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祈願 第4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시 145: 15-21)
이 기도문에 나오는 중요 단어들은 “오늘(shvmeron), “우리들(hmin),” “일용할 양식
(artos),” “주옵소서δος (didwmi)”이다.
I. 들어가는 말
이 기원은 우선순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앞의 세 가지 기원을 먼저하고 난 후의 기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의 기도문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기도가 선행된 후 인간을 위한 기도로 이어지는 구도로 되어 있다.
이 땅에서 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천국 시민(빌 3:20), 하나님의 이들(요 1:12),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자, 세상을 이긴 자(요 16:33), 생명의 떡을 가진 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도 코로 숨을 쉬고,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굶으면 힘이 빠지고, 물을 안 마시면 혈액순환에 지장이 생겨 지쳐 버리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아라 할지라도 이 세상 사람들과 마찬 가지로 먹지 않으면 깨어지기 쉬운 土器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영원히 썩지 않는 “보화”와 “진주”를 지니고 있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고후 4:7).
주의 기도문 후반부의 세 가지 기원은 이 깨지기 쉬운 토기에 관한 것이다. 그 첫 번째 기원에서는 이 흙으로 된 그릇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완전하게 그 보화와 진주를 보관하고 또한 이를 보관하기에 적합한 그릇이 되려고 하는 기도가 된다.
II. “오늘”
인간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간 존재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노래.
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내일을 결정하고 영원을 결정한다. 역사가 Thomas Carlyle은 ‘오늘 하루’에서 ‘영원’(eternity)을 의식하였다. 이는 칼라일처럼 특별한 DNA를 달리 타고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삶에도 하루를 천년‧만년처럼 살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 독일의 문호 Goethe가 “오늘 하루보다 더 값진 것은 있을 수 없다(Nothing should be prized more highly than the value of each day.)”고 한 말도 같은 궤도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오늘 하루에서 ‘영원’을 찾아야 한다. 인생은 영원히 살아야 할 ‘하루살이들’이다. 영원을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은 필요로 한 것을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하고 믿어야 한다.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 자기가 천년만년 사용하고자 거대한 재산을 모은다고 다 자기 것이 되는 것 아니다. 정작 필요로 한 것은 1년, 1개월이 아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이다.
(참고: 중국의 東方朔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게 되었다는 설,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면서 염라대왕의 수첩을 훔쳐보고 자기 이름 밑에 ‘三十’이라고 적혀 있어 기가 막혀서 염라대왕 몰래 ‘十’자 위에 한 획을 비껴 쳐 그만 三千이 되게 하였다는 설, 삼천갑자를 18000년로 보는 설, 갑자를 3번 옮긴 기간이라는 三遷甲子란 설도 있다. 마지막 설에 따르면 180년 산 셈이다.)
III. “일용할(필요한) 양식”
어떤 사람은 주의 기도문 중에서 이 제4기원이 육적인 것에 관련된 유일한 기원이기에 다른 기원보다 열등한 기도로 보아 이 기원을 영적인 양식으로 풀이를 하기도 하지만, 이는 올바르지 못하다. 일용한 양식은 육적 양식, 영적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
이 제4 기원은 지상생활에 있어서 신자의 약한 육체와 영적 건강에 대한 기도이다. 이 제 4기원은 주로 신체적 건강을 위한 것이지만 영적 건강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제 5, 제6 기원의 주 목적은 영적 기원에 있다.
“현세와 내세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모든 보화가 그대에게 열려진다”(MB 110).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는 육신을 지탱해 줄 양식뿐만 아니라 영혼에게 영양을 공급하여 영생하게 할 영적 양식도 포함되어 있다.”(MB 112).
A. 육적 양식
양식(artos)은 음식, 밥, 빵이다. 그러나 빵 뿐만 아니라 육체적 의식주 생활에 필요로 하는 자료 전부가 포함된다. “양식”이라는 표현은 제유법(synecdoche), 즉 일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수사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양식은 인간 생존에 필요로 하는 것들, 더 나아가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총체적인 조건들이다. 우리 몸이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을 위하여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에는 건강은 물론이고 평안, 지혜, 재산, 지식(시 127:3)도 다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이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약 1:17).
물질은 악한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몸을 학대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보는 것은 성경의 건강 메시지에 일치하지 않는 이교도의 사상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기 몸을 잘 돌보아야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반대로 물질을 건강,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불과하다(마 6:25).
하나님의 보호의 망에는 인간의 신체적 안전과 행복에 관한 것도 들어 있다. 인간이 신체적 존재이므로 이 신체적 안전과 행복에 관한 것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시기를 구하여야 한다. 이는 인간 생존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매여 있다는 신앙의 자세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꼭 육적 빵 없이 사실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러나 그 분은 육체를 지니시고 이 땅에 오셨기에 빵이 필요하셨다. 시장기를 느끼셨고, 시장하실 때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다. 목수방에서 일하시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신 그는 이 기도를 많이 드렸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하여 그 재산을 약탈자의 손이 미치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붙들고 계신다. 그대는 어린아이처럼 매일 그 날에 필요한 것들을 받게 될 것이다. 매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한다. 내일을 위하여 넉넉하게 소유하지 못할지라도 낙담하지 말라. 그대는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편 37편 3절)라는 그분의 약속의 보증을 가지고 있다. 다윗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편 37편 25절)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실하고 헌신적인 자녀들 중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의롭게 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33장 16절).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시편 37편 19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로마서 8장 32절). ”(MB 110-111)
이야기: 1. 광야의 만나 공급
2. 그릿 시냇가 엘리야를 먹이기 위하여 까마귀를 보내신 하나님, 사르밧 과부
B. 영적 양식
인간은 정신적, 영적 존재이다. 그래서 정신적, 영적 양식이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영의 양식의 제1 순위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록되었으되” 이 말씀이 세상의 모든 시련과 유혹, 죄를 물리치는 길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한 양식이 된다.
이스라엘의 만나의 교훈에서처럼 생명의 양식을 매일 매일 공급 받아야 한다. 인간이 어느 날 진수성찬을 먹었다고 해서 며칠 간 안 먹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매일 먹어야 생명을 부지해 간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모두 독파하였다고 해서 더 이상 안 읽어도 되는 책이 아니다. 말씀을 그날그날 꿀송이처럼 먹어야 한다.
2. 영의 양식의 원천은 생명의 떡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생명(영생)의 떡(양식)을 우리에게 주셨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장(떡의 장)에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 51)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 6:32-33). “주시나니”는 현재 시제이다.
우리의 구주는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것을 심령 가운데 받아들임으로써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을 먹게 된다”(MB 112).
하나님의 떡”인 그리스도는 인간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예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 27)고 명령하신다.
인간은 썩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오직 살아 있는 생명을 먹어야 한다. 눈이 있는 현미나 생기가 그대로 보존된 야채, 과일을 먹어야 한다. 얼핏 보면 인간은 죽은 것같은 식품을 먹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세포가 살아있는 것을 먹는다. 이것이 몸의 건강을 위하여 절대로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간 심령도 살아 있는 하늘의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한다.
3. “천사들의 봉사, 성령의 선물, 그분의 종들의 활동, 이 모든 것이 그대를 위한 것이다. 세상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과 함께 그대에게 유익될 수 있는 한 그대의 것이다. 악한 자들의 적의까지도 그대를 하늘나라에 적합하도록 훈련시켜 줌으로써 축복이 된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만물이 다 너희 것”(고린도전서 3장 23, 21절)이 된다.”(MB 110).
V. “우리에게”
“나에게”가 아닌 “우리에게”라는 복수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공적인 청지기 정신으로 자기 양식을 관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에 궁핍한 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정신이 이 기도에는 들어 있다. 이 기도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삶을 위한 기도이다. 자기 것이라고 여겨 마음대로 사용하고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욕망 충족만을 위하여 사는 삶은 자기 파멸로 이어진다.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만일 오늘날 사람들이 단순한 습관을 가지고 시조 아담과 하와처럼 자연법칙에 일치하게 살았더라면 인간 가족을 위하여 풍성한 양식이 생겼을 것이다. 상상적인 결핍은 더욱 적어졌을 것이요 하나님의 법도대로 일할 기회는 더욱 많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과 자연법칙에 반(反)하는 미각의 방종으로 말미암아 한편은 과잉이 되는 반면에 다른 한편은 결핍으로 인하여 죄와 불행이 세상에 들어왔다.”(DA 367).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하여야 한다.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의 사치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식사는 수수하고 심지어 빈약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생애는 빈곤에 둘러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저희의 필요가 공급될 것을 보증하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세상의 재물보다 훨씬 좋은 것, 곧 예수의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어질 영속적인 평안을 약속하셨다.”(DA 367).
VI. 이 기도의 특징
1. 아버지 하나님께 자식된 자로서의 신뢰의 표현이다. 이 점은 이교도의 기도와 다른 점이다. 이교도의 기도는 전부가 육에 관한 기도로 일관 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식된 자로서의 신뢰의 표현이다. 들의 꽃, 공중의 새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면류관인 자기 백성들을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먹여주시고 입혀주신다. 하나님께서 밥을 안 주실까 무서워서 이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감에서 삶 전부를 맡겨버리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의 것이라면 모든 것은 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
2.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의 삶은 선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눈을 다시 뜨고 보면 선물 아닌 것이 없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7).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터에 그동안 얼마나 먹고 입고 쓰고 사용하여 왔던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주신 것들을 잠시 빌려 사용한 것들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선물의 종류 예시- (1) 음식, 물, 공기, 천연계의 선물; (2) 생명의 선물; (3) 결혼 제도의 선물; (4) 안식일--아담의 모든 후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Sermons and Talks 1: 233); (5) 세천사의 기별 등등.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선물로 보라. 남편도 선물이고 아내도 꼭 필요한 선물이다. 자녀도 선물이고 친구도 선물이다. 아내에게 “당신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하자 아내가 감동을 받더라. 인생 자체가 선물이다. 시간도 선물이고 배움도 선물이다. 이 모든 선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이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에는 감사가 넘치고 입에는 찬송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에 에워 쌓여 살고 있다.
우리가 필요하여 주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내가 가진 것은 주신 것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가 힘써 일하여 얻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다.
3. “일용할 양식” 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신 8:18 부를 얻을 힘도 주신다.
잠 22:4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이다.
전 5:19 하나님이 재물과 부를 주신다.
전 6:2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시 111:5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통하여 우리의 양식을 날마다 준비하고 계신다.
“오천명을 먹이시는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천연계에서 휘장을 들어올리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끊임없이 작용하는 능력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산물에도 날마다 이적을 행하고 계신다. 무리들을 먹이실 때에 행하여진 것과 똑같은 일이 자연의 세력을 통하여 성취된다”(DA 367).
4. 제4기도문의 정신은 우리가 아무리 힘써 일하여 얻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은혜로 받는 것이어서 자신을 무익한 종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가 사용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밥을 먹을 권리가 당연히 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무익하게 여긴 종처럼 여겨 주신 선물들을 은혜로 받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눅 17:7-)
은혜로 받은 선물이기에 그 크기, 분량 등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여서는 안 된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제4기원을 드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따라야 한다.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마음대로 떼를 써야 하는가? 자기 소원이 거절되더라도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감사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아버지가 돈 안준다고 아버지를 비난하고 뷸신 한다면 자식의 도리가 아니다. 소원을 들어 주시던지 안 들어 주시던지 상관없어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정신이 그것이다.
VII. 호소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영육 간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으므로 생존해 간다. 공급하신 분께 필요로 하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로 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의존하고 맡긴다는데 있다. 주시고 싶어 기다리는 하나님께 자녀의 신분으로 구한다. 주시는 하나님은 기쁨이 넘치실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받은 것을 감사하고, 교만해 하지 않는다. 가난하여도 불평, 원망하거나 비굴하여서는 안 된다.
<복음성가 자료>
오늘 피었다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 없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
진흙같은 이 몸을 정금 같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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