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지를 다녀와서
이번 만추에 가서 보고 싶은 곳이 많지만, 10월 마지막 주에 계림과 장가계의 물과 산을 보고자 떠나다. 우리 여정은 인천->상하이->계림->장가계->상하이->인천으로 짜여 있다. 아는 사람들이 아직도 안 가보았냐고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여와 부끄럽기도 하였다는 일행 중 한 분의 고백을 들으니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의 여행길이지 않나 싶다.
천연(자연)계는 하나님이 저술한 한 권의 책과 같다. 흔히 자연을 두고 일반계시라고 한다. 거기 하나님의 뜻이 고여 있거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삶의 현장을 멀리 벗어나 지혜로운 자와 어진 사람이 체험한다는 그 길을 모색코자 떠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품을 읽는데도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내외는 이른 새벽바람을 가르고 인천공항에서 일행 네 가정에 합류하다. 좋은 길동무는 여행을 짧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대학 은퇴교수들 좋은 길벗들과 함께 하는 여정이다. 좋은 길벗들과 함께 하는 축복이 컸다. 배려와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국동방항공이 중국의 기후사정으로 지연되어 우리의 여행 리더가 아시아나기로 바꾸어 탑승, 출발하다.
1시간 30분 걸려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하다. 대절 버스와 현지 안내인 신부장의 안내로 임시정부 청사로 향하다. 한국이 일본 재국주의의 마수에 걸려 국권을 강탈당한 때 선각자들이 이역 땅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휘하여 온 총 사령탑의 역사적 유적지를 둘러본 감회는 자못 크다. 작은 사무실, 좁은 공간 여기저기에는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책상 등 물건들이 놓여 있고 사진들과 휘호들이 걸려 있다. 임시정부 청사 부근 좁은 거리를 걸으면서 중국인들의 삶의 현장을 둘러보기도 하다.
밤 비행기로 계림(桂林, Guìlín)으로 향하다. 계림의 밤은 참으로 아름답다. 계림은 광시 좡족 자치구에 북동부에 소재한 도시이다. 서쪽으로 류저우, 남쪽으로 라이빈, 우저우, 동쪽으로 허저우와 후난 성 융저우, 북쪽으로 후난 성 사오양과 접한다. 계림의 지형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바위의 병풍이 탑처럼 둘러싸여 있으며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세계적인 명승지이다.
칠성공원(七星公园),상비산(象鼻山),복파산(伏波山),첩채산(叠彩山),서산공원(西山公园),천산공원(穿山公园),우산공원(虞山公园),세외도원(世外桃源),대우고진(大圩古镇),남계산공원(南溪山公园),안산식물원(雁山植物园 등 생태공원들과 호적암(芦笛岩),관암(冠岩),칠성암(七星岩),여포봉어암(荔浦丰鱼岩) 등 동굴들이 널려 있다. 그 중에서도 10대 명승지가 유명하지만 우리는 그 중 일부만 유람하다.
계림에는 36000개의 수직형 봉우리들 군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900여 미터, 평균적으로 300여 미터 봉우리들이다. 계림의 4대 특징은 산, 물, 동굴, 좡족등 소수민족이다. 그 외에도 거리의 용수나무 가로수와 계림이라는 이름 자체가 보여주는 계수나무들이 있다.
오전에 계림시를 관통하는 리강(漓江)에서 선상 유람에 나서다. 너무 조심하는 아내 손을 잡고 억지로 배 윗간에 올라 일행과 더불어 사진 찍다. 한국에서 온 50대로 보이는 여자들의 여고시절이라는 주제의 합창 소리가 인상적이다. 이들 노래소리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천연 계를 접한 인간의 탄성처럼 들린다. 가슴에 와 닿는 대로 시를 작성하다.
리강(漓江; pinyin: Lí jiāng) 뱃길에
동심으로 돌아간 50대 주부 클럽
‘여고시절’ 그리는 합창소리에
기묘한 산봉우리들이
놀라 춤추듯 스쳐간다.
협곡을 비켜가는 놀이 배들에서도
손을 흔들며 화답한다
같은 솥에서 밥을 먹어 온 우리들
70 고개를 넘었으면서도
이런 저런 스타일을 만들어가며
추억을 담기에 분주하다.
빌려 쓴 면류관 꽃
머리에 두르고
흘러간 청춘을 되돌려 보려는 시도들인가
펼쳐지는 하나님의 솜씨 앞에
머리를 조아릴 뿐 아무 말 할 수 없네
우리 부부에게 여행은 젊음의 정신을 되돌려 주는 샘물 같다. 배 위에서 멀어지고 가까워지며 보이는 풍경은 매순간 다르다. 미술시간에 배운 원근과 명암의 이치를 가장 확실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의 산수화는 대부분 계림의 산수를 배경으로 했다는 말이 허언(虛言)은 아닌 것 같다. 중국 돈 20위엔 지폐의 뒷면도 바로 이 곳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 물고기 잡는 데 귀신이라는 가마우지가 어부들과 함께 대나무 뗏목을 탄 모습과 물소들이 헤엄을 치는 광경도 이채롭다.
과거 바다 속에 잠겨있던 이 지역이 화산폭발이나 지각변동으로 용암이 분출하고 융기하면서 무려 저렇게 많은 수직형 돌산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시 104:8)는 말씀이 창세기 1:9과 함께 생각나다. 멀리는 창조 때, 가까이는 노아 홍수로 격변이 일어났을 때 산이 높아지고 골짜기가 형성되는 지형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석회암 바위산들이라 장기간 빗물이 흘러들어 녹아내린 결과이리라. 어쨌든 길고 긴 세월 속에 잘 다듬어진 산들은 강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뤄냈다. 그렇다고 張家界처럼 기암괴석이 높이 솟아 있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일행 중 미국 SDA창조과학 탐사대에서 여러해 활동한 전문가 이규봉교수가 지질학적 배경 설명을 해주어서 우리의 이해를 북돋아 주다. 그래서 계림의 산수를 아름다운 여성상으로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 높지 않은 동글동글한 봉우리들이 사방을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이드 신 부장이 서둘러 인도하는 대로 배에서 내려 아내의 손을 잡고 관암동굴을 향한 계단 오르다. 관암동굴은 구이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다. 신 부장이 冠岩동굴을 보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6시간씩이나 걸린다고 하며 재촉하여 우리 일행은 차분하게 관암동굴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앞장서서 걸었다.
3만 개가 넘는 산 밑에는 1,000여개도 더 되는 동굴이 형성돼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라 석회 동굴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중에서도 관암동굴은 가장 규모가 큰 데 12㎞가 넘는 구간 중에 3㎞ 구간이 관광지로 개발됐다. 가는 곳마다 두꺼비, 곰, 독수리 등 칭호를 붙인 종유석을 찾아볼 수 있다. 동굴이 긴 편이지만 700m 구간은 배를 타고, 30m 높이의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고, 7km 구간은 2인용 모노레일로 이동하여 몸이 불편한 아내에게는 한결 도움이 되었다. 좌우에 펼쳐지는 웅장하고 다채로운 모습들이 주마간산격이라고 할까.
근래 문을 연 구이린 북쪽 흥안(興安)현에 위치한 세기빙천(世紀氷川) 동굴은 가보지 못하다.
출구에는 주변 장족 나이든 여자들이 과일 사라고 간청들을 하여 사다. 엄청 큰 유자가 한국에서 맛본 유자와는 다르다.
오후에는 계림시에 속한 양삭 (陽朔, Yangshuo)현을 유람하다. 리강 80km가 계림과 양삭 사이를 연결시켜주고 있다. 리강 뱃길, 관음동굴도 좋았지만 오후에 유람한 양삭의 풍광이 오전 관광 보다 더 감동적이다. 桂林山水 甲天下라는 세평이 있지만, 여기 양수오에선 陽朔山水甲桂林이라고 한다는데 그럴만하다. 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이요, 양삭의 산수는 계림에서 제일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무릉도원을 배로 둘러보다. 좁은 뱃길 왼편 군데군데 소수민족들의 자기네 음악이나 춤으로 흥을 북돋는다. 도원향(桃源鄕)은 동양의 한자 문화권에서 일컬어지는 이상향이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선경(仙境) 이야기에서 나오는 세속을 떠난 별천지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곳 세외도원 (무릉도원)은 이도연명의 시의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이어서 요족들 군거지에 들려 그들의 원시적 삶의 현장을 둘러보다. 그들도 자기들의 춤과 노래를 하며 반긴다. 반갑다는 인사를 한 손바닥으로 입을 치면서 내는 소리로 대신한다. “잘 가”란 말을 왼쪽 윗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 친다.
우룡하(遇龍河) 뱃길은 가히 일품이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12 중 열 두 번째인 우룡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수인 계림(桂林, Guilin)의 정수로 인정되는 소문 없는 절색의 강이다. 죽순 군락처럼 우뚝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이 장관이다. 우룡하의 전설 같은 이야기 한 토막이다. 리강이 세인의 주목을 받를 때 우룡하는 계림의 깊은 골방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유람선의 붐비는 인파와 돌아가는 엔진소리, 천편일률적인 코스에 싫증을 느끼고 기계로 작동하는 유람선에서 내려 대나무 쪽배를 타고 깊은 시골로 진입했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강물이 바로 우룡하라는 것이다. 우룡하는 리강처럼 넓지는 않지만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소녀처럼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면서 변화많은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대나무 쪽배를 타고 우룡하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거의 수직형 봉우리들 군락이 강물에 비췬 배경에 도취되다. 세월이 흘러 모두가 변하지만 우룡하만은 변함없이 동네 앞을 흐르고 흘러 수 천 년이다. 따라서 이 곳 사람들의 생활도 이 강물처럼 자자손손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태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에덴의 비경 비슷하다고 할까. 또 와서 사계절의 변화, 아침 저녁의 변화에 젖어가고 싶은 곳이다.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것은 영혼을 맑게 하는 하나의 통로이다.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비전을 주고 그 비전은 미래를 창조한다. 이것은 우리 집에 붙여진 글귀이기도 하다. 논어에 나오는 知者樂水 仁者樂山란 표현이 맞다. 강물에 평화가 담겨 있고, 모든 산봉우리마다 안식을 준다.
밤엔 양삭 유삼저(劉三姐) 공연을 관람하다. 공연 이름도 인상유삼저 印象劉三姐다.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장이머우(張藝謨, 장예모)는 이 공연을 완성하는데 5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공연에 동원된 인원만도 600명이 넘는다. 공연 중간에 장족(壯族) 묘족(苗族) 등 소수민족들의 노래들이 이어진다. 오후 8시30분 양삭 부두 앞 리강은 공연장으로 변한다. 거대한 자연 그대로를 무대로 삼은 것이 아주 색다르다. 그래서 이 극장의 이름을 산과 물이 어우러진 "山水 극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별한 안무와 노래를 하는 주연급 배우를 제외하면 모두 현지 소수민족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 조명이 들어오자 우룡하 수면 위에는 어느새 나무배를 탄 수백 명의 어부들이 강을 가득 메우며 도열한다. 삿갓을 쓰고 듬성듬성 구멍이 난 옷을 입은 어부들은 잠시 후 시뻘건 천을 물속에서 꺼내 일제히 펼쳐 보였다. 20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천 10여 개를 어부들이 잡고 동시에 움직이며 거대한 물결 모양을 만들어냈다. 사방에서 쏘아대는 각양 조명에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원근의 12개의 봉우리의 모습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세계 최대의 ‘수상 오페라’는 80분간 이어진다. 참으로 자연과 사람들이 어우러진 수상에서 펼쳐진 거대한 매머드 급의 인상적인 이벤트다.
공연은 연중무휴로 진행되나 야외 공연 특성상 큰비가 와서 리강 강물이 불어나면 안전 때문에 공연이 중단 된다. 객석의 수는 3,500석으로 밤에만 진행되며 매회 빈자리가 거의 없다. 성수기 때는 2회 공연된다. 우리가 관람한 밤에도 2회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았다.
공연 줄거리는 이렇다. ‘유삼저’는 유씨 집안의 셋째 딸을 뜻한다. 셋째 딸은 얼굴도 안보고 데려 간다는 말이 중국에서도 있는가 보다. 욕심꾸러기 지주가 셋째 딸을 탐하지만, 온갖 역경을 넘어서 목동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는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 지역 소수민족인 장족과 묘족의 노래로 극을 이어가서 중국 사람들도 그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예모 감독은 영화 영웅에서 3개의 장을 세 가지 색으로 표현한 것처럼 인상유삼저를 7개의 색으로 나누었다.
1. 화이트 - 프롤로그
2. 레드 - 전통 민요
3. 그린 - 정원
4. 골드 - 고기잡이 등불
5. 블루 - 사랑노래
6. 실버 - 축제
7. 블랙 - 에필로그
출연자와 스텝, 관리 요원을 추산해변 공연 하나의 공연 1년 수입이 400억 이상으로 추산되어 천명의 소득원이 확보 된 샘이다.
양삭에서 다시 계림으로 이동, 계림을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봉우리 첩채산에 계단 400여개를 걸어 오르다.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리다. 어제 구경하였던 리강이 바로 눈앞에 흐르고 유람선들이 오간다. 어제 갔던 오른 편 쪽 멀리 보인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남산에 비교하면 훨씬 작은 산이다.
우제(虞帝)공원 들리다. 제순 유우씨(帝舜有虞氏)는 중국 신화 속 군주의 이름으로,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 가운데 군주이다. 성천자(聖天子)로 일컬어지는 요·순·우(禹)가 차례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선양 전설이 있다. 요가 아들 단주(丹朱)를 제치고 순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과, 순이 아들 상균(商均)을 제치고 능력을 갖춘 인재인 우를 후계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던 것이다.
우산(虞山)이란 순임금이 세운 전설상의 왕조로 순 임금을 우제(虞帝)라고 칭하기도 하여 이곳의 산이 우산이 되었다고 한다. 산 밑에 순(舜)임금인 우제(虞帝)의 사당이 있었다 하여 우산(虞山)이라 불린다. 우는 순임금이 세운 전설상의 왕조이다. 그의 아버지는 고수(瞽叟)이었다. 우는 자식 된 도리를 잃지 않았고, 아우에게는 형의 도리를, 부모에게는 효도를 다했다. 천하에 덕을 밝히는 일이 모두 우제(虞帝)로부터 비롯했다. 계모와 이복동생의 몇 차례 살해를 피하면서도 극진한 효의 모델이 된 우는 넓은 인품의 소유자였다. 우의 이복동생이 진심을 담아 자기의 잘 못을 사죄하는 조각품 모습이 돌아온 탕자를 연상시키는 예술성이 묻어난다.
장개석 유적지가 바로 옆에 있다. 모택동과 함께 찍은 사진 등 유적들이 걸려 있다. 송미령과결혼키 위하여 다른 부인을 멀리 보냈다는 것, 그리고 묘령의 미국 유학을 한 송미령이 자기와 교제하려고 한다면 성경을 읽으라고 하여 장개석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건, 송미령이 손문의 막내딸로 공산당원이 된 친 언니와 함께 손문의 딸이었다는 등 이야기를 전에 읽은 바 있는데 오늘 신 부장으로부터 다시 듣게 되다.
柳州로 출발, 유주에서 장가계로 덜거덕 거리는 야간 침대 열차에 몸을 실고 긴 밤을 지내다. 400여개의 터널을 지나간다고 한다. 좁은 침대 4개에 이규봉 교수 내외와 합숙하다. 열차가 징녀되어 13시간이나 걸렸다. 아들이 우리 여행 전 화장실 시설이 낙후되어서 열차 이용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 말이 생각나다.
장가계(张家界, Zhangjiajie)에 13시간이나 걸려 도착, 아침 10시가 넘어 예정 시간보다 50분이나 늦게 도착한 것이다. 장가계는 중국의 후난 성의 시로 1982년 제1호 국가삼림공원이 되리만큼 산봉우리, 다리, 동굴, 호수를 한 몸에 담고 있는 명산대천을 집대성한 곳이다. 1988년 8월에는 무릉원(우링위안)이 국가 40여 곳의 중요 명승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장가계 국가삼림공원》, 《삭계욕(索溪峪)자연보호구》, 《天子山 자연보호구》 등 3대 경관으로 구성된 핵심경관 구역을 무릉원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양가채(楊家寨) 풍경구역, 무릉원 밖의 옥황동(玉黃洞), 구천동(九天洞), 팔대공산(八大公山), 오뢰산(五雷山), 천문산(天門山), 모암하(茅巖河) 등이 있다. 우리 일행은 그 중에서 무릉원을 유람하다. 무릉원은 면적이 392㎢로, 동서 길이가 31㎞, 남북이 15.5㎞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은 망월봉이 해발 1,264.5m, 가장 낮은 곳은 삭계하곡으로 해발 320m이다. 무릉원 풍경구에는 금편계(金鞭溪), 황석채(黃石寨), 비파계(瑟琶溪), 사도구(沙刀溝), 요자채(腰子寨) 등 볼거리들이 많다. 1994년 4월 4일 대용시에서 장가계시로 개명되었다.
長家界 명칭 기원은 이렇다. 한나라 유방이 천하 통일 후에 일등공신인 한신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킬까봐 두려워 잡아 죽였으며 한신이 죽으면서 “토사구팽”이라고 후회하면서 죽으니 이를 본 장량은 이제 자신의 차례임을 직감하며 모든 권세와 명예를 버리고 이곳으로 숨어들어 은둔생활을 했으며 그 후손들이 장 씨의 성씨를 따라 장가계로 호칭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장가계 고봉 지대에 산적들이 들끓었지만 모택동이 제2차 대전 직후 평정하여 질서를 회복하였다고 한다.
삭계욕 자연보호구역은 무릉원 4대 풍경구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풍경구에는 황룡동(黃龍洞), 십리화랑(十里畵廊), 원앙계, 서해, 보봉호 등이 있다. "계수(溪水)의 형상이 밧줄 같다"는 '삭계욕' 풍경구는 산지의 80%이상이 석영사암(石英沙岩)으로 되어 있어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사암의 봉림(峰林, 봉우리 숲)과 협곡으로 형성되어 있고, 지형의 형세가 생동적이고 계곡이 종횡으로 펼쳐져 있으며, 다양한 식물들이 무성하게 분포되어 있다. 풍경구는 300여 개의 경관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사암으로 이루어진 3,000여 개의 기이한 봉우리들이 있으며, 이들은 각기 우뚝우뚝 솟아 수백 가지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 봉우리들은 천여 개의 못, 호수, 시내, 폭포 등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고 있다. 천태만상의 봉우리는 운무가 자욱하여 짙은 녹음으로 신비스럽고, 계곡은 깊어질수록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매력을 뿜어낸다. 찾는 동굴마다 신비하고 오묘한 흥취가 연이어 일어나며, 각 동굴의 종유석은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난다고 한다. 또한 수려한 계곡의 물에는 오랜 옛날부터 면면히 전해 오는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의 웅장함, 맑디맑은 계곡의 물, 보봉호(寶峰湖)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가계의 모습은 신선들이 노닐던 선경을 방불케 한다는데,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주민들이 1층에서 살지 않는다는 이곳이다. 그런데 금년 여름에는 강우량이 적어 계곡의 풍광이 덜하다고도 한다.
오후에는 무릉원(武陵源, 우링위안) 자연 풍광을 보다. 하늘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 무릉원이다. 무릉원은 장가계 시로부터 30km를 가야한다. 고속철 공사관계로 우회도로 이용한 탓에 1시간 이상의 거리에 있다. 무릉원의 기후가 온난하고 겨울에는 춥지 않은 날씨라는데 계림에 비하여 춥다. 옷을 더 껴입다.
천자산 지역 무릉원에 소재한 황룡동굴부터 둘러보다. 83년도 발견, 97년도 개인 개발하였지만 아직도 4/5가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동굴 1/5을 유람한 것이다. 홀 13개, 폭포 3개, 지하 하류 2개가 분포되어 있는 아름답고 거대한 스케일의 동굴이다, 세계 최고 종유석, 종유석 폭포, 석순 云盒동, 穴珠 등으로 비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정해신침(定海神針)종유기둥은 높이가 27m로 보험회사에 우리 돈으로 180억 원 보험에 들었다고 하며 향수하(동굴천)은 2km로 일부 구간은 배를 타고 유람하다. 개인이 발굴하여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동굴 안에서 상당한 거리를 배를 타고 가면서 보다.
천자산 안으로 모노레일을 타고 스치는 우뚝우뚝 서 있는 거대한 석봉들을 올려다보면서 탄성을 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가이드들이 천자산 봉우리들 형상에 따라 걸 맞는 명칭을 부여하여 설명들을 하느라고 열심이다.
袁家界는 천자산 위로 난 길을 통하여 들어간다. 정상 하룡공원에 하룡장군의 동상이 있으며 30여m내려가 풍경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천대서해는 수많은 석림이 바다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수백 개 돌기둥 같은 석봉들이 줄서있는 곳을 내려다보노라니 신선이 되어 천상에 오른듯하다. 계림의 풍광에 비교하여 남성적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산세의 크기와 깊이에 놀라고 기암괴석에 경탄하며 자연 앞에선 인간의 한없는 왜소함에 주눅이 드는 듯 움츠려지기도 하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 선녀산화, 붓을 거꾸로 던져놓았다는 어필봉, 미혼대 등등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도착한곳은 `백장협` 인데, 1장이 3.3m이니 백장이면 330m가되며 여기에 수직으로 엘리베이터 3대가 설치되어 관광객들의 오르내림을 담당하는데, 길게는 수 시간씩 줄을 서야한다는 가이드 설명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금편계곡으로 내려오다.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張家界)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 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장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단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寳峰湖(보봉호)를 보다. 이름 그대로 보석 같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호수다. 이 일대를 헬리
곱타를 타고 둘러본 말레지아 부자가 개발한 인공 산정호수이다. “또 다른 선계(仙界)가 여기도 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명승지이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약 2.4km라고하며 호수가의 선상가옥에서는 유람선이 지나갈 적마다 토가족 선남선녀가 나와서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며 춤도 춘다.
오후에는 천문산(天門山)을 유람하다. 시내에서 약 8km 떨어진 해발 1,518m의 천문산으로 천문산은 장가계의 여러 명산 중에서 역사에 가장 먼저 기록된 산입니다. 이 산은 장가계의 으뜸가는 간판 명소다. 해발이 1518.6m, 장가계 시내에서 8km 떨어진 오르기 위해 전세버스로 약 6~7분 거리인 시내중심의 케이블카승강장으로 이동 세계에서 가장 긴 7.45km 케이블카로 약 35분이 걸려서 천문산을 오르다. 아내 손을 잡거나 팔짱을 하고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하는 케이블카로 오르고 또 오르다. 그리고 걷다. 우리 전용 버스로 오르다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하는 케이블카로, 그리고 리프트로 오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귀곡잔도(鬼谷棧道)트레킹 시작하다. 이곳에 내려온 전설은 이렇다. 구이구뚱(鬼谷洞)에 대담하게 들어갔던 탐험가가 우연히 카메라로 동굴 내의 석벽에 보이는 구이구 선사(先師)의 측면 두상을 촬영하였다. 그 두상은 고대 노인의 두상과 매우 비슷한데 모습이 수척하고 상투가 높으며 턱이 좀 들리고 용모가 뚜렷해 세상에 널리 전해진 구이구즈(鬼谷子)의 두상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해발 1200여 미터 고봉이라 날씨가 춥고 바람이 세차다. 천길 수직 낭떠러지 둘레에 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바위 둘레 길을 마련한 난간을 걷다. 구름 안개에 쌓인 탓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지 못하여 다행스럽다. 비옷을 입어 다행이었다. 유리잔도 라는 곳도 걷다. 유리판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수백 미터의 바위 직벽이 보여 오금이 저린다고 한는 곳이지만 우리는 안개구름에 쌓여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다.
귀곡잔도는 공산혁명 이후에 죄수들을 끌어다가 건설했다고 한다. 그들이 산 정상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절벽에 구멍을 뚫고 파이프를 밖아 콘크리트를 부어 건설했다고 하며, 암벽이 높은 곳은 330m로 건물의100층 높이라고 하며, 잔도 공사 중 300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나 실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즐긴다고 할까.
비정한 역사의 현장 뒷면을 뒤로 하고, 귀곡잔도를 걸어서 도착한 곳은 천문산사. 천문산사에서 다음 코스인 천문동으로 곤도라를 이용, 109개의 곤도라는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천문산 꼭대기로 이동하다.
가이드의 통천문(通天門) 설명을 듣다. 천문동에서 광장까지의 계단 개수가 999개단이라 한다. 999개에. 하나를 더하면 1,000 이 되는데 이 숫자가 되면 天子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를 뺀 999개의 계단으로 일부러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9숫자를 좋아해서 오르는 도로도 99구비 계단숫자도 999개단이라고 한다.
천문산의 해발 1,300m에 위치한 천연동굴로 높이가 131m, 폭이57m, 깊이가 60m로 하늘에 문이 열려있는 듯한 모습이며 양쪽의 온도차이로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이는 신비한 풍경을 자아낸다고 한다. 날씨가 맑고 청명하면 이 곳을 홍보하기 위에 경비행기가 통과하는 에어쇼도 있다고 한다.
왼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천문동(통천문)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99구비길 이라는 통천대로(通天大路)와 좌, 우로는 기암괴석의 산봉우리들이 그야말로 상상초월의 절경이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고 우박비도 내린 날씨이어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마치 하늘을 향하여 오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체험한다. 구름타고 승천하는 예행연습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걷다.
천문산 곤도라를 이용하여 도착한 곳은 천문동이라는 동굴이 있다. 이곳에서 도보로 10여분 이동하면 근간에 새로 생긴 천문산의 또 다른 명물.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12개의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이 중 7개를 먼저 타고 내려오면 천문동이다. 에스컬레이터는 상당히 가파르고 길게 되어 있는 것이 7개가 연결이 되어 있고 천문동에서 셔틀미니버스를 타는 광장까지 다시 5개가 연결이 되어 있는데 전혀 외부로 노출이 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바위 속을 뚫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山體관통 에스컬레이터" 라고 한다.
에스커레이터로 내려온 후 구절양장 긴 굽이굽이 산길을 미니버스로 내려오다. 저녁 식사 후 우리 모두는 장가계 공항으로 가다. 현지 투어 가이드가 잘 인도하여 짐도 탁송하고 상하이 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목이 칼칼하고 기침이 나온다. 유형환 사모가 준비하여 온 아마씨, 물감기약 등을 들다. 얼마가 지난 다음 우리가 타고 가야할 비행기가 지연 도착한다는 표지가 나오다가, 아예 상하이 행 항공기가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나타나다. 허탈한 심경, MU항공사가 마련한 숙소에서 잠을 자다.
상하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 도시를 관통하는 강가로 가서 어제 오른 천문산을 바라보다. 날씨가 화창하여 산맥이 선명하다. 어제 이런 날씨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점심을 들고 다시 공항버스로 공항에 가서 두 시가 넘어서 상하이행 비행기를 탑승, 상하이공항에서 많이 기다린 후 6시경 인천행 여객기를 타다. 그러나 탑승 후에도 한참을 기다려서 심랴에 출발하다. 인천 공항에 새벽 1시가 넘어서 도착하다. 라텍스 짐을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노원에서 택시에 싣고 집에 오니 2시가 넘다.
5박 6일 여정을 마치면서 느낀 점이 많다. 세계는 넓고 볼 것은 많다. 桂林山水甲天下 陽朔山水甲桂林이라는 말이 그럴만하리만큼 아름다움의 품속에 안기는 체험은 잊을 수 없다. 제108장의 찬송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으로 시작하여 “주 하나님의 큰 뜻을 알 듯 하도다”로 끝나는 노래에 도취할 수 있는 곳들이 아직도 이 세계 여기저기에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승의 강과 이승의 산이 인생 나그네 길의 기쁨과 인자함을 주고 있다. 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 이란 말이 꼭 교만한 자랑만은 아니다. 혼돈과 공허로 가득 차가는 세상에서 아직도 넋을 잃으리 만 한 창조세계의 비경이 열려 있다. 창조세계를 보고 노래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42장)에서처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를 부르며 힘을 얻는다.
아, 그렇다 행복이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자의 여로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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