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시체를 파헤쳐 들고 있는 사람

 

시골길로 접어들다가 그만 고양이를 치어 죽인 운전자 이야기가 있다. 차를 멈추고 나가서 고양이를 살펴보니 고양이는 차에 깔려 죽어 있었다. 죄책에 사로잡힌 운전자는 길을 따라 주변을 살피다가 고양이 주인이 되어 보임직하는 근처 한 농가에 고양이 시체를 들고 가서 문을 두들겼다.

농가 여 주인이 나왔다. 차 운전자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죽은 고양이를 보이면서 말했다. “제가 무어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인님의 애완 고양이를 그만 제 차로 치여 죽였습니다.”

고양이 주인은 약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 사고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난 당신을 용서합니다. 집 뒤로 고양이 시체를 가지고 가서 함께 매장하십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차고에서 삽을 가지고 나와 집 뒤쪽에서 간단한 장례행사를 한 후 곧 매장하였다. 그런 후에 집 주인은 아직도 불안 해 하는 그 운전자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 이제 모든 것이 끝났고, 내가 당신을 용서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이젠 이 일을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한 주일 후 그 운전자는 우연히 고양이를 치인 그 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일주일 전 들려 용서를 구한 농가가 곧 시야에 들어왔다. 그 운전자는 일주일 전에 느꼈던 죄책감이 다시 몰려와 어쩌지 못하다가 차에서 내려 고양이를 매장한 그 지점으로 가서 고양이 시체를 꺼내 들고 농가의 초인종을 눌렀다. 여 주인이 나와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운전자는 제가 무어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인님의 애완 고양이를 그만 제 차로 치여 죽였습니다고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용서를 구하는 말을 반복했다.

여 주인이 멍청이 같이 섬뜩한 짓을 한 그 사람에게 다서 강한 어투로 말했다. “바보 같은 짓 그만해요. 왜 그것을 다시 파 내 가져 왔단 말이요. 내가 일주일 전에 용서 했다고 말했잖아요. 빨리 그 시체를 집 뒤로 가서 묻어요.”

 

이 이야기는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시사하고 있는 요점은 오늘도 우리에게 강력하게 풍기고 있다. 인간은 용서를 받았다는 확실한 보증을 믿고 의심치 말아야 하는데, 흔히 다시금 지난날의 죄책감의 포로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멍청한 운전자처럼 황당한 짓을 또 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진실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하나님의 용서를 신뢰하고 더 이상 죄책감의 노예가 되어 방황해서는 안 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에 향한 하나님의 용서는 깊은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완전하고 확실하다. 하나님의 철저한 용서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용서 받은 사람은 이제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죄의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된다.

 

와 같은 이 어디 있으리이까 께서는 罪惡과 그 基業에 남은 의 허물을 赦宥하시며 仁愛를 기뻐하시므로 震怒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罪惡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8, 19).

 

西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罪過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103:12).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自由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自由로우리라”(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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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