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언약 (The Sinaitic Covenant)
VI. 시내 언약 (The Sinaitic Covenant)
I. 성경 근거
출애굽기 19-23장, 31:12-13; 34:6-10; 레위기 20:7-8; 신명기, 시편 103:2-14; 이사야 56 장
II. 논쟁점
신학계에서는 시내산에서 체결한 언약에 관하여 설왕설래가 많았다. 시내언약이 행위언약이라는 시각, 곧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혹은 율법의 행위로 인한 의를 가르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 결과 하나님의 율법과 은혜는 피차 완전히 대립되는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 시각은 시내언약을 아브라함의 은혜 언약이나 예수께서 제정하신 은혜의 새언약과 대립되는 율법언약으로 처리하였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거룩한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언약(창 15:6 참조)과 완전히 다른 구원의 체계를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는가? 아브라함의 은혜의 언약은 시내 언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는 일에 있어서 발전적 계시 개념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전개과정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발전적 계시 사상에 비추어 보아야 이스라엘 선택과 그 사명의 의미가 분명하여 진다.
III. 언약 당사자
A.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실하신 창조와 구속의 여호와
1.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같은 하나님이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고자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세우신 같은 여호와이시다. 떨기나무 불꽃 중에서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시다(출 3:1-17; 6:2-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 불꽃 중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고통과 그들에게 내린 바로의 사형명령(출 2:24; 3:6-7)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같은 하나님께서 “나는 야훼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이제…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출 6:2-5)고 말씀하시면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부르셨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고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창 17:7)을 재확인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출 6:6-7).
여기서 하나님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출 6:6, 7)라는 칭호로 자기의 신실하심을 들어내셨다.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구원하신 일은 부조들에게 하신 자기의 언약의 약속을 직접적으로 이루신 것이 되었다.
시내언약이 하나님께서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사상은 여러 신학자들이 펼쳐 왔다. 부버(Martin Buber)는 시내 언약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창발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한 관계”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Jacob Jocz도 마찬가지 입장에서 모세가 야훼라는 이름의 새로운 하나님이 아니라 “시내에서 일어난 일은 부조들에게 주신 그분의 약속을 재확인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 2:15)을 소개하면서 그 하나님이 특별한 친교의 표시로 자기 이름을 계시하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카이저(Walter C. Kaiser)는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저자는 부조들과 출애굽의 시기를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시내 언약을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아브라함 언약의 연속”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은혜 언약은 시내 언약에서 계속된 것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기의 창조 능력에 대한 특별한 표징들, 즉 모세의 지팡이를 산 뱀으로 바꾸시고, 건강한 손을 문둥병이 발한 손으로 변하게 하시고, 다시 그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는 일을 하셨다(출 4:2-7, 11). 창조 능력을 보여주신 이유는 구속주는 자기의 피조물을 버리지 않고 돌보시는 창조주라는 것을 모세에게 각인시키기 위하여서였다.
2. 헤세드(사랑)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약속의 땅 변경에 서서 하나님은 이전에 한 그의 약속에 신실하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하면서 헤세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야훼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hesed)를 베푸시되”(신 7:9).
시내 산에서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과 맺은 “헤세드(hesed) 언약”으로 일컬어진다. 헤세드(hesed)는 구약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사랑의 개념이다. 넬슨 글뤀(Nelson Glueck)은 성경에서의 헤세드(hesed)에서 동 용어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나타내야 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헤세드(hesed)가 에메트(ʼemet, firmness, faithfulness, truth)나 에무나(ʼemunah, steadfastness, faithfulness, truth)와 함께 나타나는 곳마다 헤세드(hesed)의 고유한 개념인 충성이 강조 된다”고 설명하였다. 성경 역본들은 헤세드(hesed)의 의미를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워, 그것을 “인자(lovingkindness, NASB),” “확고한 사랑(stead love, RSV),” “언약적 충성(covenant loyalty, RSV),” 등으로 번역함으로써 단어 헤세드(hesed)에 담겨있는 충성과 사랑을 드러내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희생제물과 레위 제사장 제도와 함께 제사 예법을 통해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을 드러내셨다. 그것은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또 사람끼리 화목하게 되는 길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제사법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나타내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도덕법과 제사법을 토라 안에 결합시키고, 그분의 의와 은혜로움을 둘 다 강조하셨다.
B. 언약의 파트너 -- 구속적 사랑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구속의 주제는 그 분의 사랑과 선택의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특별한 백성으로 사랑으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였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38 너보다 강대한 열국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라”(신 4:37-38).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과 구속은 자기 백성들에게 향한 그 분의 선물들이다. 구속은 언약에 앞선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6-8).
시내언약의 대상에는 개종한 이방인들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6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사 56:3-6).
구약의 인종적 이스라엘은 신약에서 영적 이스라엘이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갈 6:16; 3:29; 벧전 2:9-10) 시내언약의 파트너는 영적 이스라엘을 포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사람들과 외부 세계 사이에 분리의 장벽을 두시고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는 당신의 보호와 사랑을 무척 제한하시고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집중적으로 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자신들과 그들의 이웃 사이에 장벽을 세우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사랑이 무한하신 분의 마음은 땅의 모든 거민에게 미치고 있었다.”(부조, 368).
IV. 시내 언약의 목적
A. 하나님의 선택하신 사랑과 은혜
이스라엘과 체결한 시내 언약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사랑과 은혜에 있다(신 4:37; 7:7-9; 10:15).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경배하였다 해도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끝장 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야훼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며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출 34:6, 7)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내 언약의 칭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이 시내 언약을 맺으신 거룩하신 하나님 야훼의 참된 속성이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이 사랑과 거룩함의 하나님 품성을 반사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높은 소명이었다(레 19:2, 18). 하나님의 율법이 그분의 도덕적 품성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로울리(H. H. Rowley)는 “인간을 위해 부과된 표준들은 하나님 자신의 품성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었다면 왜 시내에서 다른 언약을 세우셨을까? 백성들은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의 원칙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 그들이 당신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당신의 능력과 자비를 그들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도우심의 필요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홍해 곧 애굽의 추격을 받았을 때 도망할 길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 인도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위하여 구원을 이루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 그리고 그들을 도우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신뢰로 채워졌다. 하나님께서는 현세의 속박에서 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그들을 자기 자신과 결속시키셨다. ”(부조, 371).
B.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5-6).
“여호와께서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신 29: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모든 인류에게 축복이 되어야 하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기 위하여였다.
1. 이스라엘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구별된 소유가 되어야 했다(신 7:6; 14:2; 26:18-19).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은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하여서였다.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들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중재자로 삼으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사명 완수에 실패하여 모든 교회의 신자들에게 이 사명을 옮기셨다(벧전 2:9; 계 1:6; 5:10).
3.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 백성은 세상 나라 백성들과는 차이가 있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 26:19).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은 거룩한 백성이 된 결과이지 그 조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적 사명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berît), 즉 구속적 친교의 유대관계를 맺으셨다. 하나님과의 복된 친교에 머물기 위해 이스라엘은 이 책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분의 거룩하게 하는 친교의 표준을 변경하거나 수정할 수 없었다.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15 오늘날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선 자와 오늘날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니”(신 29:14-15).
C. 믿음과 순종의 백성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한 것은 아브라함이 보여준 것과 같은 믿음과 순종이었다. 이스라엘은 “아들”과 “야훼의 종”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어떤 “계약” 관계를 맺는 입장에 서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연스럽고 영적인 축복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거룩하신 분과 구원과 성화의 친교를 나누는 자리에 서 있었다(신 8장 참조).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의 구속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순종해야 하는 거룩한 의무 아래 놓이게 했다. 그것은 모세가 진술한 바와 같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하나인 야훼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신 6:4, 5).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로부터 단지 겉으로 율법의 문자에만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순종을 원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감사하는 사랑을 기대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이 출애굽 해방을 통해 먼저 구속적인 사랑을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이었다. 바로의 사형명령에서 구원을 받은 데 대한 그들의 감사가 순종의 동기가 되어야 했다. 그들의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심령과 의지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었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서로 자비와 공의를 보이는 일에 그 추동력으로서 사랑이 요구되었다. 이것은 선지자 미가가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을 요약한 것과 같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hesed)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이스라엘은 그 자신이 거룩한 토라(Torah)의 특별한 계시를 받은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 언약 공동체임을 깨달아야 했다.
V. 언약 체결 과정
시내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속행위에 따라 체결하였다.
A. 언약 체결 과정에서의 주요 사건들
출애굽기 19장에서부터 24장까지에 나타난 주요 사건들의 진행은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이르러 장막을 침(19:1-2)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발의하심(19:3-6)
3. 이스라엘이 언약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함(19:7-8)
4. 언약을 받기 위하여 준비함(19:9-25)
5. 십계명이 선포됨 (20:1-17)
6. 모세가 언약의 중보가 됨(20:18-21)
7. 언약 원칙이 자세히 설명됨(20:22-23:33)
8. 언약이 비준됨(24:1-4)
B. 언약 비준(출 24:5-8)
1. 모세의 하나님 말씀 선포와 백성들의 서약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친히 말씀하셨으며 모세는 율례들(judgments)을 백성들에게 복창하였다(SDABC, 1BC 631).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서약할 때 백성들은 구별된 백성으로 인침을 받았다.
“백성들은 그 언약의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엄숙한 언약을 맺었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 믿는 모든 신자들 간에 맺어질 언약의 한 상징이었다. 조건들은 백성들 앞에 똑똑하게 제시되어서 오해의 여지가 없었다. 주어진 모든 조건들을 응락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들은 한 목소리로 모든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율법을 순종하겠다는 언약 속에 무엇 무엇이 포함되는가를 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의 원칙들은 상세히 설명되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받아 들였다. ”(화잇주석, 출 24:4-8)
2.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12제단 건립(24:4)
“열두 기둥이 그들의 언약의 수락의 증거로 세워졌다. ”(부조, 312)
3. 개인적 성별과 굴복의 번제와 하나님과 친교와 감사의 화목제 희생제물 드리고 피뿌림(24:5-6)
젊은 제사장들이 제물을 죽였고, 모세는 피의 반을 하나님을 위하여 단에 뿌렸다. 이는 백성들이 자기들의 온 마음과 영을 주께 드림을 뜻한다. 나머지 반은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특별한 보배로 가납하신다는 것을 뜻하여 백성들에게 뿌렸다(히 9:18-22). 이렇게 하여 백성들은 온전히 언약을 체결하였다(원고 126, 1901).
4. 제사와 피뿌림의 언약의 비준에는 용서와 인침, 헌신과 화해, 친교와 교통이 포함되어 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친히 언약의 중재자가 되었을 뿐만 아닐, 새언약을 이루신 참된 희생제물이 되셨다. 그의 피는 죄 용서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뿌려졌으며 그 결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 제거되었다. 그리고 모든 참된 신자들은 야훼와 함께 완전한 친교와 친밀한 교제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VI. 시내언약의 특징
시내언약은 은혜언약의 연속선상에 있다. 언약이 선포되기 전에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선택이 선행하한다. 또한 십계명과 율례를 주기 전에 구속이 선행한다.
A. 율법보다 앞 선 하나님의 구속적 선택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명칭으로 하나님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과 맹세로 하신 자기 약속에 대한 신뢰할만한 성취자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실하신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I AM)가 그를 보내셨으므로 바로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보증을 주셨다. 이 야훼 칭호는 어떤 신비한 본질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라 약속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의미가 주축이 되어 있다. 모세는 이제 하나님이 성취할 때가 왔기에(창 15:13, 16)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 ”(출 3:17)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킴으로 그 성취가 박두하였음을 지적하였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을 애굽 왕 바로에게 전하였다. “야훼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2, 23).
“내 아들 내 장자”이란 표현에는 하나님의 택하시는 사랑에 의한 이스라엘의 새로운 신분이 함축되어 있다. 모세가 그들에게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신 32:6)라고 상기시킨 말씀이 시사하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가 되었다는 개념은 애굽인들이 바로가 육체적으로 신들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상과는 다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덕적 품성을 반사하는 의무가 있다는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나타낸다. 아들 됨은 자기 아버지의 모든 점들을 닮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성문법 형태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의 배경에는 이 “닮으라”는 호소가 들어 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야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분의 “장자”로 칭하신 사실은 하나님이 그분의 언약의 백성에게 특별한 권리와 의무를 주셨음을 지적한다. 이것들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구속적이고 거룩하게 하는 관계 안에 남아 있는 일이다.
부조들은 야훼를 단지 약속의 하나님으로만 알아왔다. 그러나 모세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야훼를 약속의 성취자로 알게 되었다. 이 사실로 인해 야훼라는 이름에 새로운 특성이 들어난 것이다. 그것은 부조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야훼는 출애굽 구원을 통해 자기의 약속을 성취하기 시작하셨다. 이것은 유월절 어린양 의식을 통해, 그리고 어린양의 피를 그들의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급히”(참조 출 12장; 히 11:28) 먹는 이스라엘의 믿음을 통해 실현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사랑의 행위로 흑암에 쌓여 있는 모든 신자들을 선택하셨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 11:5-6).
시내 언약에는 하나님의 구속적 화해가 선행된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출 6:7)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
B. 율법보다 앞 선 유월절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구원 언약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점진적인 발전 단계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러내셨다. 먼저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구원의 원리와 목적을 나타내시고, 그 다음으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어 삶의 지표를 삼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열 재앙을 점진적으로 강화시킴으로써 애굽에 대한 자기의 인내를 나타내셨다. 이 재앙들은 “온 천하에” 야훼처럼 강한 하나님은 없다(출 9:14, 16, 29)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인들 모두에게 가르쳐 그들 모두를 구원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바로는 이 재앙들에 대한 언급에 반발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반대 의지를 강화시켜 갔을 뿐이다. 이로 인해 바로의 장자와 하나님의 “장자”(출 4:22)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최후의 재앙에 이르게 되었다.
이 이슈가 문설주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 일로 상징되었다. 그리고 그 것이 매 집마다 심판의 천사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종살이 세속화 과정을 통하여 제사법이 요구한(레 17:11) 무죄한 동물들이 희생이 지닌 대속적 희생(죽음)에 대한 신학적 의미가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사 53:7)이신 무죄한 종 메시야의 자기희생을 가리켰다. 예수께서는 이 메시아적 의미를 이해하고 이사야 53장의 모든 예언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눅 22:37)라고 진술하셨다.
유월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뒤 이은 시내산에서의 율법 시여보다 먼저 있었다. 율법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이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속죄를 제공하였다. 하나님은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고 약속하셨다. 오직 피를 바르는 것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지나가게 할 것이었다. 이는 종 된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에 관한 실물교훈이었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을 대속의 희생 제물로 제공하셨다. 하나님이 고엘(Gôʼel) 즉 “친족-구속자”로 그의 “아들”의 자유를 “산 것이다”(출 6:6; 15:16).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은혜로운 성취로서 연례적인 유월절 축제(출 12장)를 통해 민족적 해방을 경축하여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을 위해 홍해를 마르게 하시고 애굽의 군대를 익사시킨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보았을 때, 그들은 “야훼를 경외하며 야훼와 그 종 모세를 믿”(출 14:31)게 되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모세의 노래에 동참하였다. “야훼는 용사시니 야훼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야훼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야훼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출 15:3, 6, 13, 18).
이 모세의 승리의 노래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를 그들의 군주와 구주로 받아들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구속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바로의 종된 생활에서 해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은 전적으로 자기 백성에 대한 야훼의 신실하신 사랑 곧 헤세드(hesed)에 의한 것이었다.
카이저(Walter Kaiser)는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그분의 사랑과 애정에서 온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시고 그들을 열방 중에 구원의 “빛”으로 택하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곧 그의 자손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축복이 되리라는 약속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C. 언약의 조건성
1. 하나님께서는 시내언약을 체결에 조건성을 명시하였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5-6).
위 본문에서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은 KJV에서 “if ye will obey my voice indeed, and keep my covenant”로 번역되어 있다. 조건절 유도하는 “만일(if)"은 언약의 조건성을 명시적으로 들어내고 있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에 조건성이 들어 있던 점(창 17:9, 9, 14; 18:19; 26:4-5 등)과 같은 패턴이다. 언약의 조건들은 언약 백성이 계속하여 언약관계 안에 살도록 함에 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도 보존하였다”(부조, 370).
2.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신 것을 지키라 하시고 언약의 의무들을 완전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신 12:28).
하나님의 순종 요구에는 축복이 수반된다는 점도 함께 명시하셨다.
3.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는 일은 이스라엘이 사는 조건이 된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5).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 5:33).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4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레 26:3-4).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15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 16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레 26:14-16).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하는 일은 먼저 내적 마음으로 준행하고 그것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내적 마음으로 하나님과 믿음의 바른 관계가 동기화가 된 은혜의 결과가 외적 순종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위 성경 본문에 대한 이런 전제가 없는 독법은 인간의 순종이 영생 얻는 조건이 되는 행함으로 말미암은 의로 잘 못 이해될 소지가 있다. 특히 신명기 5:33의 KJV 번역에 따르면 “너희가 살기 위하여(that ye may live)” 가 되어 목적적 의미로 보기 쉬우나 결과적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점을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 9:30-32).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3-4).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으려는 것을 중단케 하고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 10:8)고 하였다.
VII. 토라의 의미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교훈,” “가르침,” 또는 “지시”를 의미하는 토라(Torah)를 주셨다(출 24:12; 삼상 12:23; 참조 욥 22:22 NRSV, JB; 사 8:16, 20 NRSV). 히브리 성경인 유대인의 새 JPS 역(New JPS Translation)은 “토라”라는 단어를 오직 “교훈(instruction)”으로만 번역하였다. 해리슨(R. K. Harrison)은 토라에 대해 “그 직접적인 목적은 고려해야 할 다양한 상황에서 언약의 백성을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더 돈독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토라는 삶과 경배를 정리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길을 보여주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권고를 의미한다.
토라(Torah)는 넓은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가르침,” “교훈”을 포함한다. 모든 교훈이란 모세의 첫 다섯 책뿐 아니라 후대의 시편과 선지자들의 책들도 가리킨다(참조 요 10:34; 고전 14:21). 이것은 토라가 성소에서 진행되는 대속의 은혜를 지도하는 레위기의 지시들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토라는 도덕과 윤리, 국가와 사회, 제사와 예배, 위생과 건강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토라는 하나님의 율법과 은혜를 둘 다 포함한 것이다. 이것이 “야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시 19:7) 한다는 시편 19편에 나타나 있다. 토라는 영혼을 소성케 하는 하나님의 교훈이며 삶을 위한 지침이다. 토라는 주께서 그의 자비와 거룩한 뜻을 계시하는 기초이며, 그의 성령을 통해 효력이 있다(참조 사 55:11; 느 9:20, 30).
토라는 좁은 의미에서 “언약의 말씀”(출 34:28), 곧 십계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원칙과 세부사항을 포함한다. 시편 19편은 야훼의 토라의 견책하며 소성케 하는 권능에 대해 힘 있게 증거 한다. 다윗은 율법을 그 자체로 도덕법규(a moral code)가 아니라 야훼의 언약의 법(the covenant law)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통해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다윗은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 19:12-13)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용서하시며 지키시는 은혜를 간구하였다. 율법의 목적은 언약의 이행과 언약의 축복으로 인도하는데 있다.
시내 언약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화강암 돌비에만 새겨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내면의 육비에 새겨져 있어야 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1-14).
십계명 그 자체가 추상적 율법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 역사적 서언은 이 율법의 시여자가 누구이신지를 강조하여 선포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야훼로라”(출 20:2). 이 서언은 십계명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것을 생략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아직 구속을 받지 못한 백성 곧 택함을 받지 못한 백성에게 주어진 도덕적 요구가 되고 만다.
십계명은 그의 언약 백성에게 주시는 구속주의 교훈이다. 십계명은 이제 막 이스라엘을 그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의 구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와 신실하심과 의의 하나님이셨다. 율법을 주신 것은 그의 거룩케 하는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었다. 열 가지 교훈의 말씀을 받기 전에 이스라엘은 이미 구속 받은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순종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서약을 “그 말이 다 옳도다”(신 5:28; 참조 출 19:8; 24:3, 7)고 하시며 헌신에 대한 정당한 반응으로 받아들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백성들과의 관계를 지속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하여 율법을 선물로 주셨다. 율법을 범하는 것은 언약을 범하는 것이 된다. “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호 8:1).
다음 성경 본문에서는 언약이 십계명과 동등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1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로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13-14).
“언약의 말”(레 11:3, 6, 8)은 하나님의 율례, 증거 및 법도들이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신 6:17).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3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4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2-5).
해럴슨(W. J. Harrelson)은 이 언약 신학을 다음과 같이 확인하였다.
그러나 토라는 법적인 요구 이상을 의미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창조부터 모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신 모든 범위를 포괄한다. 더 나아가, 토라는 하나님의 선물로도 이해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는 여전히 토라의 기초를 형성한다(느 9장).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고 토라를 받았다. 하나님의 선택은 토라에 대한 순종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언약의 할례 표징 외에도, 아담과 맺은 창조 언약의 연장인 안식일을 그 언약 자체의 특별한 표징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모세는 안식일이 출애굽 해방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함으로써(참조 신 5:15), 안식일에 구속적인 의미도 부여하였다. 모세는 안식일에 하나님의 창조 행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속 행위도 기념하는 이중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모세의 언약은 매주 안식일 축제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그분의 구속의 은혜와 결합시킨다. 페인(J. Barton Payne)은 다음과 같이 올바로 진술하였다.
시내 계명 전체를 ‘정죄와 사망의 직분’으로 깨끗이 처리해 버리는 것은 구약을 총체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율법은 결코 불가능한 짐이 아니었다(신 30:11-14).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사랑하였다(시 1:2; 119:167)… 율법이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신앙, 곧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다(신 1:32; 9:23).
세대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약속과 율법 사이에서의 그릇된 딜레마를 만들어 내었다. 토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동반자와 종으로 보존하고 보호하여 열방을 구하는 제사장적 빛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믿음과 소망에 나타난 율법의 다양한 역할들에 관하여 학자들은 1) 언약에서의 율법, 2) 예배에서의 율법, 그리고 3) 종말론에서의 율법으로 나누어 설명하여 왔다.
1. 언약에 나타난 율법
돌비에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된 율법은 “증거”라고 불렸고, “얼굴을 서로 대하여” 덮개를 향하고 서 있는 금으로 된 두 “그룹”과 함께 “속죄소” 또는 “시은소”로 덮인 특별한 궤 안에 보관되었다(출 24:12; 25:17-22). 그 증거궤는 셰기나의 영광이 머무는 지성소 안에 있었다. 그래서 야훼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시 80:1; 99:1)었다. 이렇게 하여 십계명은 하나님 왕국의 헌법으로 높임을 받았다.
하나님의 율법은 성소의 경내에 놓였다. 그리하여 율법은 하나님의 거처에서 그분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베푸는 제사장적 봉사의 기능을 하였다. 이 일은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레 16:15, 16) 속죄소 위에 희생의 피를 일곱 번 뿌리는 대속죄일에 절정을 이루었다.
하나님 자신 속에 공의와 자비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로 이렇게 율법과 은혜는 깨질 수 없는 상호관계로 연합되었다. 율법을 하나님의 성소와 그 속죄의 은혜에서 분리하여 그것만을 취하면 거룩한 율법에 대한 오용이 될 것이요, 반드시 율법주의와 거짓 안전으로 유도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화목케 하는 은혜가 영원히 필요함을 상기시키는 언약의 법으로 주어졌다. 율법의 목적은 언약의 이행과 언약의 축복으로 인도하는데 있다.
유월절 어린양과 십계명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두 가지 선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기와 시편이 증거하는 것처럼, 죄를 고백하고 희생의 대속 제물을 드림으로써만 구원과 성화의 언약 관계 안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는 율법과 유월절 어린양 둘 다 필수적이었다.
토라는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모든 계시를 포함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 가지 다른 부류의 율법들, 즉 도덕법, 제사법 그리고 국법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양피지에 기록한 다른 법들은 부차적으로 중요한 장소인 법궤 곁에 두게 하신 반면, 증거판들은 언약궤 안에 두라고 모세에게 지시하심으로써 그가 친수로 돌비에 기록한 “십계명”에 우선적인 지위를 부여한 것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참조 출 25:16, 21; 신 10:2-5; 31:24, 25).
2. 이스라엘의 예배에 나타난 율법
이스라엘은 경배의 책인 시편 특별히 시편 1, 19, 25, 37, 40 그리고 119편에서 하나님의 선물인 토라에 대해 기쁨과 감사를 표한다. 다윗은 “야훼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시 25:4, 5)라고 기도하였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구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야훼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하나님의 언약의 율법은 제사장 아삽이 경고하듯 그분의 축복을 주장하기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시 50:16, 17).
하나님은 아삽이 증거 하듯 마음의 순종을 요구하셨다.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시 78:37). 그러나 이스라엘 가운데는 하나님과 구속적 관계 안에서 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야훼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시 25:10). 분명히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 것은 그의 도덕률을 지키는 것을 의미했다.
시편 19편과 136편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시편은 각각 우주의 창조자와 이스라엘의 구속자를 결합시키는 연속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세기 1-2장의 창조주와 출애굽기의 구속주 하나님이 한 분의 동일한 하나님이시라는 이스라엘의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 예배의 신앙적 초석들이 다른 시편들에서도 간단히 표현되어 있지만(33:6, 7; 95:3-5; 104; 121:2; 134:3; 146:5-6), 시편 19편과 136편에서처럼 두드러지게 강조된 곳은 없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지혜와 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우뚝 서 있다. 알파벳 구조로 기록된 시로 각각 여덟 행으로 된 스물두 연(聯)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사용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의 구속자이며 왕이신 분의 수많은 덕을 포괄하고 있다. 시편 119편은 토라에 해당되는 여덟 개의 교환 가능한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야훼를 믿는 자의 기쁨으로서 야훼의 토라를 칭송한다.
프리드만(D. N. Freedman)은 이 “토라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인에게 토라는 모세 오경에 주어진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으로 살아야 하는 율법 이상의 훨씬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토라는 하나님께 이르는 인격적인 길이었다.” 그러므로 토라는 하나의 분리된 개체로서 하나님에게서 분리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과 임재의 기능을 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시 119:120)라고 외치게 되었다. 결국, 시편은 결코 ”그“ 율법이라고 말하지 않고 ”오 내가 당신의 율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에서와 같이 오직 ”토라트 야훼“ 즉 ”야훼의 율법,“ ”당신의 율법“, ”당신의 말씀“, ”당신의 명령“이라고만 말한다.
토라는 야훼의 본성과 품성에 대한 완전한 표현으로서 찬양을 받고 있다. 토라의 여덟 가지 동의어로는 계율, 계명, 율법, 말씀, 약정, 그리고 선언 등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토라는 성경의 여러 교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의미한다.
VIII.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 언약의 관계
A. 이전 은혜 언약의 확장
시내언약은 이전에 존재한 언약들의 연속이며, 확장이며, 상세화이다. 따라서 이전 언약들과 같이 이스라엘과 전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본질적으로 같은 설계와 구상, 목적과 목표을 지녔다. 시내어약은 행위언약이 아니고 은혜언약이다. 다만 언약의 조건이 명문화되고 상세화된 것일 뿐이다.
B. 세대주의 신학의 이분법적 언약관의 문제점
세대주의 신학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은 하나님의 언약 프로그램의 중심에 있다. 이는 시내 언약을 구약의 통합된 요소로서 이해하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의 핵 또는 중심으로 이해하는 Eichrodt와 Kline과 같은 학자들의 관점과 현저하게 대조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언약은 완전하게 이스라엘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통제한다. 신정주의적 구속적 계획들은 이 언약의 이행에 달려있다. Pentecost는 이 언약에서의 약속의 땅은 팔레스타인 언약 안에서 개발되었고 씨(자손)의 약속은 다윗 언약에서 강화되었으며 축복의 약속은 새 언약에서 확대되었다.
새 스코필드 주석 성경(New Scofield Reference Bible, 1967)은 성경적 언약 신학을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약속 세대는, 비록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시내에서 주어진 율법에 의해 대체되었다[즉 “파기되었다”]”고 하였다. 시내 율법을 아브라함에 주신 약속의 “대체”로 보는 이런 오해는 모세의 율법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언약을 “없이 하지 못”한다는 갈라디아 3:17의 바울의 선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세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시내 언약은 기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임시적이고 조건적이다. 시내 언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체결하신 다른 무조건적인 언약과 비교할 때 예외적인 현상이다. 이 대조를 고려하면서 Campbel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두 언약은 근본적으로 본성에 있어서 다르다. 그들은 섞이지 않는다. 그들은 조합될 수 없다.” 그러나 구 세대주의자들의 실수를 인식하면서 Hutchison은 두 언약들이 상반된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 보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그것들 자신만의 구별된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두 언약의 구별된 특성은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의 해석에서 심화된다. Campbell과 Hutchison에 따르면 갈라디아 3:19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직접적으로 약속을 제공하셨다. 그러나 율법은 한 중보자에 의해서 세워졌다. 시내 언약에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천사들과 사람을 대표하는 모세라는 두 중보자가 나온다. Ryrie는 이 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중보자의 현존에서 두 당사자의 필요성을 전제로 한 점과 중보자의 필요성은 율법의 열등성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시내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보다 열등하다.
두 언약에 관련된 그 알레고리적인 대비에서 바울은 형상적으로 시내 언약과 아브라함의 언약을 대표하는 두 어미(하갈과 사라), 두 아들(이스마엘과 이삭), 두 산(시내산과 갈보리), 두 도시(지상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을 지적한다(갈 4:24-27). Campbell과 DeHaan에게 있어서 이것은 율법과 은혜의 대비를 강조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사라-이삭-갈보리-하늘의 예루살렘에 의해 대표되는 그 언약의 언급들은 그것의 자비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반대로 하갈-이스마엘-시내-지상의 예루살렘에 의해 대표되는 법률적 언약과 율법은 인간이 만든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시도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논조로부터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시내 언약에는 은혜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Woodring은 세대주의 사상은 시내 언약 아래 포괄적이고 완전한 은혜를 인식하고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 정신은 시내 언약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세 언약의 정반대적 관점과 조화되어” 존재한다. 시내 언약의 서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실제적으로 “과거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 여호와의 자비로운 도움에 대한 암시와 그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게 된 시내산의 새로운 법률적 합의 아래 신의 도움에 대한 계속적인 유효성에 대한 암묵적 제의였다.”
Ryrie가 비록 모세 율법은 은혜와 혼합되어졌기 때문에 전적으로 공로 체계가 아니라 아니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세 언약에서 은혜의 현시는 “한 어두운 부정”과 같았다. 그리고 은혜와 율법 사이의 대조적인 관계에 대한 강조를 기록한 새 스코필드 해설성경은 율법을 모세와 행위에 연결하고 은혜를 그리스도와 믿음에 연결했다.
C. 은혜언약의 연속성 근거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에 내포된 은혜와 축복들은 시내 언약 안에서도 발견되는 연속선상에 있다. 카이저(Walter Kaiser)는 하나님의 율법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분의 약속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성취하는지에 대한 네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 약속과 율법은 둘 다 언약을 맺으시는 같은 하나님의 표현이다.
2. 율법은 야훼와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졌지 그것을 체결하는 근거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3. 이스라엘을 위해 거룩함의 표준을 세운 그 동일한 토라가 또한 용서하는 은혜와 속죄도 제공하였다.
4. 모든 계명의 배경은 구속하는 은혜의 범주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야훼로라”(참조 출 20:2; 레 19장[여기에는 14 번에 걸쳐 “나는 너희 하나님 야훼니라”를 반복한다]; 26:45; 신 4:34; 5:15; 15:15; 24:18, 22).
분명히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34장에서 하나님의 받으심을 얻거나 구원의 공로를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통해 이미 종살이에서 구원을 받았으며(출 14장) 모세와 함께 이미 감사의 승전가를 불렀다(출 15장).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를 경외하여”지속적으로 감사하며 이 구속주를 어떻게 섬기며, 구원 집단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는 데로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그들의 하나님과 동행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돌보시는 최상의 표현이다.
시내 언약(출 19-24장; 신 5:28-33)은 그 율법을 공적으로 낭독함으로 모세에 의해 엄숙하게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백성은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말로 표현하며 반응하였고, 하나님은 기뻐하셨다(출 24:7; 신 5:28). 그러자 모세는 동물 희생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이는 야훼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8; 히 9:19 비교)고 선언하였다.
이 피 뿌림 의식은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희생 동물의 죽음이 상징하는 것처럼 죽음의 고통에 기초한 구속주와의 언약적 교제에 머물도록 성결케 하는 것이었다. 카이저(Walter Kaiser)는 이 의식에 아브라함 언약의 피 의식이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시내 언약 혹은 모세 언약은 비록 많은 조항들이 단지 예비적인 것들이긴 하지만… 아브라함 언약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고대 부조에게 하신 약속 곧 시내 언약과 다윗 언약에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고대 부조들의 약속을 갱신하실 때에 아무 것도 삭제되거나 폐기되거나 내버려지거나 대체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분의 죽으심으로 언약을 갱신하신 것이지 완전히 ‘새로운’ 언약을 제정하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언약의 이러한 본질적 통일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의 모든 언약에서 언제나 동일한 구주시라는 것을 확언하게 되었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대저 야훼는 우리 재판장이시오, 야훼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야훼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사 33:22)고 증언하였다.
IX. 언약의 표징과 인 -- 안식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이미 창조언약에 살펴보았듯이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표징이 된다. 표징은 특별한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의도된 표, 물체 또는 규정이다. 안식일은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 된다. 노아 언약의 표징은 홍수로부터 보호와 죄악 징계의 표가 된다. 아브라함 언약의 표는 이방인과의 구별하는 표가 된다.
A. 광야에서의 안식일 성수 훈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의 삶에서 안식일 준수 신앙을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의 이적을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성수하는 훈련 방편으로 삼았다(출 16:26-30). 그 분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 안식일 회복운동을 하시고자 3중 이적을 행하시었다.
1. 매일 일정 분량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여섯째 날에는 그 배의 양을 거두어야 했다.
2. 만나가 안식에는 내리지 않았다.
3. 안식일을 위하여 필요한 여분의 몫은 다른 날과는 달리 여섯째 날 상하지 않고 보존되었다.
출애굽기 16장의 만나의 3중 이적 사건을 통하여 다음 시실들이 확인된다.
1. 여섯째 날이 예비일이 된다(22, 29절).
2. 여섯째 날 다음 날이 안식일이다(22,-23절).
3. 안식일은 일곱째 날이다(26절).
4.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29절).
5. 안식일은 “휴식”의 날이다(23, 30절).
6. 안식일은 거룩하다(23절).
7. 안식일은 안식하는 날이다(30절).
8. 안식일은 금식일이 아니다. 하난미께서 양식을 주신 날이다(29절).
9. 안식일은 하나님께 충성을 시험하는 날이다(4, 27절).
10.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날이다(28절)
11. 여섯 날은 일을 위하여 주셨지만, 제칠일은 “여호와께 안식”하는 날이다(25절).
B. 안식일 표징과 인의 의미
1. 창조의 표징 (출 20:8)
2. 구속의 표징 (신 5:6)
3. 성화의 표징 (출 31:13)
4. 하나님의 인 (출 20:11)
X. 언약의 종주조약적 특색
A. 종주조약적 모델이 되는 성경 본문들
전술한 바와 같이 시내언약은 종주조약의 모델을 지녔다. 종주조약적 특색은 여호수아 24장, 신명기의 전책, 사무엘상 12장에도 나와 있다. 그 내용을 아래 도표로 요약한다.
종주권조약 |
출 20-23장 |
여호수아 24장 |
신명기 |
삼상 12장 |
전문 |
20:2b |
2a |
1:1-5 |
6a |
서언(과거역사) |
20:2a |
2b-13 |
1:6-4:49 |
6b-13 |
기본조항 |
20:3-17 |
14-15 |
5-11장 |
14a |
세부조항 |
21-23장 |
25-26 |
12-26장 |
-- |
증인들 |
20:22 24:3-8 |
22-27 |
30:19 31:19-28 |
16-18 |
축복과 저주 |
B-23:20-33 C-23:21b, 33b |
C-20 |
27-30장 32-33장 |
14b, 15 |
|
|
|
27-28/29-30 (B-C-C) 32장 저주 33장 축복 |
|
B. 십계명으로 짜여진 신명기
제1-3 계명 :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을 섬기지 말며 성호를 모독치 말라.
(6-11장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내용)
12장 이교의식의 근절, 여호와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경배할 것.
13장 다른 신을 좇지 말 것.
14장 부정한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게 말라. 십일조를 성별하라.
제 4계명 : 안식일
15장 안식년
16장 순례 절기들
제5계명: 부모 공경
17:2-13 재판장(증인)을 높임.
17:14-20 왕을 공경함.
18:1-8 제사장 공경함.
18:9-22 선지자를 높임.
제6계명 : 살인하지 말라.
19장 부지 중의 살인과 고의적인 살인
20장 전쟁에 관한 법
21:1-9 추적 불가의 피살체
21:10-14 전쟁에 관한 추가적인 법
21:18-21 사형
21:22-23 범법자 사형집행
22:8 사고에 의한 죽음에 대한 사전 경고
<범위 밖의 예외적 기록>
21:15-17 초태생
22:1-4 생축 반환
22:5 성별에 따른 의복
22:6-7 들새를 보살피는 일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 성적 순결과 기타 순결
22:9-11 씨앗을 섞어 파종하는 일
22:13-23 성관계 순결에 관한 법규
23:2-9 성적 순결과 기타 순결
23:10-15 진영에서의 성적 순결
23:17-19 종교 의식에 관한 매음행위 금지
<범위 밖의 내용>
23:16 도망한 종
제8계명: 도적질 하지 말라.
23:20-21 동족에 대한 취리행위 금지
23:22-23 하나님께 한 서원의 신속한 이행
23:24-25 이웃 작물에서 이삭 취하는 일과 제한
24:6 전집(저당)
24:7 유괴
<범위 밖의 내용>
24:1-4 이혼과 재혼
24:5 신혼 중 군 복무 면제
제9-10계명: 탐내지 말라.
25-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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