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과 2장의 관계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와 2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 둘을 대비시켜 놓고 보면, 이 둘이 문자적으로 이해되는 한, 도저히 서로 양립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고 하는 주장이 맞는가? 역사비평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창세기 1장과 2장의 기사가 각기 다른 자료 (E 자료 및 J자료)의 편집 핪어물에 불과한가?

 

이 문제에 관하여는 수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1978년도에 나온 두칸(Jacques Doukhan)의 박사학위 논문 <창세기 창조 이야기의 문학적 구조(The Literary Structure of the Genesis Creation Story)>를 참고하면 기본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재림교회는 오래 전에 역사 비평적 방법에 의한 창조설화 해석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처하여 왔다. 하젤(Gerhard F. Hasel) 박사의 <현대 성서해석(Biblical Interpretation Today)도 이 주제를 다루었다. 그 외에도 여러 학술지나 잡지에서도 동 주제를 다루었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한 회의주의적 문제제기도 오래된 것들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창세기의 모세 저작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 후 1753년 프랑스 궁정의사이었던 쟝 아스트뤼크(Jean Austruc)는 창세기 1:1-2:4a에 나오는 동일한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과 2:4b-25에 나오는 야훼(YHWH) 이름에 착안, 모세 5경 전체를 분석한 후 창세기가 두 개의 자료 합성물이라고 하는 가설적 결론을 내렸다. 모세는 이 두 자료의 편집자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벨하우젠(Julius Welhausen)은 이 2 문서설을 오늘날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친 J, E, D, P 라는 4문서설이라는 가설로 발전시켰다. 이는 진화론적 시각에서 문학 자료들의 합성물이라는 시각이다.

(1) J 자료(The Yahwist source): 창조기사인 창 2:4b로부터 모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34:5-7) 주전 10세기 남 왕국 유다의 원시 역사문학 자료이다. 이 자료에서는 하나님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신인동형동성론적) 나타내고 있다.

(2) E 자료(The Elohist source): 주전 9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에 기원을 둔 익명의 저자가 남긴 문서로 하나님은 꿈과 이상을 통하여 감지될 수 있는 분이며 아브라함 서술로부터 시작, 주로 예전적 자료를 다룬다.

주전 7세기 중엽 익명의 편집자가 J자료와 E자료를 합성 편집하여 JE문서라고 칭하였다는 것이다.

(3) P 자료(The Priestly source): 주전 5세기 바벨론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서클에 기원을 둔 자료이다. P 자료는 JE 자료와는 달리 역사보다는 이스라엘의 족보, 제물 과 예식의 상세한 제도, 성례전 제사법이다.

(4) D 자료(The Deuteronomic source): 요시야 왕 때(주전 621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왕하 22:8)이 현재 신명기의 중심부라고 해서 신명기(Deuteronomy)(D)라 하였다. D문서는 왕하 22장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주전 7세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1. 통시적 접근법과 공시적 접근법

역사비평 방법(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을 성경해석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경문서의 역사적 발생 및 진화 발전과정에 초점을 둔 통시적 접근방법을 기본적인 척도로 삼고 있다. 그들은 원 자료가 이어져 내려오면서 수정 및 재해석되어 왔다고 하면서 그 배후의 사회 문화적 배경(삶의 정황) 등을 파헤쳐 그것이 성경 해석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마이어(G. Maier)<The End of the Historical-Critical Method>에서 이 같은 역사비평방법이라는 패러다임에 파산선고를 내린 바 있다.

 

각종 문서설을 만들어 낸 통시적 접근 방법에 대응하여 공시적 접근방법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성경상의 상이 또는 반복적 본문들을 상호보완적 문학 장르로 이해하여 왔다. 또한 상이하게 보이는 기사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상이한 편집자의 편집이나 수정이 진화 발전한 것이 아닌 같은 시대에 같은 저자가 쓴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하여 호응을 받아 왔다. 이들은 상이한 기사를 써야 하였던 저자의 내적 의도를 탐색하므로 상이한 문서들을 상호 보완적 내지 밀접한 관계로 이해하고자 하여 왔다.

 

2. 성경본문의 반복적 보완

같은 의미를 각기 다른 말로 전달하는 평행법은 히브리 성경 문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정교한 형태는 교차 평행법으로 나타난다. 성경은 반복적 표현이라는 방법을 근간으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반복적 표현 양태는 창조 사건을 묘사하는 창세기 1장과 2장에도 나타난다. 그 외 홍수 사건, 사라와 리브가의 이야기 등에서도 나온다.

자료 또는 전승 비평자들처럼 창세기 1장과 2장이 각기 다른 출처를 지닌 한 쌍의 반복된 설화들로 보고 있는 것은 근시안적인 접근방식에 불과하다. 같은 예언자가 다니엘 2, 7, 8장의 평행적 예언들을 취급하였지만 마지막 때 사건의 양태를 더욱 구체화시키면서 그 종교적 국면을 부각시키는 보완성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창세기의 장과 절 구분은 후대의 소산물이며 현재의 구획은 사실상 24절을 중심으로 재구분하여야 문맥의 흐름과 내용에 걸맞다. 모세는 창세기 1:1-2:4a에서 6일 창조의 전체적 국면을 진술보도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사건에서 안식일 제도의 기원이 있다는 것으로 창조 기사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 후에 창세기 저자는 1장의 창조사건의 기술을 보완하는 2:4b-25을 서술하고 있다. 2:4b-25은 창세기 1장의 단순한 반복 기사나 별도의 자료의 이중적 제시가 아닌 것이다. 2장은 1장 창조 기사에서 인간 창조와 그 환경 부분을 확대 보완한 것이다. 2:19에 나오는 “...지으시니라는 동사의 히브리 문법 상 (wau-consecutive-imperfect) 의미는“...지으셨었느니라” “...만드셨었느니라(...had formed)"로 보아 1장의 창조 기사를 보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야지 새로운 별도의 창조처럼 이해하는 독법은 문법적 의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2:4b-7까지는 비가 오기 전 또 인간이 땅을 경작하기 전의 지구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 창세기 1:1-3과 모순되는 별다른 창조 기사로 보는 것은 창세기의 구조와 문법에 충실하지 못한 해이된 설명에 불과하다. 요컨대 2:4b-7은 세계 창조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인간 타락과 홍수 이후적 상황에서 기록한 것이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상이한 하나님 이름을 근거로 자료 내지 편집비평을 두둔하는 방식은 단세포적 발상에 불과하다. 마소라 사본이나 쿰란 사본에는 하나님 이름이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정황과 목적에 따라 다른 이름을 사용하게 하시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엘로힘은 인간을 포함한 피조 세계에 초월적 존재, 즉 창조주를 묘사하는 이름이다. 2장에서는 인격적 이름 야훼가 엘로힘과 함께 나오고 있다. 야훼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이름이다. 하나님 이름이 각기 다르게 나온다고 하여 각기 다른 문서의 합성이라고 보는 비평적 주장은 쟝 아스트뤼크는 두 문서의의 합성(후에는 10단편 자료도 추가)이라는 <추측(Conjectures)>에 기원을 두고 있는 그야 말로 추측, 가설이 상호 모순되는 주장들에 불과한 것이다.

 

3. 인본주의적 접근 한계

더구나 문서설 가설의 비평적 시각은 원시 자료로부터 발전 영적인 것으로 확대시키는 진화론적 패러다임을 사용하고, 초자연주의적 요소를 배제하는 이성주의적, 회의주의적 방법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성경 위에 두는 인본주의적 데카르트적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발상의 소치에 불과하다. 오히려 두칸 박사의 <Genesis>에서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카테시안(Cartesian) 전제를 뒤집어 성경적 세계관은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는 전제 아래, 창조기사가 구속 신학을 정교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훗날 선지자들의 눈을 따라야 할 것이다(참고, 15:8, 15; 40-45; 21-22).

***이 글을 읽는 분은 2020년 6월 14일 게시한 <성경 연구에 있어서 역사 비평방법과 역사적-성서적 방법>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