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stro의 터치
Maestro의 터치
Maestro는 이탈라어로 ‘마스터(master)’ 또는 ‘교사’를 뜻하는 단어이다. 마에스트로는 존경스러운 거장(巨匠)의 경지에 들어가는 음악가(예술가)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특히 이 단어는 서양 오페라의 지휘자, 음악 감독, 작곡가, 스승의 경칭으로서 이용되고 있다.
마에스트로(Maestro)의 터치(touch)라는 말이 이 시대의 유행어 중 하나가 되었다. 같은 악기라도 거장 음악가가 다루면, 보통 사람이 다루는 때와는 전혀 다른 음색으로 변한다.
어느 부모가 어린 딸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좋은 선생님을 물색하였다.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부모는 선생님과 만나기로 하고 그의 스튜디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방에 있는 피아노를 보자 어린 딸이 피아노를 해머로 마구 두들기듯이 피아노를 쳐 대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선생님이 들어 왔다. 놀란 부모가 딸을 만류하고자 하는데 선생님이 그대로 놔두라고 한다. 선생님이 한 참을 듣더니 조용히 그 어린 아이 옆에 앉아서 아이가 치는 건반에 손을 얹고 같이 피아노를 쳤다. 그러자 아이의 마구 치는 것과 어울려 아름다운 곡이 되었다. 누군가의 거칠게 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시킨 것은 마에스트로의 터치가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쳐대는 일은 그대로 있는데 마에스트로의 손이 더해지자 놀라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영적인 삶에서도 이 마에스트로의 터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律法이 肉身으로 말미암아 軟弱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罪로 말미암아 自己 아들을 罪 있는 肉身의 貌樣으로 보내어 肉身에 罪를 定하사 4 肉身을 따르지 않고 그 靈을 따라 行하는 우리에게 律法의 要求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4).
위 본문에서 “율법의 불가능한 것”은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하나님은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루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정죄당한 죄의 권세를 이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실패의 원인은 롬 7:14~25이 보여 주듯이 그리스도인은 연약하고 타락한 상태에 있는 자기의 힘으로는 행하게 할 수는 없다는데 에 있다. 율법은 바른 길을 지적할 수는 있으나 바른 길을 행하게 할 수 없다.
바울은 계속하여 율법을 옹호하였다(7:7, 10, 13, 14), 그런데 율법이 육신의 연약성으로 말미암아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법 자체에 약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고 연약해진 인간 본성의 무력함 때문이다.
율법의 제1기능, 제2기능, 제3의 기능이 논의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율법의 역할이나 기능은 용서하거나 순종하도록 회복시키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단지 죄와 의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며, 순종하라고 명할 뿐이다(3:20; 7:7). 그러므로 바라는 결과를 이루지 못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비난하거나 배척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은 복음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도움을 절실하게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율법과 복음은 상호 조화관계에 있는 것이다. 율법은 복음의 목적을 위해 고안되지 않았다.
율법은 그리스도인에게 그 승리를 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냄으로써, 필요한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리스도는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을 담당할 뿐 아니라 그 통치권을 파멸하고,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생애에서 죄를 제거하기 위해 왔다. 그분의 사명의 모든 목적이 “곧 죄를 인하여”라는 말에 포함될 수 있다. 그는 죄를 처리하고 그에 대한 치료책을 제공하기 위하여 왔다. 그는 죄를 대속하고, 죄를 멸하고, 또한 죄의 희생자들을 거룩하게 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왔다.실패의 원인은 연약한 자아에 있다. 즉, 온전한 순종을 드리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그 책임이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율법이 죄의 본성의 포로가 되어 있는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나뉘게 하였다. 제사장은 휘장을 앞 분향단에서 특별하게 준비된 거룩한 향으로 향연을 올라게 하여 여호와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에 이르게 한다. 향품 준비에 관한 지시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蘇合香과 螺弇香과 楓子香의 香品을 가져다가 그 香品을 乳香에 섞되 各其 같은 分量으로 하고 35 그것으로 香을 만들되 香 만드는 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聖潔하게 하고 36 그 香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會幕 안 證據櫃 앞에 두라 이 香은 너희에게 至極히 거룩하니라“(출 30:34-36).
소합향(sweat spices)은 고백(confession)을, 나감향(stade)은 간구와 탄원(supplication)을, 풍자향(onycha)은 감사와 사은(gratitude)을, 유향(galbanum)은 운반자(carrier)가 되는 감사(thanksgiving)를, 소금은 은혜를 각각 상징한다. 이런 향품들은 성도들의 기도가 구성되는 필수 요소를 말해 주고 있다. 기도에는 죄의 고백과, 그리고 간구와 탄원을, 사은을 은혜 중에 감사의 운반자를 통하여 올려 보내야 한다. 향품에는 마에스트로의 터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라고 할지라도 죄와 이기심으로 오염되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죄인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드려지기에는 부적합하기도 하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기도는 분향과 혼합되어 여호와의 보좌에 드려져야 한다. 예수께서 당신의 은혜로운 의로 우리의 기도를 감싸서 하늘 궁정에 드려지게 하여야 한다. 이 예수님의 은혜로운 의야 말로 마에스트로의 터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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