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은 결국 자기를 소멸시킨다
죄악은 결국 자기를 소멸시킨다
죄악은 일종의 힘(power)이다. 죄악은 언제나 가정, 교회, 사회와 국가를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죄악은 가정을 파괴하고 국가와 사회에 먹구름을 가져온다. 특히 언론이나 정치권의 야합이나 묵계로, 없는 사실을 조작하거나 거짓을 선동하면 국가의 근본 토대가 크게 흔들l게 된다. 우리는 이런 세기말적으로 요동치는 죄악의 활동상을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보고 있다. 정규재 주필은 탄핵농단의 배후로 떠오르는 000 일당의 더러운 수작이 담긴 녹취록을 진단하면서 TV조선에게 배후 책동, 조작 보도한 이유를 이실직고하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이번 사건에 어느 어둠의 세력이 어떻게 연루되었는지 밝혀져야 한다. 대통령 변호인단 김평우 변호사의 주장처럼 국회의 탄핵소추 그 자체가 이른바 섞어찌개식이라는 위법적인 사기수법의 불순한 냄새가 난다. JTBC의 테블릿 PC 조작사건과 000 일당이 연루된 범죄자를 싸고도는 검찰의 행태가 보여준 이번 탄핵 소추사건은 근거 없는 역모성의 더러운 정변사건으로 비쳐지고 있다. 언론과 검찰의 커넥션이 밝혀져야 한다. 우리는 헌재가 국회의 절차상의 하자를 무시한 채 탄핵을 인용할 것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의 유죄가 아직 밝혀지기도 전에 탄핵소추를 졸속으로 의결한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막가파식으로 호통 치는 꼴을 보면 저들이 과연 이 나라의 양식있는 대표자들로서의 인격적, 도덕적 자격을 갖추었는지 의심스럽다.
죄악은 진실과 정의를 부정하는 힘(negative power)이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천상의 반역 사건에서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을 독재자로 몰았다. 그는 우주를 지켜주는 생명의 법을 두고 자유를 제한하는 독재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매도했다. 천상에서의 이 죄악의 부정적 파괴 세력은 하나님의 품성을 파괴하고자 그 싸움판을 지구까지 뻗쳤다. 그러기 위해서 마귀는 하나님께서는 차마 사용할 수 없는 기만과 거짓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였다. 그는 천상의 헌법인 십계명 중 거짓을 금지한 제9계명 같은 것을 유린하여 놓고도 떵떵 거린다.
진실과 정의를 거부하는 세력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힘으로 작동하기 마련이다. 세균은 인간을 감염시켜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을 당한 자는 고통 중에 면역력이 강화 내지 형성 되어 병(세)균이 살 수 없게 되어 백혈구에게 잡아먹히거나, 아니면 괴롭힘을 당하는 숙주 사람이 약하여 죽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고통당하는 인간의 죽음과 함께 병균 자신도 역시 죽음을 마지하게 되어 있다. 죄악의 종착점은 자기 파멸이 된다. 죄는 자기를 죽이는 자살골로 나간다. 죄는 자멸적 세력이 된다(suicidal power). 죄악은 자기 인격을 파괴시키고 자기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자결케 하는 무서운 힘으로 역작동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의의 정당성을 반증한다. 죄는 항상 자기 파멸적 힘이 된다. 죄악은 마치 어떤 수를 곱해도 그 수를 제로로 만드는“O"과도 같다.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시 34:21). 죄는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죽음은 죄의 당연하고도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라”(사 64:7).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고 자기 제물은 열납하지 않는 것에 가인은 분노하여 안색이 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창 4:7)는 말씀을 통하여 불의한 자의 분노를 견책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무죄했다면, 너의 (피 없는) 제물은 감사제로 가납되었을 것이다. 안 그런가? 그리고 네가 죄를 지었다면, 그가 준비하였어야 하는 속죄제물이 바로 용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은가?”라고 말하신 것이다.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민 32:23)는 말씀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죄악을 범한 자는 그 죄악이 그 사람을 찾아낸다.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사 9:20). 어떤 사람이 이웃을 짓밟음으로 자신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는 자신의 파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된다.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시 7:15-16). 이는 악한 자가 다른 사람들을 겨냥하여 계획한 바로 그것이 하만처럼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지혜문학서에는 이런 메시지가 자주 나온다.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잠 5:22).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잠 11:5). 악에 대한 욕망은 악인으로 하여금 걸려 넘어질 장애물을 자주 찾게 하여 마침내 넘어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든다.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 21:7). 악인의 불의한 행동은 그 자체가 지닌 결과들을 초래한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의인은 재난을 당하거나 실수하여도 다시 일어나지만, 죄인은 문자 그대로 “재난으로 넘어지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된다(참조 시 34:19; 미 7:8).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전 4:5).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5:7). 뿌린 대로 추수하게 마련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Being)라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 분이지만, 죄는 존재(being)가 아닌 기생적 세력이다(parasitic power). 독립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이 기생적인 힘이 한 인간 존재 전체를 지배하여 인간을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은” (엡 2:1) 존재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이 나라의 언론, 검찰, 국회, 노조에 기생하여 드디어 저들이 7 귀신이 들린 것 같은 행태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조갑제 닷컴이 말한 것처럼 선동언론, 정치검찰, 반역적 국회, 귀족노조로 비쳐지게 되었다. 거룩한 십자가의 사건은 거짓과 불의의 상태에 빠진 이 노예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구속하는 데 그 목적에 들어 있다. 자유, 민주, 법치라는 대의와 공도를 벗어난 이데올로기적, 반체제적 여러 공적 기관들을 움직이는 어둠의 좀비 세력들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져야 한다. 선과 악, 참과 거짓 사이의 대쟁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이 점을 상기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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