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섭리의 의미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보전하며 피조물로부터 발생하는 사건들을 담당 처리하여 본래의 계획과 목적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삼위 하나님의 계속적인 활동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입장에서는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초자연적 요소를 배제하는 자연신론과 신과 피조물과의 구별이 없는 범신론을 거부한다.

 

II. 섭리의 국면들

 

1. 보존하시는 섭리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의 만물을 신적 능력으로 존속케 하고 관리하며 유지하신다. , 그의 현존을 통하여 창조 세계를 계속하여 존재케 하며 유지하신다.

a.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붙드시고 서게 한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1:3)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17).

참고: 17:28; 9:6

가장 작은 곤충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은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 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화잇주석, 26:7-10).

b. 하나님께서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호흡을 주신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17:28).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104:29).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 리라”(34:14-15).

c.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이 유지될 수 있는 근거를 주신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 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d. 자기 백성을 보존하신다. 양식이 부족한 이스라엘 족속을 애굽으로 인도하셨고, 만 나를 내리셨으며, 산파들을 통하여 모세의 생명을 보존하셨다. 홍해 위기에서 보존 구출하셨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용광로에서 보호하셨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10:30-31).

 

2. 통치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과 계획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다스린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지(도덕적 의지 및 비밀한 의지)대로 자연계와 인간세계 그리고 정치세계 다스리신다.

a. 천연 현상을 지배하신다(135:5-7).

엘리야 시대 36개월 비가 오지 않도록 천연계를 지배하셨고, 갈릴리 폭풍을 제어 하셨다.

b. 인간의 통치와 국가의 운명을 지배하신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 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17:26).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 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 냐 할 자가 없도다”(4:35).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103:19).

c.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관장 지배하신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16:1).

 

3. 협력과 인도

a.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인간들이 고유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협력, 선처하신다.

동시에 인간 편에서도 은혜의 역사에 협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주권성과 인간의 자유성은 상호 대립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성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 지 않으며 인간의 자유 또한 하나님의 주권성을 제한하지 않는다. “주는 영이시니 주 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6).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께서 인간편의 자유의지를 무시한 일방적인 개입으로만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개입 활동과 인간 편의 선택과 결심이 합 력하여 이루어지는 합작품이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한 사건은 장차 다윗왕을 탄생 시 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혼인 배경에는 룻의 주도 적 역할, 보아스의 선대와 용의주도함, 나오미의 주선이라는 인간의 협력이 포함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브라함이 시험을 당하였던 것처럼 시험을 당한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는 않으나, 그분은 당신의 말씀의 교훈과 섭리의 사건들을 통해 그들을 부르신다. 그들은 극기와 고난과 희생의 길인 것처럼만 보이는 길로 들어가기 위하여, 부귀와 공명을 보장하는 직업을 버리며 마음 에 맞는 유리한 공동 생활을 떠나고 친족과 작별하라는 요구를 받을지도 모른다.”(부 조, 12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인간들에 의해서 사업이 이루어 지도록 한 방도를 마 련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직무를 따라 현재 해야 할 자기 의무를 행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지도자이심을 늘 생각할 것이다(복음 488).”(화잇주석, 10:1-22).

b.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세계를 인도하신다.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의도하시는 바를 이루신다. 악의 세력에 의하여 집행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의 새로 운 구속사가 완성되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 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피조물들은 자유롭게 죄를 범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용하시므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II. 섭리와 기도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있다면 그 섭리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모든 섭리를 다 모른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고뇌가 있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성령의 지도가 필요하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믿음의 기도와 신앙적인 해석이 필요한 소이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분이 합당히 여기사 우리에게 빛을 주실 때까지 인내와 겸비로써 기다려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지우시지 않은 책임을 스스로 떠맡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화잇주석, 삼상 13:11).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은 때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의 의미하는 바를 분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고 우리의 발을 영원한 산보다 더 굳은 기초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는 천사들을 볼 것이며, 새 신앙과 새 생애가 싹틀 것이다.”(화잇주석, 6:8-10).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인도하심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 성령은 현실적으로 참된 실제적인 인도자가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그대로 믿으면 마치 무슨 참람된 일이나 되는 것같이 생각한다. 그들은 주의 가르침을 받고자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을 믿기를 두려워하고 우리가 지금껏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 왔다는 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배우고자 하는 열심으로 겸손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나아가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의심해야 하는가? 한 순간도 그분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또 그로 인해 그분께 욕을 돌려서도 안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우리의 할 일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면 우리는 그분의 인도를 받고 지도를 받으며 축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지나 않을까 하여 자신을 불신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까지도 하나의 기도 제목으로 삼고 그분을 믿으라. 온 힘을 다하여 여전히 주를 믿으라. 그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사 그분의 계획과 섭리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편지35, 1893).

 

섭리가 고정 불변이라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당신의 뜻을 인간의 협력을 통하여 이루어 오셨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또한 구원의 조건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을 경우 행동하지 않는다. 믿음이 결여된 나사렛 사람들에게 주요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6:5-6).

그러나 하인을 치유하기 위한 간절한 청원을 한 백부장(8:5-13)과 혈루증 앓던 여인(9:18-22)은 진실한 믿음의 본보기들이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으로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섭리와 조화되는 기도를 한다.

 

믿음을 가지고 일하며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 믿음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그분의 오묘하신 섭리에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때로 그대가 성공할 수 없는 듯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면서 일하고 믿으라. 그대가 최선을 다한 후에 주님의 신실하심을 주장하며 주님을 기다리라.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초조해 하며 근심스런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담대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심을 가지고 기다리라(3보감 195).”(화잇주석, 27:14).

 

III. 섭리와 기적

 

1. 섭리의 종류

하나님의 섭리는 보편적 섭리와 특별 섭리와 가장 특별한 섭리로 구분되어 왔다. 보편적 섭리는 피조물 전체 세계에 일반적으로 해당되는 섭리이다. 특별섭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고난당하는 때에 나타나는 섭리이다. 가장 특별한 섭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기 백성을 위한 섭리이다. 특히 마지막 섭리에서 자연법칙을 초원한 기적을 일으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인도하신다.

2. 기적

(1) 기적에 관련된 용어들

OT-niphlaoth, mopeth, oth

NT-dunamis, erga, semeion, teras

영어 miracle은 라틴어 miraculum(‘wonder')에서 유래하였다.

 

(2) 기적의 정의

기적은 천연계나 역사자적 사건에서 초자연적인 개입 현상이다. 기적은 알려진 자연법칙적인 현상과는 맞지 않은 현상이다. 기적은 인과관계에 토대를 둔 자연과학적 사고의 범주를 넘어 초자연적 현상에 속한다. 물론 사람들은 아직 원인을 포착하지 못한 현상을 두고 기적으로 볼 수도 있다. 이 현상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다.

 

(3) NT의 기적의 분류

천연계 기적, 치유 기적, 역사적 기적, 번성의 기적, 파멸의 기적, 역전의 기적, 옛 창조의 기적, 새 창조의 기적

 

(4) 기적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동정과 연민을 표현하고자

그리스도 에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권능과 목적의 징표를 나타내고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신조를 향한 발걸음을 위하여

 

(5) 기적 반대론

 

18세기 이신론의 반대론- 기적은 자연법칙에 어긋난다고 있다.

19세기 성서비평주의의 반대론-공관복음 비평주의는 기적을 반대한다.

20세기 과학주의에서 반대론-어떤 자연과학도들은 과학주의에 입각하여 반대한다.

20세기 심리치료의 반대-심리치료자들은 기적을 반대한다.

20세기 비신화론의 반대-Rudolf Bultmann은 신약성서의 비신화화론을 전개하면서 반대한다.

 

그러나 자연과학적 탐구를 넘어선 현상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인간이 자연계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은 유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헛된 철학과 거짓된 과학의 주장이 하나님의 섭리의 직접적인 개입에 관한 믿음을 파괴하려 하고 있으며, 이런 모든 현상들을 자연적인 것으로 돌려 버린다. 이것은 사단의 궤변이다. 그는 땅에서의 힘있는 표적과 기사들을 가지고 그의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의 특별한 증거들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은 대기만자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더 높이게 하는 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화잇주석, 삼상 6:19).

 

인간 이성으로 이해 못하는 고차원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적을 의심하고 더 나아가 배척하고 있지만, 모든 현상을 인과관계로만 풀 수 없는 불가사의한 초자연적인 영역과 일들이 많이 있다. 사실 이 세계와 인간 존재 그 자체는 과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이다. 더구나 창조주의 전능한 권능이 특별히 어떤 경우에 작동하는 일이 있다. 그런 것들을 두고 Hume처럼 소위 자연법칙에 어긋난다거나 인지가 발달하지 않은 지나간 날 인간들의 소박한 판단으로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6) 기적의 신학적 의미

 

기적은 과거에도 그리고 개명한 현대에도 일어날 수 있다. 성경에는 기적에 관한 진술들이 많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영역이 없다. 인간에는 돌파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그러나 창조주되시는 하나님께는 풀기 어려운 현상이나 일들이 없다. 기적은 바로 이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성경은 기적을 이적(wonder)” 또는 기사라고도 표기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기적을 표적(semeion)”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기적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적인 성육신, 부활 없이는 오늘의 그리스도교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적들은 하나님의 권능, 그의 영광과 사랑을 들어내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적은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의 현현이다.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는 많은 이적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의 기적은 그의 능력과 신성을 증거한다. 그의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그 초점이 있다. 사실상 예수님이야 말로 기적이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2:11).그리스도의 이적은 그의 신성과 메시야성을 나타내는 징표 역할을 하고 있다.

복음서의 이적들은 구속적이다. 구속은 병들고 죽음에 처한 생명을 회복하고 살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적은 구속의 본질에 대한 선언이다.

이적은 악의 권세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적을 행하신 일은 마귀를 추방하는 일이었다. 마귀에게는 그리스도의 이적이 성령의 권위를 드러내는 위협이 되었다(11:20).

이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악을 용인하고 계신지를 보여주고 있다. 악의 지배를 허용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하는 은혜의 현현을 준비하신 것이다(5).

이적은 사단이 악의 창시자임을 들어낸다(13:16).

이적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들어낸다. 이적은 단순히 그의 초자연적인 권능의 시현이나 자기의 보호를 위하여 하지 않으신 것이다(DA 149). 이적은 인간을 동정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결과이다(14:14).

이적은 그리스도의 반대자들의 본성을 들어낸다. 그들은 인류의 보호보다 자기의 이익에 더 관심을 지닌 자들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의 목적은 먼저 개인적인 믿음의 필요성을 고취하는데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29-31).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적은 하나님을 영화스럽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적의 수혜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최대의 이적은 그리스도께서 사망으로부터 부활하신 사건이다. 이 이적이 없이는 초기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기교회 시대에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은 그들의 헌신과 사역의 신뢰성과 영향력을 증폭시켰다. 사람들은 그들의 기적을 하나님의 사역의 징표로 보았다.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5:16).

 

그러나 사단도 기적의 방법을 통하여 일하여 왔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모세를 대결한 바로의 술사들은 그 표본이 된다. 종말시대에는 그러한 일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6:14).

 

기적 그 자체를 모두 다 하나님의 사역의 징표로 볼 수 없다. 기적 중심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다른 검증 방법을 통하여 확인하여야 한다.

 

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신비가 있고, 섭리 가운데도 신비가 있으며, 구속의 경륜에도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신비들이 있다. 그러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무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진 유한한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 가리키시는 분명한 길을 따르기를 등한히 하고 창세 이후로 숨겨진 비밀을 엿보려고 한다. 인간은 이론을 내세우고, 참 믿음이 갖는 단순성을 잃고 자부심이 너무 강해져서 주께서 선포하신 것을 믿지 못하며 자신의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에워싸고 만다. ”(화잇주석, 6:2-5).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