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다림 하나님의 기다림
인간의 기다림 하나님의 기다림
히 10:37-39; 벧후 3:8-10; 창16:1-5
I.시작하는 이야기들
우리는 스피드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빨리 달려야 뭔가를 얻을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삶의 진정한 목표, 궁극적인 목표를 등한시 하거나 무시하면서 그저 속도 내는 일에만 열심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삶에 오히려 더 커다란 갈등과 좌절을 축적하면서 길을 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속도만이 미덕은 아니다. 속도가 인생에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서두르지 말자. 급할수록 우리에게는 여유가 필요하다. 물론 속도가 중요할 때가 있다. 속도가 강조되는 경쟁 문화의 시대 속에서 나 혼자만 뒤질 수는 없다고 나서는 것이 모두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좀 더 긴장을 풀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A. 냉면집 이혼사건
한 때 화제 거리는 ‘냉면집 이혼 사건’- 1970년대 말 ‘소녀와 가로등’을 불렀던 가수 J가 방송 토크쇼에 나와 개그맨 C와 결별한 결정적 계기를 털어놨다. 1993년 결혼식을 올린 뒤 아내가 하루는 단골집 냉면이 먹고 싶어 남편과 만나자고 했다. 냉면집에 도착해 보니 남편은 혼자 냉면을 다 먹은 후였다. 그래도 기다려주겠대서 냉면을 시켰다. 그런데 막 먹으려는 순간 남편이 “난 다 먹었고 보는 건 지루하니 먼저 가겠다”며 자리를 뜨더라는 것이다. 이 때 아내는 내가 저 사람을 계속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드디어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남편이 좀 더 기다렸더라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II. 성경에 나오는 기다린 인간들
A. 잘 기다린 사람들-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린 믿음의 사람들
우리는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의 디지털 문화는 속도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타이밍을 맞추어야하는 시대에, 시기를 놓쳐 일을 그르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반드시 속도를 내고 걸어가는 것만이 인생의 축복이 아닐 경우도 많다. 서둔다고 꼭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타이밍을 맞추어 구속의 역사를 이끄신다. 이 타이밍을 바라본 사람들이 남은 백성들이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하나님의 구속 타이밍에는 구약 4000여년이 필요하였다. 4000여년의 마침표를 보고 구속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변치 백성들은 변치 않은 남은 백성들 표본을 몇 사람 살펴 보자.
어둔 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일하던 베들레헴 목자들 (눅 2:8-11): 메시야를 기다린 경건한 사람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8-11)
2. 거룩한 일에 종사하던 시므온의 기다림(눅 2:25-30):Hillel의 아들 랍비 시므온, 산히드린 의장 역임,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눅 2:25-26), 27절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3. 외롭게 살아가던 안나의 기다림(눅 2:36-38); 15세 결혼하였다면+남편과 7년 살고+과부된지 84년=106세, 슬픔을 지닌 기다림의 여인,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 2:37), 메시야 기다림과 만남
신약의 2000여년은 어느 시점이 하나님의 오심의 타이밍이 되실지 우리는 21세기에 진입하여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재림 신앙을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아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사람은 시므온과 안나 처럼 그 날을 맞이할 것이다.
B. 기다림에 지처 조급한 선택을 한 선구자들—아브라함과 야곱
하나님이 75세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는 잉태할 수 있는 시간을 오래 전에 이미 지나쳐 버리고 말아 그 약속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보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10년이 지나 85세가 되었지만(아내 사라는 75세였다)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벗어나 서둘렀다. 그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자기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 이라는 아들을 얻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타이밍이 아니었다.
서두르지 말고 약속의 타이밍을 기다리라.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강을 건 넌 믿음의 조상이었다. 그는 히브리 사람이다(창 14:13). 히브리는 하비루에서 온 말이다. 하비루는 ‘강을 건넌 사람’이라는 뜻이다.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가나안을 향한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정체성은 바로 이 것이다. 그 아브라함이 자기 정체성을 잊고 자식을 얻고자 서둘렀다. 서둘러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얻었지만 그것은 일파만파로 번지는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되었다. 앞으로 15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아브라함의 이 실수의 케이스가 긴 역사의 공간을 뛰어넘어 아직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되 서두르지 말라 라는 것이다. 이들 부부의 서둘음으로 인한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오늘날까지 그 댓가는 너무 컸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의 갈등, 사라와 하갈 사이의 갈등, 이삭과 아스마엘 사이의 갈등의 시작 더나가서는 민족 대 민족 사이의 갈등으로 증폭되어 나갔다.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장자권의 축복을 가로챈 것이 얼마나 많은 손실을 가져 왔는가. 서두름이 항상 축복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III. 재림신앙의 핵심
A. 기다림에 있다. 재림교회라는 간판 자체가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백성들이라는 뜻을 안고 있다. Advent! advent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온 말로 그 뜻은 "coming" of God이다. 초림도 재림도 다 포괄하는 용어이다. adventus 는 헬라어 parousia 의 번역어이다. 애드벤트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오심에 있다.
구약시대에는 4000년을 기다린 끝에 때가 차매 예수께서 오셨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2000년을 기다리고 있다. 재림을 약속한 성경절들이 마치 찬미가의 후렴처럼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약속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여겨 대안으로 하갈을 맞이한 아브라함처럼, 실존적 종말론이니, 실현된 종말론이니, 또는 영적 재림이니 등 이상한 대안들을 그럴듯하게 내 놓았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문자적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고 있다.
이 문자적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인데 그들에게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B. “잠시 잠깐(mikron<little> hoson<a very> hoson)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7-39). 우리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려야 한다. 재림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기다리라. 온 마음을 다하여서 기다리며 준비하라.
C.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1.사랑과 신뢰의 시간 대 양적 시간, “잠깐”이나 “속히”같은 말은 확실한 재연합의 보증을 함축하고 있는 사랑과 신뢰하는 사람 사이에 사용하는 용어이다. 70대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
요한복음 16:16-18 “조금 있으면(mikron)”7회
벧후 3:“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하나님의 타이밍은 인간의 준비에서 완성된다. 주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섭리를 정점으로, 두 발이 되는 세계 선교와 성도의 완전이라는 삼각형적 시간데에서 결정된다.
2. 멸망하지 않도록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탕자를 문 앞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D. 15년간 사라졌던 남편을 기다린 아내-1971년 2-3월 50세 때 뉴욕 교회 라취몬트에 우편 집배원으로 25년 일한 Jim MacDonnells 연이은 사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얼음판에 미끄러짐, 운전 중 재채기로 차를 전신주에 충돌 머리 부딪침,다음날 집무중 현기증으로 넘어짐, 10일 후 차 제어 못하여 전신주에 부딪침, 1971년 3월 29일 케네디 공항에 이웃 왜건차를 빌려 아내 Anne의 가족들 집으로 픽업, 차를 돌려주고(이 때 지갑이 차에 빠짐) 15분 거리의 집으로 걷는 중 무서운 두통으로 기억상실증, 필라델피아로 향하다. 아내의 기다림 시작, 1985년 크리스마스 이브 수일 전 다시 머리를 연이어 찍다. 12월 24일 저녁 집으로, 남편을 기다린 아내의 모습은 재림을 기다리는 재림신도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IV. 고통을 다 당하시며 속죄의 제물이 되도록 기다리신 예수
십자가 앞에 설 때마다 이 십자가가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십자가는 주님의 고통의 극점이다.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의 한 복판, 그 고통의 극점에서도 예수님은 서두르지 않았다. 주님은 그 고통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모습을 분명히 바라보고 계셨다. 구약 성경이 예고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이 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고통을 달게 받기로 서원기도를 하셨다.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인 것을 확인했을 때 그는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시기로 결단하셨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그 분은 이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수용하신다. 고통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거룩한 감동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의 삶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사면초가이어서 답답하여도 그것 때문에 너무 서두르지 않을 것은 그 것이 우리가 메야 할 십자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참 좋아하는 기도문이 있다. 이 기도문은 본래 미국 사람들이 아주 존경하는 목사님 가운데 미 상원 원목 피터 마샬 목사의 기도문이다. 그는 전쟁에 나가기 직전에 군인들에게 기도할 때마다 늘 이 기도를 했다. 주여 내가 잘못했을 때 내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내가 올바른 결단을 했을 때 그 올바름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V. 호소-하나님의 기다림
인생의 길은 문자 그대로 멀고 험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왜 이렇게 짧은 인생이 멀고도 험해 보이는가.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서둘러서 일을 저지르는가?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을 갉아먹는 세상살이에 마음이 팔려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더 큰 고통, 더 큰 방황, 더 큰 좌절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만약 기다릴 수 있다면, 만약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네 인생이 멀고 험한 길만이 아닌 영광의 길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잠시 잠간 후면 이루어진다는 신앙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완전과 세계 선교라는 두 발을 기초로 성립되어 있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이 두 발이 바로 되어 있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인간의 돌아 옴, 그리고 굴복, 눈물의 회개에서 이루어지는 완전에 그 초점이 있다. 우리 주님은 지성소에서 곧 일어나지 않으시고 인간이 회개하할 시간대를 연장하고 있다(벧후 3:8-10).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 인생에서 응답이 지연되고 있다고 느끼는가? 꿈이 좌절되어 있다고 느끼는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보는가? 서두르지 말라. 오늘 우리는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기다림의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를 어떻게 준비시키고자 하는지 목자들이나 시므온 안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라. 엎드려 기도하라.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라. 조급한 선택을 한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긴 고통을 유산으로 남기는 선택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서두르지 아니하고 엎드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잠시 잠깐을”기다리면서 주 앞에 영광일 수 있는 삶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종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0) | 2015.07.30 |
---|---|
1000년의 인내와 반역 (0) | 2015.07.01 |
그리스도의 재림의 박두와 거리 (0) | 2015.06.03 |
디플레이션 현상 심화, ‘D’의 공포 (0) | 2015.03.10 |
심판 (0) | 2013.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