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존재
목련꽃이 가로수처럼 즐비할 줄 알고 Magnolia Street를 걸었다가 실망한 일이 있었다. 외로이 핀 목련꽃 몇 그루가 그나마 이름을 지켜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Magnolia”에 나오는 노래 가사에 ‘하나는 가장 외로운 숫자야’라는 내용이 있다. 그 영화를 안 보아 내용을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목련꽃은 군락보다는 혼자서 화사한 자태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하나는 가장 외로운 숫자야’라는 메시지를 풍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건 나 혼자의 상상일 뿐이다.
헤르만 헤세가 ‘고독 없이는 괴로움도 없고 영웅적 행위도 없다’고 말했듯이 고독은 그늘과 밝음의 양면성을 지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독을 사랑하는 자는 야수 아니면 신이다’ 했을 땐 그 양면성을 극단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독의 부정적인 면을 넌지시 풍기는 말들도 있다. 사무엘 존슨이 ‘게으르면 고립하지 말고, 고독하면 게으르지 말라’ 같은 것이 그 예가 된다. 그러나 ‘V. 나보코트의 ’고독은 악마의 놀이터‘라는 시각은 고독의 부정적닌 측면을 극단화시킨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내게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강론 비슷하게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지금 회상하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논어의 유명 어귀들이 촌에서 농사지으면서 사시는 분들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대에 보통 사람이라 해도 논어 정도는 꿰고 있었던 모습들이다. 때를 따라서는 한문 글자 풀이도 해 주었다. 예컨대, 두 획으로 구성된 사람 “인(人)” 글자를 써 놓고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는 법이라고 강론하시는 것 등이다. 한 사람만으로 서 있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꼴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읽었던 성경은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아담)이 홀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독처(獨處)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다. 외로움은 인간의 행복에 장애가 될 것이므로,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돕는 반려자를 창조하셨다. 사람 “인(人)” 글자는 아담과 하와라는 커플에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두고 마련된 글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자부심이나 자립정신,. 남들과 다르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은 인간 됨의 특징들도 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여건도 된다. 온 사회가 빗나갈 때는 거기서 떨어져 자기의 길을 홀로 걷는 것은 사회적 히스테리 발작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길도 된다. 남은 무리들의 의식 구조 속에는 홀로 하늘을 응시하면서 살아가는 정신도 들어 있다.
그러나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쿠르소처럼 무인도에 표류하여 홀로 살아가는 경우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들을 이용하여야 살 수 있었다. 비록 은둔생활을 할지라도 동시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같이 고통 받고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의 일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사람인 것이다. 인간 실존의 존엄성은 공동체라는 네트워크의 상호 의존의 능력 안에 있다.
Garrie Williams는 Welcome, Holy Spirit에서 스코트랜드의 유명한 설교가 James Stewart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Stewart 목사는 제2차 대전 직전 부흥집회를 인도하는데 금요일 저녁 집회에 회중 7명이 참석하였다. 그러나 5일 지나자 수 천 명이 대 강당에 가득하였다. 회심한 사람들도 엄청났다. 어느 날 저녁 목사는 엄청난 무리들이 쇄도하여 온 것을 보고 자기의 능력 없음을 절감하고 지하실에 내려가 하나님께 권능을 달라고 기도하고자 하였다. 어둠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느낌이 왔다. 그런데 자기만 홀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는 불을 비쳐 보니 지하실 한쪽 귀퉁이에서 부흥집회와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는 12명의 신자들이 하나님께 눈물로 탄원하고 있었다. 목사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집회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은 이들이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에서부터 나온 것을 비로서 알게 된 것이다. 기도로 돕는 신자들이 있을 때 목회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한다.
함께 버팀목이 되어주는 중보 기도를 해 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목사는 하늘의 권능을 체험하며 회중들은 하나님의 영의 놀라운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 안식일이 그런 안식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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