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을 만났을 때
막 4:35-41 (참고 마 8:18, 23-27)
I. 배경
1. 해변 가 비유 중심으로 가르친 그 밤의 사건이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막 4:35).
2. 휴식의 필요성- 온 종일 가르치고 치유하신 일로, 그리고 원수의 집요한 공세에 피곤하게 된 예수님은 호수 건너의 한적한 곳에서 쉬기로 계획하셨다.
3. 건너편 – 현대 요르단에 속한 데가볼리지역, 비교적 한적한 지역, 이방인들 지역이다.
4. 예수께서는 작은 배의 뱃전 고물(선미부분)을 침대 삼아 잠드셨다. 고물은 배 뒤편을 이른 말이다. 예수께서는 작은 배의 뱃전 고물(선미부분)을 침대 삼아 잠드셨다.
5. 갑작스런 광풍- “seismos” “a shaking”“earthquake.” 여느 때와는 다른 폭풍이었다.
갈리리 동북 산 지세와 폭풍 길이어서 자주 이런 폭풍이 갈릴리 호수에 몰아치곤하였다. 그러나 이번은 자연적인 재난과는 달랐다. “seismos”는 “seismology” 어원이 되는 단어이다. 지진 같은 것이 일어난 것을 보면 특별한 폭풍이어서 ‘광풍’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6. 고군분투하는 제자들
자신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데 열중한 그들은 예수께서 선상(船上)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누구의 명으로 출발하였던가를 기억하였다.
“갑자기 번갯불이 암흑을 꿰뚫자 그들은 예수께서 그 소동에 방해 받으심이 없이 누워 잠드신 것을 보았다. 그들은 놀람과 절망으로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외쳤다. 제자들이 위기 가운데서 죽음과 싸우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평안히 쉬실 수 있으셨을까?”(소망, 334).
7. <성경 읽는 자세>
2000년 전 이 사건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성경을 읽을 때 현재화의 원칙, 즉 과거 이야기가 아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로 읽는 원칙, 성경 속에 나타난 인물들을 자기로 대입하여 읽는 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 2천 년 전 갈릴리 호수 위에 고기잡이 배를 타고 가다가 광풍을 만나 허덕이는 제자들이야말로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읽어야 한다.
8. 광풍의 종류
우리는 때때로 슬픔과 고통의 폭풍을 당한다. 경제적 곤경, 갑작스런 사고, 암, 아이 방황, 사업 파탄, 친구의 배신 등의 폭풍, 유혹과 우리 안에서 이는 정욕의 폭풍 속에 자주 빠진다.
9. 하나님의 침묵 - 왜 폭풍 노도 속에서 주님께서 주무시고 있었나? 메가톤 급 광풍이 몰려와 죽을 지경, 물벼락을 맞으면서 어떻게 주무시고 있을 수 있었나?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8). 인생의 풍랑 중에 있을 때 예수께서 침묵하고 계신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II.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그리스도의 약속을 붙잡는 믿음을 가지라.
1. 훈련과 테스트
마마보이 이야기. 아이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맞기도 하면서 스스로 극복하는 힘을 길러야 살아 갈 수 있다. 제자들이 다가오는 난관을 극복해 가야 하는 훈련을 받아야. 삶의 현장은 다음 세계를 위한 믿음을 배우는 예비학교이다. 인생의 학교에서 만난 광풍 사건은 제자들의 현장 믿음에 대한 학습 테스트이었다.
2. 믿음의 실패
그런데 제자들이 낮에 들었던 그 감동적이고 놀라운 말씀들이 저녁에 까지 힘을 내지 못 하리 만큼 실패한 것이다. 제자들이 은혜 받은 것의 한계성을 들추어냈다. 그들의 믿음이란 밧줄이 너무나 허약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꼭 잡아야 하였다. 예수의 뜻은 앞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건너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약속을 붙잡고 나가면 되는 것었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약속을 믿고 나가면 된다. 예수께서는 건너가자고 하셨지 그 과정 중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말슴하지 않으셨다. 약속을 붙잡고 있으면 풍랑이 온다고 할지라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예상치 못한 광풍 같은 사건 돌발
모처럼 결심하고 믿음 생활을 정진하는데 내 인생의 항로에 광풍이 밀려온다. 갑자기 하는 사업에 문제가 생긴다. 믿음으로 순종할 결심을 세우고 살아가기 시작할 때에 예상치 못한 풍랑이 일어난다. 지금 제자들은 순종하고 결심도 하였는데 풍랑이 일어난 것이다.
4. 의심과 원망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막 4:37).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
배에 물이 가득 찬 것 같이 제자들 마음에도 두려움으로 가득하고,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의심으로 기득하였다. 삶에 두려움이 밀려오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의심이 든다. 피난처 되신 예수께서 옆에 계시는데도 광풍은 몰려온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죄다. 내게 허락하신 여건을 두고 불만을 표출하면 죄가 된다. 어떤 여건을 당하던지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5. 평화 파괴의 장봉니인-죄, 자아
“태풍을 잔잔하게 하신 이 이적 가운데는 또 하나의 영적 교훈이 있다. 각 사람의 경험은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 57:20, 21)는 성경 말씀의 진리를 증거한다. 우리의 평화를 파괴한 것은 죄다. 자아가 정복되지 않을 때 우리는 쉼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을 지배하는 격정을 다스릴 수 없다. 제자들이 성난 폭풍을 잔잔하게 하는 데 무력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이점에는 무력하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의 큰 물결을 향하여 잔잔하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각 사람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신다. 태풍이 아무리 격렬할지라도 “주여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으면서 예수께 돌아오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소망, 336)
죄악을 품은 우리 마음으로는 광풍을 이길 수 없다. 그에게 굴복하여야 광품을 잔잔케 하는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6. 졸업식에서 학생들에게 읽어준 성경 본문- 시 91편.
교사 시절 졸업하는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 준 성경본을 항상 시편 91편으로 택하였던 일이 여러 해동안 이어졌다. 인생항로에서 광풍이 몰아쳐 오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라는 의도에서 택한 성경본문이었다.
피난처는 환난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피난처와 환난은 함께 존재한다. 믿는다고 하여 환난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광야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는 예수께 시편 91편을 제시하고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철벽같은 보호막이 되는 약속을 주장치 않으셨다. 그는 겟세마네에서도, 갈보리에서도 시 91편의 보호를 요청하시지도 않았고 또한 그런 보호가 따르지도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을 남김없이 마셨다. 그러나 온 하늘이 그 분을 주목하고 있었으며 아버지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함께 하셨다.
시 91:15 “환난 중에 그와 함께하여” “~with him in trouble”-명사 문장이어서 동사가 없다. 아버지는 고통 받고 있는 자녀와 함께 하신다. 지금 제자들이 당하는 곤경에서도 에수께서는 배에 함께 하시고 계셨다. 세상 긑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마 28:20)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제자들은 이 사실을 잊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공포는 인간을 파멸시키고 마비시킨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을 강화시키고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인생의 행로에서 위기를 맞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고난의 격랑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다. 흔히 신자들이 내가 못하는 것은 하나님도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나님을 믿으라. 믿음 없이는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우등생은 이해되는 것을 믿고 이해 안 되는 것을 두고는 선생을 믿는다.
7. 믿음의 시제들: 받은 것으로 믿는 믿음(과거), 받고 있는 것으로 믿는 믿음(현재), 받을 것으로 믿는 믿음(미래). 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아신다. 받을 줄로 믿으라. 납득이 안 가도 믿으라.
사례들: 1) 한나- 받은 것으로 믿는 믿음, “가서 먹고 마시고 다시는 수색이 없더라”(삼상 1:18).
2) 카네기 집무실에 걸린 그림-해변 모래사장에 낡은 배 한 척, 그림 아래에는 카네기가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말을 기록하여 넣었다.
3)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그리 아니하실지라도”(단 3:18).
5) 죄수로 로마 호송 중 유라굴로 풍랑을 만난 바울. 어떤 과정이었든지 바울은 로마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다. 인생의 바다에 풍랑은 늘 일어난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 옆에 계신다. 그 분이 우리 편이시다.
주의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믿으라. 예수님은 우리 편.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다.
II.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막 4:39)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 8:25). “ “그때 그들은 하늘의 평화가 그의 얼굴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분의 시선에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온유한 사랑을 느끼자 그들의 마음을 예수께 집중시키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고 부르짖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사람의 극한은 하나님의 기회가 된다. “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AA, 145).
1. 어둠과 악의 권세
요한은 남은 교회와 악의 권세자들 사이에 있을 투쟁을 미리 보았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욥기는 의인에게는 환난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인에게 환난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둠의 권세는 하나님 백성을 향하여 광분하고 있다.
예수께서 바람과 파도를 향하여 꾸짖으시고,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하셨다(막 4:39). 이는 “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막 1:25)에서 악령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바람의 배후에 악령이 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왜 광풍이 일어났나? 자연현상에 불과한가? 물론 헤르몬산으로부터 찬 기류가 몰려왔을 수도 있다. .
2. 본문 맥락 – 악의 권세가 거라사광인을 통하여 예수게 6000명 군대라고 엄포를 놓고 협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귀는 광풍을 일으켜 예수와 제자들을 죽이려고 하였고, 그리고, 광인을 통하여 달려들었고, 마지막으로는 주민들을 통하여 예수를 배척한다. 어둠의 세력이 넘치는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은 광풍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악의 권세를 향하여 꾸짖고,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능력을 배푸시면 인생의 광풍이 잔잔해 진다. 그러면 왜 침묵하셨나? 예수께서 풍랑에 무관심하고 계셨나? 그는 내 인생의 배에 함께 승선하여 여행하시면서 먼저 내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여져 외적인 풍랑을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바라셨다. 예수께서 내 배 안에 계신데 왜 두려워하고 염려하는가? 배가 침몰된다면 예수께서도 침몰될 것 아닌가? 주님께서 지켜보시면서 계신다. 풍랑 중에 주무실 수 있는 분이 내 마음의 풍랑도 잔잔케 하실 수 있다. 내 인생의 배가 초라하다고 내 배에서 내리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3. 본문 배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능력
뱃사람도 이길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대한 능력(4:35-41).의 현시는 어떤 사람도 제어할 수 없는 거라사 광인(5:1-20)의 영적 세계에 대한 능력,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육체적 질병 혈루증에 대한 능력(5:25-34 ).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는 사경의 딸을 두고 애원한 야이로의 딸의 죽음에 대한 능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능력의 원천을 옆에 두고 모르고 지낸 제자들이었다.
인간의 삶의 현장에도 크고 작은 광풍이 많이 몰려온다. 이 고아풍을 그리스도께서 평정시켜 주신다.
나훔 1:7 주는 선하시므로 광풍 속에서 환난을 당할 때 산성이 되사 돌보아 주신다.
“우리는 얼마나 흔히 제자들이 겪은 경험을 겪는가! 시험의 태풍이 점점 거세어지고 번갯불이 무섭게 번쩍거리며 파도가 우리를 덮칠 때 우리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예수가 계심을 잊어버리고 홀로 폭풍과 싸운다. 우리의 희망이 사라지고 멸망 직전에 빠질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뢰한다. 그 때에야 우리는 예수를 기억한다. ”(소망, 336).
외로눈 항해, 고군분투하는 항해를 그만두고 그 분의 능력을 신뢰하라. 그러면 그 분께서 광풍을 잔잔케 하실 것이다.
III. 호소:
“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그리스도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논리적 결론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에 있다. 고난 중에라도 믿음을 지닌 살아 있는 증인(순교자)로 나서라.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참으시었다. 천사들이 고난을 돕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활로 일으켜 세우시는 부활의 아침이 온다.
후에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 받은 종들로 우뚝 섰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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