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죄악의 실재현상
인간은 끊임없이 해를 끼치는 것, 달갑지 않은 것, 좋지 못한 것들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은 이런 악한 현상 가운데에서 고통당하며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런 악은 일반적으로 악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1. 자연적인 악(natural evil)--이는 천연세계에서 일고 있는 자연적 재난들로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포함하지 않는 악이다. 태풍, 지진, 화산폭발, 고통을 유발하는 암 등 질병들
2. 인격적 악(personal evil)--이는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들의 선택과 행위에 의한 것으로 도덕적인 악(moral evil)이라고도 한다. 전쟁, 살인 등 범죄행위 등. 이 악은 자연적인 악보다 더 큰 고통과 아픔을 준다. 한 개인의 악마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인간이 희생당하여 왔던가.
3. 구조적, 제도적 악(institutional evil)--노예제도, 노동착취, 불평등, 일부다처제도 등 사회의 정치, 경제의 여러 악한 제도와 관행 속에 들어 있다.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은 경제적 갈등 구조에서 악을 찾는다.
4. 형이상학적 악(metaphysical evil)--초경험적 세계(사단과 마귀들)에서 일어난 악이다.
II. 신정론 (Theodicy)
신정론은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의롭다는 이론이다.
A. 신정론 대두 배경
철학자들은 우주 내에 악이 존재하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의 아킬레스의 건이 된다고 보아 왔다. 악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력한 논증이 악으로부터의 논증이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증에서는 이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이 존재하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적인 신의 개념과 악의 존재는 모순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지한다면 악을 피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전능한다면 악을 없앨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연역추리 도식을 만들어 냈다. “만일에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그는 악을 멸하실 수 있다.”
“그러나 악은 멸하여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 세 진술 중 대전제와 소전제는 옳다. 그러나 결론은 옳지 않다. 신정론(Theodicy)은 이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
도스토에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Brothers Karamazov)이나 카뮈의 The Plague는 악의 존재와 선하신 그리스도교 하나님 사이의 긴장관계를 다루고 있다.
B. 신정론의 유형들
1. 신적본성수정론
(1) 하나님의 전능성 제한론--과정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에서 추구하는 신관으로 하나님의 권능은 제한되어 있으며 계속하여 악과 투쟁하고 있다고 본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는 인간의 협력에 달려 있다고 한다. Edgar S. Brightman은 하나님의 본성을 제한하여 의지에에서 유한하신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비판: 이 입장에 따르면 악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선이 종국적으로 승리한다는 보증도 없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악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선하심의 제한론--이신론자들이나 사디즘(sadism)론자들은 하나님은 피조물과 분리되어 있어 현상계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본다. Gordon H. Clark는 하나님의 감지적 의지(perceptive will)과 작정적인 의지((decretive will)를 구분하여 전자는 십계명 같이 명령하는 의지이지만, 후자는 모든 것을 야기시키는 의지이다. 하나님이 죄를 직접적으로 창시하지는 않았지만 궁극적인 원인이 된다. 하나님이 악을 작정적으로 의도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그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책임성을 부정한다. 하나님은 법위에 군림하시며 무제한적인 권리를 지니신 분이시기에 사람에게 죄를 짓게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주장의 성경적 근거로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제시한다(대하 18:20-22). 이런 주장은 삼단논법으로 요약된다. 즉,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난다./ 하나님에 의하여 야기된 것은 무엇이나 선하다./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선하다.
비판: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선을 알기 위하여서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표준이 필요한다.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배격되는 칼뱅주의적인 결정론적 문제성을 안고 있다. 또한 작정적 의지의 하수인격인 인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모순을 일으킨다.
2. 악의 본질 재 정의론
(1) 악은 축복이 된다는 입장- 악이나 고통은 선을 가져온다.
비판: 악과 선 사이에 차이가 없어진다. 성경은 악을 선하다고 하거나, 선을 악하다고 하는 것을 배척한다.
(2) 악의 사단 기원론-선과 악의 동등한 이원론에 빠지기 쉽다. 하나님 권능을 제한시키기 쉽다. 구속과 승리 보다는 투쟁에 역점을 두기 쉽다.
II. 죄악의 기원에 관한 이론들
기원(origin)이라는 용어 자체에 함정이 있다. 죄악의 기원이 설명된다면 죄악의 실재 그 자체가 합리적 근거를 갖게 된다. 따라서 죄악의 기원이라는 표현보다는 죄악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바람직하다.
속죄교리는 죄악을 용납(excuse) 할 수 없다는 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1. 惡 幻影論--흔히 동양철학이나 종교 및 Christian Science에 나타나는 사상으로 질병을 포함한 악은 환영(illusion)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Benedict Spinoza의 범신론적 철학에 있어서 오로지 한가지 실체만 존재하고 구별되는 사물들은 그 실체의 양태이거나 속성들이라고 주장한다. Christian Science의 Mary Baker Eddy는 유일한 실재는 무한한 정신이라는 관념론적 형이상학 시각에서 물질의 실재를 부인하여 환영일 뿐이라고 한다. 특히 악은 비실재적인 것으로 하나의 신념이며 물질적 감각의 환상일 뿐이다.
비평: 실재를 환영과 혼동하고 있다. 악이 환영뿐이라면 죄악을 경시하는 실천적 문제점이 대두된다. 환영의 기원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질병과 wnrdam은 불충분한 믿음 때문에 일어난다면 Eddy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2. 무신론자들의 입장--악은 그 자체가 사물이 아니다.
비평: 악이 없다면 악이 설치는 세계를 방관하면 될 것이다. 악이 무신론을 위한 파멸세력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악의 실재는 선을 상정하는 것이 된다. 악을 부정하면 선도 설 자리가 없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선이 없다면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허무주의로 유도한다.
3. 이원론적기원론--페르시아에서의 영원한 선신과 악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죄악의 기원 은 악신으로부터라고 주장한다. 선악의 영원한 공존을 전망한다.
비평: 악을 영원하고 절대적 주권을 지닌 하나님과 대립된 영원한 독립적 실재로 보는 인간이 악의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문제성이 있다.
4. 인간 정욕적 본성(sensual nature) 기원론--악은 인간의 정욕적 본성에서 기인한다. 인 간은 육체의 욕망을 채우고자 죄된 행동을 한다(Friedrich Schleiermacher).
비평: 성경은 인간 창조를 완전한 창조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 죄악 책임을 하나님에게 전가하는 것이 된다. 인간의 탐욕, 정욕, 교만 등은 육신적 욕망 이상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죄악을 이기는 비결은 고행, 금욕 등 육신을 학대하는 길을 취하여야 한다.
하나님 외에 영원하고 독립된 세력이 있다는 주장의 철학적으로 논증은 매우 취약 하다. 죄를 육적인 것으로 보아 인간 의지에서부터 독립된 것으로 취급하는 것 역 시 설득력이 약하다.
5. 인간 유한적 존재기원론--악은 인간의 유한성에서 기인한다. 악이란 자기가 매우 제한 된 존재라는 한계성 의식에서 나온다. 인간이 충만한 지식을 가졌다면 죄악의 사상을 가질 수 없으며, 신체적 한계를 갖지 않았다면 도덕적인 죄된 행동을 할 수 없다 (Leibniz, Spinoza).
비평--인간의 육체적, 지적 한계와 도덕적 행위 사이의 구별을 무시한다. 인간은 제한 된 육체적 지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는 행동을 한다. 고도의 지 적인 능력을 가진 자가 더 큰 악을 자행하는 사례가 있다. 도덕성을 한 인간이 가진 지식의 정도에 비례한 것으로 본다면 인간의 윤리적 판단 평가를 약화시키기 마련이 다.
5. 죄악의 하나님 기원론
일종의 일원론적 접근 방식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주이므로 도덕적인 악까지도 하나님께서 나왔으니 하나님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창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악의 책임이 있다.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또한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하고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인간이 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두었다는 것은 인간이 선택하기 전에 본래 인간 본성에 악한 성향까지도 두었다는 뜻이다.
F. Schleiermacher는 심지어 felix culpa (the blessed sin) 개념을 내걸면서 하나님을 죄악의 고안자(contriver)로 보고 있다. 그는 악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신적인 인과율(causality)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일원론적 이론의 근거 성경절은 다음과 같다.
출 4:1
신 2:30
삼하 16:10
사 45:7 하나님이 “환난(evil. KJV)도 창조하나니”
암 3:6
눅 11:4
롬 9:18
비평: 하나님이 허락한 선택의 자유는 악의 원인 창조가 아니다. 첫 인간의 죄악이 그 들의 선택의 자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외적인 시험과 유혹 때문이었다. 성서적으로 자유란 죄악을 위한(for) 자유가 아니고, 죄악으로부터의(from) 자유이다. 선택의 자 유는 하나님께서 부여한 잠재능력을 실현할 자유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거룩 하신 분으로 어떤 죄악도 그분에게서 나올 수 없다. 악의 신적 기원론은 이는 참람된 이론이다.
욥 34:10
신 32:4
요일 1:5-7
6. 사회적 요인 기원론--죄악의 기원은 불합당한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구조에 있다. 악의 기원은 인간 외적인 환경, 교육, 유전에 있다.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악이 물질의 사적인 소유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악이 인간 소유욕에서 기원한다고 보는 마르크스는 악을 인간 생활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이해하였다. 악의 원인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 착취하는데 있다. 공산화라는 사회 변혁은 악을 극복하는 길이다.
비평: 누가 구조악적 문제가 되는 그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었느냐에 대한 탐구가 선행 되어야 한다. 인간 외적인 요인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책임의식의 약화를 가 져오며 문제 해결의 진정한 길이 되지 않는다.
7. 악에 대한 신앙적 이해
우리는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 그리고 악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다. 악의 현존은 유한 인간의 불완전한 눈에는 완벽하게 다 이해될 수 없는 미스테리에 속한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악의 실재를 보면서 대처하여 나가면 된다.
(1)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러나 이 전능성은 무엇이든지 다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악에 대한 즉결처분이 전능성의 발휘로 생각하는 시각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인간화시키는 것이 된다.
(2)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이 선택의 자유를 마음대로 제한시키는 일은 전제적이고, 비논리적인 일이 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로봇 같은 인조인간으로 만드셨다면, 인간의 자원하는 사랑과 기쁨의 순종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하나님이 즉시 악을 척결하였다면 그 자체가 악이 될 수 있다. 힘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공포외 비극을 몰고 온다. 고통과 일정한 과정을 거친 후에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위하여 악의 척결을 적당한 때까지 유예시킬 수 있다.
(4) 죄악으로 오염된 현재의 세계와 죄악이 없었던 원 창조 시의 세계 사이의 차이성을 감안하여야 한다. 비정상적인 카오스 속에서 완전하신 창조를 재단하는 일은 바르지 않다.
(5) 성경은 선의 궁극적 승리를 말하고 있다. 유한한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전부 다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악 문제를 완전한 지식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III. 성서적 죄악기원론(The Demonic origin of sin)
1. 하나님은 죄악의 창시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다(사 6:3; 신 32:4; 시 92:15; 약 1:13, 14).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며(롬 1:18) 구속의 경륜을 세 우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죄와 악의 원인이 아니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1:13). 하나님은 선한 것만을 창조했다. 그가 창조한 것은 그가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기 때문이다(창 1:1-31). 그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죄를 범하는 인간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현대신학자들이 죄악의 근원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왔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신적인 인과율에서 바르트는 혼돈과 무에서, Reinhold Niebuhr는 유한성에 대한 불안에서, Paul Tillich는 인간의 실존적 소외에서, 그리고 해방신학은 억압과 소유의 불균등과 같은 경제적 갈등에서 죄악이 기원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들은 전통적인 원죄 개념을 재해석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며 죄의 근원을 자유의 남용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간주하는 전통 신학과는 달리 인간의 현실적 구조와 상태로부터 죄의 원인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이들은 부분적으로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나 성경보다는 인간의 경험이나 철학 사상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신학의 죄관들은 그 핵심적인 점에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2. 죄악은 천사의 세계의 반역에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루스벨을 완전하게 창조하셨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 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들어났도다”(겔 28:15). 전지하신 하나님은 빛의 담지자 루스벨의 미래를 예견하셨다. 죄와 악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대 왜 그러한 허락을 하셨는가? 루스벨의 본성(nature)과 의지(will)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본성을 완전하고 선하게 창조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본성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했지만, 자유의지에 대하여서까지는 책임을 지실 수 없다. 의지를 잘못 사용한 것은 루스벨 자신의 책임에 속한다.
창세기 3장의 인간 타락 사건은 천계의 타락 사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천계의 반역 시 기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경은 인간의 반역과 구원에 관한 것을 집중적으로 다 루고 있어 천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였다(요 8:44). “처음부터”는 인간 역사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에 루스벨의 반 역은 인간 창조역사 이전이라야 한다. 참고: 벧후 2:4
사단은 첫 인간 범죄를 획책하였다.
“ 하늘의 사자들은 그들에게(아담과 하와) 사단이 타락하게 된 역사와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그의 음모를 미리 알려 주었으며 악의 임금이 전복시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정부의 본질을 충분히 설명하였다. 사단과 그의 부하들이 타락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았다. 그러므로 질서와 공평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의 방편인 율법을 아담과 하와가 존중히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였던가! ”(부조, 52)
“사단은 한때 하늘에서 그리스도 다음으로 존경받는 천사였다. 그의 용모를 다른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의 이마는 높고 넓었으며 아주 지혜롭게 보였다. 그의 모습은 완전하였고 거동은 고상하고 위엄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을 때 사단은 예수님을 시기하였다. 그는 인간을 창조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마음은 시기와 질투와 증오로 가득 찼다. 그는 하늘에서 하나님 다음 가는 가장 높은 존귀를 갖고자 하였다.”(초기, 145)
“사단은 다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죄악과 증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천사들을 모아 의논한 끝에 끝까지 하나님의 정부에 대항할 것을 결의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아름다운 동산에 거하고 있을 때 사단은 그들을 멸망시킬 음모를 계획하고 있었다.”(초기, 146)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틀림없이 타락시킬 수 있는 계책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홀로 떠났다. 그는 자기의 목적이 실패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비록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하게 하고 따라서 범죄자가 되게 한다고 할지라도 자기에게는 하등의 이익이 돌아오지 않고 또 자기의 입장이 더 좋아지지 않고 그의 죄책만 더욱 중하여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살아, 28).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아담은 아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아담은 완전한 장년으로 몸과 마음에 충만한 활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소망, 117)
3. 천사의 반역 원인은 루스벨의 자기 높임(self-exaltation)과 교만(pride)에 있었다.Lucifer(Light-bearer)은 계명성(Day Star)(사 14:12-15)을 KJV이 Lucifer로 번역한 것에서 나온다.
Lucifer이 반역한 것은 하나님과의 동등한 지위로 격상, 즉 자기 높임과 교만에 그 목적이 있었다.
(1) OT--자기 높임 (self-exaltation) (겔 28:11-17; 사 14:12-15)
(2) NT--교만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 3:6). “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 1:6).
(3) EGW은 시기와 질투를 추가하고 있다(3SG 36; PP 36).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로 주어진 경고는 반항심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루스벨의 질투심은 더욱 굳어 갔다. ”(부조, 36).
4. 루스벨의 반역의 전략 논리
(1) 하나님 폭군론과 율법폐기론--하나님이 절대적인 거룩한 율법에 순종을 천사들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독재성을 드러낸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의 기속에서 벗 어 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상호간에 충돌하는 개념들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공의는 자비를 배척한다. 루스벨은 하나님께서 율법의 요구인 공의의 충족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해결하는 것을 예견하지 못하였다. J.S. Mill은 창조주 안에 서 무한한 공의와 자비를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완전한 조화 방식으로 구원의 길을 제시하였다. 하나님의 율법과 십자가의 복음은 상호간 완전 조화된다. 거룩하신 사랑은 무한한 자비와 무 한하신 공의로 정의된다.
(3) 그리스도의 죽으심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비가 공의를 파괴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 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폐기되었다.
5. 타락한 천사의 칭호와 추종자
(1) 타락한 천사의 칭호
사단(Satan, satanas)(마 4:10)--“대적자”
마귀(Devil, diabolos)(마 4:5, 11; 계 12:9)-- “비방자,” “참소자”
바알세불(Beelzubul)(마 12:24)--KJV은 Vulgate의 영향을 받아 에크론의 신 바알 세붑(Beelzebub), 즉 “파리의 君主”로 표기하고 있다. 바알세불은 “똥의 君主”를 뜻한다.
벨리알(Belial)(고후 6:15)--“무가치함,” “사악함”
그 외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마 25:41), “이 세상의 신”(고후 11:15), “이 세상의 임금”(요 12:31), “악한 자”(마 13:19), “시험하는 자”(마 4:3), “미혹하는 자”(계 20:10), 용, 뱀 등으로 칭하여 지고 있다.
(2) 루스벨 추종자들
루스벨릐 추종자들은 “하늘 별 삼분의 일”(계 12:4)이니 된다. 악한 천사들, 또는 귀신들로도 칭하여 지고 있다. 이들은 그 우두머리인 사단을 도와 하나님을 대적 하고(마 25:41; 엡 6:12), 인간 사회에 재난과 질병을 일으키고(욥 1:5-10; 막 5:4), 도덕적 불결을 일으킨다(막 1:23-27; 눅 4:33).
6. 천계의 반역 결과
(1) 하늘의 전쟁 (계 12:7-9)--루스벨은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는 기만과 궤변, 아첨과 허위를 사용하였다.
(2) 하나님의 인내
“하나님께서는 불만의 정신이 성숙하여 공공연한 반역의 행동이 나올 때까지 사단이 그의 반역을 추진하도록 허용하셨다. 그 까닭은 사단의 계획들이 충분히 발전되어 그것들의 참 본질과 의도를 모두가 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그룹인 루스벨은 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으며 그는 하늘의 존재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하나님의 정부는 하늘에 거하는 자들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들도 포함하였다. 루스벨은 하늘의 천사들을 반역에 가담시킬 수 있다면 다른 모든 세계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 문제를 자기의 관점에서 교묘하게 제시하고 천사들을 자기에게 이끌기 위하여 궤변과 기만을 사용하였다. 그의 속이는 능력은 매우 컸다. 거짓의 가면으로 자신을 가장함으로 그는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그의 모든 행위들은 너무도 신비에 싸여 있었으므로 천사들에게 그의 행위의 진상을 알게 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행위가 충분히 발전하기 전에는 이것이 악한 일이었다는 것을 나타낼 수 없었으며 그의 불만은 반역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충성스러운 천사들조차도 그의 품성을 완전히 분별할 수 없었으며 그의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랐다. ”(부조, 41).
(3) 대쟁투가 지구에까지 확장
타락한 천사 루스벨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하므로 인하여(창 3:1-7) 그가 지구의 통치자, “세상의 임금”이 되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참고 요 14:30).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4) 사단과 타락한 천사의 운명
루스벨은 천상의 반역과 대결에서 패하여 땅으로 추방되었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 12:9).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속죄로 인하여 사단의 운명은 파멸의 유황불로 전락하 게 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 라”(눅 10:18).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사단은 천년기에는 결박당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 시까지는 활동한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 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2-3).
천년기에 성도들이 타락한 천사를 심판한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고전 6:3).
천년기 끝에 유황불 못에서 파멸 당한다(계 20:14).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 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 가라”(마 25:41-42).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7. 루스벨에대한 즉각적인 처벌이 없었던 이유
루스벨의 반역의 논리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들추어내는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늘 거민들은 죄의 참 성질과 그 결과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루스벨은 반역 시 궤변과 기만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루스벨의 이 반역 진상이 충분히 나타나 그 참모습과 의도를 온 우주가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조화된다는 것을 완전하게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정부는 공의롭고 그의 율법이 완전한 것이 온 우주 거민들 앞에 증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독재자라고 선동한 반역 논리가 거짓임이 드러나 온 우주의 오해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8. 죄악의 기원의 오묘성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지은 피조된 존재 루스벨이 어떻게 창조주를 반역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첫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것은 그들 부부 마음 안에서 일어 난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부터 온 것이었다. 그러나 루스벨의 반역은 자기 안에서 일어났다.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천사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자고하는 교만한 마음과 불만족한 마음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루스벨의 반역은 오묘한 사건 중의 하나가 된다. 이 점에서 악의 기원(시작)에 대한 설명이 막힌다. 그러나 성경에 흐르는 사상은 하나님께서 악을 창조하지 않았으며 그 악을 원하지도 않았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죄의 시작과 그 존재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수수께끼가 되어 있다. 그들은 악의 소위(所爲)와 그 무서운 결과로 생기는 불행과 파멸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통치아래 이런 일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의심한다. 여기에 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있다. 불신과 의심에 싸여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분명히 나타나 있고 구원에 필수적인 진리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다. 죄의 존재에 관하여 질문하면서 하나님께서 결코 계시하지 않으신 것까지 알아내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가진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다. 의심하고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기질에 의하여 행동하는 자들은 그것을 구실로 성경의 말씀을 거절해 버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유전과 그릇된 해석이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정부의 성격과 하나님께서 죄를 처리하는 원칙 등에 관한 성경의 교훈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까닭에 악에 관한 큰 문제에 대하여 만족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죄악의 시작은 그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죄의 시작과 죄의 최종적인 처분, 악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완전히 나타나게 되는 것에 대하여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성경에 무엇보다 분명히 알려져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가 들어온 것에 대하여 전혀 책임이 없으시다는 것, 하나님의 정부에는 반역을 일으킬 조건이 될 만한 아무런 결함이 없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강제적으로 거두어 버린 일이 없다는 것 등이다. 죄는 하나의 무단 침입자이다. 그것이 나타나게 된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죄는 오묘한 것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다. 만일 죄의 원인과 그 존재 이유를 밝힐 수 있으면 죄는 죄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죄에 대한 유일의 정의는 “죄는 불법이라”(요일 3:4)는 말이다. 죄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사랑의 율법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정신의 표현이다.”(쟁투, 492-493)
9. 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천사들을 격리시키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을 격리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이 천사의 마음 안에서 일어났다. 존재의 내부에서 의혹과 교만의 파문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적 존재들의 세계에서 격리 수용한다고 해서 예방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루스벨은 불신과 의혹의 씨를 퍼트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책은 격리보다는 피조적 지성들이 죄악 세계에서 죄와의 싸움에서 죄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면역체계로 대응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속과 최후적 회복이라는 원대한 경륜에 따라 역사를 이끌어 가는 긴 여정을 택하신 것이다. 죄악의 정체를 충분히 들어 나게 하시므로 죄악을 공의롭게 근절하시는 방책이 우주를 영원히 안정되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 용서를 받은 의인이지만 거짓의 아비 (요 8:44)가 계속하여 그 용서 받은 의인 안에 죄악의 욕심을 잉태시키는 일의 지대에서 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선악이 혼재한 이 세상에서 악을 대항하여 승리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은혜의 능력을 의존하여 나가야 하는 도전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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