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영감-조명의 개념 및 상호관계
계시-영감-조명의 개념 및 상호관계
A. 서론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친히 나타내 왔고 계속하여 인간들에게 나타내실 것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석이 된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인간들에게, 특히 이스라엘에게 나타내 오신 것에 대한 기록이다. 이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거룩한 계시 없이는 인간은 하나님의 품성과 뜻을 알 길이 없어 죄와 죄책에 파묻혀 방황하는 존재로 전락되게 마련이다.
본래 창조 세계는 아름다웠으며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하게 차 있었다. 그래서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사물들(things)의 해석자가 되도록 고안되었다. 그러나 첫 조상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자마자 하나님의 얼굴에서부터 오는 광휘 찬란함이 창조세계의 표면에서 떠났다( Special Testimonies on Education, 58-59). 죄가 이 세계의 심층까지 파고들었고, 재난이 일고 혼란과 아우성이 편만하며 사망이 침입한 음습한 세계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소위 일반계시의 한계성이 발생한 것이다.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의 참된 지식을 분별하여 내기는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성경은 일반계시의 한계성을 극복하여 하나님에 관한 지식 과 지혜, 그의 사랑의 품성과 뜻을 알려 주는 원천이 되었다.
B. 계시의 정의
Paul Ricoeur가 말한 것처럼 계시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주제에 속한다.
1. 일반적인 의미
‘계시(revelation)’란 명사와 ‘드러내다(to reveal)'이라는 동사는 신학과 세속문화에서 공히 사용하고 있다.
'To reveal'동사는 라틴어 revelare 에 어원을 둔 말로 덮어씌운 것을 치우는 것, 비밀 또는 감추어져 있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열어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명사 “revelation”은 일차적으로 ‘드러내는 행위,’ ‘열어 보이는 행위’를 뜻한다. 옥스퍼드 사전은 초자연적 수단에 의하여 드러내거나 알려진 어떤 것,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또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인간에게 드러낸 지식을 뜻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계시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표현(‘알리다,’ ‘말하다,’‘나타내 열다,’ ‘빛을 드러내다’ 등) 을 사용하여 계시라는 의미를 함축시킨 경우들이 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인간을 위한 그의 뜻과 목적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하여 말씀과 행위로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났다.
2. 성서적 용어들
(1) 구약성경
구약성경에는 ‘계시’ 나 ‘드러내다’라는 말이 예상 외로 적게 나온다. RSV에 따르면 동사 ‘to reveal'이 65회 나온다. 이 중 28회는 히브리어 동사 ’gālāh'의 역어로 라틴어 revelare에서와 같이 덮여 있거나 감추어 있는 것을 열어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세속적인 뜻으로도 자주 사용되고 종교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나오스는 룻에게 보아스가 자고 있는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하였다(룻 3:4).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 꿈에 관한 은밀한 것을 ‘나타내’ 보이셨다(단 2:19). 명사 형태(revelation)로는 RSV에 gālāh 와 yārāh의 역어로 2회 나온다(합 2:19; 삼하 7:27). 한국어 성경에는 “교훈,” “알게 하여”로 번역되어 있다.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합 2:19).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삼하 7:27).
구약성경에는 gālāh 이외에 계시의 의미를 전달 내지 함축된 다른 용어나 시청각(청각적, 시각적, 및 지각적인) 어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사용된 청각적 어구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렘 4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레 17: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암 1:3).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시각적인 표현들은 rā'āh (to see, to be seen, to cause to see)와 ḥāzāh (to see, to see in vision, to dream, to behold), rō'eh (seer), hazon(vision), ma'reh (sight, appearence, vision) 등이 사용되고 있다. 개역 성경에는 렘 14:14에서 hazon을 “계시”로 번역하고 있다.
지각적 인식적 단어로는 ḥāwāh (to make known, to inform), yāda' (to know, to make known, to publish), nāgad (to make known, to report, to tell) 등이 사용되고 있다.
위와 같은 일련의 표현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편들을 통하여 지상 인간과의 교류를 하여 오신 것을 알 수 있다. 청각적, 시각적, 및 지각적 표현들은 성경 기자들이 거룩한 계시의 수신자 이며, 동 계시의 메신저라는 것을 확신 내지 의식 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삼하 23:1) 다윗은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라고 단언하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도 하나님의 계시에서 약속한 선물로서 온 것이고 하나님께 구하여 받은 신적 지혜의 현현이었다(왕상 3:5-14).
하나님의 계시를 지칭하는 용어들은 특수한 사건들에서 하나님의 행위이며 개입과 조정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고 선포하시고, 방주를 지어 그와 그의 가족이 구원 받도록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권능을 입혀 주시어 표적을 행하게 하시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인 것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고자 하심을 믿도록 하셨다(출 4:19; 27-31). 하나님께서는 폭풍과 큰 물고기를 동원하여 요나를 삼키게 하므로 그가 해야 될 과업을 이행케도 하셨다(욘 1:4-3:3). 이러한 하나님의 행위와 개입이 있기 전 하나님께서는 계시 사건을 선행시키시거나 설명계시를 곧 동반시키시기도 하였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히 1:1)셨다. 구약성경에 수다하게 나오는 선지자에 향한 꿈, 이상, 표적, 이적 등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채널을 통하여 계시하기를 원하는 확실한 증거들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등에게 인격적으로 현현(theophanies)하신 경우들이 있었다. 출애굽 시대에 구름으로 감추어진 임재도 있었다.
예언자에 대한 공통적 칭호인 nābî' 가 300회 이상 나온다. 그 수동적으로는 예언적 봉사의 기원을 시사한 “부름을 받은 자”의 뜻이고, 능동적 의미로는 하나님의 대변인으로서의 활동을 나타내는 ‘부르는 자(caller),“ ”말하는 자(speaker)“이다.
또한 선지자를 가리키는 다른 용어 ro'eh (the seer) 가 나오는바 (삼상 9:9), 이는 hozeh(seer)와 평행어로 나온다(삼하 24:11; 왕하 17:13; 사 29:10). 실천적 목적상 nābî'와 rō'eh (seer)는 동의어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선포, 대변 등의 활동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에게 나타내진 일들을 하나님의 명에 따라 또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다. 첫 문필 선지자는 토라를 기록한 모세이었다. 예레미야도 다니엘도 거룩한 문필활동을 하였다(렘 36:2; 단 9:2).
(2) 신약성경
신약성경 역시 신적 계시에 해당하는 여러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동사 apocalyptō (to reveal) 와 명사 apocalysis 가 그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용어들은 하나님의 의와 진노(롬 1:17, 18), 그리스도의 재림(고전 1:7; 벧전 1:13), 적그리스도의 도래(살후 2:3), 인간의 내적 사상이나 지식(눅 12:2), 사도 요한에게 주신 계시(계 1:1)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 계시도 있으며”(고전 14:26)에도 apocalysis 가 나온다. 그 외에도 이 용어들이 고전 14:30, 고후 12:1, 7, 갈 1:12, 2:2 등에도 나온다.
'드러내다‘ ’나타내다‘의 뜻을 지닌 phaneroō 도 사용되고 있다.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롬 16:26).
그 외에도 gnōrizō (to make known) (엡 1: 9), deiknymi (to point out) (요 5:20), epiphainō (to appear, to show itself) (살후 2:8), chrēmatizō (to impart a revelation) (마 2:12, 22).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에서처럼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의 말씀이 이르니라” 등과 같은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양한 신적 계시의 방법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현몽하셨으며(마 1:20; 2:12, 13, 19, 22), 여러 사람들, 즉 제사장 사가랴(눅 1:22), 다메섹의 아나니야(행 9:10), 백부장 고넬료(행 10:3), 베드로(행 11:5) 등이 이상을 보았다.
신약성경에서 계시 관련 용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침례 요한은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 1:31)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Logos),”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태는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고 선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계시의 결론이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2).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그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하셨다.
바울은 계시적 용어들을 많이 구사하였다.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크다고 고백하리만큼(고후 12:7) 많은 계시를 받았다(행 16:9;, 10; 18:9, 10; 26:19; 27:23, 24; 고후 12:1-4; 갈 2:1,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한 계시가 되며, 그 분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에게 나타났다(행 9:1-9).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에게 계시를 통하여 알려졌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엡 3:5).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8-9).
C. 영감의 의미
영감을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로 영감 학설이 난무하고 있는 점, 영감 개념은 성서적이지만 영감이라는 용어는 성서에 나오지 않는 점, 어느 성경 기자도 이 영감 이슈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Inspiration 이나 inspire 는 라틴어 (Vulgate) 역 성경의 디모데후서 3:16과 베드로후서 1:21의 역어에서 기원하고 있다. 여기서 그 기본적인 의미는 ‘호흡하다(breathe in)'이다. 디모데후서 3:16에 나오는 theopneustos는 “breathed by God"을 뜻한다. 여기서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의 소산물로 본다.
베드로는 예언을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고 하였다. 여기서 '받아’ pheromenoi (carried, blown, impulsed)를 Vulgate는 inspired로 번역하였다.
일반적으로 영감은 하나님의 메신저나 예언자가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성령의 지도 사역을 뜻한다. 즉, 영감이란 용어는 주로 성령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감은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나타내 보이신 내용을 잘 포착하여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는 신적인 행위이다. 이 영감은 성경기자로 하여금 신뢰할 수 있고 권위 있으며 받은 계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게 하거나 기록하게 하는 성령의 지도 감독 사역에 역점을 둔 표현이다. 영감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신적 계시의 통로를 만들어 주는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지시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된다(SBD, 504).
“진실한 과학과 영감의 말씀은 완전히 조화된다. 거짓 과학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어떤 것이다. ”(4증언, 584).
D. 조명 (Illumination)
조명은 성령께서 예언자가 전하거나 기록된 메시지를 잘 이해하고 깨닫는 일을 돕는 신적인 행위이다. 곧 인간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에 성령께서 비추어 주시는 행위이다.
E. 계시, 영감, 조명의 상호관계
하나님은 계시자(revealer), 영감주시는 분(inspirer), 비추시는 분(illuminator)이시다.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게시와 영감은 중첩적일 수도 있다. 계시와 영감은 구분은 되지만 분리는 할 수 없다(distinct, but not separable). 이 두 가지가 하나의 현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현대 신학자들 중에 양자를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을 반대하는 추세가 강하다.
흔히 게시-영감-조명을 상호간 계층 구조를 이룬 피라미드식으로 이해하여 가장 저변은 조명, 그 바로 위가 영감, 그리고 상층부에 계시가 자리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성경 각 부분의 등급론이 일어날 여지가 있다.
위의 계층 구조적 인식의 문제성을 의식한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외연이 밖으로 확산하는 관계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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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은 영감과 조명을 동의어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성령의 조명(照明)을 통하여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선악의 대쟁투의 전모가 본서의 저자에게 공개되었다. 나는 때때로 각 시대를 통하여 생명의 왕이시며 우리의 구원의 창시자이신 그리스도와 악의 왕이며 죄의 창시자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제일 먼저 범한 사단과의 대쟁투의 상황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단의 적개심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적개심으로 나타났다. ”(쟁투, 10).
그러나 이 경우 성령의 조명은 특별 조명으로 보아 일반적인 조명과 구분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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