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자비로 푸는 천국 수학
은혜와 자비로 푸는 천국 수학
들어가는 이야기- 관심을 유발시키는 비데오 "The Good-O-Meter"
심판 날 사람들이 자기 평생의 기록부를 손에 들고 선인과 악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한 심판의 저울 "The Good-O-Meter"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씩 나서서 그 저울에 달아야 한다. 한 사람은 평생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인데도 저울 판결은 "not good enough"으로 나타났다. 그는 판결 결과에 분노한다. 그런데 한 무가치한 사람이 저울에 달렸는데 그는 Good enough라는 합격을 받는다. 그것은 그 옆에 예수께서 함께 달렸기 때문이다. 다른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를 보고 분노하여 "It's not fair"라고 소리쳤다. 그 심판정을 관장하는 천사가 응답하기를 이것이야 말로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비유의 개요(20:1~15)
이 비유를 “자비로운 주인 비유”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Robert H. Stein).
배경
1세기 유대 갈릴리 지방의 농업은 10월에 씨 뿌려 이듬해 4월에 거두는 보리농사와, 5월에 거두는 밀농사 등 곡식농사철이었다. 그 사이 농한기에 올리브, 포도, 무화과, 석류 등 과일 농사가 있었다. 포도는 8월에 수확하였다. 자기소유의 농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빈곤층 주민들은 농번기에는 소작을 하거나 대리경작을 하고, 농한기에는 과일농사의 품꾼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품꾼은 하루 단위로 일당을 받는 일용직 근로자이다. 통상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하여야 한다. 당시 하루 일당은 최소 한 데나리온이었고, 이는 4인 가족이 근근이 하루를 지낼 수 있는 최저생계비 수준이었다. 하루 일이 끝나면 그날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이 비유 시작은 “천국은 마치 ~과 같으니”라는 말씀이다. 이 비유는 천국의 특징,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재림을 기다리는 신도들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집 주인은 포도원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가 포도원에 추수할 때가 되어서 일꾼을 필요로 한다. 일꾼을 부르려고 이른 아침에 고용된 자들은 일정한 품삯을 정하고 일을 했다. 그러나 그 후로 고용자는 품삯을 집주인의 상당한 처분에 맡겼다.
상징적 의미
포도원은 이스라엘, 천국(교회), 먼저 온자- 복음의 초청에 선참한 유대인들, 제3시 놀고 섰는 자들-이방인들,
비유의 세 장면
(1) 1-7절까지: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뽑아 자신의 포도원에 보내는 장면. 그는 시차를 두고 다섯 번이나 인력시장에 나가 품꾼들을 뽑았다. 이른 아침-제3시-제6시-제9시-제11시. 이른 아침 6시 품꾼에게는 1데나리온 임금을 약속하였으나, 그 이후 품꾼들에게는 ‘상당한’ 보상을 약속한다. 이것은 일한 시간에 합당한 보상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녁 5시에 온 일꾼들에게는 임금 약속도 안 하였다. 이렇게 주인이 여러 차례 서둘러 품꾼들을 부른 것은 포도 수확 철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2) 8-10절까: 일을 마친 품꾼들에게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하는 장면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들은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을 고용해주는 주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장터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저물자 주인은 청지기에게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명한다.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품꾼이 제일 먼저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먼저 온 품꾼들은 이것을 보고는 자기들은 더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3) 11-15절까지: 하루 종일 일한 품꾼들의 원망과 불평 그리고 주인의 응답하는 장면
그들은 주인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무례하게 항의, 원망한다. 원망 불평한 사람들은 당연히 먼저 온 자들, 오전 6시에 온 사람들이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원망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주인이 대답한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3~15)”
주인은 원망하는 품꾼을 향하여 ‘친구’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응수한 것이다. 주인은 그들에게 계약대로 준 것이다. 주인은 줄 것보다 덜 준 것이 아니다. 늦게 온 자들의 생존을 위하여 주었기 때문에 선한 조치를 한 것이다. 그런데 먼저 온 품꾼들은 이 선하신 조치를 악하게 본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부당하게 대우 받는 것에 대하여 항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관대한 처우를 받는 것에 대하여 시기심으로, 문자적으로 사악한 눈으로 보았다(마 20:15). 이 비유의 바로 앞에는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는 19장 30절이 있다. 그리고 비유를 마치면서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20:16)이다.
하나님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 차이
1. 집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한 일꾼들을 취급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취급하시는, 방법을 나타낸다. 이 방법은 세상의 관습과는 달랐다. 이 세상 사업에서는 일한 분량에 따라 보수를 준다. 품꾼들도 자기가 일한 만큼의 삯을 받을 줄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닌 당신의 나라로의 구원에 있어서 은혜의 원칙을 설명하고 계셨다.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의 기준의 지배도 받지 않으신다.
2.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 9).
이 비유에는 하나님의 너그러우심과 바리새인처럼 몰인정한 판단이 확연하게 대비, 부각되어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세상 원리로 천국을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비유 가운데 먼저 나온 일꾼들은 품삯을 작정하고 일했기 때문에 정당하게 보상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주인의 선하심을 문제시한다.
3. 구원은 보상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구원의 원리에서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은혜를 보여준다. 그분의 구원보상은 우리의 공로에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엡 3:11) 정하신 당신의 뜻을 따라주시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딛 3:5) 하신다. 그리고 주를 의지하는 자들을 위하여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엡 3:20) 것이다. 그렇다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5)라는 질문에 이 비유의 핵심이 담겨 있다.
제11시의 종들의 자세
1.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한 자
이 제11시의 종들은 현재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보시는 것은 우리가 한 일의 양이나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 일을 한 정신이다. 열 한 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자들은 저희가 일할 기회를 얻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저희 마음은 그들을 일꾼으로 불러 주신 주인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당신의 축복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보상받는 일에 열중하거나 우리가 행하는 의무에 대해 모두 다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 너무 조급하게 행하지 말 것이며, 보수의 여하를 막론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포들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행동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제11시의 종들은 저녁이 되어 집주인이 그들에게 하루의 품삯을 지불해 주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매우 놀랐다. 그들은 그만한 품삯을 받을 만큼 일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포도원 주인의 모습에 나타나 있는 친절함이 그들을 매우 기쁘게 해줬다. 그들은 집주인의 인자함과 저희가 받은 후한 보수를 도무지 잊을 수 없었다. 자기의 무가치함을 알면서 열 한 시에 주의 포도원에 들어간 죄인도 그러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일한 시간이 너무도 짧았기 때문에 품삯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된 특권을 감사히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높이기를 기뻐하시는 정신이다.
그러나 먼저 온 품꾼들은 이런 감사정신이 결여되었다.
2. 주님께 사랑과 충성으로 신뢰한 자
후에 온 일꾼들은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는 주인의 약속을 믿고 일했다. 그들은 품삯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음으로써 주인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었다. 그들은 주인이 정당하고 공평하게 처리해 줄 것을 믿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일한 분량에 따라 보수를 받은 것이 아니라,주인의 아량에 따라 보수를 받았다.
그들은 주님의 은혜의 초청에 대하여 감격하였다. 먼저 온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을 불러주심에 대한 이런 마음이 결여되어 있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보수의 다소를 생각지 말고 그분을 신뢰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는 보수에 대한 생각이 가장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봉사를 촉진시키는 동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비유는 맨 먼저 일하라는 부름을 받고도 주의 포도원에 들어가기를 게을리 한 자들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열 한 시에 집주인이 장터에 나아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말하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하셨고 저희는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보면 오후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아침에는 장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에 대하여 왜 이제야 부르느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포도원의 일꾼들이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을 때에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은 불평했다. 우리는 열 두 시간을 일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녁 서늘한 때에 단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보다 삯을 더 많이 받는 것이 합당치 않은가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온 자들은 비록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감사하면서 충직하게 일하였다.
3. 봉사의 정신(동기)으로 일한 사람
제11시의 종들은 감사와 신뢰 속에서 기쁜 마음으로 헌신 봉사하는 동기를 가지고 일을 했다.
그들은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마치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한 자처럼 자신의 열심히 일하면서도 자기들의 특권과 보수를 내세우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였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1-5). 그러므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자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을 이유가 없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며 또한 어느 누구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에 먼저 온 일꾼들은 계약노동자이고 조건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의 처사가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고 원망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삯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차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희 일을 자만하는 정신으로 착수하고 자기 부정과 희생의 정신으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평생 하나님을 섬겼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고난과 궁핍과 시련을 누구보다도 많이 견디었을 것이므로 저희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종이 된 특권을 생각하기보다는 저희가 받을 보수를 더 많이 생각한다. 저희는 자기들의 수고와 희생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보다 더 명예를 받을 가치를 부여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저희는 이러한 요구가 인정받지 못할 때에는 불평한다.
집주인이 그중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같이 나중 된 자로써 먼저되고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되리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만일 저희가 자기들의 일을 사랑과 신뢰의 정신으로 했더라면 그들은 계속적으로 첫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들의 성미는 그들이 그리스도인 답지 못하고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이 자기가 남보다 앞서겠다는 욕망과,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불신과, 형제들에게 대한 투기심과, 인색한 정신을 나타낸다. 주님의 선하심과 관대함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원망거리가 된다. 그리하여 저희는 저희의 심령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는 크신 일꾼이신 주님과의 협력에서 오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이처럼 편협하고 자신만을 돌아보는 정신보다 하나님께서 더 싫어하시는 것은 없다. 그분은 이러한 성미를 가진 자들과 같이 일하실 수 없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무감각하다.
유대인이 먼저 주님의 포도원에 부름을 받았으나 이 때문에 저희는 교만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가 되었다. 저희의 오랜 기간의 봉사가 저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 준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이방 사람들이 저희와 동등한 특권을 갖는다는 말보다 더 저희를 격분시키는 말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당신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 사이에 이러한 폐단이 생기지 않도록 경고하셨다. 그분은 교회가 연약해지고 화를 입게 되는 것은 스스로 의롭다는 정신 때문임을 아셨다. 사람들은 저희가 천국의 한 자리를 얻기 위하여 저희의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사람들은 저희가 어느 정도 진보하면 주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신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만을 많이 나타내고 예수를 적게 나타내게 된다. 남보다 조금 앞서게 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자만심을 가지고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고 자기들이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으면 질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우리의 공로를 자랑하는 일은 합당하지 않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내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9:23, 24).
4. 은혜에 감격하면서 사는 사람
이 비유는 공평함을 주장하는 세상에 대하여 은혜야 말로 중심주제가 된다. 이 은혜 원리는 세상 수학으로 풀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또한 세상의 노동법 내지 고용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유이다. 오로지 천국 은혜수학으로만 이해되어야 하는 비유이다.
인간이 마지막 구원의 상급은 인간의 행위로 인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천국의 은혜의 저울로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누구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이 크고 영원한 상급에 다 같이 참여하는 것이므로 먼저 온 자는 나중 온 자를 기쁨으로 환영해야 한다. 보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품꾼의 비유는 모든 질투와 의심을 책망한다. 사랑은 진리를 기뻐하고 시기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사랑이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성과 자기 자신을 비교할 뿐이다.
이 비유는 그들의 봉사 기간이 아무리 길고 수고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저희 동포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겸비함이 없을 것 같으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든 품꾼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좌에 앉히는 곳에는 신앙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 자는 주님의 사업에 유능한 일꾼이 되게 하는 유일한 미덕이 자신에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만심과 자부심을 품을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의 사업은 손상을 입는다.
우리의 일이 하나님께 가납되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가 일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일에 자원해서 바친 우리의 마음과 충실함이다. 모든 봉사에는 완전한 헌신이 요구된다. 아무리 작은 의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잊고 성심 성의껏 할 때에는 그것이 이기심으로 손상을 입은 가장 큰일보다 더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그분은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정신을 품고 있으며, 우리의 일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지를 주목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성취한 일의 분량보다도 우리가 일하는 동안 가졌던 사랑과 성실성을 더욱 귀히 보신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큰 일을 할 기회나 큰 희생을 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반드시 순교자의 희생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의 위로를 받아야 한다. 하늘 책에 가장 높은 자로 기록되는 자도 반드시 날마다 위험과 사망을 직면하는 외방 선교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자기 개인의 생활 속에서, 날마다 자아를 굴복시키고, 진실한 목적과 순결한 사상을 가지며 어떠한 불쾌한 일에서도 온유함을 유지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서는 믿음과 경건함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가정생활에서도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교사나 순교자보다 오히려 더욱 귀한 자가 될 수 있다.
아, 품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시험들 곧 가정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시험들을 대항하고 있는 것을 보신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심령을 겸비하게 하고 또 단 하나의 악한 생각 때문에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을 보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에 온 마음을 바쳐 헌신하는 자들을 보신다. 그분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의 격렬한 투쟁을 하는 것을 지켜보시고 그들의 승리를 주목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잘 알고 계신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은 그의 앞에 있는 기억책에 기록된다.
맺는 말
일꾼들 모두가 소중하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품꾼은 천국 일꾼들이다. 포도원에 아침부터 할 일이 많았던 것처럼 하나님나라에서 할 일이 참 많다. 그리고 주인이 아침 일찍부터 일꾼을 부르듯이 하나님께서도 천국 확장을 위해 일꾼을 부르신다. 이 비유에서 아침 일찍부터 나와 일한 일꾼들은 일찍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참으로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어릴 때 부름 받아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고 일평생 주님을 섬긴 사람들은 참으로 신실한 일꾼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귀하게 보신다. 그런데 이 비유가 강조하는 것은 비록 늦게 부름을 받아 헌신한 일꾼들도 하나님은 귀히 보신다는 것이다.
보상의 때가 있다.
“나는 한 천사가 손에 저울을 들고 서서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젊은이들의 관심을 달아 보는 것을 보았다. 그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하늘로 향하는 생각과 관심이 실려 있고, 다른 쪽 접시에는 땅으로 향하는 생각과 관심이 실려 있었다. 이 접시에는 소설책을 읽는 것과 의복과 외모, 허영, 교만 등에 관한 생각들이 실려 있었다. 아, 얼마나 엄숙한 순간인가! 하나님의 천사들은 저울을 들고 서서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자들, 곧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았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생각을 달고 있다. 세상과 허영과 교만 등에 대한 생각을 실은 저울의 접시는 수시로, 무게의 기복이 심하기는 할지라도 빨리 밑으로 쳐져 내려갔다. 하늘로 향한 생각과 관심을 실은 저울의 접시는 다른 쪽이 내려감에 따라 빨리 올라갔다. 아, 그것은 얼마나 가벼웠던가! 나는 내가 본 광경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천사가 저울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각과 관심을 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마음속에 새겨진 엄숙하고 생생한 인상은 결코 표현할 수 없다. 천사는 말하였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결코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은 헛된 것이므로, 그들이 신속히 회개하고 구원을 얻지 못하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그들에게 알려 주라.””(1증언, 124-125)
“천사들은 품성의 계발을 지켜보고, 도덕적 가치를 달아 보고 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그것은 두렵고 엄숙한 시간이다. 영생의 소망이 빈약한 기초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대 자신의 영혼 사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1증언, 242)
제11시의 제자들의 마음을 갖자.
성공의 비결은 우리의 지식이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사람의 숫자나, 재간이나, 그들의 의지(意志)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그리스도를 명상해야 한다. 즐겨 순종하는 자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 되시고, 모든 생각의 근원이 되시는 자를 통하여 이기고 또 이기는 생애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일한 시간이 아무리 짧고 우리의 일이 아무리 천할지라도, 만일 우리가 단순한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를 것 같으면 우리는 보수를 받지 못해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장 미약하고 가장 비천한 사람이 얻을 수 있다. 천국의 황금문은 자기를 높이는 자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교만한 자들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문은 작은 아기가 떨리는 손으로 건드릴 때에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순박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보상은 복될 것이다. ”(실물, 396-404).
완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스런 삶을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고 그 자비를 의지하고 추구하는 믿음과 기도이다. 이것이 구원이 길이다.
“主여 主는 矜恤히(רַחוּם rachum, 자비로운, 동정심이 많은, 자궁) 여기시며 은혜( חַנּוּן channun,은혜로운, 자비로운)를 베푸시며 怒(aph, 코)하기를 더디하시며 仁慈(חֶסֶד, chesed)와 眞實이 豊盛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恩惠를 베푸소서 主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主의 女종의 아들을 救援하소서“(시 86:15-16).
***주 참고서:
화잇 (Ellen G. White), 천연계에 숨겨진 진리(Christ's Object Lessons), 제 28장)
Robert H. Stein, Introduction to the Parables of Jesus. (앤드루스대학 신학대학원 시절 장수돈 박사님 강의 <예수의 비유> 시 사용한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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