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den Thompson 의 계시-영감의 방법론상의 문제성
Alden Thompson 의 계시-영감론 방법론상의 문제성
I. 저술들과 비평서
Alden Thompson(이후 AT로 표기)는 1990년대 재림교회 신학에 큰 파장을 일으킨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Walla Walla College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의 주관심사는 구약성경, 엘렌 화잇 연구, 영감 및 재림교회 역사 분야이다. Adventist Review 지에 기고한 "Sinai to Golgotha" 시리즈 (December 1981)를 통하여 교계에 비상한 관심을 유발시켰다. 1999년 제1기 안교교과책 <계시와 영감에 관한 연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332쪽의 Inspiration: Hard Questions, Honest Answers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1991)이다. 동 작품은 독일어(1998), 화란어(2002)로 번역이 되었다. 그 외에 Who's Afraid of the Old Testament God? (Paternoster, 1988; Zondervan, 1989)이 있고 이 책은 2000년 재판되어 Amazon.com에서 소개되어 있다.
AT의 영감론에 대한 비판은 Frank Holbrook(ed.), Issues in Revelation and Inspiration. (Berrien Springs, MI: Adventist Theological Society Publications, 1992)이다(pp. 236). 이 비평서에서는 7인의 학자들이 9개의 주제를 두고 AT의 책을 분석 비평하고 있다. 주요 취급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같은 주제를 중복 분석한 면도 나오지만 보완적 서술로 비쳐진다.
Escape from the Flames: How Ellen White Grew from Fear to Joy and Helped Me Do It Too (Nampa, Idaho: Pacific Press Publishing Assn., 2005)에서는 Inspiration에서 전개한 논리를 보완시키는 의도가 엿보인다.
II. Incarnational Model of Scripture 문제
AT는 성경의 계시 영감론의 핵심은 성육신 모델에 있다는 EGW의 견해를 토대로 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1. 적응이론
엘렌 화잇은 성경의 성육신 모델을 신성과 인성의 신비한 융합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AT는 상이한 본문(different texts)에 대한 해석을 유오, 과오 성경상의 상호 모순이라는 시각에서 보면서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그 전수과정에서 인간적인 불완전이 수반되는 것을 언급하면서 성경의 모든 부분이 완전한 권위를 지닌 것이 아니다(p. 49)고 한다. 성경 기자는 정보의 원천을 하나님, 조사 연구, 경험을 거쳐 성경을 기록하였다고 본다.
GOD
↓
Research → Bible Writer ← Experience
↓
Bible
AT는 적응(accommodation)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성서 기자는 당대의 문화적 상황을 성경에 적용하였다고 본다. 이런 적응 이론은 루터에게도 나타난다. 기자는 정확한 표현보다는 당대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것을 사용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인정하고 인간적인 약점과 불완전을 대체 수용하였다고 본다. AT는 성경 속에 담긴 보화 보다 보화를 담고있는 뚝배기(질그릇)에 역점을 둔 좌파적 견해를 수용하고 있다. (G. C. Berkower의 적응이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오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복음을 잘 이해시키기 위하여 일반인의 견해를 그대로 따랐다고 보는 특성을 지녔다. 그래서 G.C. Berkower가 인간의 유한성이나 시간적 제약성으로 인한 우발적인 실수를 의도적인 거짓말과 기만과 구분하여 전자를 문제시 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였다. 성경 저자들이 유한 능력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시를 기자들에게 전하여 주실 때, 인간 기자의 능력에 맞추어 순응[adaptation] 시켰다.)
2. AT의 성경과오성 예증과 그 문제성
(1) 기자의 전달 구조(논리학적, 수사학적 기법)의 과오 가능성 강조
(2) 인간 경험의 불완전성에 역점
(3) 본문 사이의 불완전에 역점
그러나 이러한 적응이론은 하나님이 거짓을 옹호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또한 AT가 말한 대로, EGW이 “불완전한 인간의 말로 표현되었지만”(쟁투, 6)에서 ‘imperfect’ 개념은 fallible로 이해하는 표현이라고 하기 보다는 Richard Davidson이 해설한 것처럼 무한한 사상을 유한한 인간이 다 묘사하기 어려운 일(impossibility of the infinite ideas)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3. AT는 성령께서 적합한 말을 주시고 언어 선택을 지도하신다는 점을 간과 내지 무시하고 있다.
“내게 대한 주님의 선하심은 매우 크다. 나의 마음이 성경의 주제들에 대하여 명료한 것을 인하여 그분의 성호를 찬양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마음에 역사하셔서 진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말을 주신다. 또한 나는 많은 회중 앞에 설 때 크게 힘을 얻는다.”(서신 90, 1907).
적합한 말을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성령의 지도가 수반된다.
“나는 이 일에 관하여 주어진 바로 그 말들과 표현을 찾아내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나의 펜이 잠깐 망설이는 동안 적합한 말들이 내 마음에 떠오른다”(서신 123, 1904).
“이 귀한 책들을 쓰고 있을 때에 만약 내가 망설이게 되면 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말이 내게 주어졌다.”(서신 265, 1907).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단어를 조심스럽게 선택하였다.
“나는 말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것이 누군가에게 잘못된 생각을 지지할 기회를 주지 않도록 극히 조심한다. 나는 곡해되거나 그 말이 뜻하도록 의도된 것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그런 말을 써서는 안 된다”(원고 126, 1905).
엘렌 화잇은 자기의 저술에 단 하나의 이단적인 문장도 없다고 천명하였다.
“나는 지금 나의 일기와 수 년 전에 쓰여진 서신의 사본들을 살펴보고 있다…. 나는 재생시켜 증언의 형태로 백성들 앞에 제시할 가장 귀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한 백성들은 과거의 역사를 재생시킬 수 있는 자료를 분명히 가지게 되며 내가 기록한 것에 단 하나의 이단적인 문장도 없는 하나의 곧은 진리의 사슬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지시를 받은 바에 의하면 이것은 내 신앙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살아 있는 편지이다”(서신 329a, 1905; 3기별, 51-52).
4. AT의 성경관 전제의 문제성
AT는 성육신 모델에 대한 좌파적 이론을 다음과 같은 대전제 및 소전제에 토대를 두고 있다.
대전제--살아 있는 말씀(JC)이 신성 및 인성을 지닌 것처럼 기록된 말씀이 신적 및 인적 요소를 지녔다.
소전제--모든 인간적인 것은 불완전하다. (본문의 특성과 인간 경험 모두).
결론 --그러므로 성경은 불완전하다. 유오하다.
5. AT의 근본적인 문제점들
(1) 역사비평적인 방법을 적용하였다.
신성과 인성의 신비한 융합이라는 원 의미를 무시하는 인성 일변도의 치우친 비 평적인 방법으로 초지일관하였다. 화잇이 말한 “신성과 인성의 신비한 융합”이라는 원래의 표현은 상호 조화성을 담고 있는 표현인데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이는 균형감각의 결여, 신적 요인 축소라는 일종의 아리안 주의 도입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AT는 EGW이 성경을 무류한 지도(infallible guide)를 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을 살려 내지 못하고 있다.
(2) EGW이 1SM 15-23에서 다음과 같은 강조점을 간과하였다.
a. 성경은 인간의 과오를 넘어선 계시된 진리 조망하고 있다.
b. 성경에 불일치가 분명하게 있다고 보는 시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c.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의 보화가 됨을 강조하고 있다.
d. 성경의 표피적 연구는 모순된 것에 역점을 둔다.
e. 기도와 인내로 조명된 영혼은 영적인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f. 성경은 문자적 영감 보다 사상 내지 인간 영감에 역점을 두고 있다.
g. 차이가 나는 묘사는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표현하게 하신 점이다.
h. 영감 개념을 성령으로 마음의 발전에 따라 표현된 진리로 보아야 한다.
(3) GC pp. v-xii 에 나탄 다음과 같은 점을 살려내지 못하였다.
a.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나타난 것처럼 신적인과 인적인 것의 연합이다.
b. 성경에 대한 피상적 독서는 모순과 불일치로 보인다.
“피상적이고 주의성이 없거나 편견을 가진 독자들에게 서로 모순되거나 일치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될지 모르나 밝은 통찰력을 가진 사려 깊고 경건한 연구자는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조화를 발견하게 된다”(쟁투, 6).
c. 각기 다른 표현이 있지만 진리는 전체적으로 볼 때 모두 완전히 조화된다.
“진리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제시되었으므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개되었다. 어떤 기자는 한 주제의 어떤 면에 더욱 강한 감동을 받고 자기의 체험과 이해력과 인식력 등에 부합시켜서 그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 또 어떤 기자는 그와는 다른 면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각각 성령의 지도 아래 자기의 마음에 가장 깊이 감명된 바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이와같이 계시된 진리는 결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게 되어 생애의 온갖 환경과 경험에 있어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에 적합하게 된다”(쟁투, 6).
d. 질그릇에 담긴 보화는 하늘의 것이다.
e.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류한 계시이다.
f. 지혜와 계시의 성령께서 성경 기자를 지도하셨다.
“그분께서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지도하셨다. 보물은 비록 질그릇(인간)에 위탁되었을지라도 그것은 하늘로부터 온 보물임에 틀림없다. 그 증언(證言)은 불완전한 인간의 말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온순하고 믿음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그 증언 가운데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능력의 영광을 보게 된다”(쟁투, 6-7).
AT의 성육신 모델의 근본적 문제점은 (1) 성경의 인적 요소에 토대를 두었으며, (2) 성경의 난점들(viz. 과오, 모순 등) 중심으로 구축하였고, (3) EGW의 성육신 모델 이론을 좌파적으로 왜곡 남용하고 있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III. 법전적 접근과 사례집적 접근의 문제성
1. 해석학적 기본 기법상의 문제
AT는 해석학적인 기본 기법으로 성경을 법전으로 볼 것인지 사례집으로 볼 것인지 택일 관계에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전적 접근을 하면 성경의 권위성을 지향하게 되어 성경을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가 집중된 것으로 보기 마련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법전과 사례 모두를 인정하면서 상호 보완의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AT는 양자택일 관계로 보고 있다. 이런 택일 관계로 보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진 방법에 불과하다.
사례집적 접근 방식에서는 저자에 역점을 두어 성경이 인간 삶의 모든 정황을 다 수록한 지침을 주고 있지 않고 있다고 보게 된다. 하나님은 다양한 대안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성령으로 개발된 인간이성의 활용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식은 인간 이성이 궁극적 권위의 규범과 원천이 되는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 AT가 선호하는 해석학적 기법에는 이러한 치명적인 인본주의적 발상이 잠재되어 있다.
2. Law Pyramid--이 해석학적 열쇠는 사도적인가?
AT는 율법 계층 구조를 다음과 같은 피라미드 구도로 본다.
(1) Love(1)
최고의 규범, Joseph Fletcher의 Situation Ethics, 개인적이며 주관적
(2) 하나님께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2)
(3) 십계명(10)
(4) 세법(다수)
AT는 법전 피라미드의 가치로 (1) 상충적인 가치를 해결하는 것으로 상위 규범에 호소 하는 계층적 절대주의적 해석이 되어 (2) 성경의 통일성을 기하는 열쇠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에는 문제점들이 들어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집에 예배하기 전 형제와 먼저 화해하라고 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선행시키고 있다. EGW은 성경의 통일성을 법전 구도로 보고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보고 있다. 성경의 구원사적 통일성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3. AT의 율법 피라미드론은 일종의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에 속한다.
NT 시대 율법 폐기론자들에 대하여 이신득의를 선포한 바울은 율법과 계명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롬 7:12). Johann Agricola은 루터의 제자로 십계명 폐기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루터는 “Against the Antinomianism" (1539)에서 율법의 정죄기능과 회개 유도 기능을 강조하였다. Formula of Concord (1577)도 율법과 복음의 구별하고 율법의 3중 기능, 즉 (1) 죄 폭로와 정죄 및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기능, (2) 사회의 기강 수립 기능, 및 (3) 회심한 자를 위한 생명의 규범 기능을 확인하였다. 영국의 일부 청교도들은 율법 불필요론 주장하였지만 대부분의 청교도들은 신자들을 기속하는 도덕률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인정하였다. John Nelson Darby는 율법 세대와 은혜 세대의 대립 구도로 주장하면서 율법폐기론을 펼쳤다
4. 도덕률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다.
AT의 책 제8장 제목, “God's Law: The One, the Two, the Ten, the Many” 그 자체 SDA의 전통적인 율법 신학에 배치되는 전제로 일종의 함정을 마련하였다. 십계명 도덕률과 사랑을 분리하는 교묘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가서 그의 역사비평방법은 율법폐기론을 선도하여 성경의 율법사상과 상치된다.
AT의 4대 율법 에 분류(pp. 112-115)에 문제가 있다.
(1) 법전으로서의 성서의 법--고대 정통 유대교의 율법주의 율법관
(2) NT의 수정을 거친 법전으로서의 성서의 법--보수적 그리스도교, SDA
그러나 저자는 이를 율법주의로 보며 롬 7:12언급 기피하고 있다.
(3) 일련의 법전으로서의 성서의 법--세대주의의 율법관에 동조 논거 제시
(4) 사례집으로서의 성서의 법--저자의 입장
5. 성서의 법을 사례집으로 봄으로 성경의 영원한 권위성과 타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AT는 이 사례집 접근 방식이 율법을 은혜롭고 실용적이 되게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면서 이 접근 방식은 율법의 영원한 타당성을 부과치 않는다고 하므로(p. 120) 율법을 상대화시키고 영원한 타당성을 폐기하는 문제점을 지녔다. 저자는 교묘하게 적극적인 원칙(positive principles)들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적극적인 원칙이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사랑의 원칙을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마태복음 5:17-19의 예수께서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폐할 수 없다는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적극적인 원칙으로 대체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의 사례집 접근 방식은 상황윤리적 접근이다. 상황에 따라 사례별로 사랑의 원칙을 달리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6. 음식법 문제 분석의 문제성
이 음식법이 주어진 배후에는 사막에서 요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정한 고기를 금지하였고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을 먹으라는 차원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또한 그 배후에는 생명을 보존하도록 하는 여섯째 계명을 적용한 것이다(p. 129).
(1) 감축, 환원적 적용을 하고 있다. 레 11장과 신 14장을 주신 목적이 이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식단을 찾으라는 일반적 원칙을 제시하는 권고인가? 사도행전 15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아직 성숙되지 못하여 먹지 말라고 하는 결의를 하게 하였는가? 목매달려 죽은 짐승은 피가 들어 있어 먹지 말라고 한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음식법은 보편적인 것이다.
(2) 예루살렘 총회와 음식법
성령의 지시에 따른 결의였다. 야고보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겼다(행 15:15). 즉 판단의 기준은 성령의 계시와 성경의 증거에 있다는 것이다.
(3) HCM은 마가복음 7:14-23을 기초로 하여 예수께서 음식법을 폐지하였다고 본다. 특히 15절에서 예수께서 그렇게 명백하게 그리하였다고 한다. 모든 음식을 다 정결한 식품이라고 판단하신 말씀인가? 사도행전 10:15과 로마서 14:14은 음식법을 폐기시킨 것인가?
마가복음 7장은 손 씻는 의식법의 문제성을 클로스업시키고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가복음 7:21-22은 율법의 항구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만든 세수(洗手) 의식법을 폐기시키는 말씀을 하였다.
7. AT의 율법 피라미드의 근본적인 문제점 제기
(1) 율법 피라미드 계층 구조가 성서적인가? 성서적 근거로 제시한 마태복음 7:12의 황금률과 로마서 13:8-10이 바른가? 어느 법은 다른 법 보다 상위에 있는가?
(2) “사랑,” “하나님 사랑과 인간사랑” 그리고 십계명이라는 3 계층 구조의 분류가 맞는가? 중요성에 따른 3대 계층 구조론은 하위 계층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라면 사랑의 규범을 따르기 위하여 십계명을 범하여도 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랑과 십계명을 각기 다른 영역으로 분리시킨 논리는 비성서적이다. 마치 윤리적 판단 원리에서 계층적 절대주의처럼, 규범을 세 계층 구조로 서열화시키는 일은 절대규범에 대한 인간의 이해방식에 불과하다는 한계점을 지녔다.
(3) 율법피라미드 판단과 결정을 인간 이성이 하는 것인가 아니면 계시가 하는 것인가? AT는 인간 이성적 판단을 신적 계시에 선행시키고 있다.
(4) 마 22:37-39(신 6:5과 레 19:18) 의 진정한 의미가 사랑이 십계명에 우선한다는 취지인가?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사랑이 인간사랑 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예수께서는 이 바리새인 접근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사랑을 우월시하고 십계명을 평가절하 하였는가? 인간 사랑을 하나님 사랑 다음으로 중요한 것으로 보았는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 22:40)이란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율법과 선지자라는 표현은 십계명이 아닌 전 구약성경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전 구약성경이 이 하나님사랑과 인간 사랑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 사랑과 인간사랑은 구약성경의 요지가 된다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사랑의 원칙을 반포한 것, 즉 하늘의 율법을 땅에 계시한 것이었다. 그 율법은 중보자의 손으로 제정되고, 사람의 마음을 그 율법의 원칙과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에 의해 선포되었다”(보훈, 46).
“그분께서는 율법이 결코 폐지될 수 없다고 가르치시며, 또 우리의 시계(視界)를 최대로 넓혀 그 끝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끝에 이르기 전에는 율법이 그 권위를 계속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하심으로써 아무도 율법을 폐지하는 것을 예수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신다. 천지가 존속하는 한,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한 원칙도 남아 있을 것이다. “산들과 같”(시편 36편 6절)은 그분의 의는 계속 축복의 근원으로서 대지에 생기를 주는 시냇물을 흘려 보낼 것이다.”(보훈, 49-50)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고 마음속으로 말하지만, 그분께서는 명백한 말씀으로 거룩한 계명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표명하신다. 그분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태복음 5장 17절)고 말씀하셨다”(보훈, 47-48).
“하나님의 율법은 변경이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하므로, 죄악적인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구속주로 오신 이유였다. 예수님의 사명은 사람들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만들어 하늘의 율법의 원칙과 조화되게 하는 것이었다. ”(보훈, 50)
(5) EGW은 율법의 계층구조를 인정하였는가?
“십계명의 처음 네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한 큰 계명으로 요약된다. 나머지 여섯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다른 계명 가운데 포함된다. 이 두 계명이 다 사랑의 원칙의 표현이다. 둘째 계명을 범하면서 첫째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첫째 부분을 범하면서 둘째 부분을 지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마음의 보좌에 바른 자리를 차지하고 계실 때에 우리 이웃에게도 바른 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때만 우리 이웃을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다.
모든 계명이 사람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요약되어 있으므로 한 계명을 범하면 이 원칙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은 어떤 것은 크게 중요하고 다른 어떤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할지라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어떤 분리된 계율이 아니라고 예수께서는 청중들에게 가르치셨다. 우리 주님은 처음 네 계명이나 나머지 여섯 계명을 다 거룩하고 완전한 것으로 나타내시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그분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치신다.”(소망, 607).
EGW은 십계명을 보편적인 규범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표상적 제사 제도가 폐지되었을 때에도 돌비에 새겨진 본래의 계명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하면서 변함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인간의 의무는 제한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세밀하게 정의되고 단순하게 표현되었다”(3증언,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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