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

<祈願 第二>

6:10

서론

어거스틴은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재난을 허용하셨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신의 도성>을 집필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렇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그러나 그 나라가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간다.’

어거스틴은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건설되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본 것이다. 우리는 칠흑같이 캄캄한 어두움 밤 같은 세상에서 먼동은 아직 트지 않을 그 찰나의 순간에서 고민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이다. 오늘 우리가 선 자리가 혼돈과 질서가 파괴되는 카오스의 상태로 치닫는다 하여도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건설되어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 이래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 하여 왔다. 선거철만 되면 부나방들처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 군상들이 나서서 현재의 권력자들을 비판하면서 무슨 이상사회를 만들 것 같은 공약을 일삼고 있지만 모두 다 헛것을 추구하는 것들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은 지상천국 이상국가를 세우고자 한다. 이른바 millennial kingdom, millennialism이다. 죄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악의 세력 아래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유사종교 운동 단체들은 이런 것들 표방한다. 차천자(차경석)식 운동이나 증산교도들이 이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날 전개한 중국의 태평천국도 이런 아류에 속한다.

나라는 그런 지상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우러름을 받게 될 때 비로써 하나님의 지배가 시작되는 때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왕국(kingdom, basileia)은 절대적 통치권을 왕이 지배한다. 하나님 나라는 시끄럽고 문제 많은 공화국이나 민주국이 아니다. 그 나라는 거룩하신 왕이 통치하는 나라이다. 마태복음의 하늘나라와 마가복음-누가복음의 하나님 나라는 같은 나라를 말하고 있다. 마태는 유대인들의 하나님 경외라는 문화적-종교적 이유 때문에 하늘나라라는 표기를 채택하였을 뿐이다.

흔히 주권, 국민, 영토를 두고 국가의 3대 요소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 역시 이 3대 요소가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토는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는 나라는 아직도 멀었다. 지금은 그 나라의 백성을 모집하는 기간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이 기도는 <하나님의 오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재림교회라는 간판 자체가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백성들이라는 뜻을 안고 있다. Advent! advent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온 말로 그 뜻은 "coming" of God이다. 초림도 재림도 다 포괄하는 용어이다. adventus 는 헬라어 parousia 의 번역어이다. 애드벤트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오심에 있다. 이미 도래하였고 불원간 다시 오실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4000년을 기다린 끝에 때가 차매 예수께서 오셨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2000년을 기다리고 있다. 재림을 약속한 성경절들이 마치 찬미가의 후렴처럼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약속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여겨 실존적 종말론이니, 실현된 종말론이니, 또는 영적 재림이니 등 이상한 대안들을 그럴듯하게 내 놓았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문자적인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고 있다.

 

I. 왕국의 종류

구원이 무엇인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제1차적으로 은혜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은혜의 나라에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악이 지배하고 낡고 쇠잔해 가는 현 시대와 오는 시대 (The present age and age to come)로 구분된다. 이 두 시대를 구분하는 분기선은 메시야의 오심과 부활이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셨다고 곧 오는 시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현 시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메시야 시대는 현 시대의 연속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오는 시대가 부분적으로 앞으로 투입된 특성을 지녔다. 미래 완성될 오는 시대를 예견시키는 시대가 메시야 시대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기별이 당신의 은혜의 왕국을 공포하였던 것처럼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은 그의 영광의 왕국을 공포한다”(소망, 234).

 

A. 은혜의 나라-마음의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천국이 아니다. 침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였다(3:2). 예수께서도 공생애 첫 메시지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4:17)고 하셨다. 이 은혜의 왕국은 영광의 왕국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DA 234; GC 346, 347,). ”가까웠느니라“(at hand, ἤγγικεν, perf act ind 3 sg)는 절박한 박두를 시사하고 있다.

예수의 초림으로 인간사회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벌써 와 있다고도 하였다. (12:28). 예수의 초림으로 이 나라가 성립되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쉼을 얻은 사람 (신자들)의 마음과 삶이 그 영토가 되신다. 이 천국 체험을 지닌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산상보훈은 은혜의 왕국 헌장이다. 죄와 반역하는 마음을 매일 하나님의 주권에 예속시켜 순복하므로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가까웠다고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건설되었다. ”(쟁투, 347)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도 하셨다(17:21). “너희 안에는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이다.

인간은 타율의 굴레를 벗어나 자율을 지향한다. 그러나 그 자율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고 백가쟁명식 주장으로 난무하는 사회를 만들 뿐이다. 자율에서 신률(theonomy)로 나가야 한다.

사람은 하루에 8만 번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은 잠시도 멈추어 있거나 조용한 호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넘나들고 출렁이고 파도치고 있다. 사기꾼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머리를 얼마나 잘 굴리는지 ...

인간의 마음의 생각을 하나님의 은혜로 묶는 일은 구원의 길이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인간 죄인들이 예수께 가면 그 분이 주시는 안식의 나라가 이 은혜 왕국이다(11:28). 그리고 매 안식일 우리는 그 나라의 진수를 체험한다.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 나라는 천국의 지점이다. 그 본점은 영광의 나라이다.

 

B. 영광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말론적으로 임할 나라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기별이 당신의 은혜의 왕국을 공포하였던 것처럼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은 그의 영광의 왕국을 공포한다”(소망, 234).

21:1-4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어 있는 나라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확인하고 그 왕국의 도래를 기원하는 메시지로 끝나고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1. 우리는 마라나타 백성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maran atha(NKJV) - Our Lord, Come! marana tha Our Lord Comes! (22:20). 이 소망을 안고 메시야의 재림을 기도하고 대망한다.

 

2. 하나님의 오심 소망의 확실성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50:3).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1:7)

 

III. 기다림의 시간

A.“잠시 잠깐(mikron<little> hoson<a very> hoson)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7-39). 우리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려야 한다. 재림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기다리라. 온 마음을 다하여서 기다리며 준비하라.

B.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1.사랑과 신뢰의 시간 대 양적 시간, “잠깐이나 속히같은 말은 확실한 재연합의 보증을 함축하고 있는 사랑과 신뢰하는 사람 사이에 사용하는 용어이다. 70대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

요한복음 16:16-18 “조금 있으면(mikron)”7

벧후 3:“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하나님의 타이밍은 인간의 준비에서 완성된다. 주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섭리를 정점으로, 두 발이 되는 세계 선교와 성도의 완전이라는 삼각형적 시간데에서 결정된다.

멸망하지 않도록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탕자를 문 앞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C. 그리스도의 재림 시간적 특성과 특징

1. 시간적 특성

(1) 도래의 확실성, 사실의 확실성

24:30; 25:31 shall-come texts

(2) 시간의 불확정성--깨어 있는 일이 중요

13;32-33; 24:36-44; 1:7

D. 재림의 현상

1. 문자적, 인격적 오심(literal, personal return) 14;3; 살전 4:16 “친히

2. 신체적 오심(physical return) 1;11

3. 가시적 오심(visible return) 1;11

4. 가청적 오심(audible return) 살전 4:15-16; 24:27

5. 갑작스런 오심(Unexpected, suddenly) 살전 5:2-3 “홀연히”; 25:1-3

6. 승리와 영광스러운 오심(triumphant & glorious)

7. 격변적 오심(cataclysmic, catastrophic)

8. 단회적 오심(A single event)

성경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단회적 사건(one stage occurrence)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2단계 재림론(dual stage)을 주장한다. 그들은 파루시아(parousia) 때 교회 신자들을 위한 비밀휴거(rapture)7년 환난 시작 때에 일어나고, 그 다음 7년 환난 끝에 에피파네이아(epiphaneia)와 아포칼륍시스(apokalyphsis)가 일어난다고 보는 2단계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성경절들에 비추어 볼 때 파루시아(parousia)와 에피파네이아 및 아포칼륍시스는 동의어에 불과하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apokalyphsis)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parousia) 나타나심으로(epiphaneia) 폐하시리라”(살후 2:8).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epiphaneia)을 기다리게 하셨으니”(2:13).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apokalysis)을 기다림이라”(고전 1:7).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apokakalysis)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또한 파루시아 사건 때 수반되는 위에서 열거한 재림 시 수반되는 여러 현상에 비추어 보아 비밀 휴거 2단계 재림론은 비성서적이다.

 

VI. 그리스도의 재림 소망의 박두와 거리

A. 신약성경에서의 박두와 거리

구약성경에도 신약성경에도 메시야의 박두와 거리의 메시지가 병행되고 있다.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자기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반복하여 강조하셨다.

1. 박두 메시지 -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13:11-13 ); “주께서 가까우니라”(4:5);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벧전 4:7 ); “속히 오리라”(22:20 ) 등등.

2. 거리를 두고 있는 메시지

24:14 천국 복음의 전 세계적 확장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24:2 성전이 파괴되는 시간대를 전제로 하고 있다.

25:5, 19 10처녀의 비유에서 신랑의 지연

12:41-48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확신 (참고, 24:45-51)

19:11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므나의 비유 배경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예수께서는 재림이 베드로가 늙을 때 까지는 지연될 여지를 남기셨다.

 

11:25-26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살후 2:2, 3 배도가 먼저 있고, 불법의 사람 등장

6:10 제단 아래 있는 영혼의 신원 호소; 11:3; 12:6에 나오는 1260년 기간

B. 박두와 거리의 긴장관계 해결책들

1. 초기교회의 신앙 위기론을 주장하는 접근법이 있으나 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2. 하나님의 오심을 이중적으로 포개 둔 원근법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3. 인간 사회에서 양적, 경험적 시간과 질적, 실존적 시간 개념이 나오기도 한다. 양적 시간은 시계와 달력으로 측정되는 시간이다. 그런가 하면 사랑과 신뢰로 재는 질적 시간, 실존적 시간 개념도 나온다. 후자의 사례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수일처럼 여긴 경우를 들 수 있다 (29:20). “잠시 잠간 후(mikron hoson hoson)" (a little while, very very little)이란 박두적 시간 개념에는 확실한 미래의 재연합의 보증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14:18-19; 16:16)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시장에 가는 엄마가 자녀들에게 또는 속히오마고 약속하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인간은 찰나적 시간대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신 시간 개념대에 속하여 있어 (벧후 3:8) 박두와 거리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유기적 불가분리성을 중심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O. CullmannD-DayV-Day 용어를 중심으로 초림과 재림의 유기적 불가분성을 설명한 바 있다. 또한 Parousia는 과거적 오심과 미래적 오심을 이중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래는 아직 멀지만 절박하다. 초기교회 시대에 시작된 말세(2:17; 1:1)2300주야 예언 기간이 끝나는 정한 때 끝, 또는 때의 마지막 개념의 차이에 나오는 불가분적 관계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주의 기도문에 나오는 나라이 임하옵시고가 은혜의 나라와 동시에 영광의 나라를 포괄하고 있다. 성만찬 예식에서 우리는 현재적 구원을 맛보면서 재림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5. 재림 소망의 도덕적 긴급성과 영적, 윤리적 목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중요한 점은 시간 계산이 아니고 계속적 준비이다. 악한 종은 이점이 결여되어 있다(12:45). 제자들은 언제(when)" 에 관심이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그 언제질문에 대하여 무엇(what)을 준비할 것인니로 대답하셨다(13:4).

 

C. 재림의 지연(delay)

충성스러운 종과 악한 종의 비유 (24:45-51)에서 주인이 더디 오신다.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24:48).

열 처녀의 비유(25:1-12)에서도 신랑의 지연 사상이 나타난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25:5).

"더디 오므로"는 헬라어 “chronizoo"(to delay, to tarry)는 기다리는 인간의 개인적, 주관적 지연에 초점이 있지 도착이나 오심이라는 사실의 객관적 지연에 있지 않다. 엘렌 화잇은 1868년에 이런 시각의 진술을 하였다.

그들은 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했고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입에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주께서는 아침이 완전히 밝아오기 전에 지체할 것을 암시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피곤해지거나 열렬한 각성을 늦추게 하지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아침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곧 밝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자로 내 앞에 제시되었다. ”(2증언, 192).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2300주일 예언 기간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 예언기간이 마치기까지는 지연일 수가 없다. 그러나 1844년 이후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교리를 전하여 온 것에 비추어 보면 지연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관점일 뿐이고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은 아니다.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구속의 경륜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인간적인 지연 시간대는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대이다.

 

D. 그리스도 재림 지연 이유에 대한 설명들

Roy Branson은 다음 세 가지 반응으로 정리하였다[“Responding to the Delay," Pilgrimage of Hope, ed. Roy Branson (Takoma Park, MD: Association of Adventist Forums, 1986), 8-17].

(1) 세계선교의 지연 결과로 보는 입장(The Expansionist response)--재림교회는 마태복음 24;14의 선교 명령에 따라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여 왔다. 심정적으로 세계 선교 사업의 엔진 동력을 이끌어 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지연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 선교의 양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2) 도덕적, 영적 준비의 결여로 보는 입장(The Moral response)--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 원인을 구원 받을 수 있을만큼 완전한 상태에 미달한 때문으로 본다. 그 대표적인 예는 Graham Maxwell[Can God Be Trusted?(Nashville, TN: Southern Publishing Assn., 1977), 46, 128]에 나타나 있다. 그는 구속의 경륜을 단순히 죄 용서 제공이라는 관점 이상, 곧 변화된 성도라는 관점으로 이해하여 품성의 완전 결여가 그리스도의 재림 지연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통상적으로 완전주의적 풀이로 연계되기 마련이다. Herbert Douglass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죄 없는 상태로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Perfection: The Impossibility Possibility (Nashville, TN: Southern Publishing Assn., 1977), 30]. 이 입장의 약점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의 성취에 매달리게 된다는 점에 있다.

(3) 우주적 반응(The Cosmic reponse)--Fritz Guy가 강조한 시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의 시간대에 있을 것으로 본다[“Dynamics of the Advent Hope," Pilgrimage of Hope, ed. Roy Branson (Takoma Park, MD: Association of Adventist Forums, 1986), 117)]. 그리스도의 재림은 대쟁투가 끝나 동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관점에서 볼 것도 아니다(벧후 3:8).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간의 선교적 성취나 도덕적 성취에 의존시키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의 결정으로 도래할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V. 호소-하나님의 기다림

인생의 길은 문자 그대로 멀고 험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왜 이렇게 짧은 인생이 멀고도 험해 보이는가.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서둘러서 일을 저지르는가?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을 갉아먹는 세상살이에 마음이 팔려 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더 큰 고통, 더 큰 방황, 더 큰 좌절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만약 기다릴 수 있다면, 만약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네 인생이 멀고 험한 길만이 아닌 영광의 길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잠시 잠간 후면 이루어진다는 신앙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완전과 세계 선교라는 두 발을 기초로 성립되어 있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이 두 발이 바로 되어 있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인간의 돌아 옴, 그리고 굴복, 눈물의 회개에서 이루어지는 완전에 그 초점이 있다. 우리 주님은 지성소에서 곧 일어나지 않으시고 인간이 회개하할 시간대를 연장하고 있다(벧후 3:8-10).

 

사랑하시는 여러분, 내 인생에서 응답이 지연되고 있다고 느끼는가? 꿈이 좌절되어 있다고 느끼는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보는가? 서두르지 말라. 오늘 우리는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기다림의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를 어떻게 준비시키고자 하는지 목자들이나 시므온 안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라. 엎드려 기도하라.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라. 조급한 선택을 한 아브라함이나 야곱처럼 긴 고통을 유산으로 남기는 선택을 피하여야 한다. 서두르지 아니하고 엎드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잠시 잠깐을기다리면서 주 앞에 영광일 수 있는 삶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화: 15년간 사라졌던 남편을 기다린 아내-19712-350세 때 뉴욕 교회 라취몬트에 우편 집배원으로 25년 일한 Jim MacDonnells 연이은 사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얼음판에 미끄러짐, 운전 중 재채기로 차를 전신주에 충돌 머리 부딪침,다음날 집무중 현기증으로 넘어짐, 10일 후 차 제어 못하여 전신주에 부딪침, 1971329일 케네디 공항에 이웃 왜건차를 빌려 아내 Anne의 가족들 집으로 픽업, 차를 돌려주고(이 때 지갑이 차에 빠짐) 15분 거리의 집으로 걷는 중 무서운 두통으로 기억상실증, 필라델피아로 향하다. 아내의 기다림 시작, 1985년 크리스마스 이브 수일 전 다시 머리를 연이어 찍다. 1224일 저녁 집으로, 남편을 기다린 아내의 모습은 재림을 기다리는 재림신도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