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신학(Ecotheology)을 생각하면서
지난 일요일 오후 별내면사무소에서 동쪽 산 계곡 분지를 조성하여 “에코 랜드(Eco-Land)”를 조성해 놓은 것을 둘러보면서 여러 상념들이 떠올랐다. 에코 랜드는 남양주-구리 지역 쓰레기 및 폐기물 소각장에서 나온 재를 쌓아두는 시설을 두고 붙인 이름이다. 시설이랄 것도 없다. 저수지 같이 저지대 운동장 같이 평평하게 판 지대 바닥에 자갈 같은 것으로 깔아 놓은 형태인데 가운데 여기저기에 침출수 수집 장치 같은 것을 해 둔 것이 전부라고나 할까? 지난여름 내린 비에 급경사를 이룬 양 쪽 산 여기저기가 흉물스럽게 무너져 내린 황량하게 보이는 지대이다. 입구에 관리실 같은 건물, 인조 잔디구장 및 몇 가지 체육시설을 설치해 놓은 것 다음에 거대한 제방을 쌓아 두고 그 안에 소각재를 버리는 지대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청학리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수일 전 개장한 것이다. 주변에 야생화 단지를 마련하거나 하다못해 코스모스라도 가득 심어 놓고 에코 랜드 윗 쪽 울창한 산에 몇 개의 산책로를 개설한다면 그나마 에코 랜드 이름값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이 에코 랜드를 두고 시비를 하자는데 있지 않다. 에코 랜드는 내게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 있는 환경문제를 애드벤티스트로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게 해 주었다.
린 화잇(Lynn White, Jr.)은 지난 1967년 Science 155호 지에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라는 글에서 그리스도교의 창조교리가 현대 환경적 위기의 뿌리가 된다고 주장하여 일약 유명하여졌다. 창세기 1:28에 나오는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말씀이 오늘날의 환경적 재난의 이데올로기적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야 말로 환경 파괴의 큰 죄책을 범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죤 패스모어(Jon Passmore)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서 린 화잇 격한 주장을 배척하는 폭군으로서의 인간(man as despot)론을 전개하였다. 패스모어는 창세기 1:28을 관리자로서의 인간이 청지기적 정신을 짓밟고 전제주의자가 된 인간 중심의 헬라적 사상이 환경파괴의 주 동인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린 화잇의 주장에 동조하는 급진적 환경신학을 펼쳐왔다는데 있다. 이런 급진주의자의 선봉에는 천주교 사상가 토마스 베리(Thomas Berry)가 있다. 베리는 “지구의 꿈”(1988)이라는 책에서 오늘날의 환경문제 배후에는 ‘신성이 자연계를 초월하는데“ 돌려 질 수 있다고 보아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을 물고 늘어진 느낌가지 주고 있다. 그는 프란시스를 환경주의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앙하고 있다. 그는 ’정복하고 지배하라”는 성경 본문에 서린 돌보고 지키라는 메시지와 정의롭고 평화로운 통치와 땅을 관리 경작 하라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이 인간은 천연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범하여 타락하였고 이 타락성이 곧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창 3:18)으로 이어졌다. 타락한 인간의 무모하고 횡포스럽고 광란적 천연계 파괴는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급속하여져 왔다. 유물론적 환경관은 지구의 자원 개발이라는 과대 망상적 파괴는 지구의 에코 시스템의 급격한 변모, 즉 기후의 변화까지 몰고 온 것이다. 이런 환경파괴 뿌리에는 인간의 탐욕적 이기심과 자기 욕구 충족이라는 인간 중심의 죄악적 발상이 도사리고 있다. 환경론적인 위기는 인류의 탐욕과 선한 청지기 정신을 배척하는 일에서 나오고 있다. 하나님이 설정해 놓은 청지기주의 정신을 유린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인간의 탐욕은 제지되어야 한다. 이런 인간의 탐욕이 부메랑이 되어 인간의 고통을 가중시켜 오고 있다. 각종 자연재해에는 사실상 인간이 뿌린 것을 거두는 결과들이 많다. 창조세계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무책임하며 무제한적인 자원개발이라는 고삐 빠진 과소비주의를 제어하여 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범신론적 환경관을 신봉하라는 것이 아니다. 피조세계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을 보호하는 시각과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건실한 라이프스타일을 일깨워 나가는 애드벤티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글 후반부는 환경문제에 관하여 대총회가 내 놓은 1995-96년 성명서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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