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재림의 박두와 거리
그리스도의 재림의 박두와 거리
I. 희망(Hope)의 중요성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행 2:26)
“묵시(vision)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잠 29:18)
이방인은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II. 인간의 희망의 종류
A. 작은 희망--근시적, 즉각적, 주변적, 부분적, 다발적, 일시적, 불완전, 가변적, 인간적 예측불가능, 개선 여지, 작다.
B. 큰 희망--원시적, 궁극적, 희소성, 이상적, 전체적(포괄적), 계속적, 완전, 불변적, 하나님 중심, 확실성, 구속적
III. 성서적 희망의 특징
A. 하나님 중심의 희망--하나님은 인간 희망의 원천이 되시고 대상이 된다.
B. 하나님의 오심의 희망
1. 이교도들의 희망의 특징은 인간이 어떤 상태로 올라감에 있으나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하나님의 내려오심에 있다. 하나님이 내려 오셔서 창조, 구속 및 회복을 하신다.
2. 하나님의 오심은 이미(already) 있었다. 그러나 그이 재림은 아직도 일어나지 아니하였다(not yet). 우리는 또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3. 계속적 희망--과거와 현재 경험하였고(롬 8:33; 고후 1:22)및 미래에도 계속된다.
4. 포괄적 희망--한 인간의 전 국면, 전 인류, 및 전 피조물을 포용한다. 그리스도인은 “한 소망 안에서 ”(엡 4:4) 부르심을 받았다.
IV. 하나님의 오심 희망의 확실성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시 50:3)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계 1:7)
V. 그리스도의 재림의 박두와 거리
A. 구약성경
1. 아모스
a. 박두 5:18-20; 1:3 ~2:6 주의 날 선포, 즉각적 심판
b. 거리 7:4; *:8-9; 9:5, 13-15 멀리 있는 우주적 심판
2. 스바냐
a. 박두 1:14; 2:1-3:7
b. 거리 3:8, 9-20
3. 이사야
a. 박두 13:6
b. 거리 13;10
B. 신약성경에서의 박두와 거리
1. 박두
롬 13:11-13
고전 7:29
빌 4:5
살전 5:6
약 5:8, 9
벧전 4:7
히 10:25
10:37
계 1:1
3:11
22:20
2. 거리
마 24:14
25:5, 19
눅 12:41-48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확신
19:11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므나의 비유 배경
롬 9-11장
11:25-26
살후 2:2, 3
계 6:10 제단 아래 있는 영혼의 신원 호소
11:3; 12:6
C. 박두와 거리의 긴장관계 해결책들
1. 초기교회의 신앙 위기론--가능성 결여
2. 원근법--하나님의 오심을 이중적으로 포개두었다.
3. 시간 개념의 차이
a. 경험적 시간과 실존적 시간
(1) 경험적 시간--양적 시간, 시계와 달력으로 측정되는 시간
(2) 실존적 시간--질적 시간, 사랑과 신뢰로 재는 시간
사례--야곱의 7년=수일 (창 29:20)
“잠시 잠간 후(mikron hoson hoson)" a little while, very very little--미래 확실한 재연합의 보증을 시사
요 14:18-19; 16:16 “조금 있으면”
b. 찰나를 사는 인간 시간 개념과 영원하신 하나님 시간 개념의 차이 (벧후 3:8)
c. 1260일, 2300일 예언 시간대의 개입
4.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유기적 불가분리성
a. Parousia는 과거적 오심과 미래적 오심에 이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래는 아직 멀지만 절박하다.
b. 말세와 정한 때 끝, 때의 마지막 개념의 차이
행 2:17
히 1:1
히 6:5
c. 주의 기도문--“나라이 임하옵시고...”
d. 성만찬--현재적 구원을 맛보면서 재림을 다시 확인
5. 재림 희망의 도덕적 긴급성과 영적, 윤리적 목적
a. 중요한 점은 시간 계산이 아니고 계속적 준비이다. 악한 종은 이점이 결여되어 있다(눅 12:45).
b. 제자들의 “언제(when)" 질문에 무엇(what)으로 대답 막 13:4
VI. 그리스도의 재림 시간적 특성과 특징
A. 시간적 특성
1. 도래의 확실성, 사실의 확실성
마 24:30
25:31
shall-come texts
2. 시간의 불확정성--깨어 있는 일이 중요
막 13;32-33
마 24:36-44
행 1:7
B. 재림의 현상
1. 문자적, 인격적 오심(literal, personal return) 요 14;3; 살전 4:16 “친히”
2. 신체적 오심(physical return) 행 1;11
3. 가시적 오심(visible return) 행 1;11
4. 가청적 오심(audible return) 살전 4:15-16; 마 24:27
5. 갑작스런 오심(Unexpected, suddenly) 살전 5:2-3 “홀연히”; 마 25:1-3
6. 승리와 영광스러운 오심(triumphant & glorious)
7. 격변적 오심(cataclysmic, catastrophic)
8. 단회적 오심(A single event) -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회적 사건(one stage occurrence)이지, 환난 전 휴거론(pretribulation)에서 주장하듯이 2단계로 된 사건(dual stage)이 아니다. 2단계론자들은 7년 환난 초 신자 위한 비밀 휴거(parousia-rapture)가 선행하고 7년 환난 끝에 epiphaneia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apokalyphsis)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parousia) 나타나심으로(epiphaneia) 폐하시리라”(살후 2:8)고 하고 있어 parousia와 epiphaneia를 같은 사건으로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같은 사건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아 비밀 휴거 2단계 재림론은 비성서적이다.
C. 재림의 지연(delay)
충성스러운 종과 악한 종의 비유 (마 24:45-51)에서 주인이 더디 오신다. 악한 종들은 지연에 관심을 두면서 살아간다.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마 24:48).
열 처녀의 비유(마 25:1-12)에서도 신랑의 지연 사상이 나타난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마 25:5).
"더디 오므로"는 헬라어 “chronizoo"(to delay, to tarry)는 기다리는 인간의 개인적, 주관적 지연에 초점이 있지 도착이나 오심이라는 사실의 객관적 지연에 있지 않다. 엘렌 화잇은 1868년에 이런 시각의 진술을 하였다.
“그들은 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했고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입에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주께서는 아침이 완전히 밝아오기 전에 지체할 것을 암시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피곤해지거나 열렬한 각성을 늦추게 하지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아침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곧 밝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자로 내 앞에 제시되었다. ”(2증언, 192).
“우리의 장막 집회 동안 배틀크릭에서 나에게 주어진 지난번 이상에서, 한 백성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보다는 세상을 닮아 가는 위험이 나에게 보여졌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와 있다. 그러나 우리를 시간의 종말에서 멀리 떨어지게 인도하는 것이 영혼의 대적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라고 공언하며,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구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는 사람들을 온갖 수단으로 공격할 것이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로 불행한 날을 뒤로 미루게 하며, 영적으로 세상 사람들처럼 되게 하여 그 풍습을 닮아 가게 이끌 것이다. 나는 세상의 정신이 진리를 믿노라고 크게 공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을 보면서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이기심과 자기 방종은 품었으나 진정한 경건함과 순수한 고상함은 배양하지 않았다.”(4증언, 306).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런데 이 말씀에는 지체하는 일, 곧 주님께서 지체하시는 듯이 보이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 분명히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한 교훈은 특별히 그 당시의 재림신자들의 경험에 적용된다. 여기에 지적된 사람들은 믿음의 파선(破船)을 당하는 위험에 처하였다”(쟁투, 408).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2300주일 예언 기간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 예언기간이 마치기까지는 지연일 수가 없다. 그러나 1844년 이후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교리를 전하여 온 것에 비추어 보면 지연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관점일뿐이고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은 아니다.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구속의 경륜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인간적인 지연 시간대는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대이다.
“그는 그 도표의 출판을 하박국을 통하여 주신 명령의 성취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묵시의 성취가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곧 지체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 그 예언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유의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실망 후에 그 성경절은 매우 의미 깊은 말씀으로 나타났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 ,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에스겔의 예언의 일부도 신자들에게 힘과 위로의 근원이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여호와의 말씀에 …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2:21-25, 27, 28).”(쟁투, 392-393)
D. 그리스도 재림 지연에 대한 반응들
Roy Branson은 다음 세 가지 반응으로 정리하였다[“Responding to the Delay," Pilgrimage of Hope, ed. Roy Branson (Takoma Park, MD: Association of Adventist Forums, 1986), 8-17].
1. 세계선교의 지연 결과로 보는 입장(The Expansionist response)--재림교회는 마태복음 24;14의 선교 명령에 따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여 왔다. 심정적으로 세계 선교 사업의 엔진 동력을 이끌어 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지연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 선교의 양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2. 도덕적, 영적 준비의 결여로 보는 입장(The Moral response)--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 원인을 구원 받을 수 있을만큼 완전한 상태에 미달한 때문으로 본다. 그 대표적인 예는 Graham Maxwell이 [Can God Be Trusted?(Nashville, TN: Southern Publishing Assn., 1977), 46, 128]에 나타나 있다. 그는 구속의 경륜을 단순히 죄 용서 제공이라는 관점 이상, 곧 변화된 성도라는 관점으로 이해하여 품성의 완전 결여가 그리스도의 재림 지연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통상적으로 완전주의적 풀이로 연계되기 마련이다. Herbert Douglass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죄 없는 상태로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Perfection: The Impossibility Possibility (Nashville, TN: Southern Publishing Assn., 1977), 30]. 이 입장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의 성취에 매달리게 된다는 약점을 지녔다.
3. 우주적 반응(The Cosmic reponse)--Fritz Guy가 강조한 시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의 시간대에 있을 것으로 본다[“Dynamics of the Advent Hope," Pilgrimage of Hope, ed. Roy Branson (Takoma Park, MD: Association of Adventist Forums, 1986), 117)]. 그리스도의 재림은 대쟁투가 끝나 동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관점에서 볼 것도 아니다(벧후 3:8).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간의 선교적 성취나 도덕적 성취에 의존시키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의 결정으로 도래할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오히려 세 입장들을 통합적으로 조화시켜 이해하는 일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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