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죄와 우리의 죄
아담의 죄와 우리의 죄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로마서 5:12이 말하고 있는 요점은 아담의 죄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는 것에 있을까?
로마서 5:12-21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에 관한 중요한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포인트는 아담의 죄의 결과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대비시키는 점에 있다. 5:12의 의미를 바로 포착하기 위하여서는 5장의 문맥을 통하여 사도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본문 그 자체의 의미를 먼저 음미하여야 한다.
1. 죄가 인격화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에서 죄는 낯선 단어다. 본문에는 죄의 기원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지 않다. 죄는 단지 누군가가 접근하기만하면 이 세계의 출입문에서 엄청난 것을 가져다주는 인격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의인화적 언급은 로마서 6-7장에서 더욱 발전되어 큰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종으로 만드는 왕 같은 세력으로 묘사되어 나온다.
2. 아담의 죄는 독특하다.
아담의 죄의 결과는 그의 후손들이 범하는 어떤 죄와 차별화 되어 있다. 아담의 죄는 보편적 영향을 끼쳐 죄가 세상을 장악할 홍수문을 열어 제킨 것이었다. 아담을 통하여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이라는 악한 현상이 이 세상에 이른 것이다.
3. 죄와 사망의 두 세력이 전면적으로 인간 세상을 장악하였다.
피조물은 죄의 노예로 전락되어 그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롬 8:20-22). 아담의 불순종의 행위는 인간 및 이 세상과 연대되었다. “이와 같이”라는 말은 “결과적으로” 또는 “그러므로”의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죽음이 전 인류에게 파급되어 보편적이 되었다. 전 인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바뀌었다.
4. 아담의 죄와 각 인간의 죄
죄는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으므로 죽는다(5:12). 이른바 원죄설의 근거가 되는 롬 5:12에서 암브로시우스는 "epi ho” 를 옛 라틴어 번역에 따라 "in quo"로 오독하여 “그(아담) 안에서(in whom)” 로 보았고, 그 결과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모든 사람이 아담의 허리 근원에서 범죄하였다고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그 때 범죄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담 안에서 모두가 죄를 범하였다고 보는 원죄 사상을 전개하는 이론은 “epi ho”를 잘 못 이해한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epi ho”는 “때문에(because)” 로 번역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원문에 따른 바른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 해석에도 의문이 남아 있다. 모두가 죄를 범하는 것이 각 개인의 자기 죄인가 아니면 아담의 죄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즉,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 각 개인이 죄를 범하였는가? 아니면 모든 사람이 각기 자기 죄를 범하는 것인가?
여기 본문에 나오는 “epi ho” 이하 구절이 각 개인이 자기 죄를 범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보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아담 안에서”라는 구절이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본문을 여기에 소개할 필요가 없다. 12절은 아담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지 않고, 그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둘째로 동사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느니라”라는 진술은 각 사람이 실제적으로 지은 죄를 두고 한 표현이지 아담의 죄 안에 참여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롬 2: 12 참고). 우리는 바울이 하고 있지 않는 의미를 본문에 부가하여서는 안 된다.
세 째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느니라”의 의미를 더욱 명료화하기 위하여 바울이 다른 곳에서 말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로마서 3:23은 로마서 1:17-3:26에서 논하고 있는 것처럼 전 인류의 실제적인 죄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 이 문맥에서는 아담 안에서 죄를 범하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라는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 과거 시제 “죄를 범하였느니라”는 역사를 통하여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한 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죄가 보편적이기 때문에 죽음도 보편적이다. 아담의 범법행위를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와 사람들을 종으로 삼는 세력이 되어 왔다. 그리스도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이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게 되었다. 아담의 행위의 결과로 전 인류에게 죄는 불가피하게 되었다. 인류의 대표자로서 아담은 그의 모든 후손에게 영향을 끼쳤다. 아담이 우리의 원 조상이기에 우리는 그와 연대되어 존재한다. 그리하여 죄가 우리를 관장하게 되었다.
로마서 5장은 두 아담의 본성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끼친 그들이 끼친 결과를 비교하고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죄의 종노릇하게 하는 권세를 패퇴시키켰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악한 권세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롬5:18).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롭게 하시는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지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에 대해 말한 다음 바울은 예수님이 어떻게 그 일들을 행하셨는지 설명한다. 아담은 그의 행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지고 왔다(롬 5:12). 이를 두고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고전15:22). 그리스도 없는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로 전락되었다 (엡 2:1). 그리고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엡 2:2-3). 죽음의 존재로 전락된 인간은 참 생명을 잃어버렸다. 그 마음 상태는 부패하여 썩어져가고 있었다.
시내산에서 주어진 십계명으로도 죄와 죽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여호와의 율법은 인간의 죄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단죄할 뿐이다. 율법은 죄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담의 잘못된 선택에 책임이 없으나 그 결과로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 어두운 결과적 연대 때문에 우리가 낙원을 상실한 것이다.
인류의 죄와 사망의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회복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생명이라는 은혜로운 선물로 인류의 죄의 빚을 갚으셨다(롬 5:15~16). 그렇게 해서 아담의 죄 때문에 사망이 왕 노릇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때문에 은혜의 풍성함과 의의 선물이 왕노릇한다(롬 5:17). 바울은 롬 5:18~21에서 자신의 논증을 요약한다. 첫째 아담이 정죄와 죽음을 불러왔고 둘째 아담은 화목과 생명을 가져왔다.
예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 곧 영원한 사망을 십자가에서 당하셔서 사망을 폐하셨다.(딤후1:10)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의 세력 잡은 마귀가 죽어 없어지게 되었다. 대쟁투에 마지막 승리의 실상이다. 재림하실 때 완성된다. 대쟁투는 도덕적 투쟁 이전에 생명과 사망의 세력의 투쟁이다.
아담의 죄 결과가 그 후손들에게 끼친 죄의 결과적 연대 범주
칼빈주의에서의 아담과 각 개인과의 관계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계약적 수장권론(Federal headship) - 각 개인은 자기의 신체적 본성을 부모로부터 받으나 하나님께서 직접 영혼을 창조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전 인간의 대표로 하셨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표성과 평행적이다. 계약신학자들의 입장이다.
2. 자연적 유전론(Natural headship) - 영혼 유전론적 입장을 취한다. 아우구스투스를 시발점으로한 원죄론 입장을 발전시켜 왔다. 인간 구조 이해에 있어서 이분법에 따르며 신체도 영혼도 부모로부터 유전 받는다. 전 인간은 아담 안에서 정액 형태로 존재한 것이다. 각 개인은 아담의 죄에 참여한다. 고로 각 개인은 아담의 죄를 전가 받는다.
위 두 이론은 인간 영혼을 독립적 실체로 보는 전제에 문제점이 있다. 그렇다고 성서적 계약 사상이나 부모의 유전적 성향을 전수 받는다는 사상을 모두 배척할 것은 아니다.
아담은 개인인 동시에 모든 인간의 근원적 통일성을 주는 존재가 되어 그의 죄의 결과 인간 모두는 죄인이 된다. 아담의 죄가 생리적으로 후손들에게 유전되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아담과 하나가 되어 그와 연대된 근원적 통일성을 이룬다. 그리고 인간 존재는 아담의 죄로 인한 결과로 죄의 성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아담 후손들은 유전된 죄(inherited sin)라는 굴레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는 인간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 죄는 이 유전적 약점을 파고들어 행위로 나타내게 한다. 이런 시각은 다음의 엘렌 화잇 글에도 나온다.
“죄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선천적으로 불순종의 성향을 타고난다(Because of sin his posterity was born with inherent propensities of disobedience)”(5BC 1128; 화잇주석, 요 1:1-3,14).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그들이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inheritance)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들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전승물로 내려간다. 이 무서운 사실이 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견제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해야 한다”(PP 306).
“만일,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 기만하여 그들이 위대하고 선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이 그들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만 있으면, 그들은 할 수 있는 힘이 그들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어떤 초월한 능력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1T 294).
성경에는 죄의 결과를 후손이나 타인이 연대책임을 지는 메시지들이 나온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 14:18)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탄생한 아이는 다윗의 죄로 죽었다.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삼하 12:15). “사형 선고는 다윗에게서 그의 범죄의 아이에게로 전가되었다.”(부조, 722).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간의 죄로 인하여 자녀들이 언약적 저주 아래에서 모두 징벌당하였다.
“왜 아간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벌을 받았을까? 그 까닭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큰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의 지시를 따라 훈련과 교육을 받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간의 부모들은 아간이 거침없이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방치하였고, 그의 생애에 되풀이 되어 나타난 이같은 원리들은 그의 부모들을 또한 부패케 하는 영향을 미쳤다. 정신은 다른 정신 위에 작용과 반작용을 거듭한다. 아간의 식구들을 다 그 징벌에 포함시킨 것은 그들 모두가 다 그 죄에 연루(連累)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원고 67, 1894).”(화잇주석, 수 7:24-26).
비록 기브온 사람들이 멀리서 온 것처럼 위장 순복하였지만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그 땅에서 살도록 허용하겠다고 엄숙히 맹세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 엄숙한 맹세에 기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만약에 그들이 한 맹세를 어기면 필연적으로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으로 알고 있었다. 400년 후에 민족주의적인 운동의 일환으로 사울과 그 휘하 신하들은 여호수아와 회중의 방백들이 했던 거룩한 맹세를 어기고 기브온족을 도륙 및 약탈하였다. 이 일로 기근이 임하고 결국 사울 자손 7명을 처형였다.
다윗의 치세 시 인구조사로 7만명이 온역으로 죽은 사건(삼하 24장)은 엄청난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졌다. “인구 조사하는 일은 백성 중에 불만을 일으켰으나 그들 자신들도 다윗의 행위를 자극시킨 동일한 죄악을 품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압살롬의 죄를 통하여 다윗을 형벌하신 것처럼 다윗의 과오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벌하셨다”(부조, 748).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애 5:7). 그러나 같은 장에서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애 5:16)라고 하고 있다.
연대책임 (Corporate solidarity)의 진상
죄 때문에 고통과 벌을 받는다는 사상은 구약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에는 개인이나 전체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망한다는 징벌의식이 팽배하였으나, 주전 7세기부터는 왜 의인이 악인들과 함께 망하거나 고통을 당하는 연대책임 운명에 휘말려 들어가느냐는 질문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레미야 31:29-30과 에스겔 18장에 나와 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겔 18: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겔 18:3).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19-20).
에스겔서에 나오는 속담은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자기네들이 고통당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풍미하는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유다가 망할 당대의 시대정신은 자기들은 죄를 회개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불행의 원인을 조상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들의 연대책임 속담의 근거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근거는 성경을 잘못 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엘렌 화잇은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를 다음과 같이 풀고 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그들이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들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전승물로 내려간다. 이 무서운 사실이 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견제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해야 한다.”(부조, 306).
타인이나 조상들의 죄 때문에 고통당한다는 연대책임론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타인이나 조상의 죄로 인한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그 고통이 징벌 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은 사람이나 조상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는 사상은 정당하지 못하다(18:25). 저들의 연대책임적 속담에는 하나님을 비난하는 음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암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암환자 자신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다. 속이는 음식이 범람하고 오염물질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으며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와 무한대적 죽기살기식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연하는 세상에서는 암환자가 폭증하기 마련이다. 암환자의 고통은 징벌이 아닐 경우가 많을 것이다.
연대책임보다는 각 사람은 하나님과 직결되어 있다는 개인책임을 강조하는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이미 신명기 24:16에 나와 있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그렇다고 예언자의 속담 비판 필치를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것으로 보면서 연대책임을 폐기하거나 거절하는 눈으로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 오히려 각 개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를 살려내야 하는 사명과 책임을 지고 있다는 강한 의식이 지배하여야 그 사회가 건실하게 발전한다. 개인이 전체 속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속에 있으면서도 그 자신이 전체의 운명을 죄우할 수 있는 책임적인 존재라는 시각에서 해석하여야 한다. 한 사람의 의인이 민족공동체나 신앙공동체를 살려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예언자들이 남은 무리를 이끌어내려는 필치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의미에서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으로 남은 자 사상을 풀려고 하는 시각은 천박하다.
<참고: 죄의 전가론 도표>
죄의 전가(轉嫁)에 관한 이론들 | ||||||
| 정죄 무 유전 | 정죄 유전 | ||||
| Pelagian 모본론 | Arminian 성령론 | New School 율법론 | Federal 계약론 | Placean 새 본성론 | Augustinian 유전론 |
1. 영혼의 기원 | 직접 창조 | 직접 창조 | 직접 창조 | 직접 창조 | 직접 창조 | 간접창조 (중개 창조) |
2. 출생시 인간의 상태 | 순진무구,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음, 부패성없음, 자유의지 | 부패되었지만, 여전히 성령과 협동할 수 있음 | 부패되고 사악하지만, 그것이 죄는 아님 ⇒ 부패/사악 ≠죄 | 부패되고 , 무능하고, 정죄 받는 존재 ⇒ 부패/사악 =죄 | 부패되고, 무능하고, 정죄받는 존재 | 부패되고, 무능하고, 정죄받는 존재 |
3. 아담의 죄의 영향(결과) | 자기 자신에게만, 후손에게 영향 안 줌 | 육체적, 지성적으로 그의 후손들을 부패시킴. 아담의 죄책이 전가되지 않음. | 부패성, 사악성을 전인류에게 전달함 | 언약으로 후손들을 정죄받게 하고, 부패된 채 태어나게 함 | 모든 후손들을 선천적인 부패성에 관련시킴 | 아담의 죄, 타락성과 죽음 |
4. 모든 인간이 어떻게 죄를 짓게 되었는가? | 아담의 모본을 따름으로 | 성령의 도우심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자신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비준 | 알고있는 율법을 자발적으로 범함으로 | 아담의 죄 안에서 죄인으로 간주됨으로서 | 부패된 본성을 소유함으로서 |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정액 형태로 아담의 죄에 참여함으로 |
5. 부패성의 의미 | 각각의 경우, 악한 습관에 대해서만 | 성령을 무시하고 악한 습관을 유지함 | 악한 성향들이지만 정죄받지는 않음 | 정죄받을 악한 기질과 상태 | 정죄받을 악한 기질과 상태 | 정죄받을 악한 기질과 상태 |
6. 무엇이 전가되었는가? | 자신의 죄들 | 오직 인간 자신의 죄들과 이 본성을 비준 | 사람의 개인적인 범죄 행위들 | 아담의 죄, 인간자신의 타락성, 그리고 인간 자신의 죄들 | 오직 부패된 본성과 인간 자신의 죄 | 아담의 죄, 우리의 부패성, 자신의 죄 |
7. 죄가 초래한 사망이란 무엇인가? | 영적 및 영원한 죽음 | 작정에 의한 육체적 및 영적 죽음 | 영적 및 영원한 죽음만 | 육체적, 영적 그리고 영원한 죽음 | 육체적, 영적 그리고 영원한 죽음 | 육체적, 영적 그리고 영원한 죽음 |
8.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름으로 ⇒ 모본론 |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성령과 협력함으로 ⇒ 성령론 | 성령에 의해 계시된 진리의 영향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율법론 | 그리스도의 행위를 통하여 의롭다고 선언됨으로 ⇒ 계약론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본성을 소유함으로 ⇒ 새 본성론 | 우리와 하나가 되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 유전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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