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바꾸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와 기도를 이해하는 모델들이 10가지도 넘는다. 반(半)이신론자 모델, 과정모델, 열린 모델, 교회 지배 모델, 구속적 개입 모델, 스페인 예수회 몰리나의 모델, 토마스 아퀴나스 모델, 바르트 모델, 칼뱅주의 모델, 운명론적 모델, 중도 지식 칼뱅주의 모델 등이다. 그 어느 모델에 따르든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고 보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미래 사실들을 총체적으로 아신다고 보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그러나 운명론적 모델 이외 다른 모델들에서는 기도가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Terrance Tiessen, Providence and Prayer, 364). 여기서 기도가 과연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사자를 보내셨더니 사자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사자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대상 21:15).
하나님의 “뉘우치심(nacham)”은 통찰력이 부족하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로부터 당하시는 고통의 신음소리이다. 그러면서 죄를 범한 인간이 회심하여 변화되었을 때 달라진 입장이나 의견을 취하시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는 어휘이다. Nacham은 구약성경에 37회 나오는바, 인간이 nacham하는 7회의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죄를 범하여 후회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나머지 30회 경우에는 파멸시키시는 행위를 하시는 주체인 하나님의 입장 변화를 의미한다.
다윗이 인구 조사한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격노하시었다. 다윗의 치세 하에서 이스라엘이 번영한 것은 왕의 능력이나 그 군사력에 있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심에 찬 다윗은 인근 민족들에 대한 정복 전쟁 목적으로 군 징집 가능한 인구 조사를 독려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장 참조)고 말한다. 그런데 국가의 군사력을 증가시키는 일로 말미암아 인근 민족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신뢰하는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아니라 자기들의 강력한 군대 때문이라는 인상을 줄 것이다. 또한 이런 인본주의적인 시도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신정의 원칙에 배치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반대하는 요압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인구조사가 다 끝나기 전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다윗에게 보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삼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선택하라고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다.
다윗은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삼하 24:14)고 대답하여 3일 온역을 택하였다. 이 온역으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7만 명이 죽었다. 그 때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켰는지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왕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였다.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탄원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작정(decree)은 칼뱅주의자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변개할 수 없었다는 메데 파사의 법과 같이 수정이나 변개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과 관계에서 백성들의 반응 여하에 따라 그들에 향한 반응을 달리하여 오셨다. 다윗이 자기 죄에 대하여 통한(痛恨)을 하고 회개하였을 때 사망의 권능을 행사한 천사에게 내린 명령을 바꾸시었다. 자유의지를 지난 인간들이 자기들의 계획과 삶의 방향을 바꿀 때 하나님께서도 계획이나 행위의 과정을 바꾸신다. 다윗의 회개가 인구조사 처음부터 철저하고 진지하였더라면 7만이나 되는 수가 죽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뜻도 된다. 하나님의 인간 상황에 적응하시는 유연성은 하나님의 성품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자비를 기다리는 덕의 다각적 현현인 전권적 자료성(omnisourceful) 시각에 기초를 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기도는 ”전능하신 자의 무한한 자원(資源-富, 力, 지智 等의)을 쌓아 둔 하늘 창고를 여는 믿는 자의 수중에 있는 열쇠”(SC 94).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 말미암아 무한하신 자의 마음과 연락된다. 비록 기도하는 그 당시에는 우리 구주의 얼굴이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보시고 계시는 현저한 증거는 볼 수 없을지라도 그가 그렇게 보시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우리는 그가 우리를 만지시는 것을 감각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손은 사랑과 긍휼로서 우리를 안찰하시는 것이다”(SC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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