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는 사자와 저녁 이리 떼
부르짖는 사자와 저녁 이리 떼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습 3:3-4).
우리들에게 악톤 경(John Emerich Edward Dalberg-Acton)(1834-1902)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존경 받는 영국 역사가이었다. 그러나 그가 1887년에 한 유명한 말은 우리 귀에 익숙하다. “권력은 부패하기 십상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인간군상이란 권력을 더 가지면 가질수록 공정성은 결여되기 쉽고 자기의 개인적인 책임에 덜 민감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명언은 인구에 회자되어 온 말이다. 그는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남긴 말이다.
I. 신실한 왕 요시야 신앙 이력
요시아는 8세 유다 제 16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는 16세에 하나님을 찾았다. 20세 때는 바알의 제단, 태양상, 아세라 목상을 철폐하였다. 지나간 날의 빗나간 신앙 유적들을 정리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다. 26세 때에는 성전 정결 및 수리하는 대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 개혁사업의 동력이 된 것은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보고하고 왕에게 읽어 준 기별을 들음에서 나왔다. 왕은 율법서 메시지를 듣자 “그의 옷을 찢었다”(왕하 22:11). 왕은 회개하면서 개혁의 횃불을 올렸다.
당대 세기말적 절망감이 온 나라를 덮었다. 유다나라는 거의 하나님의 관용의 한계를 넘어섰고 하나님께서는 곧 당신의 이름을 더럽힌 사람들을 형벌하시기 위하여 일어나실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백성들에 대한 여호와의 분노의 불은 붙었다. 슬픔과 놀람에 압도된 요시야는 옷을 찢고 번민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회개하지 않은 나라의 죄악에 대하여 용서를 간구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진노가 임박한 것을 깊이 의식하고 훌다 여선지자에게 갈 길을 물었다.
훌다는 여호와의 진노 임박의 불가피성을 선포하면서 회개한 왕에 대한 심판의 지연이라는 거룩한 사랑의 배려 메시지를 왕에게 보냈다. 왕의 대책은 율법을 백성들에게 읽어 주도록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국적인 유월절 준수를 7일 동안 하면서 어린 염소 3만, 수소 3천 등 제사를 올린다. 그는 음악 예언자도 세운다. 이 거창한 국가적 예배의식이 진정한 개혁의 동력을 일으켰을까?
2. 감추어진 인간을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숨겨둔 일꾼을 부르신다. 스바냐는 그런 예언자에 속한다. 그 이름이 “여호와께서 숨기셨다,” 혹은 “여호와께서 감추셨다”라는 뜻을 지닌 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나라가 그대로 망해가는 것을 막고자 당신의 일꾼들을 부르시어 역사의 무대로 올려놓는다. 요시아 시대(641-609 B.C.) 스바냐는 예언활동을 하였다. 스바냐는 왕족 가문의 출신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습 1:1). 자기 조상을 히스기야 왕으로 거명한 사실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스바냐가 612 B.C.년에 있었던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으므로(습 2:13) 아마도 그는 요시아 통치 초기에 예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박국과 동시대 사람인 것 같다.
스바냐서는 요엘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바냐가 우상숭배와 악행에 대하여 여호와의 엄중한 심판들을 예고하며 경고하고 있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습 2:3)여 심판을 면케 함에 있었다.
3. 권력 집단의 부패
스바냐는 특히 유다 나라의 통치 권력 집단인 고위층들, 법조계 지도층들, 종교적 지도자 예언자와 제사장들이 권력을 잡고 흔드는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감추인 곳에 기다리고 있던 예언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런 저질 지도층 인간 군상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들은 당대 선하고 의로운 왕 요시야의 통치력과 종교개혁을 비웃기나 하듯이 자기들의 통치력을 절대 권력화 시켜 멋대로 구사하였다. 부르짖는 사자와 저녁 이리 떼들은 나라를 망가치는 선봉장들이 되었다. 당시 유다 나라에서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을 왕권에 적용시킬 수 없다. 왕권을 쥐었다고 반드시 절대 권력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요시야는 의로운 왕으로 정치 종교개혁의 선봉장으로 활동 중 이집트군의 북방 진격을 막다가 죽었다. 따라서 악톤의 말을 일반 권력자들에게도 적용시킬만하다. 즉,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란 말을 권력자들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바냐 3:3-4의 본문은 위기에 처한 남방 유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대 유다 지도층에 속한 방백 재판장, 제사장, 선지자들 사회에 팽배한 사악성은 도덕적 파산 상태에 있었고 이것은 백성들까지도 감염시켰다. 법관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둔 것이 없는 사막의 저녁 이리 떼거리들이었다. 아침에 남은 것이라고는 뼈다귀들뿐이었다. 그들의 탐욕, 폭력과 압제로 인하여 백성들은 숨조차 쉬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방백들은 울부짖는 늑대들이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재판관의 사명에는 피고나 피의자, 무력한 자들을 돕고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압제당하는 자들에게 공정한 판결을 하여 약자를 방어해 주는 자들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요시야 왕 재위 시 상황은 이와는 달랐다. 재판관들은 왕의 개혁 의지를 처참하게 유린하여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이리떼에 불과하였다.
선지자들은 대담무쌍하게 거짓말로 속였다. 그들은 속이는 자들이나 사기꾼들로 전락되어 버렸다. 지금 스바냐가 말하고 있는 대상은 다른 나라나, 다른 족속들이나, 바알 경배자들이 아니었다. 여호와로부터 나오는 메시지를 전하여야 하는 자들이 선지자들이다. 바로 이런 자들이 요즘 말로하면 뻔뻔하게도 정의의 이름을 빌려 국사를 논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칼럼을 쓰는 자들이었다.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유화하여 더럽히고 나라의 근본적인 규범인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자들이었다. 요시야가 그토록 개혁의 횃불을 들고 선도적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하려고 했지만, 나라 안의 적대세력들이 똘똘 하나로 뭉쳐 개혁의 불길을 꺼버리는 일을 자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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