匈奴족 훈족(Huns)
다니엘 2장의 열 발가락이나 7장의 열 뿔은 동고트, 서고트, 프랑크, 반달, 수에비, 알라만니, 앵글로-색슨, 헤룰리, 롬바르드, 부르군디라고 알려져 왔다. 내가 처음 교회 나오면서 읽은 우라이어 스미스의 <다니엘서 주석>책에서는 알라만니 대신에 훈족(Huns)이었다. 훈족이 다니엘 7장의 10뿔에 들어가느냐 여부가 1888년 논쟁의 불씨 역할을 했다. 우라이어 스미스가 훈족을 포함시킨 것을 두고 성경주석서들에 의존하였던 것이라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진술했다. 이에 대하여 A.T. 존스는 거칠고 방자하게 맞받아치는 대응을 했다. “스미스 목사가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말씀 했는데 저는 압니다. 그가 모른다고 말씀한 것에 대하여 저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이런 각을 세운 소장 측의 무례한 언행은 회의 분위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훈족은 혜성과 같이 세계사에 등장하여 질풍노도를 일으키다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특히 로마 제국에 큰 격변과 혼란과 변화를 초래한 훈족은 정착된 나라를 남기지 못하고 일찍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언 해석에서 알라만니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7장의 10뿔의 정체에 관한 전후하여 훈족 여부를 여기서 다시금 설왕설래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근래 논의되어 온 훈족의 정체성이 한민족과의 관련성을 짚어보고 싶은 것이다.
“Hun”이라는 말의 어원적 의미가 “사람(人間)”이라고 한다. 몽골어 Хүн(훈)」 곧 ’Hun’은 나무꾼이나 씨름꾼의 ’꾼’과 같은 의미의 이름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이들을 두고 匈奴족이라고 비하하여 표현하고 역사가들은 그들을 흉폭한 족으로 서술해 왔다.
훈족(흉노족)은 몽고고원에 거주한 기마유목의 민족으로 중국 전국시대에 세력을 확장, 자주 중국 본토에 침입해 왔다. 진시왕은 이들의 내침을 막고자 거대한 만리장성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나라가 망한 후 흉노의 세력은 더욱 강대해 갔다. 말타기, 활쏘기는 이들의 특기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방으로, 동방으로, 그리고 남방으로 침략했다. 한나라 고조도 대군을 이끌고 나가 대패하여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나라 궁중에서는 황족의 딸을 보내고, 해마다 공물을 진상한느 화친정책을 취했다. 한 무제 때에야 흉노 토벌에 성공적이었다. 남 흉노는 제어 되었으나 북 흉노는 계속하여 괴롭히는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이 때 유럽으로 방향을 돌렸다.
몽골 교과서는 흉노제국을 세운 흉노인들이 유럽에서 아틸라의 훈제국(AD 434~453)을 세워 드네프르강에서 다뉴브강까지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으며,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공납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틸라는 나아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수많은 국가가 로마제국에서 해방되어 독립국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했다.
김석동의 <한민족 성장DNA 추적>에 따르면 아틸라는 441년 동로마제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다뉴브강을 건너 주요 도시를 초토화하고 448년 동로마제국을 복속시켰다. 451년에는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를 공격하여 메츠를 점령하고 오를레앙을 포위하는 등 공포의 진군을 계속했다. 452년 이탈리아로 쳐들어가자 서로마황제는 도주하고 로마대주교 레오는 화해를 간곡히 요청해 서로마의 복속으로 보고 본거지 판노니아(헝가리)로 돌아왔다. 이듬해 453년 유럽사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틸라가 게르만 제후의 딸 일디코와 결혼한 첫날밤 죽었다. 의문의 사망이었다. 아틸라가 죽자 훈제국은 분열을 일으켜 454년 판노니아 전투에서 패배하고 러시아 초원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서로마제국은 쇠퇴의 길을 그명운을 다하고 말았다.
ZDF TV는 다큐멘터리(1994)에서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 최동단의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비밀스런 아시아의 초기 역사에서 훈족의 실제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세인의 주목을 근 고고학적 발굴물이 그들의 원래 고향은 아시아 대륙의 최동단일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한국의 작은 도시 경주근교의 묘에서 부장품으로 점토상이 발굴되었다. 말을 탄 사람 뒤에 흔치 않게 생긴 솥이 실려 있는 기마상. 이 솥은 똑바로 세워 말탄 사람의 등에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그릇은 지금까지 이곳과 훈족의 이동경로에서만 발견되었다." -ZDF TV 다큐멘타리 中-
게르만족 대이동 시킨 훈족의 원류가 한국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는 여러 고고학적 발굴과 더불어 중앙아세아 여러 나라 역사들을 비교 연구한 결과로 보인다. 그래서 상당수의 학자들은 한국 고대사의 원류를 이 훈족(흉노족)으로 보아 왔다. 조갑제 씨도 삼국통일로 민족 통일국가로 만든 주체 세력인 신라 金氏 왕족은 흉노였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선생이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사」(오늘날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조선족·흉노족은 우랄어족으로 조선족이 분화하여 조선·선비·여진·몽고·퉁구스 등의 종족이 되고, 흉노족이 흩어져서 돌궐·헝가리·터키·핀란드 등의 종족이 되었는데…”, “여진·선비·몽골·흉노 등은 본래 아(我)의 동족”, “조선·만주·몽골·터키 네민족은 혈족”,“조선이나 만주나 몽골·터키·헝가리·핀란드가 3천년 이전에는 적확히 하나의 혈족”으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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