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자유민주주의를 보면서
위기에 빠진 자유민주주의를 보면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에서 다수결 원리는 입법 행정적 결정을 위한 수단이다. 민주주의는 건실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 다수의 결정을 하는 일이 민주주의 성패의 관건이 된다. 정치적 자유는 개인적 자유를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전제로 한다. 애덤 스미스, 몽테스키외, 칸트 등은 개인적 자유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양동안이 <벼랑 끝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지적 하듯이, 자유민주주의는 내부의 적으로부터 가해오는 공격에 취약하였다. 자유민주주의 핵심 원리는 자유, 평등, 관용, 다수결, 국민의 동의 들을 들 수 있다(p. 22).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성실하게 실천하고자 하면 할수록 자유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적대적인 세력이 파고들어 자유주의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면 그것을 이용한 반체제 세력이 둥지를 틀고 활개를 친다. 이들 반체제 세력은 정치적 관용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기세력을 강화시킨다. 평등의 강화는 모두가 빈곤해지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이나 파시스트들은 다수결로 권력을 장악해 간 역사적 증거를 보여주었다.
이런 그릇된 방향으로 악용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사회를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미흡해 왔다. 오늘 우리 시대는 권력 추구에 광분하고 그릇된 이념 구현을 위하여 조작적인 거짓과 기만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왔다. 또한 편향된 교육과 선동으로 다수가 정치, 사회 제반 문제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상도(常道)를 빗나가게 하고 있는 시대라고 하는 진단들이 넘치고 있다. 권력남용의 지탄 소리가 높다. 그리하여 건실한 다수에 의한 통치 기대가 난망해 져 개인의 자유도 위태로워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학문, 거주 이전의 자유와 사적 재산권의 보장, 그리고 신앙의 자유에 관한 효과적인 보호 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역행시키는 힘을 정의로 여겨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임의로 해석하거나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정치적 자의성이 횡행하고 있다. 법적 심판을 빙자하여 반대자를 억압, 침묵시키는 일을 계속 해 간다면 법적 보호라는 안전장치가 유명무실해 지게 마련이다. 이런 방향으로 권력적 통치행위가 집요해진다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런 혼란 와중에서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평화적 정권 교체란 기대 난망으로 보인다.
민경국은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민주주의를 4가지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다(p. 37).
1. 자유 민주주의 - 자유시장 국가
2. 권위적 자본주의 - 싱가포르, 박정희 시대
3. 민주적 전체주의 - 사회민주주의, 나치즘
4. 권위적 전체주의 - 북한, 공산주의, 파시즘
위 유형들은 아래에서 위로 나가 급기야는 자유민주주의를 활성화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른바 진보 민주주의 탈을 쓴 전체주의라는 하향 방향을 추구하는 기류가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다.
전체주의는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사회민주주의에서 ‘민주적’이라는 말을 평등 민주주의, 복지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등을 구현하는 것에 역점을 둔다. 여기서 온건한 경제적 민주주의는 구현되어가야 하지만, 이른바 ‘진보’라는 구호는 시장 자유주의를 구겨버리면서 경제민주주의 극단화를 추구하는 모양새이다. 이들은 친 시장정책을 비민주적으로 본다. 그리고 임의로 위촉된 위원회 같은 집단적 의사 결정이라는 심의 민주주의를 강화시켜 나간다. 진보를 가장한 좌파는 이런 시대적 거대 담론의 추세를 진보민주주의로 미화시켜 간다. 이런 흐름은 자유민주주의를 배척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들고 백성들을 감동시켜온 지도자들이 얼마나 있었는가? 자유민주주의를 빙자하여 경제적 이득 추구와 사회적 권력추구에만 광분한 무리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기생충 세력들이다. 이들이 사회 대변혁의 빌미를 제공하여 오지 않았는가? 주말이나 3.1절 같은 국경일 태극기가 거리를 매우고 있지만, 저들은 사분오열되어 있어서 큰 기대를 걸만하지도 않아 보인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보아 우리 사회는 개인의 존엄성을 부정하거나 약화시켜 갈 가능성이 다분한 세력의 발호를 제어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구에 신앙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체제 등장으로 이어질 것이 불문가지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집단주의 정치체제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도 사라진다. 하나님의 교회는 격랑이 이는 시대의 바다에 떠서 몰려오는 폭풍우를 맞이해야 하는가?
예수께서 세우실 나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얻어 지키고자 애쓰며 권력으로만 유지되고 힘이 질서의 원리인 그런 나라가 아니다. 세상 나라는 “어둠의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이 장악하고 있다(엡 6:12).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나라는 참된 자유가 있고, 정의가 강같이 흐르고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이다.
“내 나라는 이 世上에 屬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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