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개혁, 그리고 그 중심
제도와 개혁, 그리고 그 중심
I. 성경 본문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눅 9:28-36).
II. 배경
본문의 이야기는 우리가 다 잘 아는 이야기이다. AD 30년 늦여름 어느 날 저녁 낙조의 찬란한 모습이 펼쳐지는 무렵 변화산 사건이라 부르는 이 사건 1주일 전에 있었던 일들을 잠시 살펴보자. (베드로가 그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지 만 6일이 지난 후(마 17:1; 눅 9:28의 ‘8일쯤’은 만 6일 전후에 걸린 시간 포함한 계산).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다. 이에 대해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시고 그때부터 비로소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며 만류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베드로에게 오히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책망하시고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말씀하셨으며 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하셨다.
유대나라 지도층에서는 이미 지난 유월절 이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반대 기류가 선명하여 갔다. 이미 산헤드린에서는 예수의 공중 봉사활동을 중단시키려는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대리고 밤에 산 기도를 가셨다. 마태와 누가는 이 산을 높은 산이라고 기록하였다. '높은 산‘은 Tabor 산 (1843ft, 561m)이라는 설이 있으나 다볼산이 높은 산이 아니고,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서 외딴 곳(’따로’)으로 언급된 점(DA 419), 나사렛 남쪽에 위치한 점, ‘적막한 산 중턱’이라는 표현(DA 419)과 조화가 잘 되지 않는다. Hermon 산(9166 ft, 2,798m) 설이 있지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22km 지점에 있는 고산(高山)이라는 점, 헤롯과 가야바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이방인 지대인 점(DA), 변화산 사건 이후 갈릴리 지방 여정 묘사에 조화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리하여 변화산은 갈릴리 어느 산 중턱일 것으로 본다.
예수께서는 온 종일 봉사활동을 펼치셨기 때문에 피곤하셨지만 제자들을 대리고 고요한 산길을 오르셨다. 산 아래 이르러서 9제자들을 산 아래 남겨두고 베드로, 요한 및 야고보를 택하시어 대리고 기도하시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세 제자만 선택하신 이유는 다른 동료들보다 더 진리에 대한 이해 민감도가 높았고, 두려움과 절망의 시간대에 함께 있게 하여 그들을 준비시키고자 함에 있었다(DA 420). 아무 말씀이 없으신 침묵의 등산이었다.
등산 목적은 기도에 있었다. 먼저 예수께서는 자신이 온 인류를 위하여 시험을 견딜 수 있도록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였다. 그 다음에 제자들이 고난의 시기에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도록 기도하시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지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므로 힘을 얻을 수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세 제자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그의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이다. 그뿐 아니다. 흔히 변화산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신 것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더 중요할 수 있는 다른 현상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 제자는 예수님의 변화뿐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 나누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 말씀을 제자들이 들은 것이다. 이에 제자들은 엎드려져 심히 두려워하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오셔서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기에 눈을 들었지만 이미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III. 변화산상에 등장한 인물들과 대화내용
1.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얼굴과 옷이 해같이 빛나고 희어진 것은 예수님의 영광과 주권과 순수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의 본래적이고 영원하신 초월적 영광을 잠깐 동안이지만 제자들에게 보이신 사건이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오실 때에 나타내실 것처럼 예수께서는 하늘의 빛을 입으셨다. 이는 그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히 9:28; 막 8:38). 제자들에게 하신 구주의 허락은 이제 성취되었다. 산 위에서 미래의 영광의 나라가 축소판으로 나타난바 되었으니 곧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재림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 재림을 이름표에 달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들어내고 있다. 변화신에서 맛보기로 보여준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제자들은 늘 간직하여야 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1:16-18벧후1:16-18).
여기서 우리는 그 때 그 산에서 베드로가 가졌던 경험이 "그의 크신 위엄", "지극히 큰 영광", "존귀와 영광"이란 표현으로 남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예수님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늘의 영광 속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메시야와 십자가는 제자들이 생각하듯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십자가의 고난과 재림 시의 하늘의 영광은 함께 가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된다.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뿐 아니라 훗날 그들 자신이 겪을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고 이기도록 용기를 주시기 위하여 재림의 영광을 특별히 보이신 것이다.
2. 모세-- 모세는 부활한 성도들의 대표자,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는 죄와 사망을 이기실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증거였다. 그는 의인의 부활 때에 무덤에서 나올 자들을 표상하였다.
3. 엘리야__엘리야는 변화된 자들을 상징.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변화되어 올라간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지상에 살 자들, 곧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게 될 무리들을 상징하였다(고전 15:51-53).
4. 3자 회담의 주제(눅 9:31)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은 다름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것임을 가르치신 사건이다. 같은 사건을 전하는 눅9:30-32에 보면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예수께서 떠나실 일(exodus)에 관한 대화였다. 에소더스는 가장 모험적 여행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을 향한 출발로 홍해를 넘고 사막을 넘는 고난의 행진 시 다만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만을 의지하고 떠났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 표상적인 역사적 사건의 원형되시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향하여 출발하시도록 격려하고 동정하면서 위로하였다.
5. 제자들의 오해--하나님의 영광을 접하는 체험, 제자들은 아직도 그 광경을 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이리 저리 의지할 데 없는 나그네로 방황하신 인내의 교사,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께서 하늘의 총애를 받은 자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엘리야가 메시야의 통치를 선언하러 왔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지상에 세워지리라고 믿었다.
(참고: 몰몬교회에서는 1836년 엘리야가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들은 공포와 실망의 기억을 영원히 쫓아버리기를 원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이 곳에서 저들은 머물러 있기를 갈망하였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저희 주를 보호하고 왕으로서의 그 권위를 세우도록 보냄을 받은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면류관이 있기 전에 십자가가 와야 한다. 그들이 예수와 더불어 협의한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즉위하시는 일이 아니요 예루살렘에서 있을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의 연약함을 지니시고 그 슬픔과 죄짐을 지신 예수께서는 사람들 사이를 홀로 걸으셨다. 다가올 시련의 흑암이 그를 억누를 때에 그는 자기를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고독함을 느끼셨다. 사랑하는 제자들까지도 저들의 의심과 야망에 빠져서 그의 사명의 오묘함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는 하늘에서 사랑과 정의(情誼)속에서 거하셨었으나 그가 지으신 세상에서는 고독한 분이셨다. 이제 하늘은 그 사자들을 예수께 보냈다. 그들은 천사가 아니요 고통과 슬픔을 당한 사람들, 그러므로 지상 생애에서 시련을 당하시는 구주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와 같이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탄원하기를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도말하옵소서”하였다(출 32:32). 엘리야는 삼 년 반의 기근 동안에 민족의 증오와 그 재앙의 책임을 져야 하였으므로 고독감을 맛본 사람이었다. 그는 홀로 갈멜산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섰었다. 그는 홀로 고뇌와 절망 속에서 고독감에서 광야로 도피하였었다. 이 두 사람이 보좌에 둘려 있는 모든 천사 중에서도 특별히 택함을 받아 고난의 광경에 관하여 예수와 더불어 의논하고 하늘이 동정한다는 보증을 가지고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왔던 것이다 (소망 422-425).”(화잇주석, 막 9:2-8)
IV. 무너진 곳을 수보하는 자
1. 모세-창업자
모세는 여호와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 주었다. 모세는 가나안을 향한 이스라엘을 위한 제도의 창시자이며 그 화현이 되었다. 가나안을 향한 백성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과 제도를 선포한 지도자였다. 이 창업자는 고독한 자이었다. 이 율법과 제사는 구약성경의 두 축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재림교회 선구자들을 통하여 이 남은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2. 반역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는 창업자가 베푼 하늘 제도와 율법을 무너뜨리고 유린하는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저 이방 나라의 종교, 철학, 문화를 흠모하면서 그리스도교 안으로 짜깁기하는 영리한 유대인들이 많았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모세를 완고한 율법주의자요 제도의 노예라고 비방하였다. 사람들이 모세를 배척한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배척하는 일을 자행한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개신교도들은 수천 년 전 과거에 주신 율법을 복음의 새언약 시대인 지금도 지키느냐고 조롱하고 비판하고 있다. 율법은 폐기되었고 복음과 은총의 시대가 열렸다고들 한다. 하나님이 세운 제도를 인간이 무너뜨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이야 말로 재림교회의 기본교리의 핵심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율법의 외연인 교회법을 무시하는 일을 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사단은 남은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교회 안팎으로 일으켜 고귀한 제도를 무너뜨리고자 온갖 수단을 다 강구하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여 왔다. 그들은 사실상 배도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도 들어 있으며 소위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 자기 고집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늘은 거룩한 율법과 제도를 어긴 별을 잘라냈다. 루스벨이 떨어지다(눅 10:18). 교회 안에는 별들이 많다. galaxy들이 있다. 그러나 이 별들이 교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였다. 배도의 역사에 나타난 별들 Canright, J.H. Kellogg 등등
3. 엘리야 파견
율법과 제도가 파괴되었을 때 3년 가믐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위한 참된 단을 수보하였을 때 비가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당신의 율법과 제도가 망가지고 허물어졌을 때 이를 수보하고 회복할 개혁자들을 꾸준히 보내셨다. 그 대표자가 엘리야였다. 엘리야는 모세가 짓밟히고 배척당할 때 그 것을 견책하고 시대의 양심을 바로 세울 예언자였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데를 보수 할 자들을 보내셔 왔다. 특히 재림교회는 이 사명을 부여 받고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4. 두 날개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 날개와도 같은 사명을 지녔다. 제도권의 화신과 개혁의 화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과 왼편에 있어야 한다. 제도와 개혁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셔야 한다. 이 제도와 개혁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같이 환하여졌다. 그리스도는 제도와 율법의 중심이며 개혁은 그리스도 중심의 개혁이라야 한다. 제도는 있지만 그리스도 없는 화석화된 제도와 기관이 존재할 수 있다. 개혁의 미명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부단히 설쳐왔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가 안 계신 경우가 많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축소판인 변화산상의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자들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
제도, 율법, 개혁의 중심은 영광가운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영광스러운 재림의 소망을 맞이할 백성의 한쪽에는 율법과 제도가 있어야 한다. 이미 마련된 제도의 중심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떠나 제도와 율법을 무너뜨렸으면, 그동안 운영하여 오던 제도와 규정이 짓밟혀진 것이 있으면 이를 수보하여야 한다. 엘리야는 옛날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 바로 우리가 속한 교회에도 필요하다.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이 있는데도 그것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호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뿐이다. 인간의 논리로 하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한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재림의 소망과는 거리가 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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