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믿음, 순종
하나님은 인간에게 마음을 요구하신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잠 23:26).
이 요청에 대하여 인간은 삶의 행위로 응답하여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내적인 성스러운 감성과 선한 의도가 성스럽고 선한 행위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성스럽고 선한 마음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마음이라는 안과 행위라는 밖이 순수하고 거룩한 혼연일체로 하나님 앞에(coram deo) 받아 드려질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에는 수시로 불순한 생각이 넘나들고 있다. 기도하는 중에도 죄스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넘나들고, 엉뚱한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아무리 깨끗한 소망을 품고 있다 해도 모든 불순물에 오염된 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마음은 근원적으로 죄로 오염되어 있다. 따라서 마음의 순수성이 한 인간의 경건함을 잴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주장이나 판단은 안이한 교만 끼가 서려 있어 이에 동조하기 어렵다. 이러한 인간 내면세계를 간파한 한 랍비는 “내 나이 60인데도 하나의 미츠바(계명, 율법)도 완수하지 못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인간의 자아는 유한하지만, 내면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은 무한대처럼 보인다.
구약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두고 이렇게 파헤치고 있다.
“사람이 제 아무리 착하다 할지라도 좋은 일만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전 7:30, 공동번역).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3)
바울은 이런 구약성경의 사상을 이어 받아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심지어 남몰래 한 일까지도 인간이 행한 모든 일을 심판에 붙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한다(전 12:14). 여기서 심판에 붙여지는 모든 일에는 미츠바에 따라 행한 선한 일까지도 포함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간이 하나하나의 미츠바에 집착하여 각개 격파하듯이 준수하는 바리새적 유대교 같은 계율 종교는 결국 외식으로 전락되게 마련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악한 습관이나 말의 목록표를 만들어 놓고 매일같이 체크하면서 지워 가듯이 해결한다는 방식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마음에 이는 불순한 사상까지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죄를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없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런 죄인들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신 이유가 있다. 믿음 그 자체는 죄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죄스러운 마음의 용기(容器) 안이긴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을 붙잡는 손이며 수단이다. 인간은 죄를 지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은 믿음의 손을 순종의 발로 잇는 응답을 해야 한다. 이것이 마음을 주께 드리는 참된 영성의 길이다.
만일 사람이 다만 마음뿐이라면 생각만의 예배로도 하나님과 얼마든지 교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된 전인적 존재이다. 전인적 존재인 인간은 죄를 해결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어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은총을 붙잡는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입증하고 객체화시킨 순종이라는 삶의 틀이 펼쳐질 때 비로써 완전을 지향하는 고결한 마음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로마서에서 구원의 원리를 갈파한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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