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하피첩(霞帔帖)>

다산은 한 때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1801년 마흔 나이에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경기도 양수리 마재에 남았던 아내 홍씨는 남편 귀양 10년째 되는 해 자기가 시집올 때 입었던 50년 된 치마를 남편에게 보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 홀로 떨어져 고생하는 남편을 애틋해하는 마음을 신혼 시절 색 바랜 다홍치마에 담았다. 그 치마는 아내의 일편단심의 사랑의 징표이었을 것이다. 다산은 그 치마에 두 아들 학연(學淵)과 학유(學遊)에게 전하고픈 당부의 말을 적었다. 그리고 부인의 치마를 아름답게 표현하여 하피첩(霞帔帖)이라 이름지었다. 제작연대는 경오년(庚午年) 1810(순조 10) 7월과 9월로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하피첩 수량은 원래 네 첩이었으나 현재 세 첩만 알려져 있다. 각 첩 표지에는 '하피첩'이란 제목이 조금 남아 있으나 첩 순서[帖次]는 탈락되어 있다.

 

'하피첩'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余在耽津謫中 病妻寄敝裙五幅 蓋其嫁時之纁衻 紅已浣而黃亦淡 政中書本 遂剪裁爲小帖 隨手作戒語 以遺二子 庶幾異日覽書興懷 挹二親之芳澤 不能不油然感發也 名之曰霞帔帖 是乃紅裙之轉讔也 嘉慶庚午首秋 書于茶山東菴 蘀翁

 

<내가 강진(耽津古號)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적에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때의 훈염(纁袡, 예복)으로 붉은빛은 흐려지고 노란빛은 옅어져 글씨 쓰는 바탕으로 알맞았다. 이것을 잘라서 조그만 첩()을 만들고,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준 것이다. 훗날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홍군(紅裙)이라고 한 것이다. 가경(嘉慶) 경오년(1810, 순조 10) 7월에 다산(茶山)의 동암(東菴)에서 쓰다. 탁옹(籜翁, 정약용의 호 가운데 하나)

하피첩(霞帔帖)’이라고 한 것은 하()자가 석양적 붉은 노을, ()는 치마(裙子), 첩은 소책자란 뜻이다.

 

하피첩에는 선비가 가져야할 마음가짐,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등 자손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삶의 가치관이 담겨있다. 그 내용 중 백미가 되는 부분은 두 아들에에게 보낸 다음 내용이다.

 

병든 아내가 해진 치마를 보내 왔네  病妻寄敝裙

천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千里託心素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 다바래서      歲久紅己褪

만년에 서글픔을 가눌 수 없구나.     悵然念衰暮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裁成小書帖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으니        聊寫戒子句

부디 어버이 마음 잘 헤아려         庶幾念二親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終身鐫肺腑

 

 

다산은 여생을 보냈던 여유당에서 결혼 60주년을 맞는 그 날 아침, 여유당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다산은 회혼일을 3일 앞두고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시 한편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유언이자 일생을 정리한 마지막 글 내용은 이렇다.

 

육십년 풍상의 바퀴 순식간에 흘러갔는데

복사꽃 화사한 봄빛은 신혼시절 같구려

생리사별은 인간의 늙음을 재촉하건만

슬픔 짧고 기쁨 길어 임금님 은혜에 감사하네

그 옛날의 하피에 먹 흔적이 아직 남았는데

쪼개졌다 합한 것은 우리 모습이니

표주박 한 쌍을 자식에게 물려주네.

 

이 내용에는 옛날의 하피첩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수 십 년 전 먹 흔적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유배생활로 쪼개졌다 합한 다산 부부의 모습 같은 것을 표주박 한 쌍이라는 상형문자로 그리고 그것을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한디. 가슴을 찡하게 하는 시다. 가정의 달 5월에 새겨두어야 할 것은 다산이 그랬던 것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표주박 한 쌍이라는 것이다.

 

하피첩은 6·25전쟁 때 분실되었다가 2004년 수원의 한 건물주가 폐지 줍는 할머니의 한 물건이 비범해 보여 자신의 폐지와 교환해서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2006년 건물주는 KBS TV 프로그램 진품명품에 들고나와 진품 하피첩임을 감정받고 당시 1억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 후 하피첩은 또다시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부산저축은행 전 대표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2011년 전 대표가 파산하면서 예금보험공사가 하피첩을 압류했고 20159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것을 국립민속박물관이 75000만 원에 낙찰 받아 소장 중이다. 이후 201510월 국립민속박물관은 하피첩을 언론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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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