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교회의 정체성-예언의 신
남은교회의 정체성-예언의 신
예언 은사 계속론
한국 개신교 보수신학 사조에서는 사도시대가 끝나는 AD 100년 경 특별계시인 신약 정경이 완성되어 그 이후부터는 예언의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의 중대한 전환기적 사건이 있기 전에 특별히 선택한 종을 불러 미리 예고 내지 경고케 하여 백성들을 준비시켜 왔다(참고 암 3:7). 홍수 전에는 노아를, 출애굽 전에는 모세를, 바벨론 포로 전에는 예레미야 등 예언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초림 전에는 침례 요한을 각각 불러 자기 백성들을 준비시켰다. 마찬가지로 구속사의 대단원을 마치는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도 하나님께서 자기 종을 불러 백성들을 준비케 하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한 많은 성경의 약소도 이를 증거하고 있다(욜 2:28-32; 계12:17; 19:10 등).
성령신학을 강조하는 20세기 오순절주의신학은 사도시대 이후에도 성경의 약속에 따라 예언은사의 계속론을 강조하였다. 그루뎀(Wayne Grudem)은 예언은사의 계속론을 신학적으로 주도한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사도시대 이후의 예언은사는 정경예언자의 그것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는 차등적 계속론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Systematic Theology, 1050-56).
레이(Walter Rea)를 비롯한 교단 내 엘렌 화잇 비평가들은 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그의 계시를 주관적인 계시로 보고 정경상의 예언자들의 객관적 예언과 구별된다는 주장을 펴 물의를 일으켜 왔다. 19세기 엘렌 화잇 당시 버틀러 대총회장이나 베틀크릭대학 어떤 신학교수는 성경에는 영감된 부분과 영감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하고 엘렌 화잇의 영감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엘렌 화잇은 “[배틀크릭] 장막교회와 대학에서 동일하게 영감에 대한 문제를 가르쳤으며, 유한한 인간들이 스스로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또 다른 부분들은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등의 위험한 입장을 취하였다”(1기별, 23)고 비판하고, “내가 쓰는 편지들과 증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나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나는 지면에 단 한가지의 기사도 단순히 내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표현하기 위하여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으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 (1기별, 29)고 응수하였다. 이런 교단 내에서 일어난 설왕설래를 통하여 재림교회는 정경상의 예언자와 엘렌 화잇의 계시-영감의 질과 등급에는 차이가 없다고 보는 입장으로 정리하여 왔다.
“약한 자 중의 약한 자”를 통한 예언의 선물
19세기 중엽 미국의 여러 개신교회 신도들은 초교파적인 재림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재림신도들(Adventists)로 불리어졌다. 불꽃같은 믿음으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 이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 신도들은 1844년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큰 실망에 빠져 흩어졌다. 이들 중 한 작은 무리들은 일련의 안식일 사경회를 열어 성경진리의 광맥을 찾아 나갔다. 1844년 12월 이들 중에 감리교 출신의 엘렌 하몬(Ellen G. Harmon--결혼 후에는 Ellen G. White 1827-1915)은 포틀렌드의 엘리자베스 헤인즈 부인 가정에서 좌절과 실망에 빠진 다른 네 여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기도회에 참여하였다. 여기서 그는 첫 계시를 받으면서 재림신도들의 천성을 향한 여정은 바른 길이며 그리스도의 빛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확증과 격려 및 위로의 메시지를 받았다.
사실상 당시 17세의 엘렌 하몬이 예언자로서 그 사명을 다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핸디캡을 지녔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당한 불의의 사고로 얼굴은 기형이 되었고, 안면 중심 신경조직은 망가졌으며, 오른쪽 폐는 전면적으로, 왼쪽 폐는 부분적으로 침윤 된 수종성 폐결핵으로 단말마적인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심장도 약하였다. 밤에는 호흡 곤란으로 쪼그리고 잤으며, 자주 기침을 하고 각혈을 하며 기진맥진한 상태로 의학적으로 사지 절단된 환자나 다름없는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교육 수준도 형편없었다.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예언자로 활동하기에는 외면적으로 부적격한 여성이었다. 그리하여 재림교회의 최초의 역사가 러프보로우(J. N. Loughborough)는 그를 “약한 자 중에 가장 약한자(The weakest of the weak)"라는 칭호를 붙였다. 하나님께서는 1842년에 흑인 목사 포이(William Foy)에게 재림운동의 바른 방향으로의 지도를 위한 장시간의 계시를 몇 차례씩이나 주고 그를 예언자로 불렀지만, 그가 불응하자 1844년 포스(Hazen Foss)를 같은 방식으로 부르셨다. 그 때 주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그도 마찬가지로 부름에 불응하여 기별을 전하지 않으면 그 일을 “약한 자 중에 가장 약한 자”에게 넘길 것이라고 증거케 하였다. 이리하여 약한 자를 불러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약한 자 중에 가장 약한 자인 엘렌 화잇을 직접 부르시어 예언의 선물을 맡기신 것이다. 엘렌 화잇 생애 동안 이어진 2,000여회의 이상과 계시적 꿈을 통한 메시지와 그의 목양적 권면과 봉사는 그리스도께서 재림교회에 주신 예언의 선물이 된다.
남은교회에서 출현할 예언의 신
요한계시록 12장은 전 성경 중에서 가장 긴 예언적 시간대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천상의 반역에서부터 한 때 두 때 반 때의 긴 예언적 기간(1260일=1260년)이 나오고 마지막 때의 남은 자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1-6절에 나오는 ‘여자’가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성경학도는 없을 것이다. 재림교회는 동 12:13-15에 묘사된 사건이 이교 로마 제국과 배도한 로마교회(교황 로마)에 의하여 저질러진 일로 보고 있다. 16절의 ‘땅’은 교회에 피난처를 제공한 미 신대륙을 예언적으로 상징한다. ‘강물을 삼키니’는 박해하는 군대를 삼킨 것으로 해석된다(계 17:15 참조). 사도 요한은 다니엘 7:25의 ‘지극히 높은 자를 대적하고 그의 성도를 괴롭게 하는’ 작은 뿔의 특별 활동과 연계된 1260일 예언적 기간과 같은 맥락에서 그 기간 끝에 등장하는 마지막 때의 남은 백성을 묘사하고 있다.
사단이 분노하고 있는 대상은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다(12:17). 이 구절에서 초점은 여자로부터 남은 자손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가견적 교회인 여자에게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견적 남은 교회가 초점이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마르틴 루터의 불가견적 교회(invisible church) 개념 즉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의 교회와 사람들이 보는 대로의 이 땅의 가견적 교회 개념에 집착하여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지상의 전 그리스도교 산하 여러 교회들에 산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재림교회가 하나의 남은교회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용이 분노하는 시간대에 종말론적인 여자의 남은 자손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지 여러 교회들을 말하고 있지 않다(계12:17).
물론 재림교회 신도들 모두가 불가견적 교회일 수 없다. 현실의 가견적 교회가 불가견적 교회와 일치하지 않는 일은 비극이다. 그러나 죄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는 항상 구원을 지향하는 공동체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고대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에서 ‘제사장 나라’ 와 ‘거룩한 나라로서’(출 19:5)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체결하는 때에 그들은 사실상 다 거룩하지 않았다. 광야 40년 동안의 그들의 역사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지막 때에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불러냄을 받은 백성 모두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예비된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서 이상할 것이 없다.
남은교회의 특징을 살펴보자. 가견적 남은교회는 위장하여 숨길 수 없는 교회이다. 그 특징, 곧 그들의 정체성이 너무 유별나서 그렇다. 저들의 신앙 노선은 만민의 (가견적) 주목 대상이 되어 있다. 이 특징을 제거한다면 저들은 존재의미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종말론적인 여자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율법 무용론자들이나 폐기론자들이 아니다. 한때 두 때 반 때 이후 등장할 여자의 남은 자손안 남은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을 시공을 초월한 도덕률로 존중하며 이를 지켜 나간다. 오늘 우리는 온 세상 하나님의 신앙적, 도덕적 결속의 접착제가 되는 거룩한 율법을 끊어 버리고 해체시켜 버리자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참고 시 2:3; 렘 5:5). 혹시 10계명 중 아홉 계명을 준수하여야 하나 넷째 계명은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지론도 부분적인 율법폐기론에 불과하다. 그러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징이 되는 안식일 계명을 포함하여 10계명을 마음판에 새기어 하나님과의 새 언약 관계를 정립한 백성들이다(렘 31:33).
남은교회의 두 번째 특징은 그들이 ‘예수의 증거’를 가졌다는 점이다. 여기서 ‘예수의 증거(marturia)'는 주격적 소유격으로 풀이하는 것이 ’증거‘라는 명사가 요한계시록에 사용된 용례(1:2; 9; 12:17; 19:10; 20:4)에 조화된다. 그렇다면 ‘예수의 증거’는 예수께서 주신 증거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계시라는 의미가 된다. 예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시를 주셔왔다. 본문의 문맥 상 예수께서 주신 증거를 승천하신 예수께서 1260년의 예언적 기간이 끝난 이후에 등장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 즉 남은교회의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예언의 선물로 보는 것은 성서적인 풀이가 된다.
요한계시록 19:10은 이 ‘예수의 증거’를 ‘대언의 영(예언의 신)’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대언의 영(예언의 신)’ 표현이 성경 다른 곳에 나오고 있지 않지만 고린도전서 12:8-10, 28에 비추어 예언의 선물을 받은 자를 예언자로 보는 것은 성서적이다. 즉 예언적 은사를 받은 사람이 예언자가 된다. 그리하여 예언의 신을 받은 자가 예언자가 된다. 요한계시록 22:9의 ‘예언자’가 동 19:10의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평행법상 동일한 존재가 되므로 ‘예언의 신’을 모든 신자들이 소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루터파 신학자 스트라드만(Hermann Strathmann)도 계 19:10에 비추어 22:9을 해석하였다. 즉, ‘형제들’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모든 신자들이 아닌 예언자들에 해당한다고 보았다(‘martus,' TDNT 4:506).
요컨대, 요한계시록 12장은 마지막 시대의 가견적인 교회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지닌 … 남은 자손”(17절)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여기서“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예수의 증거’ 곧 ‘예언의 신’(계19:10) 곧, 예언의 선물을 가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종말론적인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예언에 토대를 두고 부름 받은 재림교회는 하나의 남은교회가 아니고, <기본교리27>에서 진술한대로, 유일한 남은교회(the Remnant Church)가 된다(28 쪽 참고). 물론 남은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하여 그 구성원 모두에게 구원이 보증된 것이 아니다. 구원은 교회단위로 받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믿음에 따라 받는다.
요한 당시 유대인 독자들은 ‘예언의 신’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곧 이 표현은 예언의 선물을 주시는 성령을 뜻하였다. 아람어 역 탈굼(Targum) 에는 ‘예언의 신’이 자주 나오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 ‘여호와의 신‘을 ’예언의 신‘과 동일시하였다. 모세를 “여호와로부터 예언의 신이 충만한 자”(창 41:38)로 묘사하고, 출애급기 33:16에서는 이스라엘을 천하 만민들과 구별할 하나님의 백성의 표징을 ’예언의 신‘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브루스(F.F. Bruce)는 탈굼의 이 표현과 관련하여 ’예언의 신이란 이 예언자 또는 저 예언자 위에 임한 여호와의 신을 두고 사용되고 있다고 하면서 요한계시록 19:10에는 그리스도인 예언자를 통하여 예언의 신이 증거한다고 지적하였다(Time Is Fulfilled, Eerdmans, 1978, 105-106)).
이런 점에서 탈굼에서 말하는 ‘예언의 신’처럼 어떤 때에 성령을 지칭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성령께서 주신 예언의 선물을 뜻하고 있다(이 외에도 ‘예언의 신’은 엘렌 화잇의 저술 4권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며 하나님의 성령이 지도하신 그의 모든 저술들을 총칭하는 광의적 어법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성경과 예언의 신 관계
재림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권위있고 무류한 계시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교리의 계시자요, 체험의 시금석이”된다(GC 7). 그리고 성경 경전은 66권으로 완결된 것으로 본다. 성경이 재림신앙의 기초가 되며 모든 교리와 실천의 최종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본다. 이 성경이 신약성경 시대 이후에 예언의 선물이 그리스도 교회에 현현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남은교회에 예언의 선물을 주신 것은 하나님 백성들을 성경으로 인도하여 성경의 이해를 돕고, 성경의 원칙을 적용하는 일을 고취하는데 있다. 엘렌 G. 화잇의 주요 책무는 성경으로 관심을 돌리는 일이었다. “주께서는 사람들을 보다 큰 빛(the greater light)”인 성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의 더 작은 빛’(a lesser light)”을 주신 것이다(R&H, January 20, 1903). 엘렌 화잇의 저술이 하나의 ‘더 작은 빛’이 된다 할지라도 그 저술들 역시 빛이 되며 이 빛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라고 믿었다.
남은교회에서의 예언의 신 역할
재림교회는 엘렌 G. 화잇의 삶과 봉사에서 남은 교회에 ‘예언의 신’을 제공해주신다는 한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엘렌 G. 화잇이 ‘예언자’의 칭호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는 예언자로서 봉사하였으며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을 하였다. 엘렌 화잇은 “내가 위탁받은 일은 예언자의 일을 포함하나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1SM 36), “다른 사람이 나를 그 칭호(여선지자)로 부른다 해도 나는 그들과 논쟁”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며(ibid., 34),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칭호가 시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하고... 나 자신을 주님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위한 메시지를 위탁받은 한 메신저로 본다”(ibid., 36)고 하였다.
재림교회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이 경건한 삶과 가르침을 위하여 권위를 지닌 것으로 믿는다. 또한 엘렌 화잇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왔으며 그의 저술들이 영감의 소산물이 되어 특히 재림교인들에게 적용이 되는 권위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그의 저술들은 영적 및 도덕적 생활에 관한 예언적 긴급성의 음조로 성경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그것들을 적용하는 일을 지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재림교회는 엘렌 화잇의 예언적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재림교회의 양육과 연합을 기하는 일에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엘렌 화잇의 저술들은 성경 경전에 추가된다고 믿지 않지만, 그의 저술들의 영감의 질과 등급은 성경의 그것들과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재림교회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을 성경 경전 수준으로 보는 일과 보통의 그리스도교 문학작품에 불과하다는 두 극단을 피하는 입장에서 그 영감과 권위성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하여야 한다고 신봉한다.
엘렌 화잇이 전 생애 사역과 저술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의 구원의 기별을 선포하고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곧 재림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선포하도록 위임받은 재림 교회는 초기의 작은 무리로부터 전 세계 교회로 발전하여 오늘과 같은 2천만이 넘은 전 세계적인 교회로 양육, 발전하여 왔다. 특히 그의 저술은 재림교회의 통일성을 보존 유지시키는 접착제의 역할을 하여 왔으며 재림신도들의 관심을 성경으로 향하게 하여 왔으며 위로, 지도 및 교정을 하여 왔으며 신학적인 자극이 되어 왔다(2005년 제58차 대총회 결의 참고).
재림교회는 성서 종말론적 기간에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 예언의 선물을 지닌 교회이다. 이 예언의 선물은 종말시대 남은교회의 백성들의 삶을 성경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에게로 지향케 하는 하늘의 방향지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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