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引導하여 아름답고 廣大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가려 하노라”(3:8).

 

이상향

파라다이스 에덴동산을 등진 인간은 끊임없이 그 향수에 젖어, 그것을 찾으며 살고 있다. 동양에서 무릉도원 같은 곳을 이상향으로 그린 것도 그 변형된 흔적일거다. 서구인들이 찾는 유토피아도 그 편린에 불과할 것이다. 그 모두 이 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없는 곳들이다. 이런 시도들은 인본주의적이다. 정치 세계에서는 주로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자들이 그 구현을 폭력으로 시산혈해(屍山血海)를 거쳐 지상화, 현실화시켜 왔지만, 그것은 자유를 탈취당한 비참한 허구로 판명이 났다.

성경의 대 주제 중 하나는 살던 곳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죄로 범벅이 된 세상을 탈출한 사람들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낯선 자로 살면서 영원한 본향을 향하여 순례 길로 나선 자들이다. 탈출은 과거와의 단절하는 행위이다. 성경의 오메가 메시지는 이 순례자로 나선(gone out) 이야기가 클라이맥스가 되어 있다.

 

하나님 백성들은 폭압적 제국 통치자들로부터 엑서더스(exodus=gone out, 탈출)하였다. 그들이 찾아 갈 곳은 약속의 땅이었다. 성경은 이 약속의 땅을 두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탈출자들을 (시나이 산) 계약의 파트너로 삼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이 파트너들인 탈향민(脫鄕民)들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땅이다. 엑서더스한 탈출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면서 그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다.

 

바이블 랜드(The Bible land)의 변화

70년대 말 처음으로 이른바 초생 달 형의 옥토라는 성경의 땅을 보고자 나선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첫 인상은 매우 강렬하였다. 그러나 실제 바이블 랜드에 가보면 우리나라 산천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이스라엘 땅은 외적으로 보아 흠모할 만하거나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여건을 고루 갖춘 곳이 아니다. 광야나 사막이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며, 남아 있는 땅 가운데서도 중앙산지의 거의 대부분은 황량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에, 중앙 산지의 남쪽 절반은 유대 광야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왜 이런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느냐는 의문이 자연히 생기게 마련이다.

 

죄가 이 세상을 황폐케 하고 노아 홍수로 인하여 세상 모습은 달라졌다. 그런다 할지라도 가나안 땅은 비옥하고 삼림이 무성한 땅이었다. 가을 파종기에 내리는 이른 비인 11월에 시작된다. 1-2월에는 눈이 내리는 곳도 많다. 그리고 3월까지는 우기가 이어진다. 봄에 내리는 늦은 비로 충실한 알곡 추수를 할 수 있는 계절이다. 이어서 건기가 5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다. 건기가 있지만, 이 건기 외에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고, 겨울 우기가 있어 농경생활의 축복이 있는 땅이다. 이런 기후 변동에 따른 계절의 전환에 맞도록 종교적 봄 절기와 가을 절기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성서의 약속의 땅은 천연계 기후 변화, 농경 생활 및 종교적 축제라는 삼박자가 잘 짜여서 돌아가게 되어 있으며 그 변화의 핵이 구속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2,760m 고도의 헤르몬 산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눈 녹은 물이 바다보다 -208m 낮은 갈릴리 호수로, 이어서 바다보다 -393m 낮은 사해로 흘러들어간다. 사해 깊은 곳은 지중해보다 해발 -800나 되는 된다. 요단 계곡은 푹 꺼진 함몰지대로 이어지고 있다. 예루살렘 지역은 해발 800m가 되는 중앙산맥에 놓여 있다. 이스라엘 지세의 높낮이가 다양하고, 그 전체 기후가 아열대 기후이어서 토지소산물들이 다양하다. 북부인 갈릴리 지역은 비옥하다. 반면에 남부인 브엘세바 아래는 황무지 내지 사막을 형성하고 있다.

모세는 지파별로 선정된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에 파견하여 그 땅 거민의 강약, 인구 상황, 지형과 기후, 토지 비옥도 등 여러 형세들을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사명을 주어 보낸 일이 있다.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偵探)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城邑이 진영(鎭營)인지 山城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探知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實果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偵探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七 年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無花果를 따니라“(13:18-23).

 

四十 日 동안 땅을 偵探하기를 마친 정탐꾼들은 보고하였다.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子孫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13:26-27).

 

정탐꾼들이 포도송이와 석류 무화과를 막대기에 꿰어 가져 온 것은 가나안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이 매우 풍요롭고 땅이 각종 농산물에 적합한 옥토(沃土)임을 증명해 준다.

 

훗날 엘리사 시대에 선지자 학교를 세우고자 벌목을 하러 요단 근처에 갔다가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 사건이 있었다(왕상 6:1-7). 당시 요단 일대가 거목들이 우거진 삼림지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단 강변에는 숲과 나무들이 울창하여 버드나무, 포플라나무, 석류 나무 등 건축물의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D. Baly, The Geograply of the Bible, 92-95, 49:19, 50:44, 11:3). 오늘날 황량한 계곡을 보면 지세에 대 변동이 있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의 저주가 몰고 온 땅의 황폐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과 땅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땅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뜻에 따라서, 풍성한 열매를 내었다. 땅이 생명을 발생시켰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한 후에는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는다"(3:17). 인간 죄 때문에 땅이 정죄 받는다. 곧 땅이 장애물로 에워싸여 인간에게 풍요가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3:18). 땅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 효력을 내지 않는다.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다. 땅은 죄인인 인간을 배척한다. 인간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4:10-12).

모세는 불순종과 죄는 땅까지도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여호와의 경고를 백성들에게 전하였다.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28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 내가 너희의 성읍을 황폐하게 하고 너희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냄새를 내가 흠향하지 아니하고 32 그 땅을 황무하게 하리니 거기 거주하는 너희의 원수들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놀랄 것이며 33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26:27-33).

예언자들도 이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荒蕪地)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殄滅)하지는 아니할 것이며“(4:26-27).

 

젖과 꿀이 흐르는 땅메타포 의미

성경의 여러 표현들에는 문자적 의미와 그 문자적 말씀에 담아둔 영적인 의미가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결코 땅의 비옥도에만 국한시켜 사용된 표현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지닌 제일차적 의미에는 땅의 비옥도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의미를 목축하기에 좋은 땅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은 꼭 가나안 땅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야곱과 요셉의 가족들이 거한 애굽의 고센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16:13). 요셉은 바로를 알현하기 전(46:28-34), 아버지 야곱에게 바로를 만나거든 우리는 조상 대대로 목축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고센 땅에 거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라고 권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그 땅이 목축업을 하기에 좋은 풍요로운 땅이었기 때문이다.

 

문자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 땅의 탁월한 비옥함과 자연적인 매력을 그림언어로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표현이다. 그것은 젖을 생산하는 소와 양을 많이 사육할 수 있는 풍부한 목초지와, 꿀을 채취할 수 있을 정도로 꽃과 화초가 많아 살기 좋은 땅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학자 중에는 벌꿀 보다는 풍성한 과일들로 인한 과일 넥타르를 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목민에게 짐승의 젖은 생명의 음료이며 영양 공급원이다. 그러나 그 곳에는 기근도 자주 있어서 애굽으로 내려가야 하는 땅이었다. 또한 장대한 족속들이 그 곳을 선점하여 살고 있어 쉽게 차지하기가 어려워 10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을 악평하는 보고를 하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쉽게 얻어지는 땅이 아니다. 그 땅은 적대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있다. 약속의 땅은 투쟁을 통하여 얻어지는 땅이지, 우연히 로또처럼 얻어지는 땅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약속의 땅, 에레쯔 이스라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표현은 성경 곳곳에서 이스라엘 땅의 대명사처럼 자주 사용된 말이다(13:27; 26:15; 31:20; 11:5; 32:22; 20:6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약속의 땅이라는 점에 함축된 진정한 영적 의미는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이 임하는 곳이란 점에 있다. 이 약속의 땅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을 붙잡고 살면서 점령해야 하는 땅이다.

 

젖과 꿀은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는 표현이다. 젖은 질병 치유를 위한 완전식품이다. 그러나 살균하지 않거나 균질화 되지 않은 채 공기 중에 방치 되면 젖은 곧 산화, 변질되어 박테리아 증식이 시작될 것이다. 반면에 꿀은 그런 변질이 없는 식품이다. 꿀은 보존력이 있는 식품이어서 실제로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채 그대로 남아 있다.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꿀 결정체가 몇 천 년이 지났어도 열을 가하였을 때 꿀 본연의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 피라미드 꿀을 맛본 자도 있다.

 

꿀은 상처 부위에 발라서 상처를 보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젖은 감염되기 쉽다. 꿀은 곤충이 생산한 것이고, 젖은 포유동물이 생산 것이다. 젖과 꿀은 모두 동물로부터 생산된 식품이지만, 그 동물들을 죽이지 않고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사람은 젖과 꽃가루와 함께 꿀만으로도 오랜 기간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식품이 생명을 지탱시켜주는 상당한 영양분을 지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본래 젖과 꿀을 인간의 주된 식품으로 의도하지는 않으셨다. 그것들은 부차적으로 사용되는 식품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권고한다.

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할까 두려우니라”(25:16).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20회 이상이나 약속의 땅에 대한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젖과 꿀은 하나님의 말씀의 달콤함과 풍성한 진리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25;16절은 본래 식사에 대한 권면이 아니고 잠 25:17의 처세훈에 대한 일례를 드는 영양학의 원리로 제시한 것으로도 읽힌다. 비록 좋은 것일지라도 너무 많이 가지면, 좋은 것이 나쁜 것으로 바뀐다. 만일 계속 받고자 하는 자들이, 그들이 받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과 견주어 보지 않으면 영적 교훈까지도 식상해질 수 있다. 또한 잠언 기사는 모든 즐거움을 정도에 지나치지 않게 취하라는 권고로 보인다. 에덴동산 타락 이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즐거움을 주는 물질 혹은 기호를 적절히 취하여 즐거움을 맛보기보다는 과도하게 취하여 심신을 상하게 만든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이사야는 동정녀 탄생의 예언에서 그가 을 버리며 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버터)과 꿀을 먹을 것이라)(7:15)고 하여 임마누엘이라 불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만큼 충분히 자랐을 때에 그는 버터와 꿀,” 곧 풍성한 식물을 먹게 될 것이라고 한다. 버터와 꿀문맥에는 이런 의미도 담겨 있다. 앗수르 외적의 침략으로 땅이 황무하게 될 것이었지만, 그럴지라도 외적 침공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땅에 남아 있을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양의 식물을 소유하게 될 것이란 것이다(7:22).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젖과 꿀의 의미를 더 발전시켜 말하고 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長成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善惡分別하는 자들이니라”(5;12-14).

 

여기서 초보(stoicheia)기초적인 원칙들”(4:3; 2:8)이다. 헬라 윤리학에서는 아직 기초단계에 있는 자들을 우유를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 그리고 성숙한 단계에 이른 자들을 단단한 음식을 즐기는 어른에 각각 비유한 것이다(고전3:1-3). 저자는 본 비유를 통해서 수신자들이 복음 신앙의 기초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 고등원리를 따라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빗대서 말하고 있다. , 그리스도인들이 유치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오랜 신앙의 연륜에 걸 맞는 성장을 아직 이루지 못한 사실을 안타까이 여겨 그들을 책망하며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초보자를 상징하는 젖도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곧 시험에 빠져 변질되기 쉽다. 어린 아이가 자라면 힘을 낼 수 있는 단단한 식품을 섭취하여야 하는 것처럼 신자들은 불변의 달콤한 꿀 같은 진리 속으로 계속 파고 들어가서 성숙하고 경건한 순례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들에게는 약속의 말씀을 천착할수록 달콤하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19:103)

여호와를 敬畏하는 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眞實하여 다 로우니 곧 많은 純金보다 더 思慕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9:9-10).

 

그리스도교회에는 젖과 꿀이 공존하고 있다. , 초보자들도 있고, 성숙한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유치한 단계를 벗어나 말씀의 광맥을 탐색하면서 영적 근육을 강화시켜가는 경건한 성도(chasid)가 되어야 한다(50:5). 그들은 제사로 언약한 자들로 엑소더스하여 영원한 본향, 천국을 향하고 있다.

 

나가는 말

이 세상에는 성경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없다. 인간의 힘으로 이상사회를 만들고자 시도하는 일들은 마르크스-레닌 이래 실패하여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현실적으로 온갖 장애물과 적대자로 에워 쌓여 있다.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의 광맥을 파헤쳐 가는 경건한 성도들이다. 구약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발전되고 있다. 그 나라는 메시아가 다시 오심으로 죄로 황폐하여진 이 땅이 재창조되는 날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는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거짓말을 매체로 하여 젠더이슈, 동성애 등 건실한 윤리체계를 해체하므로 혼돈한 무신론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어 가는 와중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혼돈과 공허의 소용돌이 광야를 살아가야 할지라도, 성도들은 말씀에 의지하여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사회를 구현하므로 무너져 가는 시대의 버팀목이 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세워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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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