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G. 화잇의 신학 一考

-계시 특성, 신학적 방법 및 주요 신학적 주제들을 중심으로-

 

I. 들어가는 말

엘렌 G. 화잇(Ellen G. White, 1827~1915)은 재림교회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재림교회 창설과 발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선구자 중 1인이다. 엘렌 화잇은 1915716, 87세로 잠들 때까지 70년간 예언적 은사를 받았다. 그의 약 2000여 회의 예언적 꿈과 계시, 2500백만 단어로 된 글들, 10만 페이지 원고, 타이핑 원고 6만 쪽, 5000여 개의 정기 간행물 기사 등 방대한 분량의 원고와 기사들이 출판으로 이어져 재림교회의 유산이 되어 왔다. 그러나 재림교회에서 엘렌 화잇이 남긴 방대한 문학적 유산은 자주 논란의 와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끝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기 예수를 안고 예고한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준 예언적 통찰이 어느 면에서는 엘렌 화잇에게 제2차적으로 적용하여도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이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2:34). 엘렌 화잇 역시 재림신도들이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의 표적으로 세움을 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재림교회의 정체성과 맞물려 있는 그의 예언적 은사가 부정적 비평의 표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엘렌 화잇의 계시 특성, 신학적 방법 및 그 기조 원리들을 중심으로 본질적인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신학적 메시지의 거시적 이해 또는 거대 담론인 사랑과 대쟁투에 역점을 두는 성찰을 하기로 한다. 이런 본질적, 거시적 탐구가 선행되어야 엘렌 화잇의 사상에 대한 시공을 초월한 정당한 이해의 가교가 형설 될 것이다. 그래야 지엽적 이슈를 내걸어 엘렌 화잇의 예언자성에 금가게 하는 부정적 시각을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II. 엘렌 화잇에 대한 비평이 간과하고 있는 점들

엘렌 화잇의 신학적 주제는 계시의 여러 모델들의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모델들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거나 무시하고 그의 신학에 대한 비평들이 난무하여 왔다. 엘렌 화잇에 대한 비평적 기류들은 그의 계시(이상) 모델(The visionary model)예언적 권위(prophetic authority)를 비하시키는 일에 힘을 쏟으면서 그의 메시지를 목회적 봉사(pastoral ministry)로 국한시켜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시각은 엘렌 화잇의 중심 메시지를 간과하고 부차적, 지엽적 문제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추세에 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俠義的인 계시-영감 모델에 매어 있어 그 외의 광의적 모델들 (증인 모델, 역사가 모델, 상담자 모델, 서한 모델, 문학 모델)을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예언자가 여러 모델들을 사용하여 작품을 영감적으로 기록한 것을 도외시하기도 한다. 선지자가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충고자 내지 권고자로 활동하는 모델, 즉 상담자 모델(The counselor model) 자료에만 역점을 두려고 하는 시도들은 가급적이면 예언자의 인간적 한계나 과오를 들추어내고자 한다.

엘렌 화잇의 상당량의 메시지는 이 광의적 모델 특성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성경 기자에게도 나타난 현상이다. , 엘렌 화잇은 상당한 경우에 내가 보았는데(I saw)"를 사용하여 부모와 교사들, 어린이와 청년들, 목회자와 행정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으나, 더 많은 경우에는 그런 표현을 사용치 않는 메시지들로 나온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언자가 판단하도록 감동을 주셨다. 이런 광의적인 목회자적 권고의 가치 등급을 계시 모델 보다 더 낮다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자기의 뜻을 전달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1:1).

예컨대, 바울이 가족 문제를 두고 어떤 경우에는 주께 받아 명한 경우(고전 7:10)가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특별 계시를 받지 못하였음을 시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전 7:25). 이 특별 계시가 없는 경우에라도 그는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마음으로 영감적인 권고를 한 것이다(고전 7 : 40). , 바울은 특별계시를 안 받았어도 영적 권고를 한 것이다. 바울은 특별 계시가 있을 때든지, 없을 때든지 고린도 교인들에게 솔직하게 권고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은 특별 명령을 받아 권고한 것을 더 중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바울 자신은 모든 경우에 다 같은 마음, 즉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은 심정에서 나온 것으로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감명을 주어 예언자 자신의 판단을 활용케 하신다. 예언자는 이상과 꿈을 주신 같은 성령에게 감동받아 영감적 판단을 내려 권고를 하고 상담에 응한 것이다.

엘렌 화잇의 저술은 특히 성육신 모델(The incarnational model)의 범주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었듯이 성경도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는 이 성육신 모델에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완전하고 무류하고 영원하나, 메신저는 유한하고 가멸적인 인간 존재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약점을 지닐 수 있다. 예컨대, 세계 선교의 폭을 선입관념에 의거 제한적으로 이해한 베드로에게 이상을 보여준 사건(10:9-15), 하나님의 허락인 것으로 말한 나단(삼하 7:1-5), 또한 주의 오심의 박두 확신을 선포한 사도들을 추가적 계시로 교정하신 사건 (살후 2:1-4) 등에서, 우리는 예언자나 사도의 약점이나 단점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때 인간들을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 언어도 사용하신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인간과 그 언어는 완전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불완전한 통로가 된다. 이 불완전한 인간 통로나 언어 매체가 하나님의 완전한 메시지를 어느 정도 담아 낼 수 있느냐가 논의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성령의 직접적 지도하에서 메시지를 제시하는 때는 완전히 신뢰할 수 있고 무오한 것이다. 물론 성령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관장하고 메신저로 하여금 올바른 자료원에서부터 올바른 자료를 선택하도록 영감을 준다. 통상적으로 성령께서는 예언자가 그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신다. 그러나 불완전한 메신저는 물려받은 타락한 본성의 약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엘렌 화잇은 인간에 속한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1SM 20)라고 하였고 또 하나님은 불완전한 언어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1SM 22)라고 하였다. 여기서 불완전(imperfection)이란 말은 Alden Thomson이 주장하듯이 인간적 요인에 역점을 둔 아리안적 시각을 넘어서야 한다. 화잇이 같은 문단에서 해석한 것처럼 무한대에 속하는 사상이 유한한 인간의 사상 전달의 수단으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란 의미를 띄고 있음에도 유의하여야 한다. , 불완전은 자격이 모자라거나 성숙치 못한 성경 기자의 유오성에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때로는 예언자가 사상, 신념, 및 중요 이슈를 다루는 일에 있어서 과오나 불완전함이 나타나는 경우 성령께서는 예언자를 교정하신다. 그래서 이 성육신 모델을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각성시키고 사상을 고취하시며 기록되어야 하는 문제의 방향을 유도하고, 메신저는 자신의 언어와 문체 및 자신의 문학적 능력의 수준에서 기록하며 그 기록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경험과 인격적 배경에 이끌리어 기록하지만 성경이 계시된 진리로서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갈리(Norman Gulley)가 강조한 것처럼 인간의 불완전성을 신적 요소와 분리시키는 아리우스적 성육신 모델을 취하는 것도 경계하여야 한다. Achtemeier가 성경 연감의 실마리를 풀고자 한 것도 사실은 신앙 공동체에 행한 성경 메시지의 중요성을 의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다음 진술은 이런 시각을 보여 주는 진술이다.

여러 사람들이 각기 표한한 만큼 진리도 그 다양한 면들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저자는 문제의 한 가지 면에 대하여 더욱 강력한 인상을 받으며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자신의 식별력과 감상력에 잘 조화되는 점들을 포착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은 또 하나의 다른 국면을 포착하고 각자가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자기 정신에 가장 강력하게 인상 받은 것을 증거한다. 각자가 받은 진리 가운데는 서로 다른 면이 있으나 모든 진리를 통해서 완전한 조화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계시된 진리들은 전체적인 완전성을 이루기 위하여 연합하여 생애의 모든 환경과 경험 가운데서 인간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적용되었다.”(1SM 25).

엘렌 화잇이 역사적 자료나 건강자료를 차용한 경우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다른 자료와 불일치하는 듯이 보이는 경우에 어떤 인사들은 예언자의 자료 활용의 문제성을 어떤 형태로든지 부각시켜 그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들에 매달려 왔다. 그러나 어떤 자료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예언자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기 마련이다. 오늘날 특정의 역사적 사건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해하고 주장하는 일들이 나라들 사이에 비일비재한 것은 이를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특히 엘렌 화잇의 문제성 있어 보이는 진술들에 대한 해석학적 원칙들을 중심으로 재검토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날의 비평들에 대한 변증들을 먼저 살펴보며 사태의 진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III. 엘렌 화잇의 역할

 

엘렌 화잇의 사역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한 목적은 성경 고양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 하나님 백성들의 매일의 삶을 위한 성경의 원칙을 명료화시켜 그 것을 적용케 하는 일, 하나님 백성들의 죄에 대한 견책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의 계명에 순종케 하는 일, 백성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그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는 일, 지상 역사의 마지막 때 사는 백성들을 영적으로 준비시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게 하는 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하나님 백성들을 연합시키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있다(3T 361).

Paul A. Gorden은 마지막 때 엘렌 화잇의 역할을 두고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요약정리하고 있다.

1.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 특히 184412월의 첫 계시 내용(EW 78)의 줌 목적은 이 점에 있었다. 대 실망으로 낙심하고 연약하여가는 영혼들을 격려하고 천상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주신 메시지이다(RH Jan. 10, 1856; Feb. 17, 1852).

2. 왜곡된 성경진리 교정의 메시지- 참 예언자는 성경진리를 곡해하는 자들을 교정한다(EW 78; RH Jan. 10, 1856).

3. 진리 확증과 지지의 메시지-엘렌 화잇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향하도록 하고자 함에 있었다(5T 663). 그는 특히 1847-1849년 사이의 안식일 성경연구회의 연구에서 바로 된 것들을 성경이 가르친 진리로 확증하고 지지하였다.

4. 신앙옹호-이미 주신 진리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더욱 생생하게 각인시키기 위하여주어졌다(5T 665), 특히 메신저파의 조직 분리를 이런 시각에서 보면서 재림신앙을 변호하였다(1T 122). 그리고 성경을 생활 상 바른 습관 형성을 위한 원칙으로 삼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서도 주어졌다(5T 663, 664).

5.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권고-어느 특정 개인에게 하나님께 향한 인간의 의무, 인간 상호간의 의무를 명확하게 하고(5T 665). 하나님 백성의 의무를 각성시키고자 주시기도 하였다(5T 665). 이 경우 특히 계시를 통하여 본 개인적 증언들 중 어떤 것은 출판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5T 659).

6. 목사, 교사, 의료 봉사자, 및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권고-설교, 교육, 치료, 및 기타 영역에서 실천적인 많은 메시지들은 이 권고를 담고 있다.

7. 교회 조직 및 세부 조직 강화 격려- 재림운동 초창기부터 교회 조직 체제 및 십일조 등 헌금 운영 체제 확립, 출판사업, 의료사업, 교육사업 등 여러 형태의 조직들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8. 깊은 영적 체험 고취- <정로의 계단> 과도 같은 출판물은 영성계발과 훈련의 전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1888년대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메시지는 재림교회의 영성을 살려 내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9.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표준과 건실한 라이프스타일 강화- 가정, 결혼, 건강, 라이프스타일, 교육 등 삶의 여러 영역에 관련된 개혁의 메시지들이 재림신도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10. 미래에 대한 통찰 제공-그리스도의 재림 소망을 강조하고 그 준비를 진작시켜왔다. 특히 재림 전 심판 시대에 성령의 권능에 의한 개인적 삶의 개혁과 복음선교를 진작 방식을 강조하였다.

11. 헌신 고취-그리스도인이 되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이상의 역할, 즉 성령의 은사에 따른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기는 일에 헌신할 것을 을 강조하고 있다.

12. 원칙 도출 필요-당대에 관련된 메시지 및 시공 초월 메시지의 양면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엘렌 화잇은 당대 필요로 하는 메시지를 주기도 하였지만 그 안에는 가변적인 당대 상황을 넘어서는 원칙이 되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그 원칙을 도출하여 이어져 가는 시대에 적용하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IV. 엘렌 화잇이 제시한 신학적 방법

엘렌 화잇은 오늘날 조직신학 같은 책을 저술치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들에는 보석 같은 신학적 메시지 내지 통찰들이 넘치고 있다. 존 웨슬리가 조직신학 책을 저술치 않았지만 그가 남긴 설교문, 성경을 해석한 글들, 정기간행물에 게재된 글, 소책자, 및 서한에는 글들에서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이 넘치고 있어 후대 학자들은 그의 신학적 사상을 세워나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의 여러 종류의 보석 같은 글들에도 여러 신학적 사상이나 주제들을 담고 있어 이에 관한 신학적 체계 같은 것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다룬 그의 역할과 다음에 다룰 신학적 방법에 관한 내용에 비추어 보면 그의 사상 체계를 가늠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해서 신학적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천박한 시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신학적 특성, 방법론 및 주요 신학 사상들은 무엇인가? 다음에 그 몇 가지를 예시 매거하기로 한다.

 

A. 개인과 교회를 살리는 단순한 신학

 

참 신학은 역사를 통하여 예언의 성취를 깨닫고, 위대한 개혁운동들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연구하고, 대쟁투의 마지막 장면을 향하여 열국들이 전진해 가고 있는 사건들의 진전을 이해”(MH 442)케 한다. 신학은 인생에 대한 넓고 포괄적인 견해를 제공해 줄 것”(MH 442)이며, “정신과 심령을 위한 양식”(MH 442)을 제공하는 것이라야 한다.

신학은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으리만큼 단순하여야 한다(MS 156, 1898). 그러면서도 엘렌 화잇은 신학은 완벽하며, 장엄한 특징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Special Testimony on Education, 53). 이 단순한 신학적 이론의 핵심적인 진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 이슈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응결된 신학은 한 인간의 뇌, 마음, 손과 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실천성을 지닌다.. 더 나아가서는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하나님의 품성의 열매를 생성케 한다.우리가 설립한 모든 교육기관에서 가장 단순한 신학적 이론을 가르쳐야 한다. 이 이론 가운데 그리스도의 속죄 문제를 중대한 요지로 삼아야 하며 핵심적인 진리로 취급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구원에 대한 놀라운 주제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MS 156, 1898; Ev 223).

 

B. 기피하여야 하는 신학적 방법들

오늘날 신학교육에서 성경 이해를 위한 방법으로 풍미하고 있는 역사비평주의라는 것이 17세기에 시작하여 19세기와 20세기에 그리스도교계에서조차도 크게 호응을 얻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역사비평주의 시각에서는 이른바 원래의 성서시대의 메시지를 과학적으로 추출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본문비평, 자료비평, 양식비평, 전승비평, 편집비평, 문학비평 등 여러 비평 방법들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엘렌 화잇은 이러한 신학적 방법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 “학교에서 하는 성경 공부에서까지도 실로 값으로 말할 수 없는 값진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 진의(眞意)를 빼앗기고 있는 일이 너무나 자주 있다. (성경을) 해부하고(dissecting), 추측하고(conjecturing), 재구성하는(reconstructing) 고등 비평주의 (higher criticism)의 작업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믿음을 파멸시키고, 인생을 제어하며 고양시키며 영감을 주는 권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빼앗고 있다”(Ed 227).

이런 비평적 방법을 두고 재림교회는 엘렌 화잇의 메시지에 입각하여 1986년 채택한 성경연구방법(The Method of Bible Study)”라는 성명서에서 경건한 믿음과 순종을 약화시키고 초자연주의적 요소들을 평가절하 시키는 역사비평주의를 배척하고 있다.

진화론과 이와 유사한 오류가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각급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야 할 과학의 연구가 사람의 이론과 가설들로 혼합된 잘못된 이론에 의하여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을 조장하고 있다(MH 227).

재림교회의 신학은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성경이라는 형식원리 구호대로 하나님 말씀의 토대 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엘렌 화잇은 종교개혁자들처럼 사변적 무신론(思辨的 無神論)을 공격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하여 지배해 온 철학과 신학에 반대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연구에 몰두하는 것이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해가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청중들의 마음을 철학자나 신학자의 궤변에서 돌이켜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영원한 진리로 돌아오게 하고자 노력하였다”(GC 126).

엘렌 화잇은 중세의 암흑시대에 기원을 둔 성경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잘못된 해석의 결과는 인간 사후의 영혼의 존재라는 영혼불멸론과 지옥영벌론을 들고 있다. 빗나간 신학의 특징은 인간의 상상에 토대를 둔 것들이다(GC 126; CT 380). 신학적으로 주요한 신학적 주제들로 배척해야 하는 것들은 영혼불멸론(GC 551). 사자의 영(GC 551), 지옥영벌론(4SP 356), 사자의 의식론(The Faith I Live By 174), 일요일 성수론, 도덕적 율법 폐기론 (GC 260-264), 범신론(Maranatha, 133), 거짓 성화론(Maranatha, 134) 등으로 이런 잘못된 이론들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교정되어야 한다(5T 710, 711)고 보았다.

엘렌 화잇은 성경으로부터 획증된 직설적이고 명쾌한 진리인양, , 이른바 과학적 신학(scientific theology)”이라고 하는 미명을 내세워 20세기 초 재림신도들을 현혹하는 일들이 일어난 현상을 두고 엄히 경계하였다. 이런 예리한 진술들을 살펴 볼 때 엘렌 화잇은 당대 신학적 연구의 방법론으로 풍미하기 시작하고 있는 진화론적 밥법, 자유주의와 역사비평주의 해석 방법의 문제성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런 신학적 사조들이 오늘날 신학계에 널리 유포 보급된 상황을 살펴보면 예언자의 선견적 경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진술은 이런 시각을 종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도 시대에 사람들이 유전과 철학으로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려고 노력한 것처럼 오늘날도 의의 원수는 고등 비평, 진화론, 강신술, 접신술, 범신론(汎神論)등과 같은 호감이 가는 이론들을 사용하여 영혼들을 금단의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은 기름 없는 등과 같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오해와 혼란을 야기시키는 추론적인 신조의 통로로 저희 마음을 돌린 까닭이다. 해부하고 추측하고 재구성하는 고등 비평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신앙을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간의 생활을 제어하고 향상시키고 감명시키는 능력을 빼앗고 있다. 강신술에 의하여 군중들은 욕망이 최고의 법이며 방종은 자유요, 인간은 자신에게만 책임을 진다고 믿도록 가르침을 받는다”(AA 474).

오늘날의 세상에 있는 상태는 어떠한가? 성경을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 당시의 유전과 유대의 율법주의로 파괴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고등 비판과 인간적 이론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파괴되고 있지 않는가?”(MH 142).

 

C. Sola scriptura 방법

 

바로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엘렌 화잇은 참 신학이야말로 성경에 그 토대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시각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행위의 규범이 되기 때문이다(EW 78). 이미 그의 역할에서 보았듯이 엘렌 화잇은 하나님 백성들을 성경으로 인도하여 성경의 이해를 돕고, 성경의 원칙을 적용하는 일을 고취하고 있다. 이에 그를 통하여 주신 메시지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원칙의 토대에 굳게 서도록 돕는데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Sola Scriptura(오직 성경) 원리란 그리스도인 구원, 신앙 및 삶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성경에 명확하게 다 들어 있어 평범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곧 이해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권위의 원천으로 “sola scriptura"의 기치를 내 걸었다. 그들은 성경만이 신앙과 실천 문제에 있어서 배타적이고 최고의 궁극적인 권위가 된다고 보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성경에 체현되어 있는 신적 계시에 토대를 두고 있다. “Sola scriptura 는 종교개혁의 형식원리가 된다. 이 형식 원리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신앙과 삶의 전체를 개혁하려는 교회의 사활이 달린 원리가 된다. 성서는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궁극적, 절대적 권위를 지녔다.

재림교회는 종교개혁 이래로 프로테스탄트의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행위의 규범으로 참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관을 펼쳐 왔다. "오늘날은 개혁자들의 교훈과 모본에서 멀리 떠나 있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았던 위대한 프로테스탄트의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GC 204, 20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GC 402).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성경, 오직 성경만을 모든 교리의 기준과 온갖 개혁의 기초로 삼아 지지하는 백성을 가지실 것이다”(GC 595). "성령은 성경을 대신하기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으며, 또 주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교훈과 경험을 시험하기 위한 표준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GC vii).

나는 그대가 성경만을, 오직 성경만을 우리 신앙의 기초로 내세우는 그대의 주장에 적극 찬성하는 바이다”(2기별, 85). “오직 성경만이 우리들의 유일하신 신경(creed)이 되고 연합의 유일한 증서이다”(1기별, 416).

현 세대의 어떤 그리스도인 교사도, 과거의 어떤 종교 개혁자도 성경에 이토록 높은 가치를 두지 않았었다. 화잇 여사의 모든 저술에서, 성경은 모든 책 중의 책이며 전 인류 가족을 위한 최고의, 충분한 안내자로 묘사되었다. 그의 저서 가운데서는 어떤 고등 비평새로운 사상의 자취나 회의적이고 파괴적인 철학을 조금도 찾을 수 없다. 여전히 성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전혀 오류가 없는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화잇 여사의 저술들 가운데 제시된 긍정적이고 강력한 지지를 매우 높게 평가할 것이다”(자서, 471-472).

엘렌 화잇이 성경과 성경만이...우리의 신앙의 규범이 된다고 언급하였을 때 그것은 인간의 말과 행위에 대비시키면서 한 표현이었다(Counsels on Sabbath School Work, 84). 그에게 있어서 sola scriptura 표현은 인간의 전승과 이론에 대척적으로 사용되었다. “성경 말씀, 오직 성경만을 설교단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선지, 626).

그는 sola Scriptura 원리가 성경이 성경의 해석자가 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대전제를 분명히 지지하고 있다. “성경은 그 자체의 해석자이며, 한 성경절이 다른 성경절을 설명해 준다. 동일한 주제에 관련된 성경절들을 비교함으로써 그대는 결코 꿈꾸지 못했던 아름다운 조화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책 중의 책을 숙독하는 것만큼 정신을 강하게 하고, 크게 하고,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하는 다른 책은 없다. 성경 연구는 정신에 새로운 활기를 주어, 진지한 생각을 요구하는 주제들과 연결을 이루게 하고, 계시된 진리들을 이해할 능력을 위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4T 499; Ev 581; GC 521).

엘렌 화잇의 메시지는 이 성경을 고양함에 있다.

기록된 증언들은 새 빛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이미 계시된 영감의 진리를 마음에 생생하게 새겨 주기 위해서 주어진다. 하나님과 그의 동료 인간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하게 상술되어 있지만, 받은바 빛에 순종하는 자는 그대들 가운데 별로 없다. 추가된 빛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어진 위대한 진리들과 증언들을 통하여 단순하게 하셨고 또한 당신의 택하신 방법을 통하여 그 진리로 마음을 각성시키고 감명시키기 위하여 그것들을 백성들 앞에 제시하셔서 아무도 변명의 여지를 갖지 못하게 하신다”(5증언, 665).화잇의 증언은 성경에 추가된 새로운 빛이 아니다(2T 605).

재림교회는 성경시대 뿐만 아니라 전 역사 시대에, 그리고 마지막 때에 예언적 선물이 주어질 수 있다고 보아 왔다. 그러나 성경은 그 예언적 선물의 진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성경경전은 각 시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별이지만 경전에 들지 않은 계시는 그 계시가 주어진 그 시대를 위하여 주어진다.

성경과 엘렌 화잇의 저술은 창조주일의 두 빛의 예증으로 비교되고 있다. 엘렌 화잇은 창세기 1:16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성경을 "큰 광명(the greater light)"으로, 자기의 저술은 성경을 설명하는 "작은 광명(the lesser light)"(설명계시)으로 빗대어 진술하고 있다. 성경은 망원경이라면 화잇의 저술은 좀 더 세밀하게 비추어 주는 현미경과도 같다. 성경이 국가지도라면 화잇의 저술은 지방지도에 해당한다. 성경이 40여명의 기자들이 40여개의 촛불이라면 화잇의 저술은 하나의 촛불이다. 화잇의 저술은 성경의 빛을 달라진 시대 달라진 환경에 적용시킨 빛이다. 화잇이 여러 기별을 저술한 것은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의 말씀에 순복하도록 함에 있다. 엘렌 화잇은 끊임없이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거룩한 실재로 임재하시며 교회는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권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V. 주요 신학적 주제들

A. 일반적 주제들

1. 하나님의 사랑

<대쟁투 총서>의 첫 책 <부조와 선지자>(1890)의 시작하는 말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이다 (p. 33)라는 말씀으로, 총서의 끝 책 <각시대의 대쟁투>(1888) 마지막 진술 역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로 끝맺고 있다 (p. 678).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주제와 후에 살펴 볼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 사관은 엘렌 화잇의 사랑의 신학의 무대가 되며 틀이 되는 지반적 주제가 된다.

나이트(George Knight)는 이 두 주제 중에도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 쟁투 이전부터 존재하여 온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중심이 되고 통섭적 주제로 꼽고 있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사관은 이 하나님의 사랑이 줄기차게 진전하면서 승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 사관은 엘렌 화잇의 사랑의 신학을 증폭 발전시켜 온 신학적 얼개와 무대가 된다는 차원에서 역시 그의 신학의 기조가 되는 것이다.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이므로 모든 지성적 존재들의 행복은 그들이 이 의의 대원칙과 완전히 일치함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로부터 사랑의 봉사 곧 당신의 품성을 인식함으로 솟아나는 봉사를 원하신다. 그분은 강제적 굴종을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모든 존재로 하여금 당신께 자원하여 봉사하도록 그들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신다”(PP 34).

엘렌 화잇은 영성훈련의 보감이라고 할 수 있는 <정로의 계단> 서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름다운 필치로 묘사하면서 그 완전한 현현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나타났다고 한다.

천연계와 계시(啓示-성경을 의미함)는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SC 9).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매우 거룩하고 행복스럽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땅이 조물주의 손으로 창조되었을 당초에는 쇠퇴의 증상(症狀)이나 저주의 음영(陰影)이 도무지 없었다. 그렇던 것이 비애와 사망이 이 세상에 이르게 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사랑의 율법-을 범한 까닭이다. 그러나 비록 죄의 결과로 생기는 고통 중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 있다”(SC 9).

이 세상이 비록 타락하기는 하였으나 모두가 슬픔과 비애 뿐만은 아니다. 천연 그 자체 가운데서 희망과 위안의 기별을 찾을 수 있다. 엉겅퀴에도 꽃이 피고 가시덩굴에도 장미꽃이 덮인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라는 문구는 방싯방싯 피는 꽃봉오리마다 뾰족뾰족 돋아나는 풀싹마다 기록되었다. 공중을 즐거운 노래로 충만케 하는 아름다운 새들, 향기를 풍기는 연연하고 고운 꽃들, 잎이 청청하게 무성한 수풀의 교목(喬木), 이 모든 것은 우리 하나님의 인정있고 자부적(慈父的)인 권고(眷顧)와 그 자녀를 행복되게 하시려는 그의 갈망을 증거하는 것이다”(SC 9-10).

그러나 이러한 것도 그의 사랑을 나타내기에는 충분치 못하였다. 이러한 모든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의 대적은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공포심으로 대하게 되고 또 하나님을 가혹하고 용서성이 없는 이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단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은 그 주요 특성이 엄혹하게 처단하시는 자 - 엄격한 법관이나 각박하고 인색한 고리 대금업자 - 와 같이 생각하게 한다. 또한 사단은 조물주는 사람들의 허물과 잘못을 찾아내어 저들에게 벌을 주려고 질투적 눈으로써 항상 주목하는 자처럼 보여준다. 예수께서 인류 가운데 사시려고 오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심으로써 이러한 몽매한 오해를 없이 하시기 위함이었다”(SC 10-11).

엘렌 화잇은 <시대의 소망>의 들어가는 진술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을, 그리고 끝맺는 진술에서 그 사랑의 승리를 갈파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일체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하심의 모습이며 그의 영광의 광채이셨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죄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드러내시려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시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그에 대하여 예언되었다”(DA 19).

사랑이 승리했다. 잃어버렸던 자들은 찾은바 되었다. 하늘은 큰 음성으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5:13) 라고 선포하는 소리로 진동한다”(DA 835).

이런 진술들에 비추어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에서 마침내 승리한다. 대쟁투사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한다는 이 구도는 성경을 풀어내는 기본 원리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유한한 에너지 이상이며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고 치유하는 에너지도 된다(CT 495; Mind, Character, and Personality 1:250). 이 사랑은 죄로부터 구속의 놀라운 일을 하여 인간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한 인간 안에서 활력을 불어넣고 치유를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과 정의(공의)의 관계에 관하여 전통적으로는 양자를 분리하여 이해하여 왔다. 그래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는 개인 윤리의 기조로, 다른 하나는 사회 윤리의 기조로 본다. 마르틴 루터, 에밀 브루너(Emil Brunner)가 이런 대표적 시각을 지녔다. 그러나 폴틸리히(Paul Tillich)는 사랑과 정의를 분리하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동일시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사랑은 소외되었던 존재를 하나로 결합하는 힘으로, 정의를 동 결합을 가능케 하는 형식으로 본다. 라인홀드 니버(R. Niebuhr)는 사회윤리의 결정적 원칙은 사랑이 아닌 정의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브루너의 이원론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사랑의 목표 아래 정의를 구현하여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니버는 사랑이 곧 정의의 완성이라는 변증법적 관계를 강조한다. 조셉 플레처(Joseph Fletcher)의 상황윤리는 사랑과 정의를 등식적으로 이해하여 문제성을 안고 있다.

엘렌 화잇은 공의와 자비는 쌍둥이 자매로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본다(4T 209). “공의는 쌍둥이 자매인 사랑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야 한다”(5T 559). 그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통합시키거나 분리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율법과 연계시키고 있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하나님의 계획에는 이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85:10)"(DA 762).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다. 공의는 이 사랑의 다른 측면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그 분의 거룩함과 거룩한 율법의 죄에 대한 반응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죄에 대한 반응이며 혐오인 것이다. 그의 진노는 죄에 대한 혐오이며 악과 싸우시는 거룩하신 모습을 보여주신다.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의 다른 측면에 있는 공의의 요청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다(2;3). 우리는 진노의 대상, 즉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진노를 담당케 하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의 분노는 한 순간에 불과하다(30:5). 하나님의 진노를 배척하는 것은 그의 완전한 통치권을 약화시키거나 배척하는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공의는 사랑의 강인한 국면이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사는 이 사랑과 공의 완전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참된 사랑과 공의는 서로 연합되어 있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공의는 범죄에 대한 상응한 처벌을 요청한다. 공의가 동력을 일으키는 모터라면, 사랑은 그 방향타가 될 것이다. 사랑이 비전이라면, 공의는 그에 대한 지시가 된다. 사랑은 공의의 실행을 요청하고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도록 한다. 사랑은 공의를 풍요하게 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하지 않고 역동적인 관계를 지닌 것으로 보는 시각은 사랑과 정의를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라는 이원론으로 접근하는 한계점을 극복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심판, 및 하나님의 보응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상호간 역동적 상관관계를 지닌 것으로 나오고 있다.

 

2. 구원의 기초가 되는 영원한 은혜언약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삼위 하나님이 하늘 회의에서 구원의 기초로서 영원한 자비의 은혜 언약을 수립하였다. 이 영원한 은혜 언약은 영원 전에 존재한 셈이다. 하나님이 안 계셨던 때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은혜언약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구속의 경륜은 신성의 가슴속에 담긴 하나님의 비밀이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지 능력에 기초하여 인간 창조 이후의 타락 가능성을 예지하시면서 그에 대한 대처로 영원 전에 평화의 의논(council of peace)"에서 구속의 경륜을 세우셨다. 하늘 회의에서 성부와 성자가 주로 의논한 것으로 나오지만, 인간 구원은 중요한 일이 되어서 거룩한 삼위가 모두 참여하는 것을 요청하였다. 아버지, 아들 및 성령께서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자녀로 삼기로 서약하였다“(Jan. 27, 1903).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성자(聖子)의 사랑보다 약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이 타락한 인류의 구원의 기초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시기 전에 그들에게 내게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16:26, 2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셨다. 하늘 성소의 봉사로써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을 이루셨다”(GC 416-417).

아버지께서는 사람들 중에 살고 있는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그의 사랑을 베푸셨다....

하늘 회의에서 인간이 비록 범죄자가 되었지만 불순종 가운데서 멸망당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자와 보증인으로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는 사람의 속정을 지불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충분한 준비를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ST Jan. 2, 1893; 6BC 1114). 성부 하나님의 사랑은 구속의 경륜의 기초가 되어 영원한 구속언약이 마련된 것이다.

인류 구원은 하늘 회의의의 대상이 되었다. 자비의 언약이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마련되었다.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였기에 이것을 영원한 언약으로 부른다.” 영원한 언약이 구체적인 대상과 맺은 아브라함언약(17:3-7, 13, 19; PP 370), 시내언약(31:16; 24:8; 대상 16:14-18; 7BC 981), 다윗언약(삼하 23:5), 노아언약(9:16; 1BC 1091) 등 은혜언약으로 나타난다. 이들 은혜언약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영원히 인이 쳐졌다(7BC 933).

 

3.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은혜 언약에 담간 구속의 경륜의 핵심적인 진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율법의 공의를 만족시킨 형벌 대속적인 즉음을 당하신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 그리스도의 갈보리에서의 속죄사역을 대 중심으로 보았다(4BC 1173). “가장 위대한 중심적 관심, 곧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에게서 마음을 돌이킬 만한 것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목사, 331). “(성경학도)는 성경의 중요한 중심 재목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 목적, 대쟁투의 시작과 구속 사업의 기원에 대한지식을 얻어야 한다”(Ed 190).

엘렌 화잇은 대쟁투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중요한 현현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인류를 구원케 하신데 있다고 보았다. 그는 속죄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이 구속받을 수 있는 한 경륜을 입안하셨다. 깨어진 하나님의 율법은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였다. 온 우주에서 사람을 위하여 이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이는 한 분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므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만이 범법을 속죄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밖에는 아무도 타락한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하늘과 조화시킬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책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매우 가증하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틀림없이 분리시킬 죄의 수치를 자진해서 떠맡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비참의 심연(深淵)에까지 내려가실 것이었다”(PP 63).

속죄물로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은 다른 모든 진리가 거기 매달리는 진리가 된다. 이는 또한 성경 진리 이해의 첩경이 된다.

죄의 속죄물로서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이야말로 위대한 진리이며, 이 진리 주위에 모든 다른 진리들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진리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갈바리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을 통해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GW 315).

이런 시각에서 팀(Alberto R. Timm)은 이 핵심적 메시지를 큰 중심이 되는 메시지로 보는 화잇의 시각을 논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속죄는 일직선상에 있다. , 이 속죄의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구속하시는 영원한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께서 어찌 존귀와 위엄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바로 그분이 구원하시려 오신 그 사람들에 의해 소홀히 여김을 받으시고, 멸시 받으시고, 거절을 당하시고 급기야는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까! 그 사랑은 영원히 신비로 남게 될 것이다”(2T 207).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의 정당성을 선포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그분은 타락한 인간을 그 저주에서 구원하시려고 그 자신이 율법의 형벌을 당할 것에 동의하셨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의 법의 불변성을 나타낸다. 그분의 죽음은 율법을 중하게 하며 귀하게 하며, 율법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인류에게 증거한다”(2T 201).

그의 저서들은, 거룩한 성경에 제시된 대로, 복음은 유일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는 교리를 굳게 고수하고 있다. 인도의 어떤 철학이나 버마와 중국의 어떤 윤리적 강령도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에 견줄 수 있는 것으로 결코 인정되지 않았다. 이 복음만이 잃어버린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성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가능하게 하신 모든 것을 인간의 마음과 생애 속에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여 지상에 보내신 하늘의 교사와 안내자로 제시되었고 높임을 받았다”(LS 47).

 

B. 엘렌 화잇의 지계표적 메시지 주제들

우리는 앞에서 신학 일반론적 시각에서 엘렌 화잇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주제들을 살펴보았다. 그 위에 엘렌 화잇은 이른바 옛 지계표가 되는 독특한 교리들을 열거하고 있다. 미네아폴리스 회의 때 보석 같은 진리를 주셨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엘렌 화잇은 지계표가 되는 교리들을 주셨다고 강조하여 제시하였다(MS 13, 1889; CW 30).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옛 지계표를 보존하는 데 있다”(5T 199).

옛 지계표 교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요지부동의 견고한 진리의 단 (a solid. immovimmovable platform)" (EW 258)을 떠받들고 있다. “나는 계시 가운데서 견고한 목재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들로 짜여진 연단(演壇)을 보았다.”(1SM 204). 진리의 단을 떠 받들고 있는 믿음의 기둥들(the pillars of our faith)" (1SM 204; 2SM 387)은 하늘성소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봉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조건적인 불멸(영혼수면론), 변개가 불가능한 하나님의 율법의 구도 안에서의 안식일, 세 천사의 메시지이다.

 

1. 성경의 모든 진리를 조직시키는 동인이 되는 성소진리

성소교리는 재림교회가 다른 교파들과 다른 점을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진리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중보사역이 그 핵심이 되는 천상성소 정결 사업, 이 천상성소 사역을 가능케 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사역, 우리 신앙의 기초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봉사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된다” (Letter 208, 1906; 전도, 221).

하늘에 있는 성소는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그리스도의 사업의 바로 중심이 된다. 그것은 세상에 사는 모든 영혼들과 관계가 된다. 그것은 구속의 계획을 밝히 보여 주고, 시대의 제일 마지막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서 의와 죄 사이의 투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나타내 보여 준다”(GC 488).

하늘 성소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긴요하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하실 일은 그분의 죽으심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6:20)신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는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나온 빛이 비치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구속의 오묘를 더욱 밝히 살펴볼 수 있다. 인류의 구원은 하늘에서 무한한 값을 치르고 완성된다”(GC 489).

구속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이 과학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아니한 다른 세계의 백성들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서, 구주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영세 전부터 감취었”(16:25)던 목적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무궁한 세월을 두고 연구해야 할 학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한 번 해볼 만한 최고의 학문인 것이다. 이 학문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소생케 하고 심령을 고상하게 한다”(Ed 126).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천상성소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적용되어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영원한 연구 주제가 된다. 다니엘 8:142300주야의 끝은 1844년에 이른다. 1844년은 화잇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천상성소의 봉사의 둘째 국면을 열어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정결과 성소를 마지막 때 회복시키는 일이 시작된다.

성소 문제는 1844년의 실망의 신비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큰 재림운동을 지도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와 현재의 의무를 가르쳐 줌으로 진리의 완전한 체계( a complete system of truth)가 상호 연결되고 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 보여 주었다 ”(GC423.)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소 문제와 조사심판에 관한 문제들을 명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크신 대제사장이 하시는 사업과 그 일에 대한 자기들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들은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을 활용하거나 하나님께서 저희들로 하여금 채우시려고 하시는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은 그 영혼을 구원하든지 잃어버리게 되든지 하게 될 것이다”(Ev 221-222).

성소교리는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조직되게 하는 완전한 진리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모든 교리들은 금사슬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살아 계시는 중심체로 하여 하나의 완전한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들이 성경을 가지고 증거하는 진리들은 하나님의 보좌처럼 견고하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2SM 87).

성소에서 나온 빛은 과거, 현재, 미래를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GC 423).

 

2. 세 천사의 메시지,

종말론적 기별인 요한계시록 14:6-12에 나오는 세 천사의 메시지는 현대진리의 견고한 요지부동의 (토대)(solid, unmovable platform of the present truth)”이 된다.

"나는 교회의 견고한 믿음을 흔들려고 하는 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우 신중하고 확고하게 서 있는 한 무리를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기쁨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세 계단으로 되어있는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을 보았다. 나와 함께한 천사가 말했다. "이 기별들로부터 한 덩치를 빼거나 바늘 하나라도 움직이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이 기별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든 영혼들의 운명은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있다." 나는 이 기별의 시종(始終)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경험들을 보았다. 그들은 심한 투쟁과 고난을 치르었다. 그들이 견고한 요지부동의 단 (a solid, immovable platform)위에 세워지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발걸음을 끊임없이 인도하셨다“(EW 258).

종말론적으로 전파되어야 하는 요한계시록 14:6-12에 나오는 세 천사의 메시지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 된다고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EW 256).

나는 세 단계로 되어있는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을 보았다. 나와 함께한 천사가 말했다. ‘이 기별들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이 기별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든 영혼들의 운명은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있다.’ 나는 이 기별의 시종(始終)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경험들을 보았다. 그들은 심한 투쟁과 고난을 치렀다. 그들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세워지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발걸음을 끊임없이 인도하셨다. 나는 그들이 하나하나 토대에 접근하여 그 터를 시험해보는 것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기뻐하며 그 토대를 밟고 나섰으나 어떤 이들은 그 토대의 흠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토대가 개선되고 완전해져서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하게 되기를 바랐다. 또 어떤 이들은 그 토대에서 내려와 시험해 보고는 그것이 잘못 놓여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거의 대부분의 무리가 그 토대 위에 굳게 서서 뒤로 물러난 자들에게 불평을 하지 말도록 권면하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건축의 대가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분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 이 견고한 토대로 자기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들을 낱낱이 이야기하면서 연합하여, 눈을 하늘로 향하고 소리를 높여 찬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불평하면서 그 토대를 떠났던 자들 중 얼마는 이들의 감화를 받고 겸손히 다시 그 토대 위로 올라섰다”(EW 258-259).

이 세천사의 메시지는 종말론적으로 남은 백성들이 전파하여야 할 사명을 제시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사단의 공격(13:3, 8, 14-18)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며 호소가 된다. 이 세천사의 메시지는 요지부동의 진리의 단에 오르는 세 계단과도 같다.

 

3.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율법과 복음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4:12)고 말하였다. 이것은 곧 율법과 복음을 의미한 것이다”(2SM 385).

셋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포되어 왔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같은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인들에 의하여 선포되어 오지 못했다. 율법과 복음은 함께 나아간다. 나는 이 주제를 완전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다”(3SM 172).

만일, 우리가 세 천사의 기별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능력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율법과 복음을 함께 소개하여야 할 것이다.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땅에 속한 한 세력이 불순종의 자식들을 동요시켜서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라는 진리를 유린하는 한편, 위에 속한 한 능력은 충성되고 율법을 높이며 예수님을 온전한 구주로 받드는 자의 마음에 역사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거짓 교리와 거짓 사상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잃어버리게 되며, 따라서 그 믿음은 능력과 생명이 없어질 것이다.”(GW 161)

엘렌 화잇은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 안식일, 예수의 믿음을 두고 변역이 불가한 진리로 못 박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율법 중 단 한 가지 계명도 변화시키거나 고칠 수 없으시다. 그 이유는 율법이 당신의 정부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율법은 변할 수 없는 것이며 고칠 수도 없고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또한 율법의 명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서 당신 자신을 바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죄를 아시지 못하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갈보리에서 돌아가셨다. 주님의 죽으심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당신의 율법의 불변성을 나타내었다”(1SM 239-240).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저주를 지셨으며 그 율법의 징벌을 받으셨고 당신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었던 위치에 인간을 두시기 위하여 또한 구세주의 공로를 통하여 인간이 용납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모든 계획을 수행하셨다. 당신의 희생에 의해서 영광이 율법 위에 비치었다. 그 때에 폐지되어서는 안 될 율법, 의의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의 영광은 폐지되어야 할 율법의 종국을 바라본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밝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1SM 240). 넷째 계명, 안식일 계명의 불변성은 당연하다.

웨슬리는 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율법은 끊임없이 복음을 위한 길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로 가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복음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여 율법을 더욱 정확히 성취시키도록 한다. 예컨대,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성결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모든 요구에 대하여 부족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마는 이처럼 사랑을 주고, 겸손하고 성결케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게 된다. 우리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을 붙들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GC 263).

원수는 항상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켜 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나란히 행할 것이다”(MS 11, 1893; 화잇주석, 3:31).

율법과 복음은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복음은 율법을 높이고, 율법은 복음을 높인다. 양자가 모두 다 나름대로의 위엄을 갖고 있으며, 율법은 양심과 마주 대하여 서서 죄인이 그리스도 곧 죄를 사하시는 속죄 제물로서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준다. 복음은 율법의 능력과 그 불변성을 승인한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느니라고 바울은 말한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죄에 대한 느낌이 사무칠 때 죄인은 구주께로 달려간다. 우리는 죄인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서 갈보리 십자가가 제공하는 강력한 이유를 제시할 수가 있고, 그리스도의 의를 주장할 수가 있다. 이는 회개하는 모든 죄인에게 그 의를 나누어 주시기 때문이다“(RH 1902. 4. 22; 화잇주석, 고후 3:7-18; 1SM 240-241).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는 율법과 복음을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과 복음으로 조화를 이룬 기별이 죄를 깨닫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죄를 정죄해 주는 한편,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2:9)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는 복음을 지적해 준다. 복음의 영광은 유대 시대에 빛을 비췄으며 여러 가지 예표(豫表)들과 그림자로 된 유대인의 전체적 제사 제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과 복음은 한가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떤 설교에서도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원고 21, 1891”(Ev 231)

율법과 복음은 날줄과 씨줄처럼 섞여 짜져야 한다. 여기에서 자비와 진리가 서로 만났으며,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기를 원한다. 그분은 인간의 지성을 지배하는 한 율법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을 준수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불순종으로 이끄는 사랑은 마귀의 영감이며, 순종으로 이끄는 사랑은 하늘의 영감이다.”(2설교, 97)

복음을 믿고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5:39)고 말씀하신 구약을 배척한다. 그들은 구약을 거절함으로 사실상 신약도 거절하고 있다. 왜냐하면 둘은 전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복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올바로 소개할 수 없으며, 또한 율법이 없이는 복음을 바르게 소개할 수 없다. 율법은 구체화된 복음이며 복음은 율법을 펼쳐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뿌리가 되고 복음은 향기나는 꽃과 그 꽃이 맺는 열매이다.

구약은 신약에 빛을 비춰 주고 신약은 구약에 빛을 비춰 준다. 이 둘은 각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다. 이 둘은 다 간절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항상 새롭고 깊은 의미를 나타내 보여준다”(COL 128).

“E.J. 와그너목사는 율법과의 관계로 본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와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그의 견해를 분명하게 제시할 특권을 받았다. 이 것은 새 빗이 아니었으나 셋째 천사의 기별 속에 반드시 차지해야할 옛 빛이었다” (MS 24, 1888).

엘렌 화잇은 율법과 복음의 조화성을 구원론에서도 적용하고 있다. 그는 루터의 칭의 개념과 웨슬리의 성화 개념의 종합시키는 구원관 투시 속에서 칭의와 성화의 관계 도식 원리를 내다보고 있다. 칭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사역에 속한다.

주님께서 그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에게 전가시키시며 온 우주 앞에서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그는 자신의 죄를 죄인의 대리자이시며 대치물이 되시고 담보물이 되시는 예수님께 맡겨 버린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영혼들의 죄악을 떠맡으신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1SM 392)

이렇게 하여서 죄인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상호 교환적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칭의는 전적으로 은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행위로도 얻을 수 없다”(FW 20). “회개한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이 속죄를 이생과 내생의 유일한 소망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죄가 용서를 받는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이다. 모든 믿는 영혼은 자신의 뜻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고 회개와 뉘우침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구속자의 속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나타내어 능력에서 능력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전진해야 한다”(믿음, 103). 이렇게 하여 인간을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시키는 은혜 사역을 율법이 요구하는 의, 곧 하나님의 품성을 이루어 가는 성화에까지 넓혀가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히 우리를 정죄에서 면하게 해주는 사법적 행위만이 아니다. 그것은 죄를 위한 용서일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교정해 준다 (It is not only forgiveness for sin, but reclaiming from sin.).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구원하는 사랑의 표현이다”(MB 114).

칭의는 죄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 사역인 성화로 이어져 자라게 한다. 이 성화는 그리스도께 이르기까지 자라남이다.(SC 67) 이 은혜에 의한 한 평생의 과업” (COL 65) 되는 성화는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자기 굴복(순종)의 과정이다. 이 품성의 완전이 목표가 되는 성화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이 그 핵심인 거룩한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 되는 율법의 의가 이루어져 가게 하는 은혜 사역이 된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 곧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자라나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품성에 무르익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의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그대의 신념이 더욱 확고해져서 그대의 사랑이 온전하게 될 것이다. 순결하고 고상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 가운데서 그대는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 많이 반사하게 될 것이다”(COL 68).

 

4. 천년기 전 그리스도의 문자적 재림 시 조건적인 영혼 불멸론과 악인의 멸절론

천년기 전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은 엘렌 화잇의 종말론적 지계표가 된다 (GC 4040.“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참조; GC 546-548).

엘렌 화잇의 천년기 사상은 윌리엄 밀러의 천년전 재림론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온 세계가 개혁되어 복천년에 들어간다는 천년 후 재림론을 배격하고 있다. 온 세상에 세 천사의 복음적 메시지가 선포되고 환난이 임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GC 613-634). 엘렌 화잇의 종말론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은 인간 (사후)의 조건적 불멸, 부활과 연계되어 있다. 영혼불멸론의 주장, 곧 신자가 죽으면 그 영혼이 죽지 않고 승천한다는 식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게 되고 악인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한다는 악인 형벌론은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시키고 죄 문제 해결을 영원토록 미완으로 두고 마는 결과가 되고 만다. 천년기 끝에는 죄와 악, 죄인과 반역한 천사들을 완전하게 멸절되게 되어 있다(GC 657, 662-673). 엘렌 화잇의 종말론은 천년전 재림론으로 포장한 세대주의적 비밀 휴거와 영광스러운 나타남이란 2단계 재림론 사상을 배척한다.

C. 엘렌 G. 화잇의 역사철학

1. 대쟁투사관

2세기의 유명한 천문학자, 수학자, 지리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 클라우디오스(Ptolemaios Klaudio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설을 더욱 조직화하여 지구 중심의 천동설을 주장하였다.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그의 천동설은 1400여년 간의 세계관의 지반이 되었다. 이에 반하여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였고 이 지반에서 구축된 세계관이 그후 400여 년 간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 지동설적 세계관은 아인슈타인의 전 우주가 모두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상대성원리에 그 자리를 빼앗겼다. 광할한 우주 공간 내 운동하는 모든 천체는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이 거시적 원리는 현대 세계관 구축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사실상 우주 그 자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과학자들이 우주를 보는 지식과 이론이나 방식이 달라져 왔을 뿐이다.

세계와 사회의 여러 현상의 근원적 실체원리는 무엇인가? 우주와 역사의 여러 사건들에 어떤 목적이나 뜻이 있는가? 헤로도터스로 부터 유물사관, 유심사관, 인격사관, 구속사관 등 여러 가지 세계관이나 역사관이 이에 대한 답변을 추구하여 왔다. 같은 역사, 세계를 보는 방식은 이렇게 다르게 파악되었다. 개신교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속사관을 통하여 세계와 역사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구원사관 이해에는 거시적 세계관이나 역사관 구축이 미흡하다. 성경의 갈피갈피에 배어있으며 구속사를 관통하고 있는 세계관은 선과 악,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우주적 대쟁투라는 거시적인 축이다. 엘렌 G. 화잇은 이 거시적인 축을 중심으로 성경의 구속을 해독하고 구속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점이 그의 선견자성을 돋보이게 한다. 그의 대쟁투 계시는 인류 역사상 수다한 철인들의 의문을 파하고 악에 대한 선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그곳을 보증하여 주는 예견적 투시를 하는 역사철학이다.

이 대쟁투 사관은 지상적인 것을 중심으로 한 사적 유물론과는 달리 그리스도 중심의 사관이다. 이는 추상적인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대결이 아닌 그리스도(미가엘)와 사단이라는 두 인격 사이의 투쟁이다. 그리고 충성한 천사와 반역한 천사들 사이의 투쟁이다. 이 투쟁 가운데 처하여 있는 인간에게 어느 한편을 선택하고 그에 충성을 요구한다. 하나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분께 충성하며 그 분을 증거하여야 하므로 고난의 길을 결단하여야 한다. 이 투쟁은 역사의 진전과 더불어 강화되어 가서 전 세계가 그 무대가 되어 가는 특성을 띄고 있다. 악마의 도구로 전락하여 온 세계에 큰 힘을 발휘하는 정치-종교의 세력이 상호 연대하여 역사의 방향을 잡은 것 같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성도의 승리는 약속되어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의 주 목적은 진리와 오류와의 대쟁투의 실상을 나타내 주고, 사단의 간계(奸計)와 사단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당신의 피조물을 취급하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공의와 자비가 충분히 나타나도록 죄의 기원과 그 최종적인 처리에 빛을 비추어 줌으로 죄악이라는 인생의 큰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하고 변함 없는 성질을 보여 주는 데 있다”(GC xii).

2. 대쟁투의 신학적 함의(含意).

성경과 엘렌 화잇의 메시지의 무대와 틀이 되는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우주적 대 쟁투라는 거대 담론으로서의 대쟁투 사상은 <각 시대의 대쟁투>에만 국한 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전 성경을 아우르고 있어 <시대의 총서> 모든 책의 기조가 된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라는 어휘가 성경에 직접 표현되어 있지는 않으나 그 사상은 풍부하게 나온다. 인간 타락 직후 하나님께서 주신 최초의 구원의 원복음(protoevangelium)이 이 대쟁투적 구도 안에서 선포되었을 뿐만 아니라(3:15), 그 이후 전개되어 온 구속사적 사건들은 그리스도와 사단이 전개하여 온 대쟁투적 성격을 띄고 있다. 이 대쟁투는 하늘에서 시작하여 지상으로 확장되었다(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둠의 권세와 광야에서 싸웠고(4:1-11), 계속하여 축신 활동을 하셨으며(10:1, 29),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고 하고 선한 싸움”(딤전 1:18)을 싸우도록 권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과 같은 묵시문학에 이르러서는 이 대쟁투 구도가 활짝 전개되고 있다.

그는(성경학도) 성경의 중요한 중심 제목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 대쟁투의 시작과 구속 사업의 기원에 대한지식을 얻어야 한다. 그는 주권을 다투고 있는 두 가지 원칙의 성질을 이해하고, 역사와 예언의 기록을 통하여 그 큰 종국에 이르기까지 그 원칙들의 활동을 연구해 보아야 한다. 이 투쟁이 인류 역사의 갈피마다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이 어떻게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정신 중의 하나를 나타내게 되는지, 그리고 자기가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이 대쟁투의 어느 한 편에 스스로 참여하는 자로 결정되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Ed 190).

갈리(Norman R. Gulley)는 재림교회 27개 기본신조들을 간략히 도해적으로 분석한 후 대쟁투적 시각에서 7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 성서적 우주적 쟁투의 세계관, 하나님에 대한 사단의 참소, 인간 창조와 우주적 쟁투에 참여,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인간을 구원코자 오신 그리스도, 구원의 의미, 구원 받은 자로 형성된 교회, 및 역사를 통하여 최후적 사건들의 우주적 쟁투로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로 대쟁투 사관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시각이다. 홀부루크(Frank B. Holbrook)는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 기원, 지상에서 전개과정,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투쟁 전말, 그 이슈들, 교회사적 개요 등을 다루고 있다.

엘렌 G. 화잇의 저술에 나오는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 사이에 전개되어 온 대쟁투는 그의 신학적 모티브로서 다른 주제들에 대한 통합 원리로 나오고 있다. 특히 <시대의 총서>가 각 시대별로 이 대쟁투의 전개과정과 그 주제들을 취급하고 있어 그의 전 사상의 기조가 되고 있다. 대쟁투 계시가 성경과 예언의 신의 기조와 통합 원리가 됨에 따라서 관련 범위와 주제가 광활하다.

세계와 인생의 시작, 선악의 문제, 사후문제, 성소 봉사, 율법, 십자가, 구원 등의 주제가 이 대쟁투 원리와 연관되어 있다. 성서적 여러 교리와 역사를 이 대쟁투 원리의 빛을 중심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 거대 담론을 직접적으로 아우르는 <각 시대의 대쟁투>는 학문적 출처와 일차 자료를 잘 구비한 박사학위 논문이 아니다. 엘렌 G. 화잇은 본서를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계시들과 및 역사적 자료들을 활용하여 저술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는 <각 시대의 대쟁투>의 기본 골격에 주로 관련된 내용인 반면에 사건과 시간, 지리적 묘사 및 교회사 세부적 상항들 등 역사적 자료들을 참조, 인용하고 있다.

엘렌 G. 화잇은 프로테스탄트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을 역사적 자료들에서 활용하였지만 그 초점은 전개시키고 있는 주제를 명료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가 주제의 총괄적 견해를 간단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사건들을 분류했거나 편의상 세부(細部)들을 요약했을 경우에는 그 역사가의 말들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인용한 것은 그 저자를 권위자로 소개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다만 그가 주장하는 바가 주제를 설명하는 일을 쉽게 해주고 힘있게 해주기 때문이다”(GC xi-xii).

 

a) 불가시적 영적 존재의 실재

 

대쟁투 계시를 통하여 천상에서의 영적 존재들 세계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가 밝혀졌다. 인간은 원래 완전하게 창조되었다. 그의 뜻은 창조주의 뜻과 조화되어 이어 식욕과 정욕은 모두 이성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 창조 이전에 천사들을 창조하였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천사들이 하늘 보좌를 에워싸고 있다(5:11). 이들은 구원받은 후사를 섬기는 영으로(1:12) 인간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8:5)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수행한다(103:20). 인간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기도 한다(13:1). 이 천사 세계의 우두머리는 루스벨(hêlel, Lucifer)이었다. 라틴어 루스벨이란 말은 빛을 발하는 자 (전달하는 자)”란 뜻이다. 이사야 1412절의 계명성(Day Star)”KJV번역이 Lucifer로 나와 있다.

루스벨은 천계에서 권위와 능력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다음 지위에 있으며 천사들의 우두머리였다. 루스벨은 인간 창조 계획 시 참여치 못한 일로 그리스도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이에 관하여 요한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12:7-9).

오늘날 그리스도교계에는 환생, 전생, 또는 영계 등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정작 천사세계에서 일어난 우주적 대쟁투에 대한 확연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 이 영계의 대쟁투는 지상 역사의 최후 시대의 종말사건의 콘텍스트가 된다는 점에서 이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엘렌 G. 화잇의 계시는 루스벨의 정체와 의도를 밝히고 있다. 自高한 루스벨이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짓밟고 하나님의 아들을 질시한 사건들을 밝히고 있다. 인간 범죄의 배후에는 천상에서 이러한 반역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계시를 통하여 심지어 충성스러운 천사들이 루스벨에게 배도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탄원한 사실과(GC 494).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인내로 회개와 굴복의 조건하에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놀라운 면도 확인한다(GC 496). 이 외에도 창조, 타락, 및 십자가 사건에 연관된 하나님 세계의 움직임과 타락한 천사와 인간 역사와 관련된 사건들의 전개 과정 등을 소상히 접할 수 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투쟁

 

역사무대 배후에는 보이지 않은 세력들의 대결이 있다. 예수그리스도 지상 생애기간 중 축신 활동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들이다. 죄 문제도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구도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부각된다. 예수께서 갈릴리 온 회당에서 전도하매 귀신들을 몰아내셨다(1:39). 바리세인들이 귀신의 왕의 힘을 빌어 축신행위를 한다고 몰아 부칠 때 예수께서는 사단이 사단을 몰아낸다는 비판은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하였다(12:24-27). 70명의 제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0:17)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0:18)고 하였다.

만일 그리스도와 사단사이에 우주적 투쟁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시험받으실 필요도 없으신 것이었다. 마귀가 그 분을 시험하였다(4:1). 그분을 향하여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도 하였고,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도 하였으며, 지극히 높은 산에 데리고 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매 엎드려 자기를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도 했다(4:2-9). 사단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경배 받기 원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는 이 사단의 도전에 끊임없이 대결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해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명의 정곡을 바로 이해 할 수 없다.

 

c) 사단의 파멸 지연 이유

 

대쟁투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단이 반역한 즉시 파멸시키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작은 세계는 우주의 교과서이다”(DA 19). 무엇을 배우는 교과서인가? “전 우주는 그 기만자의 정체가 폭로되는 것을 보아야 한다.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사단이 하늘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결정이 내린 후에도 그를 즉시 멸망시키지 아니하셨다...하늘과 그 밖의 모든 다른 세계의 주민들은 아직 죄의 본질과 그 결과에 대하여 깨달을 단계가 못 되었으므로 사단을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은혜임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만일 사단이 즉시로 멸망을 받으면 그들은 사랑으로보다는 두려움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었다...죄악이 충분히 성숙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GC 498). ”각 시대를 통하여 대쟁투가 계속되도륵 용납된 것은 무슨 연고였을까? 반역의 시초에 사단의 존재를 없애 버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악을 취급하시는 데 있어서 공의로우심을 온 우주로 확신케 하여 죄가 영원한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었다“(Ed 308).

 

d) 하나님의 사랑의 역할

대 반역 사건을 취급하시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로 <시대의 총서> 1권인 <부조와 선지자>가 시작하고 제5권인 <각 시대의 대쟁투>를 끝맺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쟁투 무대, 틀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차 있다. 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루스벨에게 회개와 회복의 기회를 주셨다.

루스벨은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거룩하)(145:17)다는 것과 하나님의 계율들은 공의롭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온 하늘 앞에서 이것들을 그렇다고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였더라면 그는 자신은 물론 많은 천사들을 구원하였을 것이다. 그 때는 그가 아직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었다. 비록 그가 덮는 그룹의 위치는 떠났다 할지라도 만일 그가 기꺼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창조주의 지혜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크신 경륜 가운데서 그에게 지정된 자리를 차지하기에 만족하였더라면, 그는 그의 이전 직위에 다시 복직되었을 것이다”(PP 39).

대쟁투의 역사는 죄인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역사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진노와 죄책으로 가득 찬 인간 사이에 서 계신다. 그러나 엘렌 G. 화잇은 아버지를 사랑의 하나님으로 묘사하므로 전통적으로 내려 온 공의 심판을 엄숙하게 요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의 왜곡을 바로 잡았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 계시는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관심을 계시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므로 자기 백성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악과 싸울 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시는 큰 자비를 베푸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

대쟁투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사건의 우주적 의미를 드러내 주고 있다. 인류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봉사와 죽으심에 걸려 있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을 옹호하였고, 하나님의 율법과 정부가 공정하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매일의 유혹들로 인한 괴로움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죄에 대한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음을 보이셨다.

 

e) 고난 속에서 승리의 삶 지향

이 대쟁투 주제는 고난의 신비를 설명해 준다. 악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지 않았고 타락한 천사인 사단에게서 시작되어 그야 말로 세상의 잔인한 행위와 고통에 책임을 져야할 장본인이 된다는 사실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대쟁투의 주제는 우리에게, 죄를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도록 가르친다. 이른바 신정론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고난의 이유를 풀고자 다각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근원적으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서 일어난 대쟁투라는 확대경을 사용하지 않는 한 겉도는 대답을 내 놓을 수밖에 없다.

대쟁투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현재도 이 대쟁투가 계속되고 있으며 그들은 그 가운데서 살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사람들이 그의 간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 방심하지 않는 원수는 끊임없이 그들의 뒤를 밟고 있다. 그는 모든 집, 각 도시의 거리, 교회, 의회, 재판정에 들어가서 혼란을 일으키고 속이고 유혹함으로써 도처에서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의 육체와 심령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증오와 경쟁과 투쟁과 혼란과 살인의 씨를 뿌린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마치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써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과 분리시키는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들을 정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GC 508).

그리하여 이 대쟁투 메시지는 신도들의 영적 생활의 활성화를 촉구시킨다. 이 사상을 바로 이해 할 때 신자들은 악과 싸워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계속적인 경계 태세를 갖는다. 이에 관하여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D. 대쟁투의 기초 이슈들

사단이 천상반역에서 하나님을 혹독한 독재자로 부각시켰다. , 대쟁투의 기초 이슈들은 사단이 도전한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과 하나님의 율법 및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이다. 사단의 참소는 12가지 구체적 방식으로 펼쳐진다.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자기부인(self-denial)이 없다.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이기적이다.

하나님은 억압적이다(DA 57).

하나님은 자기희생이 없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주는 것이 없다.

천사들은 지배받을 필요가 없으며 언제나 그들을 바르게 지도해 줄 그들 각자의 의지를 따르도록 허용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GC 499),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여 인간이 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님의 율법이 폐지되고 범법자들이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 복귀할 다른 계획이 고안되어 죄로부터 구원 받지 않는 한 인간은 천구ᅟᅳᆨ에 들어 갈 수 없다.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에서는 용서가 불가능하다고 선포했다(DA 37).

그리하여 하나님은 지혜와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고 선포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자비가 공의를 파괴시켜 아버지의 율법도 폐하여졌다(DA 762).

사단은 타락한 인간과 연합하여 일련의 거짓 이론들을 유포시킴으로 하나님께 불순종케 하여왔다. 이렇게 하므로 사단은 하나님의 인내가 고갈되기를 바랐다. 인간 대리자들을 동원 하나님의 공의 칼날을 치켜 올려 반역자들을 치는 일이야 말로 타락하지 않은 세계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에게 자기의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들을 중심으로 아우르면서 중요한 몇 가지를 첨가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독재론 내지 폭군론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을 오도하여 압제자로 그리고 자기부인이 없는 이기적인 분으로 오도하는 독재론 또는 폭군론을 전개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한 공의(정의)와 무한한 자비의 조화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 공의는 사랑의 구성 요인이어서(DA 761). 사랑으로 표출된다(DA 762) 양자를 분리하는 일은 양자를 모두 파괴시키는 것이 된다. 사단이 주장한 하나님의 품성, , 공의와 자비의 충돌론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창조주와 구속주되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신비성을 다 알지 못한 소치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 품성을 대표하는 율법과 하나님의 공의와 지비의 조화를 증명한 창조주이시며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주장으로 이어갔다. 엘렌 화잇은 온 우주 앞에 사단의 반역의 특성을 밝혀내므로 하나님의 품성을 옹호하며 인간 안에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케 하는데 있다. 요컨대, 엘렌 화잇의 대쟁투 사관에서는 사단이 제기한 하나님 품성의 왜곡 이슈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2. 하나님의 율법 적대

사단은 대쟁투 주제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므로 하나님의 품성을 오도하여 왔다. 그는 하나님의 법이 마치 이기적인 법(a law of selfishness)”이 되는 것처럼 유포시키면서 먼저 율법불필요논증(The "Need Not" Argument)을 강변하였다. 율법이 요구하는 절대적 공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專制性을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의 존재자들을 다스리는 율법에 관하여 의심을 심어 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세계들의 거민들에게는 율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천사들은 더 높은 존재자들이므로 그와 같은 속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지혜가 충분한 안내자가 되기 때문이다 라고 암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는 존재자들이 아니며, 그들의 모든 생각이 거룩하며, 하나님 자신이 죄를 범하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PP 37).

루스벨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전복하고자 온갖 시도를 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완전성과 하나님께 향한 충성심을 역설하면서 다른 한편 자기에게는 율법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당위성 배척 논증(The Should Not Argument)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완전히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정부의 안정을 위해 하늘의 질서와 율법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하도록 선동하고 그의 휘하에 있는 천사들의 마음에 자신의 불만을 불어넣으면서도 표면상으로는 그가 불만을 제거하고 불만을 품은 천사들을 하늘의 질서로 돌이키려고 노력하는 척 하였다. 비밀리에 불화와 반역을 선동하면서도, 그는 능숙한 술책으로 충성을 촉진시키며 조화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자기의 유일한 목적인 양 보이게 하였다”(PP 38).

하늘에서 대쟁투가 시작된 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 되어 왔다. 사단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창조주를 반역하였다. 그는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이 세상에서 여전히 동일한 그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인류를 기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것이 그가 꾸준히 추구해 오는 목적이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다 버리게 하거나 그 일부분을 버리게 함으로써 성취되든지 간에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똑같다”(GC 582).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자 사단은 기뻐하였다. 루스벨은 이를 두고 하나님의 율법이 순종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자비와 공의의 충돌론과 함께 순종불가능 논증(The Could Not Argument)을 부각시켰다.

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죄의 형벌을 면제해 준다면 그분은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사단은 주장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뜻을 대항할 때 사단은 기뻐 날뛴다. 사람은 율법을 순종할 수 없으므로 용서받을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그는 선언한다. 사단은 자기가 반역한 후에 하늘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영원히 제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들에게 은혜를 나타내고 계심으로 그분은 공의로우실 수 없다고 주장한다”(DA 761).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하여 그것을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써왔다. 율법을 공격함으로 그는 그 율법의 제정자의 권위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였다. 그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율례에 결함이 있어 변경해야 되는지 혹은 완전하여 변할 수 없는 것인지가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PP 69).

아담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쟁투의 쟁점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PP 73).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단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육성으로 말씀하신 율법에 결함이 있어서 어떤 특정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사단은 이제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그가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대기만이 될 것이다”(DA 763).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이기적인 율법으로 나타낸다. 그는 우리 인간이 그 율법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우리 시조(始祖)의 타락과 거기에 따른 모든 재난의 책임을 조물주에게 지우고 사람들로 하나님을 죄와 고통과 사망의 창시자로 여기도록 만든다. 예수께서는 이런 기만을 폭로시키실 것이었다. 그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어 순종의 모본을 주실 것이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하여 그는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경험을 몸소 체험하셨다”(소망, 24).

하늘에서 대쟁투가 시작된 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전복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 되어 왔다. 사단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창조주를 반역하였다. 그는 하늘에서 쫓겨났지만 이 세상에서 여전히 동일한 그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인류를 기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하는 것이 그가 꾸준히 추구해 오는 목적이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다 버리게 하거나 그 일부분을 버리게 함으로써 성취되든지 간에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똑같다. 율법의 한 조목을 범하는 자는 온 율법에 대한 경멸을 나타낸다. 그의 감화와 행동은 범죄의 편에 있으며 그는 결국 율법을 모두 범한 자”(2:10)가 된다”(GC582).

이 위기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드는 일에 연합할 때 이르게 될 것이다”(5T 524). 엘렌 G. 화잇은 안식일 문제는 전 세계가 참여할 최후의 투쟁의 정점이 될 것이다고 하여 마지막 대쟁투의 계쟁점을 분명히 하였다(6T 352).

 

3. 하나님의 아들 적대

하나님의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건이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대속적 희생을 당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 그 자체이다. 이 예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참소가 허구라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의 정당성을 입증하였다. “예수께서 인류 가운데 사시려고 오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심으로써 이러한 몽매한 오해를 없이 하시기 위함이었다 ”(정로, 11). 그리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사단의 적개심이 대쟁투의 이슈가 된 것이다.

그의 [사단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비난은 순전히 그리스도에 대한 적의 때문에 생긴다”(5T 470). “사단은 하늘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궁정에서 가지신 그 지위 때문에 그를 미워하였다. 그가 쫓겨났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더욱 미워하였다. 그는 죄에 빠진 인류를 구속하시기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미워하였다”(DA 49).

그리스도의 영과 사단의 영 사이에 존재하는 적의는 세상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 ... 그분의 극기와 결백한 헌신의 생애는 거만하고 방종한 자들에게 계속적인 견책이 되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적의를 일으켰다. 사단과 악한 천사들은 악한 사람들과 합세했다. 모든 반역의 세력은 진리의 투사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자 꾀하였다”(GC 506).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증오는 그로 하여금 구주께서 보호하시는 모든 대상을 증오하게 만든다”(DA 356). “반역자의 괴수는 그리스도의 절대권의 증거를 바라볼 때 모든 증오와 적의를 일으킨다”(DA 470).

4. 십자가의 의미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공격도 하였지만 당대의 지도자들과 제자를 향하여도 공격했다. 십자가 처형 사건도 이 대쟁투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의 사건이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3:2). 사단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빌라도에게 압력을 가한 유대지도자들을 밀어붙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우주적 대쟁투의 절정이 된다. 무거운 세상 죄가 그를 짓누른 때야말로 어느 편이 승리할 것인지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인간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사는 단지 사람들이 그의 대속으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넘어선 대쟁투적 쟁점을 전제로한 목적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사단을 이세상의 임금”(12:31)으로 보았다. 십자가는 이 세상 임금의정체를 폭로하는 것에 그 초점이 모아진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요일4:8.16) 정체가 확연히 드러나고 마귀의 정체가 폭로된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이 세상 임금은 심판을 받았다(16:11).

타락한 인류뿐만 아니라 타락치 않은 세계의 천사들에게도 필요하다. 십자가에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이 죄가 되게 한 사랑의 하나님의 계시를 보게 된다(고후5:21).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3:10-11).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싸움 선상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5. 경배 문제

위에서 성찰한 대쟁투의 이슈들의 근원적인 것은 곧 경배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사야는 경배를 하여야 할 존재가 경배 받기를 원하는 루스벨의 동기를 예언적 투시로 적나라하게 지적하였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4:12-14). 사단의 반역은 하나님의 지위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신적 경배를 받는 것은 사단의 자만과 어리석음의 소치였다. 자신이 피조물이란 신분을 벗어나고자 창조주에게 경배를 요청한 것이다. 이 사단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6)에 속한다. 충성 대신 반역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되었다(8:44). 경배 받을 만한 지위에 있다는 것은 큰 거짓말에 속한다. 더구나 자기의 창조주를 향하여 이 주장을 한 것은 엄청난 거짓에 속한다.

E. 대쟁투의 기간, 장소, 및 그 종국

위에서 대쟁투의 근본 원인과 이슈들을 살펴보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였고 구속의 경륜이 진전되는 일을 저지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근절하며 하늘 정부를 도괴 시키고자 획책하여 왔다. 이런 대쟁투의 전개과정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세계 전반적인 영역들이 모두 연관될 수밖에 없다. 개인, 교회 공동체, 사회, 국가의 도덕적, 영적, 군사적, 심판 보응적 국면들이 포괄적으로 수반되기 때문이다. 진리와 오류 사이에서 각기의 원칙들의 충돌이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멸시키고자하는 도덕적 또는 영적 대결이 있다. 불의의 세력들이 이 싸움에서 패배하는 때에는 지나간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투옥, 고문시키거나 그들의 생명을 살해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 갈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구약시대의 聖戰에 나타난 것처럼 군사적 전쟁도 발발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적, 기적적인 개입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을 받늘 것이다.

대쟁투의 기간은 죄가 시작된 때부터 그것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 대쟁투는 루스벨이 하늘에서 반역한 때로부터 시작하였다. 그가 하늘에서 지음을 받던 때에는 완전하였으나 그에게서 불법이 드러났다(28:15). 예수께서는 그를 가리켜 거짓의 아비라고 하고 처음부터 살인자라고 하셨다(8:44). 이 대쟁투의 기간에 대하여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전쟁은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는 온 세계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DA 763).

대쟁투가 일어나던 때 천적 존재들에게는 그 이슈나 전모가 명료하지 않았다. 이에 관하여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대쟁투의 초기에 천사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만일 그 때에 사단과 그의 군대가 저희 죄의 결과를 몽땅 다 거두도록 버려 두었더라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죄의 결과라는 사실을 하늘의 존재자들에게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지 못했을 것이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이 악한 씨앗처럼 저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결국에는 죄와 저주의 치명적인 열매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은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그 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단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DA 764).

하늘에서 시작된 이 대쟁투는 최후의 심판으로 사단과 그 군대가 불 못에 던져지는 때까지 계속된다. , 이 우주가 정화되는 때까지 계속된다. 엘렌 G. 화잇은 이 기간을 구약시대의 대 속죄일 행사로 유추하였다. “매년 한 번씩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사건들과 우주가 죄와 죄인들로부터 정결함을 입을 최후의 사건으로 이끌어 갔다”(PK 684-685).

그러나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은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그 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단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죄가 근절됨으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저희 마음속에 당신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옹호되고 그분의 영광이 확립될 것이다”(DA 764).

하늘에서 대쟁투를 일으킨 사단과 그 부하들이 하늘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사단은 이 지구에서 대쟁투를 도모하여 왔다. “사단은 하늘에서 추방되었을 때 이 지구를 그의 나라로 삼으려고 단호히 결심하였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그들을 정복하였을 때 그는 이 세상이 그의 소유물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나를 그들의 통치자로 선택하였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하였다”(PP 82).

이 세상은 천적 존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세계에 있는 거룩한 거민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주목하고 있었다”(PK 78). 타락하지 않은 하늘의 천사들이나 거민들은 대쟁투의 발전과정과 그 절정적 종언을 알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3:10, 11)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싸움터, 곧 구속의 경륜이 실현되는 장소는 우주의 교과서이다”(PK 154).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까지 계속되는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엘렌 G. 화잇도 같은 시각에서 풀이하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전쟁은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DA 763)고 하고 있다. 이 대쟁투는 종료될 시한을 지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확립하신 바로 그 방법을 사단은 율법을 파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DA 763). “그 때에 끝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옹호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사단과 그의 반역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끊어질 것이다. 죄와 죄인들이 다 파멸될 것이다. 󰡒뿌리와 가지󰡓(4:1) 즉 뿌리인 사단과 가지들인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DA 763).

대쟁투의 최후적 국면은 곧 일어날 아마겟돈 전쟁으로 전개될 것이다(4T 406; 7BC 982-983). 이 최후의 위기는 지상 역사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쟁투가 진행되는 동안에 드러난 사실들로 지금까지 사단과 사단의 기만에 빠진 모든 자들이 거짓 대표해 온 그분의 정부의 원칙들을 증명하실 것이다. 그분의 공의로우심은 마침내 전세계 사람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인정은 그들을 구원하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이다. 그분의 위대한 계획이 완전 성취를 향하여 일보 일보전진할 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동조와 시인을 받으시며 반역자들을 최종적으로 멸망시키실 때도 온 우주의 찬동과 시인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교훈을 저버린 자들은 모두 사단의 편에 가담하여 그리스도와 싸워 왔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고 그와 연합한 자들이 모두 그와 운명을 같이 할 때, 온 우주는 그 선고에 대한 증인으로서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15:3)라고 선언할 것이다”(PK 79).

사단은 오랫동안 온 세상을 기만하는 그의 마지막 운동을 위하여 준비하여 왔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3:4, 5)리라고 하와에게 한 말로써 그의 사업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강신술의 발전을 통하여 그의 기만의 절정을 향한 길을 한 걸음씩 준비해 왔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아직까지 완전히 성취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남아 있는 마지막 시기에 그것을 실현할 것이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보매 개구리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6:13, 14).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온 세상이 그 기만의 대열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이 치명적인 기만에 굳게 사로잡혀 있다가 오직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그때에야 깨어날 것이다”(GC 561-562).

진리의 영을 지니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사단의 대리인들의 지도 하에 연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게돈 전쟁의 때가 이를 때까지 제어될 것이다”(Letter 79, 1900).

대쟁투가 끝나는 날 죄는 더 이상 창조세계를 오염시키지 못하며 하나님의 보좌를 더럽히지도 못한다.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GC 678).

 

VI. 맺는 말

엘렌 화잇의 저술이 광대한 것처럼 그의 신학적 사상도 광대하다. 신학적 사상이 광대한 만큼 비평가들은 비평의 칼날을 휘두를 공간도 넓다. 그는 역사비평주의 등 빗나간 신신학적 사상들이 그리스도교계에 파고 들 기미가 보일 때 엘렌 화잇은 이를 단호하게 배척하고 성서주의 신학 원리를 강조하였다.

엘렌 화잇의 메시지가 광대하고 그의 신학적 통찰도 광대하여 그의 신학적 인식을 다 섭렵하는 것을 지양하고 계시의 특성 및 교리적 기본 주제들 중심으로 논급하였다. 그의 계시 틀도 광의적이고 그의 신학적 주제의 틀도 광대하다. 그의 신학적 사상의 틀, 즉 전 신학을 아우를 수 있는 통섭적 틀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이고, 그 내용의 기조 사상, 곧 내용적 통합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 신학이다. 아가페적 사랑이 그의 전 신학적 사고의 지반이 된다고 할지라도 이는 근대 자유주의 신학에서처럼 다른 주요 신학적 주제들(예컨대 공의)을 희생시키지 않고 구속적 사랑의 승리로 이끌어 나가는 특성을 지녔다.

엘렌 화잇의 대쟁투 신학 사상은 이 아가폐 사랑의 무대와 공간이 된다. 인간의 삶과 역사는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얼개 형식 속에서 이어져 왔다. 엘렌 G. 화잇의 대쟁투 계시는 이 싸움의 실체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 그리스도의 천사들과 사단의 사자들, 그의 백성과 그 백성들 사이의 싸움으로 밝혔다. 이 대쟁투 주제는 성경과 엘렌 G. 화잇의 작품을 이해하는 형식적 통합 원리가 된다. 죄악의 기원을 이루고 있는 루스벨의 반역으로 시작된 대쟁투는 구속의 경륜이 완결되는 마지막에 더욱 강렬하여 진다.

선과 악 사이의 대쟁투는 루스벨이 제기하고 참소하여 온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의 정당성 여부가 핵심 이슈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여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고 그 정당성을 옹호하고자 십자가에서 구속적 희생을 당하셨다. 성경의 갈피갈피에 배어있는 이 이슈를 천착해 내고 신학의 방법도 이 목적을 수행하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언약 교리, 성소 봉사, 십자가와 속죄교리 등 주요 교리들의 초점도 이에 연관되어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이 체현된 율법과 그 율번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구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적대적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코자 희생하신 것과 하늘성소에서 중보하신 것은 이 대쟁투의 빛 가운데에서 조명할 때 그 진의가 드러난다. 그리하여 갈보리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2)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리하여 대쟁투는 결국 참 예배와 거짓 예배의 문제로 귀착된다.

대쟁투적 종말론은 이 사단의 오메가적 대 분노를 끝장내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특히 사단은 성도들에 향하여 분노한다. 이는 성도들의 품성과 삶이 진리와 오류,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과 그의 주권의 정당성 그리고 그 부분의 거룩한 율법의 고결한 표준을 보여주고 그 불변성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원도 사단과 죄인의 영원한 멸망도 하나님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데 있다.

영적 국면으로부터 도덕적, 군사적, 보응적 국면에 이르기까지의 대쟁투 제 국면의 전개 양상은 천상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나아가서는 온 우주 앞에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온 우주가 선과 악 사이의 대쟁투의 전개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 이 세상은 사단이 준 죄와 슬픔 재난과 한, 그리고 죽음의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해결책의 확실성을 우주적으로 실험 입증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다”(고후 10:4).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선한 싸움”(딤전 1:18)을 싸우며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고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4:11-18).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 편에서 마귀에 대적하는 영적 전쟁터에 나선 존재가 된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