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정도‘ 유감

단상 : 2020. 4. 14. 17:27

 

'정치적 정도유감

 

政者, 正也 (정치는 정의)”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께서 정치라는 것은 바로잡는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바르게 하여 이끄신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계강자(季康子)는 공자(孔子)가 살았을 당시 노()나라 재상(대부)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인물이었다. 계강자는 시호이고 본명은 계손비(季孫肥)이다. 그는 막강한 권력으로 왕권도 무력하게 하리만큼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공자는 그에게 비판적이었다. '논어(論語)’에는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하는 법을 묻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정치란 무엇이냐는 계강자의 물음에 대해 공자의 대답은 정치란 곧 올바름(정의)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정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政者, 正也). 정치란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고, 백성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다. 공자는 당신이 백성을 정도로 이끈다면, 누가 감히 정도를 걷지 않겠느냐(子帥以正, 孰敢不正)”라고 그 뜻을 설명했다. ‘정도올바름을 추구하는 덕치야 말로 정치의 최대 과제라는 것이다.

맹자는 이 덕치를 왕도정치 사상으로 펼쳤다. 왕도정치란 통치자가 인()과 의()를 통해 백성을 교화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인정(仁政)정치이다이에 대비되는 패도정치는 천하를 장악하기 위해 권세와 무력을 사용한다. 맹자는 인정이야말로 패도정치의 권세와 무력에 비교되지 않는 강력한 힘이라고 설파하였지만, 오늘날 현실 정치는 도덕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만 가고 있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도덕에 기초를 둔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그러나 올바름이 무엇이냐를 두고 오늘날 세상은 전혀 다른 척도를 제시하는 기류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거개가 도덕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로 비쳐진다. 전국의 대학교수 6,094명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모임(정교모)은 정의를 구현하는 운동을 해 오고 있지만 얼마만큼 메아리를 일으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른바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의 구현은 왜곡된 좌파적 정의일 뿐이다.

 

정치적 정도(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정도(Political Correctness, 약칭 PC)”란 본래 출신,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인종, 민족, 언어, 종교 등의 편견, 모욕, 차별을 지양하며 공동체 안에서의 정의를 추구한다. PC는 다민족국가인 미국 등에서, 언어적 차별과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나 혹자는 정치적 정도를 평등주의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등 그 함의가 다양하다. 특히 이 용어는 좌파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기류가 강하다. 소수자 보호주의, 젠더주의, 해체주의, 다문화주의, 문화적 다원주의, 종교적 다원주의 등 제반 사상들은 이 정치적 정도의 우산 역할을 하면서 이 시대에 풍미하고 있다.

홍지수 씨는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에서 정치적 정도또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문화적 병리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는 PC의 뿌리를 마르크스주의로 보고 있다. 그리하여 소수자,’ ‘약자,’ ‘피억압자,’ ‘피해자에 대한 무조건적 인정과 보호, 관용을 강요하는 병리적 문화현상을 뜻한다. PC가 만연한 사회는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비판이나 반대 의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서구사회에서 흑인이나 이슬람, 동성애, 트랜스젠더에 대한 비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당신은 혐오주의자’ ‘차별주의자’ ‘꼰대’ ‘극우등으로 낙인찍힌다. 도덕적 비난과 경멸뿐만 아니라, 수없는 소송으로 고통을 가하고, 더 나가서는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

문화마르크스주의문화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의 궐기에 의하여 계급적 폭력혁명을 방편으로 자본주의 정부를 전복시키는 일이 이미 실패로 끝난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동원한다. 문화마르크스주의 또는 신 마르크스주의 주장자들은 오늘날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예술, 노동 모든 분야에서 점진적 내지 급진적으로 수행되는 문화혁명을 추구한다. 이들 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문화 헤게모니(“정치적 올바름이데올로기와 성 혁명, 무차별적 평등주의 등)를 쟁취, 전초전(前哨戰)과 진지전(陣地戰)을 전개하여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이루고자 한다.

 

정치적 정도(올바름)”이라는 옛 구호를 현대판 구호로 변색시킨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신좌파의 창시자라고 하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와 헝가리의 기외르기 루가치(György Lukács)는 혁명의 주체를 노동자로부터 고학력 지식인, 변호사 등을 주체로 삼아 문화의 변화를 통한 정치혁명을 펼쳤다.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 루가치 사상이 세미나 바탕이 되었다. 루가치의 지도하에 마르크스주의를 경제 용어에서 문화용어로 바꾸어 나가는 물줄기를 열었다. 이들 문화 마르크스주의는 서구문명 파괴를 위하여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내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용어 속에 자기들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체(Marxism- Leninism of the old Soviet Union)를 숨기고 있다.

 

루카치와 그람시는 이미 지적 한 바와 같이 문화혁명을 위해 각각 급진적 성 혁명과 진지전을 주장했다. 헝가리 볼셰비키 정부 문화담당관 자리에 오른 루카치는 부모와 학교의 권위, 가족에 대한 애정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급진적인 성교육을 시행했다.

홍지수 씨는 “PC정치적 정도’ ‘정치적 올바름으로 번역하는 것은 좌파의 용어혼란 전술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PC를 알파벳 이니셜 그대로 쓰되 ‘Political Con Art(사기)’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PC는 이른바 소수자’ ‘약자’ ‘피억압자’ ‘피해자에 대한 무조건적 인정과 보호, 관용을 강요하는 병리적 문화현상이 올바름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PC가 만연한 사회는 금기어가 많은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비판이나 반대 의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오늘 한국 사회에 이런 기류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 , 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에 사회정의라는 미명으로 신 마르크스주의가 침투하여 퀴어 동성애와 세습왕조체제인 종북 사상을 북돋으면서 전통적 윤리와 역사인식 및 가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정치지형에 있어서는 우리 정치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자들은 유물론 공산주의 중국과 운명 공동체라는 기치가 공공연하게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을 두고 좌파들은 문화 마르크스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극우집단의 마녀 사냥이나 혹은 음모론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 도전

정치적 정도와 문화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민주주의를 주장한다면서 자유주의를 배제하는 일련의 활동을 하여 왔다. 민경국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20세기 대부분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의 역사로 보았다. 그는 왜곡된 민주주의를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그것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지향하는 진보민주주의, 분배 평등 또는 복지국가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민주주의, 경제에도 집단적 의사 결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경제민주주의, 모든 문제를 집단적 심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심의 민주주의이다(p. 33).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보고 있다. 좌파는 이 자유민주주의에 있어서 자유주의를 약화 내지 배제하는 일을 추구한다. 따라서 좌파에서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을 신자유주의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자유란 강제, 기만, 사기, 폭력, 행동방해가 없는 각자가 누리는 자유에 그 초점이 있다. 개인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 학문의 자유, 재산권의 보장과 경제 활동의 자유,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 생각의 자유 등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헌법 역사 초기에는 신앙의 자유를 절대적 자유권 범주에 포함시킨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러나 이 절대적 자유는 곧 유보되는 방향으로 나갔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면, 그것은 권위적 전체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왜곡된 자유주의로 나간다. 의회가 형식적인 적법절차를 거쳐 또는 권모술수를 통하여 억지로 어떤 특정의 입법을 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의로운 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이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가 정치적 정도라는 구호를 내걸거나 언론의 선동을 통하여 궁극적인 규범과 원칙을 무시하거나 법치를 유린하면서 다수 민중을 선동하는 천박한 대중 또는 민중 민주주의는 천민 민주주의로 전락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전통적 그리스도교 가치의 전복(顚覆)

문화 마르크스주의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와 제도를 파괴 전복하고 있다. 그 내용들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급진 페미니즘, 젠더 이데올로기,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게이 권리, 무신론, 종교다원주의 등이다. 이 영역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구현시켜 일반 대중 지배력을 얻고자 창안해 낸 것이 바로 정치적 정도란 구호는 진정한 정의와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을 위시하여 서구사회는 다문화주의, 종교다원주의, 세속주의로 인하여 더욱더 정치적 올바름을 명목으로 수행되는 문화 마르크스주의의 공격에 더욱더 취약하게 되어 간다.

 

성서적 신앙노선은 유대-그리스도교적(Judeo-Christianity) 전통에 믿음의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문화 마르크스주의는 유대주의를 종족주의로 몰아붙여 반유대주의적(antisemitic) 시각을 펼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기축이 되는 구원의 프레임을 거부한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4:22).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세상 만국 중에서 증인들로 선택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이 계시한 뜻의 수임자요 지정된 보관자가 되었다(참조 롬 3:1, 2; 9:3~5). ,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과 약속을 유대인에게 주셨다. 다른 민족에게 주지 않았다. 아브라함을 불러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이 구원의 계시를 주셨고, 그 모든 약속과 계시를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성취, 완성했다. 그러므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약속된 구원 얻을 수 있고, 그 구원 안에 참된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교 자유에 대한 기초적 가르침을 구체화했다.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 자유의 대헌장(Magna Charta),” ,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헌장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영적 해방의 대 헌장, 유의 헌장, 자유를 위한 트럼펫소리가 된다.

마르틴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두고 이렇게 평하였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며 아무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지며 모두에게 순복한다(신하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5:1).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진리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명은 인류를 진리로 자유케 함에 있다. 그는 자기의 사명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4:18)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진리를 받아들인 자들에게 그는 자유를 약속했다(고후 3:17).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자유는 그리스도의 칭의를 통해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성화를 통해 죄의 세력에서 그리고 재림과 부활 시에는 죄의 존재로부터 속량하실 때 오는 자유이다.

 

좌파의 숙주가 되어가는 현실은 예레미야가 유다에게 한 저주 선포를 연상시키게 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34:17-20).

 

백성이 저희 동료들에게 부여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자유(25:10)를 앗아간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칼과 염병과 기근과 포로 됨으로 몰아가는 자유로 바뀔 것이었다. 고대 유대나라의 참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함께 하사 다음 명령이 이루어지는 이 나라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5:24).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철없는 변호사입니다> 읽고  (0) 2021.10.03
2020년을 보내면서  (0) 2020.12.21
청남대 晩秋  (0) 2019.12.23
대머리 독수리를 잡아먹으려던 문어  (0) 2019.12.15
“젖과 꿀이 흐르는 땅”  (0) 2019.11.28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