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개요

창조 : 2019. 1. 20. 20:58

창세기 1장 개요

I. 창조의 중요성

A. 성경의 중요 주제

하나님의 창조는 전 성경을 통하여 나오고 있는 기본적 주제로 나오고 있다. 이 창조는 이스라엘과 세계 역사의 대 전제가 된다. 모세오경의 3대 중요한 사건은 창조기사(1:1-2:25), 출애굽 사건(15:8, 17), 시내산에서의 율법 선포(19-20) 사건들이다. 창조 사건은 예언서의 바벨론 포로 귀환문맥에서도 나온다(40-45; 4:23-26; 31:35-57). 또한 지혜문학의 중요한 주제로도 나오고 있다(8:22-36). 인간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38)에서도 창조를 다루고 있다. 시편 기자들도 창조를 다루고 있다(29:2; 95:1-6; 139:13-14; 145:15). 다니엘서에서 창조는 종말론적 예언적 소망을 고취하고 있다.

창조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에 대한 믿음의 전제가 되는 중요 주제로 나온다. 그 사례로 히브리서(1:2; 11), 골로새서(1:16), 고린도후서(5:17)를 들 수 있다. 예수께서는 결혼제도를 창조 사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말씀하셨다(19:4-6; 10:7-9). 그리고 성경전서의 결론이 되는 요한계시록 21-22에서 새 창조의 예언적 소망을 표출하고 있다.

B. 창조신앙의 의미와 중요성

1.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존재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2. 창조신앙은 참 예배의 기초가 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면 완전하고 드릴 가치가 있는(worthy) 참 예배(worth-ship)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창조신앙은 구속과 연관되어 있다. 창조를 전제로 할 때 구속과 회복이 가능한 것이다. 즉 창조는 구속을 결정한다.

4. 처음 일(etiology)은 마지막 일(eschatology)을 결정한다. 창조론이 선행하여야 종말론이 확연하여진다. 완전한 창조는 완전한 최종적 회복을 보증한다.

5. 창조신앙은 인간은 창조주에 독립한 존재가 아닌 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6. 창조의 세계는 선하다. 이는 창조사건을 진행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반복하여 선언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드러난다.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고 말씀하셨다. 이는 인간의 생명도 선하다는 선포가 된다.

 

II. 창세기 1-2장 구도와 연계성

창조기사는 다른 세계의 창조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 지구 행성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A. “7”에 기초를 둔 창세기 1-2장의 구도 (Doukhan, 41)

창조기사의 아름다운 리듬은 완전과 완성의 수인 7이라는 숫자 구조에 잘 나와 있다. 이는 창조주일과 안식일 사상이 그 기조에 배어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1. 창세기 1(1:1-2:4a)의 구도: 서론과 창조주일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7일 구도로 구 성되어 있다.

서론-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창조, 형태가 없고, 공허한 땅, 하나님의 신의 수면운행(1-2), 첫째 날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과 어둠 (1:3-5),

둘째 날 - 하나님이 이르시되, 궁창-하늘 (1:6-8),

셋째 날 -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과 뭍, 식물 (1:9-13),

넷째 날 - 하나님이 이르시되, 광명들; / 어둠 (1:14-19),

다섯째 날 - 하나님이 이르시되, 동물, 조류와 어류 창조 (1:20-23),

여섯째 날 -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과 동물의 관계, 사람의 동물지배, 사람을 남자와 여자 로 창조 (1:24-31),

일곱째 날 - 천지 완성, 하나님의 개입, 이전 일과 분리, 축복과 거룩함 (2:1-3).

결론 - 천지 창조 때 하늘과 땅의 내력 (2;4a)

 

2. ‘7“ 숫자의 반복적 강조

창세기 1:17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다(bereshit bara' 'Elohim et hashamayym we'et haarets). 1:2 문장7의 배수 14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대로 되니라(it was so),"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어구들이 각기 7회씩 나타난다. 또한 기본 어휘들이 7이나 7의 배수로 나타난다. 예컨대, "bara(create)"7, "하나님(Elohim)"35(7x5), "(earth)"21(7X3)회가 각각 나오고 있다.

 

3. 창세기 2 장 구도

서론 -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심, 그러나 아직...없었고 안개만 지면에 (2:4b-6)

1 단계 -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시고, 사람/(2:7)

2 단계 - 여호와 하나님이... 창설하시고, 동산: 에덴 (2:8)

3 단계 - 여호와 하나님이... 나게 하시고, 물 땅 식물; 인간지배(2:9-15)

4 단계 - 여호와 하나님이...명하여, 지식의 나무: 선과 악 (2:16-17)

5 단계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에게 돕는 배필 필요 (2:18)

6 단계 - 여호와 하나님이...지으시고, 사람과 동물의 관계, 사람의 동물지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 2:19-22),

7 단계 - 남자와 여자 완성, 하나님의 개입, 부모와 분리, 부부연합 (2;23-24)

결론(2:25) - 남자와 여자 창조 때의 내력

 

B. 창세기 1장과 2장의 기록 방식의 차이에 관한 이해 방향

창세기 1장과 2장의 기사에 조화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는 으로 보아 같지 않은 자료의 편집으로 보는 비평적 시각이 있어 왔다. 그리고 이 회의적 문제 제기는 반복되어 왔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1978년도에 나온 Jacques Doukhan의 박사학위 논문 <창세기 창조 이야기의 문학적 구조(The Literary Structure of the Genesis Creation Story)>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재림교회는 오래 전에 역사 비평적 방법에 의한 창조설화 해석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처하여 왔다. Gerhard F. Hasel<현대 성서해석(Biblical Interpretation Today)도 이 성서비평 이슈를 다루었다. 그 외에도 이 주제는 여러 학술지나 잡지에서도 다루어 왔다.

역사비평 방법(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을 성경해석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경문서의 역사적 발생 및 진화 발전과정에 초점을 둔 통시적 접근방법을 기본적인 척도로 삼아 왔다. 원 자료의 이어져 온 수정 및 재해석에 따른 배후의 사회 문화적 배경(삶의 정황) 등을 파헤쳐 그것이 성경 해석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보아 왔다. G. Maier<The End of the Historical-Critical Method>에서 역사비평방법이라는 패러다임에 파산선고를 내린 바 있다.

이 각종 문서설을 만들어 낸 통시적 접근 방법에 대응하여 공시적 접근방법을 추구하는 분들은 성경상의 상이 또는 반복적 본문들을 상호보완적 문학 장르로 이해하여 왔다. 공시적 접근 방식은 상이하게 보이는 기사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상이한 편집자의 편집이나 수정이 진화 발전한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에 같은 저자가 쓴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이한 기사를 써야 하였던 저자의 내적 의도를 탐색하므로 상이한 문서들을 상호 보완적 내지 밀접한 관계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같은 의미를 각기 다른 말로 전달하는 평행법은 히브리 성경 문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정교한 형태는 교차평행법으로 나타난다. , 성경은 반복적 표현이라는 방법을 근간으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반복적 표현 양태는 창조 사건을 묘사하는 창세기 1장과 2장에도 나타난다(그 외 홍수 사건, 사라와 리브가의 이야기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료 또는 전승 비평자들 처럼 창세기 1장과 2장이 각기 다른 출처를 지닌 한 쌍의 반복된 설화들로 보고 있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방식에 불과하다. 같은 예언자가 다니엘 2, 7, 8장의 평행적 예언들을 취급하였지만 마지막 때 사건의 양태를 더욱 구체화시키면서 그 종교적 국면을 부각시키는 보완성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의 장과 절 구분은 후대의 소산물이며 현재의 구획은 사실상 24절을 중심으로 재구분하여야 문맥의 흐름과 내용에 걸 맞는다. 모세는 창세기 1:1-2:4a에서 6일 창조의 전체적 국면을 진술 보도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사건에서 안식일 제도의 기원이 있다는 것으로 창조 기사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 후에 창세기 1장의 창조사건의 기술을 보완하는 2:4b-25을 서술하고 있다. 2:4b-25은 창세기 1장의 단순한 반복 기사나 별도의 자료의 이중적 제시가 아니다. 2장은 1장 창조 기사에서 인간 창조와 그 환경 부분을 확대 보완한 것이다. 2:19에 나오는 “...지으시니라는 동사의 히브리문법상 (wau-consecutive-imperfect) 의미는“...지으셨었느니라또는 “...만드셨었느니라(...had formed)"로 보아 1장의 창조 기사를 보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야지, 새로운 별도의 창조 기사처럼 이해하는 독법은 문법적 의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2:4b-7까지는 비가 오기 전 또 인간이 땅을 경작하기 전의 지구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 창 1:1-2:4a와 모순되는 별다른 창조 기사로 보는 것은 창세기의 구조와 문법에 충실하지 못한 해이된 설명에 불과하다. 요컨대 2:4b-7은 세계 창조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인간 타락과 홍수 이후의 상황에서 기록한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상이한 하나님 이름을 근거로 자료 내지 편집비평을 두둔하는 방식은 단세포적 발상에 불과하다. 마소라 사본이나 쿰란 사본에는 하나님 이름이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정황과 목적에 따라 다른 이름을 사용하시었다. 1장에 나오는 엘로힘은 인간을 포함한 피조 세계에 초월적 존재, 즉 창조주를 묘사하는 이름이다. 2장에서는 인격적 이름 야훼가 엘로힘과 함께 나오고 있다.

III. 창세기 1;1-2의 해석

A. 해석 유형들

1. 복구설(Restoration theory)

이 복구설은 일반적으로 간격론(Gap theory)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파멸과 복구(Ruin and restoration)"로도 불리어진다. 복구설은 창세기 1:1의 창조를 7일 창조주일이 있기 이전, 오래 전에 원 창조를 진술한 것으로 보고, 1:2a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tohu wabohu)”를 사단이 타락한 때 지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한 것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1:2b-3에서는 다른 창조를 진술한 것으로 본다. 이 복구설은 “tohu wabohu”가 어떤 현상을 야기시킨 원인(cause)을 진술한 것이 아니고 상태(state)를 묘사하고 있는 점, “세상을 창조(the foundation of the world)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4:3)에서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는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마쳤다는 점, 그리고 소위 원창조의 불완전성은 성서의 하나님의 창조와는 맞지 않다는 점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2. 창세기 이전 간격 창조이론(Pre-Genesis gap creation theory)

혹자는 하나님의 원 창조가 창세기 1:1 이전에 있었고, 창세기 1:1을 다른() 창조기사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성경은 오로지 이 세계에 관한 하나의 창조사건을 일관적으로 진술하고 있어서 맞지 않다.

 

3. -시대론(Day-age theory)

이는 창조주일의 하루를 지질학적 기간으로 보는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으로 하나님께서 장기간에 걸쳐 창조하셨다는 입장이다.

 

4. 유신론적 진화론

하나님이 진화론적 방식을 채택하여 장기간 동안 창조하셨다.

 

5. 창조주일 사건의 서론부설(Introductory statement theory)

창세기 1:1-2을 창조주일 전체 기사의 서론부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B. 창세기 1:1-2의 해석

1. 창세기 1:1-2을 창조주일 전체(1:1-2:4)의 서론부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J.B. Doukhan, Genesis, p. 41). 서론부에는 창조의 시간적 요인은 함의되어 있지 않고 사단의 타락, 선재물질 등에 관한 시사도 들어 있지 않다.

 

2. 창조의 주체는 하나님(Elohim)"이다. 하나님은 구약성경의 핵심 주제며 그 중심점이 된다. ”엘로힘의 어근은 ”‘alah"이다. 이 알라는 권능과 특출함이라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엘로힘이 복수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강렬성과 위엄성을 전달하는 문학적 표현 기법으로 봄이 좋다. 엘로힘은 우주를 초월하여 계시는 위대하신 분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는 태초 이전 영원하신 존재가 되신다. 창조의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자존자이시다. 인간과 다른 모든 생물 및 천체는 이 하나님에 의존된 존재들이다.

 

3. "태초에(Bere'shit)" - 두칸 박사는 1:1의 첫 단어 가 우주창조와 지구 창조라는 이중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p. 49). 이런 이중적 독법의 전제에 따르면 물(1:2, 7), 하늘들(1:7), 큰 광명, 작은 광명, (1:14-18)이 창조 순간에 이미 존재했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창조기사는 우리의 지구 행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이중적 독법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두 개의 창조 기사에서도 나타난다.

중국어성경에서는 창 1;1Bere'shit起初, 요한복음 1:1arche太初로 구분하고 있다. 한국어성경에서 창 1;1 ‘태초라는 번역을 재검토해야 한다.

 

3. 1;1천지는 모든,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이어서 우주 전체를 포괄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창세기는 지구행성 창조에 선행하는 다른 세계 창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우주를 언제 어떻게 창조했는지에 관한 진술 없이 단지 그 다른 우주세계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천지개념은 우주를 창조를 전제로 하거나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 1:1-2:4a 창조의 초점은 인간 세계이므로 여기에 나오는 하늘이 우주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지구행성의 대기권 하늘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태초는 우주창조의 시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 시(at the beginning of creation)”(10:6) 개념을 남자와 여자로 만든 사건과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세기 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7, 9에 비추어 우리가 접하고 있는 대기권 하늘과 살고 있는 지구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 창세기 1:1(heavens)”을 이어지는 창조기사에서 천지용례에 비추어 보면 우주라기보다는 지구를 감싸고 있는 대기권 하늘(궁창), 곧 다섯째 날 창조된 새들이 나를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1::8). “(earth)”1:9-10을 두고 한 표현이다. 창세기 1천지의 초점은 지구에 집중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야 할 때 이런 풀이가 훨씬 더 성서적이라고 볼 수 있다.

 

4. “창조하시니라(bārā')(, 완료형, , 단수) 는 오로지 창조의 주체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나타내는데 만 사용된 순전한 신학적 용어이다. 이 바라는 하나님만의 창조 활동을 나타내고 있는 동사이다. bārā'는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사상을 전달하는 동사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āśāh(to make) 할 수 있지만, ‘āśāh는 이미 창조된 물질을 고쳐 재형성하는 범주를 가리킨다. 물론 ’asah(to make) 또는 yatsar(to shape) 등이 문맥상 bārā'와 동의어적 평행어로 보아야 할 경우도 나온다(2;4; 6:7; 34:10; 41:20 ).

 

5. 1:2의 초점은 인간이 거주하는 땅이다. “은 히브리어 접속사 waw(그리고)에 이어 나오고 있다. waw가 대조를 하면서 접속시키는 접속사라는 점을 감안하여 선행 하늘들과 대비되는 땅의 형태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선행 1;1하늘들에는 생명과 빛이 이미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케 한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생명, ,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차 있는 점을 암시하면서 땅의 창조도 그 방향으로 갈 것을 예견케 하고 있다. 그리하여 땅에서 창조되는 안식일에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것으로 창조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2:2-3).

 

6. 히브리어에서 혼돈과 공허(tohu wabohu)”에서 tohu헛된, nothingness)”(29:21), 또는 삭막한 들 desert)(6:18)을 뜻한다. bohutohu와 짝을 이루어 텅 빔(emptiness)의 강조 어법으로 나오고 있다(4;23; 34:11). 흑암과 깊음이 물과 함께 연결되어 있는 점은 공허와 생명의 부재를 뜻한다. 흑암과 물은 죽음이라는 사상과 관련되어 나오고 있다(10:21; 144:7). 이 상태가 전하는 기초적인 의미는 음성학적으로,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또 다른 창조기사인 2:5에 나오는 땅에서 아직 없었고에 비추어 보아, 처음 창조 기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의도는 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 땅의 부정적 특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돈과 공허와 물이라는 어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보인다. 성경에서 물이 공허와 결합되어서 nothingness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행성 창조 전 창조의 선행 행위로 보이는 물의 광막함이란 텅 빔이고 생명이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지구행성이 선행물질의 활용을 통하여 창조되었다는 식의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 가공이론이나 갭 이론은 수용할 여지가 없게 된다.

 

7.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은 신격이 된다. (ruakh)은 구약성경에서 "바람," “,” 또는 공기로 번역되고 있는 생명의 원리이다. 여기서는 물리학적적 바람이나 공기 이상이 되는 인격신을 나타낸다. “께서 그들의 呼吸(ruakh)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 (ruakh)을 보내어 그들을 創造하사 地面을 새롭게 하시나이다”(104:29-30).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루아흐가 인간 창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2:7). 하나님의 루아흐는 생명을 창조하고 생명을 준다(33:4). 생명의 루아흐 작동은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8. 1:3의 빛(or)의 창조는 이어지는 생명 창조를 위한 기초적 토대가 되는 것이어서 창조의 첫 단계에 속한다. 흑암과 공허의 상태에서 먼저 빛이 있어야 한다. 빛은 생명의 선결요건이 된다. 빛과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56:13).

萬物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生命이 있었으니 이 生命은 사람들의 빛이라“(1:3-4).

이미 빛은 지구 행성 이전의 우주 창조 시에도 존재해야 한다. 1:3빛이 있으라는 명령(첫째 날의 빛의 창조)은 인간의 삶의 영역에 국한 된 것으로 넷째 날 태양계 작동케 하는 결과를 야기시킬 것이다. 첫째 날 빛이나 넷째 날 빛은 일치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1:5). 저녁과 아침은 하루를 구성한다. 하루가 저녁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다음에 아침이 온다는 것은 어둠으로부터 밝음으로 나간다는 점과 하루에는 어둠도 그 한 부분이라는 철리를 담고 있다.

 

9. 창조주일의 문제

a. -시대론(day-age theory)--이 장기간론은 지질학적, 고생물학적 이론들과 조화를 시도하는 유신론적 신학자들의 타협 이론이다. 흔히 이 날-시대론을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으로 칭하기도 한다. 창조주일의 각 날들은 6개의 지질학적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고 본다. 이는 일종의 장기간론으로 하나님께서 진화의 긴 과정을 사용하여 창조과업을 이루셨다는 입장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이 주로 활용하는 이론이다. 그리하여 이 장기론자들 중에는 화석 계층 기간을 창조주일 기간에 맞추기도 한다. 이 장기간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히브리어 yom()이 꼭 24시간 하루를 지칭하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지 않고 오히려 불한정된 긴 기간을 나타내는 용례들이 많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20:1; 20:28; 고후 6:2).

그러나 이런 주장은 yom이 특정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와 함께 사용될 때(예컨대, yom ahad <day one>-첫째 날))는 어김없이 24시간 하루를 뜻한다는 점에 맞지 않다.

또한 장기간론자들은 태양이 제 4일에 창조되어 그 이전의 3일 동안의 각 날의 기간은 지구와 태양과의 관계(공전 및 자전)없이 결정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아침과 저녁이 되는 지구의 회전 주기의 속도는 제 4일에 변경되지 않았다. 창세기는 태양을 빛의 전달자(light-bearer)(ma'or)로 묘사하고 있지, (or) 그 자체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 3일 동안의 빛과 어둠의 변경이 있었다는 어떤 시사도 찾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장기간론자들은 하나님이 쉬신 제칠일에 관한 기사에서 저녁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들어 장기간론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제7일 언급이 첫째 날, 둘째 날...여섯째 날로 이어진 차례에 따르고 있는 점은 보통 날과 같은 시간대임을 시사하고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b. 6일 계시 시간론--Bernard Ramm은 창조가 6일 동안에 계시된 것이지, 6일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는 6일 창조론 대신 모세가 받은 6일 계시론을 상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20:11)와 정면으로 배치된 주장이다. Ramm6억년 이상의 대진화 과정에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하는 점진적 창조론을 소개하였다.

c. 문자적 6일 기간론--이 이론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이 단기 창조주일론은 yom이 특정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와 함께 사용될 때 반드시 24시간 하루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창조주일 후반부 3일 동안이 이전의 날들처럼 같은 저녁이 되니 아침등 어구들로 묘사하고 있다. 만일 전 3일 기간이 장기간이라면 셋째 날의 식물은 동물이 내 품는 탄산가스 없이 오랜 기간을 버텨 내야 하였고, 또한 장기간의 어둠 기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생존하여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넷째 계명의 진술은 창조주일이 문자적임을 간명하게 들어내고 있다.

 

10. 창조주일 6일 동안의 창조 공간과 채움

a. 설계 구도--창조주일 설계구도는 명확하다. 각 날은 다음에 오는 알을 위한 준비에 해당하는 디자인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안식일에 이르러 창조의 완성과 절정, 그리고 경축을 보여주고 있다.

b. 균형과 조화--Day1, Day 2, Day 3가 각각 Day 4, Day 5, Day 6와 균형적인 연계성을 띄고 있다. 3일 동안은 공간 준비, 다음 3일 동안은 동 공간들에 거주할 존재들의 창조가 이루어 졌다.

Day 1--어둠으로부터 빛의 분리

Day 4--빛의 전달자의 창조

 

Day 2--물의 분리 대기권 창조

Day 5--물고기와 조류의 창조

 

Day 3--물과 뭍의 분리

Day 6--동물과 인간의 창조

 

Day 7--결론: 창조 완결의 경축, 신적 안식, 축복 및 거룩케 하심

 

c. 안식일--제칠일에 하신 하나님의 안식은 우주론적으로 보아야지 인간론적인 개념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쉬셨다(šābat)"휴지(cessation)"를 뜻한다. 안식일(šabbāt)이라는 명사와 동족어가 된다. 이 안식일을 존중하는 신앙은 곧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가 되신다는 점을 고백하는 신앙이 된다. 안식일 준수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일이 된다. 그 이유는 제칠일 안식일에 인류에게 쉼을 주시고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특별한 교제를 하시는 날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11. 첫째 날 빛(or)과 넷째 날 광명(maor)(1:3; 1:14-18)

마오르는 장막 안에 있는 등불이나 등대에 대해 사용되었다(35:6, 27:20, 35:8). 마오르는 우주의 '밝은 빛'(32:8), 주의 얼굴 ''(90:8), 눈의 '밝은 것'(15:30)에 대해 사용되었다. 당시 태양을 shemesh, 달을 yareakh라고 불렀는데도 성경은 이 단어들을 피하고 성소와 계절 등과 관계된 용어를 선호한 이유는 우상숭배를 피하는데 있을 뿐만 아니라, 성소, 징조, 계절, 해에 맞추어 드리는 경배에 눈을 돌리게 함에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둠과 물로 쌓인 땅을 비출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빛과 제4일째 되는 날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으라고 하신 것과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의가 있어 왔다. 넷째 날 천체는 이미 존재하여 왔으나 아직 짙은 안개구름 같은 것에 쌓여 있는 상태를 연상하는 시각에서 첫째 날 빛과 넷째 날 광명을 동일시하는 입장이 있다. 이 입장에서는 넷째 날에 이르러 이 구름을 걷어치우는 일이 있어 명료하게 보이도록 하였다는 풀이를 한다. 이런 설명은 가능은 하지만 이를 지지할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결여되어 있다.

또 다른 입장에는 첫째 날의 빛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방출하여 나온 영광의 빛으로 본다. 이 빛이 넷째 날의 광명이 이르기 전에 그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이 시각은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빛을 발하여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없게 되는(21:23) 상태와 평행적으로 조화된다. 후일에 인간 세계에 해와 달을 비롯한 천체 경배가 도입되는 점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께서 첫째 날로부터 셋째 날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의 빛으로 비추신 것은 그런 우상 숭배를 사전에 막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본다.

태양이나 달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큰 광명, 작은 광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는 천체 경배의 틈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가 들어 있다. 넷째 날 이 광명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Doukhan의 박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모세는 넷째 날에 천체들(태양, )이 창조되었다는 점에 포인트를 둔 것이 아닌 그 기능 작동에 악센트를 둔 기능론적 접근을 하고 있다. 두칸은 넷째 날 이전에 벌써 천체들은 창조되어 존재하였지만, 성경 본문은 그 작동이 창조주일 이전이나 창조주일 첫째 날에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별의 기능에 대하여는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IV. 창조주일 연대

구약성경은 창세기 1장의 창조주일 사건의 정확한 연대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간략한 창조 기사인 창 1;1-2에서 창조주일 전 물로 덮인 비활성 땅(inert earth)의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명료하게 밝히고 있지도 않다.

William Shea는 후대에 잘 알려진 솔로몬 통치 기점(왕상 6:1 참고)을 약 B.C. 970년으로 잡고 이를 중심으로 역산하여 소급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그의 역산 방식에 따르면 노아 홍수는 창조사건이 있은 지 약 1650년이 지난 B.C. 23502500년 사이에 일어났다. LXX의 연대기에 따르면 홍수가 B.C. 3,400년 전에, 창조 사건은 B.C. 5,600년에 일어났다. 따라서 지구 역사는 대략 주전 5,0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 된다.

요컨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에 따르면 지구는 단기창조론적 시각에서 대략 6,000~ 10,000년 사이에 창조된 것으로 보는 추정이 가능하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