 그었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

 

2. 원수 세력의 역사적 발전

기독교는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대인 사도들이 선포했고 유대인들이 가진 구약성경을 기초로 하여 유대인들에게 파급되었다. 유대성이 그 기초가 된다. 이 유대성이 동시에 유대주의의 근거도 된다. 유대화주의자들의 모습은 행15장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투쟁의 뿌리

투쟁의 원천은 먼저 그리스도교의 유대성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스데반의 순교적 그리 스도교 운동은 예루살렘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으며 이에 유대인에 대한 선교적 사명의식 만 차있었다. 유대인 구원문제가 선결문제였다. 신자들 모두는 유대인이므로 율법을 지 키는 것이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 할례받는 것에 큰 문제가 있을 턱이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4:22)”고 한 바 있다. 유대교-크리스 찬이 갖는 특징은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이 유대성에서 이방인들이 기독교에 들어오게 됨 에 따라 사도교회는 얼마만큼 그 유대성을 탈피하느냐 하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활동은 본래적이거나 개종한 유대인에게 국한되어 있 으며 이방인들과 담을 쌓던 중에 베드로가 환상을 본 후 고넬료 집에 가는 사건이 등장 하므로 비유대인의 회심을 기뻐한다(11:18).

스데반이 순교함에 따라 사도들 외에 신자들은 바리새인들 중심이 된 유대의 박해자들 을 피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된다(8;1). 물론 그들과 싸우지 않고 피한 유 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스데반처럼 성전이나 율법에 거스려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율법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지 않았 . 모두가 할례받은 자들이고 모두가 유대인의 문화적, 정신적, 신앙적 유산인 율법을 지켰다. 다 못 지켜도 호의를 가졌다고 보아야한다. 지나간 역사의 진상을 올바로 인식 하고 현대의 유대주의의 문제점을 깊이 의식한 스데반과 그들 옹호하는 자들이 퇴거된 다음에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주의자들의 독무대가 되어 구원이 유대인들에게서 나오니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고 한 논리적 비약을 하게 되었다. 반대파가 쥐 죽은 듯이 된 다음 에 법을 지키는 것과 그리스도를 신앙한다는 것에 모순이 있을 수 없게 되었고 구원은 이 두가지 사실에 의존된다는 사고가 지배하게 되었다. 스데반 같은 건실한 신앙관을 가 진 능숙한 반대파 논쟁가를 완력으로 몰아 부친 결과 히브리파 유대인 만큼 율법에 열성 이 없었던 희랍파 유대인들의 대부(代父)격인 존재가 사라지게 되어 그들의 사상이 발붙 일자리가 좁아지고 말았다.

 

투쟁의 발전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된 다음에 그리스도교의 유대성이 문제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완고한 유대주의의 득세 - 예루살렘교회까지 영향을 준 - 도 교회가 산산조각 난 듯 하였으나 그 산산 조각이 이방에 퍼져 힘을 규합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진입하여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복합인종 교회(mixed church) 안디옥에서 먼저 문제가 생겼다(11:19-20). 율법의 모형론적 성취를 아랑곳 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국수적 유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현상에 눈을 번쩍 뜨고 안디옥 교회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길이 없다고 하였다(15:12).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팀으로 소아시아 각 지역에 파송한 다음에는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문제의 해결(예루살렘 총회; 15, 2:1-10)

안디옥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예루살렘 총회에 제기하였다. 이방인이 교회에 나오게 된 경우 어느 정도까지 모세법을 준수하여야 하느냐가 문제의 촛점이 되었다.

바울의 문제해결 접근 방식 : 공회에서 다루어지기전에 개인적으로 기둥사도들과 면담을 통하여 이 일을 상의하였다.

회의 진행과 결의 과정

- 베드로 증언 (15:7-9)

- 야고보의 결의 진행 (15:13-18)

- 결의 내용 :

이방인 신도들이 준수하여야 할 사항이 극소화 되었다. 안식일 문제는 거론된 주제도 아 니려니와 타협될 수도 없는 기본 문제이었다. 문제시 된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 취된 모형적인 예식이나 할례에 이방인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고 건강상 해로운 , 또 신앙적으로 우상숭배와 밀착된 것, 보편적인 이교도의 타락상에 따라서는 안된다 는 것이었다. 결국 복음은 승리하였다. 회의 결의사항은 문서화되어 각 지역에 파견된 대표단이었다. 승리는 승리였지만 장차 수많은 난관이 예상되어 있는 첩첩산중같은 문제 성을 띤 승리였다. 유대주의자들이 승복하지 않은 결의였기 때문이다. 사도 교회는 교회 에서 결의가 되었어도 그것을 반대하는 극단파 인사들은 끝까지 도전한다는 역사적 교훈 을 벌써 체험하였다. 바울 일행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 이 일을 성공적으로 진전시켜감에 따라 반대파도 더욱 완악한 영의 지배하에 세찬 반대를 조직적으로 하여갔다. 말하자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는 곳에 후속적으로 신학적 전문가 대표단을 파견하여 그들을 자기들의 신앙 사상적인 틀에 맞추는 작업을 하였다. 복음 안에서 자유를 얻은 심령들에게 인간적 유전과 필요없는 율법적인 멍에를 동여매는 일을 극대화 시켰다. 일의 표본적인 곳이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였다. 이 양대 세력간의 싸움은 인류 역 사상 어느 사상전(思想戰)보다 치열하였다. 49년에 총회가 있었고 갈라디아서가 57-58 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볼 때 이 싸움은 10여년간 계속되어 온 것이다.

 

3. 논쟁점들

구원의 방법()

인간의 힘이 개재되는 것인가? 아니면 순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 인본 종교(신앙)인가? 신본 종교인가? 자력 신앙인가? 타력 신앙인가? 하는 근본 문제가 걸려 있었다.

유대주의자들의 인간관

- 인간의 종류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2구분(區分)

- 유대인은 근본적으로 의롭다. 하나님의 가납을 얻고자 모세 율법을 지킬것만이 요구된다. 이방인은 전적으로 죄되다. 그들이 이스라엘이 누리는 구원을 향유하자면 그리스도를 믿 고 유대화 되는 길을 택하여 할례를 받아야 하고 모세법에 순종하여야 한다.

* 바울의 인간관 : 모든 인간은 죄인. 죄로 상실.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권위에 반역

유대주의자들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

-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관. 자기 뜻에 완전한 순종 요구

* 바울의 하나님관 : 완전한 순종 요구가 인간 전 생활에 요청된다는 점은 시인하나, 그것 은 그것은 인간의 죄성으로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만 이 구원의 길을 준비하시고 주도하 신다. 율법은 인간 구원의방법이 아니다.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 십자가란?

- 유대주의 : 불분명. 예수의 메시야성은 믿음

- 바울 : 그들의 구원관이 십자가를 무력화 시킨다고 하였다(2:21). 십자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죗된 인간에게 구원을 위한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구원을 어떻게 받나?

- 유대주의 : 율법 지키고 예수 믿음으로

- 바울 :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

구원의 본질

- 유대주의 : 하나님의 가납이다. 이것이 칭의이다. 인간이 얻는 것이다.

- 바울 : 죄인이라도 은혜롭게 된다.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된다. 하나님의 행위는 법률적 허구가 아닌 인간의 마음 안에 이식된 의로, 용서의 역동적 행위이다.

언제 구원이 일어나는가?

- 유대주의자 : 구원은 미래적 희망, 마지막에 도달하는 목표

- 바울 : 현재적 경험, 미래의 보증, 하늘의 맛봄

 

이스라엘의 역할

유대주의자 : 구원은 유대인으로부터 그리고 유대인을 위하여 민족 안에서만 구원이 온 . 하나님의 약속은 지나치는 법이 없다.

바울 : 구원은 유대인으로부터이다. 그러나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 인간을 위 한 것이다. 하나님 약속은 조건적이다. 육적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불신 때 문에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사명에서 제외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참 후 손에는 믿음을 가진 모든 인종이 다 포함된다. 신자가 새 이스라엘이다.

 

모세법의 목적

- 유대주의자 : 하나님의 최종적 말씀이다. 모든 것이 이에 의하여 심판받는다.

- 바울 :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 몽학선생. 구원받는 자의 생활 지침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본성

- 유대주의자 : 율법과 계명 준수. 의로운 생활. 죄 극복

- 바울 : 성령의 인도하에 자유의 생활이다. 죄 극복하고 의로운 생활 이상. 자유와 책임의 존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다.

.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생활

1. 책임있는 자유의 생활

율법에서부터 자유 from

자유 죄의 폭군에서부터 자유

주를 위한 자유 for

타인을 위한 자유

2. 사랑의 생활

3. 의의 생활

4. 봉사의 생활

. 교회 안에서의 삶

. 성령 안에서 행하는 삶

 

할례 : 양피 베는 것

고대 사회에서는 남아의 양피를 베는 것이 오늘날 위생적 의도로 하는 것 이상인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 기원:

(1) 성서적 기록 : 17장의 아브라함과의 언약

(2) 이교주의 국가의 할례

헤로도토스의 기록상에는 고대 애굽인이 할례 받았다. 위생적 목적이 주의도였다고 필로(Philo)등은 말하고 있다. 성 생활이 질병 전염 가능성을 줄이고 성인으로 결혼의 자격이 있으며 시민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자기 종족의 표시 : 상호간 옷을 벗고 확인하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종족 가압의 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의 흔적

피 흘리는 언약관계 수립, 혈맹관계

 

2. 은유적 의미

(1) 10:16, 30:6 “마음의 할례” - 하나님의 명령에 마음 문을 열고 순종 고집불통이 아니 .

(2) 26:41 “할례받지 아니한 마음” - 불순종, 고집불통

(3) 6:12,30 “할례받지 못한 입술” - 설득력도 없고 능변도 없음을 의미

 

3. 할례의 구속사적 의미

 

17장에 아브라함과 그 권속이 하나님과 한 언약의 표로서 할례 제도가 나온다. 17장은 십계명이 기록된 장과는 달리 조약 형태가 아닌 언약 비준 예식을 묘사하고 있는 역사적 진술이다. 그런데도 조약 형태의 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봉신조약의 형태가 들어 있다. 우선 17장의 언약 진술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준행해야 할 의무 사항이 나온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

내 언약을 지키라” (9)

할례를 받아야 한다(10).

하나님은 군주-시여자로 나오고 아브라함은 봉신으로 나온다. 당시의 조약 형태가 깃들 어 있다고 보겠다. 여기에서 할례는,

(1) 14절에 비추어 언약 비준 의식으로 맹세와 저주(Oath-Curse)() 요소가 들어있다. 조약을 비준하는 의식으로 본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가 속한 공동사회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서약이 담겨 있다. 이것이 벤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이다. 양피를 베는 것이 곧 언약이 되었다. 언약을 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언약을 준수치 않을 때는 Cut-off 다는 위협사항이 들어 있다. 여기 사용되는 돌칼은 심판의 칼이다.

(2) 성별과 헌신의 표이다. 충성의 표이다.

4:4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며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19:23-25 나무를 심은 다음 첫 3년간은 할례 받지 않은 것으로 그 열매를 먹지 말라 고 하고 있다. 4년에 거둔 열매는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구별하여 드려 찬송할 것 이며 제 5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다. 이 나무 열매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것 은 할례받지 못한 나무가 할례받은 것으로 되는 것에는 성별과 헌신(헌목)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할례 성별에는 딜fp마가 있다. 8일째 조건적 저주인 심판의 칼을 받았으나 이 삭은 다시 제단에 제물로 바쳐져 통채로 번제가 되어 불살라져야 했다. 하나님 앞에서 할례를 받음으로 저주적 심판을 면한 그가 왜 또 다시 하나님의 불심판의 저주 아래 들 어가야 하는가? 15장의 아브라함의 연약 기사중 Theophany(신의 현현) 현상은 구약 의 골고다의 모습이다. 22장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십자가상의 하나님의 아들에 있었 . 2:11에서 육적 몸 벗은 것(죽는 것이 할례로 묘사되었다) - 그리스도의 할례 - 자가 사건으로 연결시킨 것이 이것을 잘 말하고 있다. 할례받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은 사실상 언약을 지키지 못한 파기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언약파기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 할례를 통하여 궁극적인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할례는 벗는 것 - 적인 몸은 벗는 것 - 죽는 것 - 육적인 생활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할례 죽 음은 (육의 소욕에 대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인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사()에서 완성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할례(), 장사, 부활에 참여하므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와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6:1-5, 2:11-14).

이런 점에서 마음의 할례가 없는 육신의 할례는 사실상 무할례이다(2:25-29).

4:11 할례의 표 -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

 

3. 결론

 

아브라함 언약의 징표가 되는 할례 의식(17:11)은 저주, 성별, 동일시, 마음의 할례(2:29)와 도덕적 순결이라는 영적 자질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 특히 할례는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징표 역할을 하였다. 특히 할례는 믿음으로 오는 의를 대표하였다(칭의). 예루살렘 총회는 이 구속사적 의미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성취된 칭의로 명증시켰다.. 유대주의적 신앙의 표징이 되는 할례는 신약성서 시대에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침례의식의 前影 역할을 하고 있다.

(위 자료는 2002년 호남합회 평신도 사경회 자료 필자의 <갈라디아서 연구>에서 전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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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