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언약 (The Noachic Covenant)
V. 노아 언약 (The Noachic Covenant)
I. 성경적 근거 (창 6:18; 9:1-17)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heqîm]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히브리 단어 헤킴[heqîm]은 하나님께서 친히 전에 맹세하신 서약을 “유지하시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전에 인간과 언약을 하셨음을 의미한다. 웬헴(Gordon J. Wenham)은 언약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이 본문을 “내가 친히 확인하고자 한다”로 번역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하젤(Gerhard F. Hasel)은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기 3:15에 나오는 아담과 맺은 언약의 갱신이라는 점을 함축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을 보존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이 실현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창 9:9-17)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9-10).
노아언약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모든 생명과 맺은 언약이다.
베드로후서 3:3-9
창세기 6:18에는 성경상 처음으로 언약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노아와의 언약 체결을 주도하셨다. 위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홍수 직전에, 그리고 홍수가 끝났을 때 각각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II. 당대 인간의 타락상과 의인 노아
A. 인간의 타락상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혼인하는 일이 만연되었다(창 6:1-2). 어떤 주경가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창 6:2)이란 하늘의 존재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석하지만, 문맥과 내용을 살펴보면 셋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딸들’(1절에서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하였음)이란 가인의 자손을 가리키는 것이다. 믿음의 계보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불신자들과 혼인을 맺고 이러한 결연의 위험성에 스스로 노출된 것이다.
노아 당대의 인간들의 도닥적 상황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라고 한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창조 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는 완전한 모습이 정반대로 변질된 것을 의미한다. 사단의 기만에 넘어간 첫 조상이 열어 놓은 죄의 홍수문의 결과 죄가 창조세계를 유린한 처참한 모습이기도 하다. 아담의 범죄와 가인의 살인행위 이래 땅은 이중의 저주 아래 있었다(창 3:17-18; 4:11-12).
“신장과 체력이 탁월하고, 지혜가 걸출하고, 가장 정교하고 놀라운 일들을 고안하는 데 재간이 있는 거인들이 많았다. 죄악을 엄격하게 제어하지 않는 데 있어서의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재간과 정신적 능력에 비례하였다. ”(부조, 90).
“그들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만을 추구했으며 쾌락과 사악의 길에 빠졌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 싫어한 그들은 얼마 안있어 그분의 존재까지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천연계를 숭상하였다. 그들은 천재적인 인간을 찬미하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숭배하였고 자녀들에게 아로새긴 우상에게 절하라고 가르쳤다. ”(부조, 90-91)
사람은 진리와 순결과 거룩함에 대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념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는다. 만일 마음이 보통 인간성의 수준 이상으로 높여지지 아니하고,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사랑을 명상하도록 높여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계속적으로 점점 더 타락하게 될 것이다.
품성의 표준이 타락한 본능적 수준으로 저하된 상태에서 만든 “신들”을 섬기는 거짓 예배가 나타나게 되었다. 라멕은 일부다처와 피의 복수를 시작하였다(창 4:19-24). 결혼은 왜곡되어 정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마침내 죄된 행위는 패괴와 강포가 우주적 스케일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죄, 즉 반역, 불법과 무법 및 범죄가 눈 사태처럼 온 지면을 덮었다. 세상에는 악, 강포, 및 패괴가 가득찼다. 이 죄악상의 바탕에는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하였다. "생각“은 인간의 사상과 이성의 작용 능력 좌소를, "계획(imagination, yēṣer)”은 ‘구상(design),’'형태,' '개념' '목적(purpose),’‘상상,’‘마음,’‘골격’을 뜻한다. 내적인 마음에 일어나는 인간의 착상과 목적은 항상 악하였다는 것이다. 창조의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결혼 관계나 재산의 소유권도 존중되지 않았다. 이웃의 아내나 소유물이 탐이 났을 때 누구든지 폭력으로 빼앗았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난폭한 행위를 으시대며 자랑했다. 그들은 동물을 죽이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그리고 육식을 함으로 그들은 더욱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놀랍도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부조, 92).
B. 하나님의 고통과 결단
창조세계의 이런 상황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일을 두고 “한탄(nicham)”하셨다(창 6:5). Nicham은 하나님편에서의 예지력(선견지명)의 결여나 신적 본성과 목적의 변화성을 함축하는 의미가 담긴 용어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이지러진 (달라진) 인간에 관련하여 달라진 입장을 시사하고 있다. “니함”은 구약성경에 약 40번 후회로 번역되고, 약 60번 위로로 번역되었다. 상황과 문장의 전후를 보아 그렇게 번역하였다. 하나님이 후회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후회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당할 고통을 보시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니함’이 하나님에게만 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홍수로 멸망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 한탄하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셨다(창 6:5). 하나님께서는 죄를 보고 마음 깊이 아파하시며 슬퍼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고통당하신다.
3. 하나님께서는 되 돌이킬 수 없는 죄의 만연을 통제, 차단시키기로 결단하셨다. 그리하여 홍수심판으로 막아 버리시기로 하신 것이다(창 6:7, 12,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모든 혈육있는 자”는 인간, 육축, 기는 것, 공중의 새를 포함한다.
C. 의인 노아
노아는 죄악이 관영하던 그 시대의 조류에 항거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의롭게 살았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8-9).
1.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절감하며 살았다. “그러나 노아는 야훼께 은혜[hên]를 입었더라”(창 6:8).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택할 수 있는 자비를 베푸셨다. 히브리어 헨(hên)은 은혜를 나타낸다. 이는 노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노아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공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를 값없이 주신 결과이었다.
2. 노아는 의인이었다. 악, 강포, 및 패괴가 가득찬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노아는 하나님께 향한 믿음과 신뢰와 확신 의 사람으로 순종의 발걸음을 옮겼다. 이러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지닌 사람을 의인이라고 한다.
3. 노아는 완전하였다. 여기서 완전이라 함은 절대적 완전, 무죄한 완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온전한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신분으로 칭하여진 것이다.
4.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노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믿음의 발걸음을 옮겼다. 에녹처럼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이는 노아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님의 뜻을 따르면서 교제를 나누는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점을 시사한다(창 6:5).
III. 하나님의 명령과 노아의 순종
창세기 9:8-17에 나오는 노아와 그 자손들과의 언약을 두고 인간의 의무 규정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적 언약이라고 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이는 창세기 9:1-7에 나온 사상을 도외시하는 입장에 불과하다. 9:8-17의 언약의 축복과 약속은 1-7의 조건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노아의 마음의 육비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있어 칭의, 성화 및 화해가 가능하였을 것으로 본다. 다음 두 성경 본문이 이를 함축하고 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4:14).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1. 방주 건축 및 선교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의 가족을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믿음을 표현하였다. 당대 철인들이 홍수 불가능론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였지만 노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노아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7절)다고 한다.
“야훼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 노아는 당대의 인간들을 향해 중재적 입장에 서고자 택함을 입었다.
“에녹은 하나님께서 홍수에 관하여 자기에게 보여 주신 바를 그의 자손들에게 반복하여 전파하였으며, 노아의 설교를 살아서 들은 므두셀라와 그의 아들들도 방주를 짓는 일에 조력하였다. ”(부조, 92).
“그 세대의 사람들 모두가 우상 숭배자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의미 그대로의 우상 숭배자들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공언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은 신의 대표물이며, 그것들을 통하여 백성이 거룩하신 존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노아의 설교를 앞장서서 거절한 자들은 바로 이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나 그분의 요구들의 신성하고 불변적인 성질을 깨닫지 못하였다. ”(부조, 95-96)
노아는 의의 선교자였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
2. 제사 언약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노아의 순종은 그의 모든 가족을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였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야훼께 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를 드렸다”(창 8:20). 노아는 동물 희생으로 제사장적 중보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이 감사 예배의 순간이 하나님께서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창 8:21)라는 새로운 약속을 하신 순간이었다. 노아는 구원 받은 일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는 그같이 함으로 위대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신앙을 나타냈다. 이 제사는 주를 기쁘시게 했으며, 족장과 그의 가족뿐 아니라 땅에 살게 될 모든 사람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3. 생육과 번성
그 때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거룩한 율법 아래 두셨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주셨다(창 9:7). 이는 창조언약의 반복이다.
4. 생명 보전 및 질서 유지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고기를 피 채 먹지 말라고 교훈하셨다(창 9:4).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와 그 자손들에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라고 명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창 9:5).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 여기서 창세기의 창조언약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창 1:26-27) 짐승보다 뛰어난 인간의 특별한 신분이 다시 한 번 표현되어 있다.
이는 살인자에 대한 사형 판결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된다. 노아는 모든 살인자를 공의 앞으로 데려와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 결과 인간 세계의 악이 억제될 수 있었다(창 9:5). 인간생명의 보전과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한 노아언약의 약속은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이 사법적 책임은 로마서 13:4에 따르면 하나님의 종으로서 칼을 가진 시민 권위에서도 계속된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여전히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 인간의 선천적인 악을 억제해야 하는 노아 언약의 율법 아래 살고 있다.
IV. 언약의 표징
노아 언약의 표징은 찬란한 색갈의 무지개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구름의 심판 뒤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이 언약의 표징은 심지어 하나님의 오늘날 언약의 백성들에게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그분의 영원한 사랑을 상기시켜 준다.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아름다운 무지개 표징으로 표현되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우주적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표징은 근본적으로 창조주의 영원한 은혜를 나타낸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창 9:16-17). 노아 언약의 축복이 이 표징으로 나타나 있다.
“구름에 걸린 이 상징은 모든 사람의 믿음을 굳게 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을 굳게 할 것인 바 이는 이 무지개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사 세상을 홍수로 멸하였지만 여전히 세상을 당신의 자비로 두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에 걸린 무지개를 보실 때에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우리를 잊으실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염려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당신을 좀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 자신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살아, 71).
아이히로트(Walter Eichrodt)는 무지개를 “이방인을 향한 야훼의 영원한 은혜”라고 적절하게 불렀다. 이 무지개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자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킨다.
V. 언약의 종말론적 의미
노아는 남은 자손이었다.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창 7:23). 이 본문에서 “남았더라(ŝā'ar)”는 표현은 구약 시대 남은 무리를 나타내는데 사용된 단어이다. 신약은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고 경고하면서 노아홍수를 마지막 때의 멸망에 대한 예언적 표상으로 해석한다. 이로 인해 노아의 믿음은 마지막 때의 신실한 신자들을 위한 표상이 된다. 노아가 의인이며 당세에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의인이며 완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은 무리가 등장한다.
“이방인을 향한 야훼의 영원한 은혜”라고 지적되는 이 무지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어지는 창조주의 은혜를 나타낸다. “영원한 무지개” 표징은 요한이 하늘 이상에서 본 것처럼(계 4:3 참조),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보좌를 두르고 있는 상징이다. 그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에게 구원하실 수 있으면서 모두를 심판하시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계 10:1)의 본문에서도 자기 언약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의 상징인 무지개 언약의 보편성과 종말성을 엿보여 준다.
웬햄(Gordon J. Wenham)은 노아가 “유일하신 왕이신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 분의 율법을 충성스럽게 옹호하는 이였다”고 하였다. 웬햄은 “의”에 관련하여 노아가 하나님의 조건들에 대해 충성스럽게 순종하였다는 점을 지목하여 강조하고 있다(창 6:9, 22; 7:5, 16). 비둘기를 다시 보내기 전에 노아가 “칠일을 더” 기다렸다는 것에 대해 “사실, 새가 등장하는 이 장면은 칠일주기를 통해 노아가 안식일을 지켰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한 그의 주석은 흥미롭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인자의 올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며 그분과 동행할 사람들을 다시 기대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대로 그 시대의 우상 숭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계 14:12) 최후의 남은 백성을 구성할 에녹들과 노아들이 있을 것이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과 구속적 언약 관계 속에 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궁극적인 헌신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계 14:4)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의 구원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의인들에게 마지막 날… 그들도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보증”이 된다.
Grand Canyon North Rim에서
그랜드 캐년 북단 이천여 미터 봉우리 앞에 펼쳐진
우뚝 우뚝 거대하게 솟아 있는
석회암-코코니노 사암-Hermit Shale 바위산 군상들,
천 길 낭떠러지 계곡들은 끝이 보이지 않네.
장엄한 자태를 낙조에 파묻으며
신비한 언어로
인간의 말문을 막고
인고의 사천오백여년 세월을 지켜 왔던가
뜨거워 가는 코코니노 Shale 사암 응 바위 위에서
정상을 향하여 질주하던
처절한 몸부림을 그대로 담고 있는 발자국들은
창조세계에 드리워진 죄스런 역사를
아직도 증거하고 있는 슬픈 형해이런가
아직도 죄인을 품으시고
그 마음을 녹이시는
창조주의 위엄과 사랑의 형상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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