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에 있는 영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18-20).

 

고난을 통한 승리

베드로전서는 밖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다루고 있다. 그 위험은 네로 박해의 격랑이다. 초기교회는 베드로전서 기록 당시 그 박해의 파도가 몰려오는 시기에 접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이런 때에 적대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벧전 3:14)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고 한다. 박해의 폭풍이 몰려오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벧전 3:17)에 있다.

베드로는 이 고난을 목전에 두고 있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을 늘 상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은 신자의 고난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이다. 그것은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죽음의 고난이었다. 구약 4000여 년간 드려 온 표상적인 제물의 원형으로서 단회적으로 드리는 제물이어서(once for all) 반복될 필요가 없는, 죄로 가득한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적인 최고의 제물이었다. 이를 두고 EGW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취급을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정죄함을 받으신 것은 우리로 우리가 아무런 공헌도 한 바 없는 당신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DA 25).

 

베드로가 이어서 진술하고 있는 말씀은 성경 중에 가장 난해한 구절 중에 하나에 속한다. 심지어는 재림교회 학자들 내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못 보고 있다. 예컨대, 신약학자인 George Rice(필자는 그의 휘하에서 신약성서 희랍어 구문론 이수) 3:18에 나오는 영으로라는 어구를 NKJVNIV의 번역을 지지하여 “by the Spirit” , “성령의 권능으로로 보고 있다<A Living Hope (Pacific Press, 1992). 그러나 재림교회 주석(7:574)은 동 어구 영으로“in spirit”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인간적 존재와 대비되는 신적 존재로 풀고 있다. 상론하면, “육체로는” 어구를 육체 안에서또는 육체로 말미암아[‘인간으로 말미암아로 보고, ”영으로어구를 영 안에서또는 영으로 말미암아로 번역해야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대, “인간으로 말미암아라는 독법은 신약 다른 곳에서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뜻이 통한다고 보기 어렵다. 신약 다른 곳에서 육체 가운데영 가운데나 그에 해당하는 표현이 그리스도에게 사용될 경우, “육체는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존재를 가리키고, “은 부활 후에 신적인 존재로서의 그분의 존재를 가리킨다. 이런 근거가 되는 본문을 고전 15:44에서 찾을 수 있다.

 

4대 접근방식

 

베드로전서 3:18-22의 내용을 풀어가는 접근 방식에는 크게 4가지로 나누어진다.

 

A. 홍수 전 세대의 두 번째 기회론 3:18-20에 대한 이해를 이렇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이에 홍수 때에 죽은 죄인들의 영들이 있는 지옥또는 림보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여 두 번째 은혜의 기회를 주었다고 본 것이다.

죽음 이후에 은혜의 기회가 있어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교리는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더구나 3:18 끝 부분과 19절 처음을 연계시켜 보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는 곧 부활하신 것을 일컫고 있어 선포하신 것은 부활 이후가 되는 문맥과도 불일치하는 모순점을 안고 있다.

 

B. 그리스도의 선재사역론 재림교회 성경주석과 상당수 주경가들이 이 이 접근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이전 시대에 홍수전 백성들에게 노아라는 의인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성육신 이전 선재하신 그리스도께서 홍수 전 죄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신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옥에 있는을 영적인 상태가 은유적으로 감옥 안에 있는 것으로 푼다. 이 입장의 문제점은 구원 받은 노아의 8식구에게는 사용하지 않은 영들이라고 하는 표현을 왜 홍수 전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지 그 대답이 선명치 못하다.

 

C. 두 시대 비교론 - “옥에 있는 영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도구들로서 복음을 전한 대상인 죄인들이었다. 노와 홍수 전 사람들, 즉 죄인들과 대비되는 두 시대 대비론적인 이 접근 방식의 성경 이해는 치밀하지 못하여 별 지지를 못 받아 왔다.

 

D. 그리스도의 승리선포론 - “옥에 있는 영들은 타락한 천사들이다. 이는 현대 성서학자들 다수가 지지 하는 접근 방식이다. 3:18-22을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신 후 타락한 천사들에게 당신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시는 문맥에서 접근하여 풀고 있다(참고, 벧후 2:4; 1:6).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1:6). 천사들은 영들이다(1:14); 23:8-9). 이 영들은 악한 존재들이다(1:23; 10:20; 19:8-9).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에서 선포하다(kηρυσσω)” 복음을 전파하다로 번역하기 보다는 요한계시록 5:2에서 하듯 단순히 선포하다는 뜻으로 읽어 내야 한다.

베드로 당대에 에녹(5:24)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유포되고 있었다. 에녹은 홍수 전 타락한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에녹110:1-15에는 홍수와 타락한 천사들이 아부소스(abussos, 무저갱)(8:31; 20:3 참조)감옥에 던져진 것을 말하고 있다. 12:4에는 에녹이 타락한 천사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을 선포하도록 보내졌다고 한다. 이런 당대에 유포되어 있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베드로는 에녹의 원형되는 그리스도를 표상하고 있으며, “옥에 있는 영들을 타락한 천사들, 권세들과 능력들로 본 것이다. 이는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는 말씀과 조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2:15)라는 말씀과도 어울린다.

요컨대,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어 승리를 선포하셨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그 분을 따르는 모든 신자들의 승리를 보증한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신자들의 승리로 이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적대세력들을 이기셨다. 검은 구름처럼 몰려오는 박해의 고난이 있겠지만,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승리로 이끄는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적대적 공격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미 그들은 패배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자들이 지녀야 하는 확신이다. 베드로는 노아 홍수의 물을 두고 8식구가 구원 받은 침례를 예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홍수 때 공포의 물은 역설적으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자들에게 구원하는 표가 된다. 베드로는 그 시대 신자들, 즉 부활의 소망의 포로가 된 자들에게는 부활이야 말로 침례를 효력 있게 하는 길이 된다고 하면서 침례를 부활로 이어가는 거룩한 순례자의 길에 들어서라고 한다. 그리고 선한 양심을 가지진 자들은 죄악의 옥에 갇혀 있는 영들을 향하여 소망에 관한 이유를 제시하는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봉사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서: Robert M. Johnston, Peter and Jude: Living in the Dangerous Time. The Abundant Life Bible Amplifier (Boise, IO: Pacific Press Publishing Assn., 1995.

(저자는 1960년대 선교사로서 삼육대학교에서 여러 교수로 활동하셨으며, 그 후 Andrews University에서 신약학 교수주로 재임하였으며 필자의 논문 심사위원이었음).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