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은사의 19세기 전반의 시대적 분위기와 엘렌 화잇의 예언 은사

 

19세기 중엽 전후 미국 그리스도교회에는 영적은사와 계시 현현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EGW은 영적 은사의 진공상태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인정의 사인(sign)으로서 이상(異象)과 예언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당대 미국 그리스도교계에서 공개적으로 나타난 은사운동의 현상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2차 대 각성운동에 수반되는 현상

2. 캠프미팅에 수반되는 현상

3. 감리교회의 성화운동에 수반되는 현상

4. 급진적 신흥 종교지도자들에게 수반되는 현상

 

A. 4대 은사 운동 개요

 

1. 2차 대 각성운동에 수반되는 현상

1800년대의 체험적 은사 운동을 촉진시킨 요인 중 하나는 제2차 대 각성운동이었다. 이 제2차 대 각성 운동은 대략 1790년대부터 1840년대 초까지 전 미국에 부흥운동의 불길을 일으켰다. 서부에서는 제임스 맥그리디가, 동부에서는 예일대 학장에 취임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손자 디모티 드와이트(Timothy Dwight)가 불신적 기류가 성행하던 시절에 예일대학에서 각성운동의 불을 지폈다.

조지 화이트필드 목사는 존 웨슬리 목사의 영향을 받았으나 칼뱅주의자였다. 그는 1739~40년 미국을 방문하여 여러 식민주를 돌아다니며 교파를 초월하여, 당시 많은 군중을 수용할 만한 교회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들판에서 설교를 하며 미국 전역에 신앙의 활기를 새롭게 불어넣었다. 그러나 지나친 감정과 위험한 종교적 망상을 자극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목사는 위대한 학자와 변증자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다 함을 얻는다고 설교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신앙체험의 심리적인 면을 재 규명하고, 부흥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성령의 참된 사역과 거짓 사역을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찰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1821년 회심을 경험하면서 변호사가 되려던 자신 유망한 변호사 경력을 버리고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그는 1820년대 및 1830년대에 전통적인 칼빈주의 방식과는 어긋나지만, 뛰어난 부흥사적 기질을 발휘하여 현대 부흥운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으리만큼 크게 활동했다. 칭의에 대한 피니의 견해는 개혁주의 신학의 알미니안주의적 해석이라 할 수 있고, 성화에 대한 그의 입장은 웨슬리의 신학적 유산의 미국식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보스턴, 필라델피아, 뉴욕 등 여러 대도시들에서 부흥 운동을 처음 시작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부흥 운동의 새로운 방법을 많은 부흥가들이 도입하리만큼 인기 있었다. 그의 설교는 교육을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위로하고, 종국에는 영적, 도덕적 변화를 일으키는 일에 그 목표를 두었다. 그에게 있어서 부흥운동은 성서적으로 올바른 메시지와 올바른 방법을 채택한 과학이었다. 설교와 기도에 초점을 둔 그의 부흥운동은 청중들로부터 강력한 신앙체험과 감동을 유발케 하였다.

신앙체험과 감동에 역점을 둔 피니의 집회 성격은 일정기간 계속되는 천막이나 대형교회당 또는 강당에서 하는 초교파적 신앙 부흥 전도집회적 특징을 지녔다. 아침 집회, 오후 집회, 저녁집회로 이어지는 집회는 기도, 찬송, 설교의 혼합형태로 진행되었으며 회심에의 결단, 영적 은사의 현현이 수반되었다. 그가 도입한 새로운 부흥 유발책들, 즉 신앙 간증과 고백, 남녀 혼성 집회 같은 것들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특별 사죄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설교단 바로 앞쪽 좌석(열망석, anxious seat)으로 초청하는 일이 일상화되기도 했다. 엘렌 하몬도 포틀랜드에서의 1840년 봄 밀러 집회 참석 시 이 열망석에서 특별기도 받기를 바란 일이 있었다.

 

2. 캠프미팅에 수반되는 현상

초 교파(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적 연례 천막집회에 여러 날씩 능력있는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일은 시대적 유행을 탔다. 동 집회에서 찬송과 기도를 올리며 신앙 체험을 하고 회심을 증거하는 일은 특히 감리교 교회 성장 부흥을 초래하여 제도로 굳혀지기까지 하였다.

캠프미팅에서의 회심 체험에는 극적인 신체적 여러 현상들이 수반된 은사 예배라는 특징을 지녔다. 하나님의 권능이 일어나는 은사 추구 예배에서는 예언적 은사나 황홀 경지에 이른 일이 나타났으며, 사람들이 죽은 사람처럼 쓰러지거나 큰 소리로 외치는 일, 안면, 손발 등의 무의식적 경련, 달리는 일, 짖어내는 일 등이 수반되었다.

캠프미팅에서 어느 한사람의 회심체험 간증담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동 체험을 추구케 하는 일에 기여했다. 이런 일에 여자들과 어린이들도 동참했다. 12세 소년이 간증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14세 소녀가 말씀을 전하고 호소할 때 수천의 새 회심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1801년 켄터키 주 케인 리지 캠프미팅은 회중들을 흥분과 극적 회심 체험 및 강력한 간증의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어떤 사람은 눈물로 울부짖는 통성 기도를 하고, 어떤 사람은 고투하며 몸부림치며 졸도하고 쓰러지기도 했다. 구원의 기쁨에 함성을 지르는 자들도 있었고 박수치는 자, 크게 웃는 자들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동시 다발적이었다. 그러나 1830년 대 쯤에는 이런 일들은 감리교 외에는 사라져갔다.

 

3. 감리교회의 성화운동에 수반되는 현상

1800년대 미국 감리교의 초기 거룩 운동에는 영국 감리교와는 다른 특징이 수반되었다. 그것은 미국 감리교 성화운동에는 엑스타시 운동이 침투하였으며 그 강도가 컸다는 점이다. 당시 대부분의 감리교 목사들은 교육수준이 낮았지만, 그들의 설교는 힘찼으며 회중들의 반응을 잘 불러오는 능력이 있었다. 당대 회중들은 이 반응을 두고 성령의 임재 증거로 보았다. 그래서 설교 강론이 갑작스런 할렐루야,“ ”아멘,“ ”영광, 영광, 영광소리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당대 미국 감리교인들은 외쳐대는 감리교도로 알려지기도 했다.

어떤 목사는 자기가 꿈에 본 성경 본문들을 소개하기도 하며 엑스타시와 열광주의로 몰입하는 분위기이었다. 쓰러지는 자들을 눕혀 놓고 하나님께 체포된 자로 보기도 했다. 어떤 자는 성화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은 캠프미팅의 유산들이었다. 어떤 무교육 여성 평신도 설교가들은 자기들의 메시지가 이상과 꿈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의 설교에는 강력한 감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극적인 신앙 간증과 고백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고 보기도 했다. 그들은 갈라디아서 3:28과 요엘 2:28을 내 걸고 여성의 은사 가능성을 증거하기도 했다. 감리교도들의 엑스타시와 하나님을 초자연적으로 만나는 일은 대형집회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소그룹 신앙집회와 가정 제단에서 조차도 나타났다. 엘렌 화잇은 이런 감리교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고 둘째 번 경험을 갈구하기도 했다.

 

4. 급진적 신흥 종교지도자들에게 수반되는 현상

18세기 후반 및 19세기 초에는 이상을 본 여러 예언자들이 출현하였다.

 

(1) 앤리(Ann Lee)와 셰이커(Shakers)

셰이커교 창설자 앤 리는 일련의 계시를 받았다. 이들 종단의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 재림신자연합회(United Society of Believers in Christ's Second Appearing)이다. 한 문맹 직조공으로 일찍이 1758'셰이킹 퀘이커교'(Shaking Quakers)로 개종한 대장장이 딸 앤 리가 셰이커의 교리를 구축하였다. 그는 소란스러운 예배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핍박받고 감옥에도 들어가리만큼 열광적인 예배에 심취했다. 셰이커들은 그의 신앙 특징을 본으로 삼아 예배를 격정적으로 이끌어 내는 몸을 흔들고 소리치며 춤추고 빙빙 돌며 여러 방언으로 노래하는 일을 했다. 또한 신음소리내기, 뛰기, 춤추기, 웃기, 고함치기, 기쁨에 벅차 제자리 뛰기 등도 하였다. 그들은 이 현상이야 말로 성령의 임재와 현현으로 보았다.

후에 ' 마더 앤'(Mother Ann)으로 일컬어진 앤 리는 일련의 계시를 받은 뒤, 자신을 하느님의 양성 가운데 하나인 여성이자 2번째로 성육신한 그리스도로 여겼고, 그녀를 추종하는 자들도 그렇게 여겼다. 그녀는 독신주의를 자기 종파의 기본신조로 삼았다. 악의 원천은 내적으로는 성적 활동이고 외적으로는 결혼이라고 보았다. 그녀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란 바로 이 성관계로 보았다. 셰이커는 천년왕국설을 믿는 독신주의자들의 단체이다. 미국에 공동체를 세운 그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평등, 금욕주의라는 규율을 정하고 자급자족하며 공동생활을 했다. 독신주의를 표방한 그들의 신조 때문에 교세가 급격하게 쇠퇴하여 이들 집단은 사라져 갔다.

 

(2) 조셉 스미스(Joseph Smith)와 몰몬교

몰몬교는 일부다처주의와 계시 계속론을 주장하였다. 1816년 뉴욕으로 이사 간 때는 스미스와 그의 가족은 뉴욕 주에서 종교적 관심이 뜨겁게 고조되었던 시기이었다. 그는 이 같은 열풍 속에서 혼란을 겪다가 올바른 교단을 찾고자 숲 속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지도를 갈구했다. 이 때 조셉은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한다. “나는 머리 바로 위에 해보다도 더 밝은 빛기둥을 보았으며, 그 빛기둥은 점차 내려와 이윽고 내게 임하였다.” 그 빛 안에서 그는 두 분을 보았다. 그 중 한 분이 조셉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다른 한 분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교회 회원들은 이 경험을 첫 번째 시현이라고 일컫는다. 어떤 기성 교단도 모두 올바르지 못하고 그들의 신경이란 것들은 가증한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조셉 스미스를 영원히 변화시켰으며, 믿음의 토대가 되었다.

조셉이 뉴욕 주 팔마이라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인도되어, 모로나이라는 이름의 천사에게서 고대의 기록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금판에 기록된 이 기록은 그리스도의 시대에 미 대륙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라고 한다. 조셉은 주어진 번역 도구를 활용하여 약 3개월 안에 고대 이집트 언어로 기록된 그 판을 번역했다고 한다. 몰몬경은 1830년 뉴욕에서 처음 출판됐다. 몰몬교는 몰몬경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녔다고 주장한다. 당대 선지자가 새 계시를 받아 기록된 예언적 선물을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거절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후에 추가된 계시에서 침례 요한이 스미스에게 나타나 자기와 올리버 카우더리를 아론의 제사장직으로 임명 했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이 두 사람이 말일성도교회의 첫 번째와 두 번 째 장로가 되었다. 교리적 논쟁에 있어서 스미스는 예언적 권위로 결정을 내렸다.

1830년 뉴욕 주 페이에트에서 공식적으로 교회를 조직했다. 조셉은 당대 선지자로 순교하던 1844627일까지 교회를 감리했다. 18441월 교회 지도자들은 조셉 스미스가 미합중국 대통령직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5월에 이르자 조셉은 일리노이 주 나부 대회에서 공식 지명을 받았다. 그는 박해에 직면해 있는 종교적 권리와 시민권 보호를 위해 정부의 개입을 촉구하는 정치 강령을 발표했다. 조셉과 그의 형은 동년 6월에 폭도들에게 살해되어 공직 출마의 꿈은 깨졌다. 스미스를 이은 브리그햄 영이 동 교단의 다음 선지자로 추대 받았다. 이리하여 교당 총회장은 예언적 선물을 받은 자로 제도화되었다.

 

(3) 크리스천 커넥션 그룹 내 운동

크리스천 커넥션(Christian Connection) 그룹은 19세기 전반 미국 내 은사운동과 환상 현현 운동을 성경적으로 그 근거를 제시하면서 기성 교회의 은사 배척 주장을 비성서적이라고 보고 개혁코자 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성경 이외의 교회 신조나 신경을 배척하였다. 이들 그룹은 고전 12:8-12과 엡 4:11-16 본문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예언의 은사를 포함한 성령의 선물이 마지막 때까지 지속된다고 보았다. 이것이야 말로 순수 원시 신약교회의 진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뉴잉글랜드 중심으로 한 크리스천 커넥션교회는 초자연적 계시와 환상의 가능성을 성서적 바탕 위에 구축하면서 성경이야 말로 유일한 권위가 된다고 보았다.

엘렌 화잇은 감리교회 출신이었다. 재림교회의 창설 그룹에 속한 제임스 화잇과 조셉 베이츠 및 여타 사람들이 이 크리스천 커넥션교 출신들이었다. 이들은 성경의 신학적 권위의 유일한 원천 및 영적 선물의 항구성을 강조해 왔다. 이런 배경이 예언의 선물을 수용한 재림교회의 출범에 깊은 영향을 준 환경이었다.

 

B. 은사와 계시 현현에 대한 밀러파 태도

19세기 전반부 밀러 운동은 제2차 대 각성운동의 일환이었다. 밀러 운동에 참여한 자들에는 은사와 게시 현상이 수반되었다. 이에 대한 밀러 운동 중심권의 지도자들은 비성서적인 것으로 보고 이상과 예언적 계시에 대하여 배척하는 공식적 결의까지 하였다. 특히 대 실망 후에 등장한 광신적 무리들의 은사 현현을 강력히 배척하였다.

 

밀러 운동에 은사 현현의 요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밀러 운동 참여자들의 초교파적 배경의 요인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이전에 자기 출신 교회에서의 은사 현현 관행과 예배 스타일을 밀러 운동권 내에서 행하였다. 밀러 운동에 참여한 강사들 수가 174명이었으며 그 중에는 감리교도가 44.3%, 침례교도 27%, 회중파 9%, 그리스도교 8%, 장로교 7%이었다는 조사 보고가 있다.

 

다음으로 밀러 운동 지도층은 은사 운동을 강력하게 억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밀러 운동은 새 교단 조직을 목표로 삼지 않았으며 오로지 곧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교리적 일치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밀러 운동 참여자들 대부분이 감리교도들이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당대의 밀러 운동의 예배 스타일은 은사 운동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은사 현현이 밀러 운동에 영적 부흥을 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뉴햄프셔 주 엑스터에서 18448월에 개최된 장막 집회 분위기는 완전히 성령운동이었다. 철야 집회에서 손뼉 치기, 고함지르기, 크게 고조된 감성적 분위기, 999회씩이나 외쳐대는 하나님께 영광등 현상들이 일어났다.

 

밀러운동 중 크게 환상을 본 사람은 자유의지 침례교 목사로서 밀러 운동의 설교가로 활동한 William Foy(1818-1893)이었다. 그는 1840년대에 대 실망 직전 몇 계시를 받은 바 있었다. 그의 첫 계시는 1842112일에 있었던 두 시간 반짜리 계시이었다. 그의 호흡은 끊기고 그의 육에서 영은 분리되었으며 구원 받은 낙원에 있는 사람들과 악인들이 불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기가 본 것을 증거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괴로움도 받았다. 그의 둘 째 계시는 184224일에 받은 것으로 무려 12시간 반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자기 몸에 관하여 아무 것도 모른 상태이었다. 그는 이상 중에 땅 사방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무리들이 나와 하나님 보좌 앞에서 심판 받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계시 내용을 기록해 놓지 않았다. 엘렌 화잇이 그와 대화를 통하여 자기가 받은 계시 내용과 같은 점을 언급한 바 있다.

18441022일 새벽 3시에 예수께서 오신다는 것을 보았다는 자 등 엉터리 주장을 계시 받았다고 한 자들도 나타났다. 밀러 운동의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인 S.S. Snows1845년에 엘리야 선지자가 예수 재림 전 와야 한다는 예언적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자기를 예언자로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였지만, 밀러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그의 계시를 수용치 않았다. 18453월 알바니회의에서는 은사 운동을 배척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밀러 파의 주 세력은 엘렌 화잇의 예언 은사를 불신하였으나, 안식일을 성별한 신도들은 그의 예언 은사의 진정성을 수용하였다. 안식일 성별 재림신도들이 엘렌 화잇의 예언적 은사를 신뢰하여 수용한 근거는 두 가지 점에서 이었다. 첫째, 엘렌 화잇의 예언적 선물에 대한 성서적 근거(예컨대, 2:28-30)를 통하여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엘렌 화잇의 예언적 선물은 당대의 가짜 선지자들, 영성주의자, 및 광신주의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셋째, 엘렌 화잇의 예언적 선물이 끼친 풍성한 열매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열매는 실용적이었다. 이 열매에는 각양각색의 신자들을 하나의 믿음으로 연합케 하는 일에 기여했다. 엘렌 화잇의 예언의 선물의 통합적 역할은 18488월에 뉴욕 볼니에서 개최된 성경연구회 모임에서 잘 들어났다. 각양각색의 과오 범벅이 된 교리적 차이 속에서 성경 이해의 한계적 벽을 뚫고 나가게 한 것은 엘렌 화잇이 본 계시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 모임에서 그의 게시는 진리가 과오를 이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넷째, 거짓 예언자들의 범람 속에서 진정한 예언의 선물을 구별해 내는 검증 작업이 계속 이어져 그 신뢰성이 굳어 갔다는 점이다.

 

참고서:

  Theodore N. Levterov. Accepting Ellen White: Early Seventh-day Adventists and the Gift of prophecy Dilemma. (Nampa, Idaho: Pacific press, 2016.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