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관광 스케치

단상 : 2018. 6. 8. 00:04

 

 

 

<위 사진들은 연산군 위리안치 재현한 장면들입니다.>

효도관광 스케치

2018531() 이었습니다.대학교회가 기획, 후원한 효도관광 팀에 가담하여 아침 8시에 대학에서 출발, 강화 평화전망대를 향하는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대학교회가 베푼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번 여행을 주관한 부서는 가정봉사회장 김희완 교수로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시고 여행 기간 내내 투어가이드로 훌륭한 봉사를 하셨습니다. 여행 코스는 강화도 평화전망대, 교동도(시간여행), 고려궁지를 둘러보는 일정으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군사보호지역 출입을 위하여 신분증을 지참해야 했습니다.

시간 여행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군사적, 행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임진강, 예성강, 한강이 합류하는 곳이어서 조운을 통한 삼남지방의 세곡이 개성이나 한양으로 가기 위한 교통의 요지가 될 뿐만 아니라, 넓은 평야가 바다로 둘러 싸여 천혜적으로 물산이 풍부했던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동도에는 연산군유배지, 고려시대 성리학자 문성공 安珦이 원나라에서 공자의 초상화를 가져와 모셨던 곳으로 유서 깊은 향교 중의 하나입니다. 나는 고려 성리학의 대학자 문성공의 제 24대손이어서 선조의 얼과 학문의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교동향교(喬桐鄕校)는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향교, 즉 고등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동도는 고려와 조선조 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곳으로 비쳐졌습니다.

북한(황해도)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망향대), 70-80년대의 모습들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망실에서 전방 2.3km 너비 해안에 임진강, 예성강, 한강이 합류하는 건너편 북한 땅, 연백평야를 망원경으로 보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운무 때문에 시야가 흐려 실감이 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탈향민들의 망향대를 둘러보고 70년대 옛 풍경이 화석처럼 된 초원시장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70년 대 옛 풍물 시장 거리에 있는 사진관에서 나는 남자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여고생 복장을 한 아내와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여행 후 그 사진을 보고 여러 번 웃었습니다. 이어 연산군 유배지 위리안치를 둘러보았습니다.

위리안치(圍籬安置)

위리안치는 조선시대 죄인에 대한 귀양 유배형 중의 하나입니다. 죄인을 유배된 집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어 두는 일종의 격리 연금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탱자나무는 전라남도에 많았기 때문에, 대개 죄인들은 전라도 지역의 에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자는 울타리를 뜻합니다. 안치는 왕족이나 고위관리에게만 적용한 유배형을 뜻합니다. 위리안치는 가택연금형인 셈입니다.정조 13(1789) 비변사는 일성록에 다음 글을 남겼습니다. “강화는 본래 천연의 요세지로 조정에서 돈대를 설치하고 성을 쌓아서 방어했고, 해마다 탱자나무를 심었습니다.” 강화도의 천연기념물 78호와 79호 탱자나무는 외적의 침입을 저지할 목적으로 강화성 아래에 심은 것입니다. 나의 고향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탱자나무를 개인 집 울타리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넓은 초등학교 부지 주위도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 쌓여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탱자나무 열매 신맛은 어린이들의 간식거리이었습니다. 연산군은 조선조 제 10대 왕으로 성종과 폐비 윤 씨 사이에서 탄생, 18세 등극, 12년 재위, 재위 초중반까지는 국정을 어느 정도 무리 없이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무오사화를 일으켜 전제정권을 강화하였으며, 폐비 윤 씨 어머니를 피 묻은 적삼을 보고 신원 차 폐비 관련 관원 및 선비들을 숙청하였습니다. 그는 폐비 연루자들을 학살하고 부관참시 하는 등 갑자사화와 을사사화를 일으켜 엄청난 신하들과 연관자들 8촌까지 죽이는 연좌제를 실시하여 그 잔혹성이 컸습니다.

연산군은 재위 10, 왕과 신하들이 경전 공부를 하는 經筵(경연)을 등한시 하고 興淸망청 막장 놀자 판으로 막 나가고 황음을 일삼아 중종반정을 불러왔습니다. 그는 조선조 역사에서 이나 라는 시호를 받지 못한 왕이 된 것입니다.

중종은 1506년 연산군을 폐위시켜 강화도 교동면 고구리 화개산 자락의 한 평 남짓한 초가집에 위리 안치시켰습니다. 그는 두 달 후 31세 되던 해에 역질로 죽었다고 전해 옵니다. 그의 죽음을 독살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권력을 불의하게 사용하여 폭정을 일삼고 향락추구에 몰두하는 시정잡배처럼 살다가 외딴 곳 누추한 거처로 귀양살이를 하면서 들고 있는 소박한 밥상을 보니 극과 극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 뿌린 대로 거둔 삶이 아니런가.

강화읍에 있는 고려 옛 궁터를 둘러보았습니다. 대 몽고 항전 약 40년의 역사, 삼별초의 역사 현장입니다.

귀로에는 여행자 모두가 자유스럽게 자기의 지난 날 체험을 술회하는 순서가 진행되었습니다.

여행 선교의 기적

여행으로부터 돌아 온 후의 감동은 여행에 못지않았습니다. 다음 글들은 대학교회 카톡에서 다운 받아 여기 옮긴 글들입니다 글 쓴 분들 중에는 평소에 선교 대상으로 여겨 사랑을 베푼 분들을 여행에 가담시켜 그들을 배려하는 순서들도 진행하므로 효도 관광을 선교관광으로 승격시키신 분들입니다.

  <배xx> - “어제 여행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준비하신 손길 위에 주의 축복 함께 하시고 제가 재림교인이라는 사실이 꿈만 같이 신비롭고 행복합니다. 대학교회에서 침례받은 저의 여동생 배선화집사는 지금 진리를 찾아 선교원에서 안교장으로 활동하고 온 삶을 영혼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자매의 오랜 기도와 강권으로 최근에 순복음교회 권사인 저의 어머니가 사능중앙교회에서 최영규목사님께 침례를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지 않은 오빠와 온 가족들이 참석한 눈물과 감동의 자리였습니다. 저의 온 집안이 진리 안에서 구속의역사를 이어가길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 또 기도합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이xx> - “오늘 점심때 퇴계원교회 다니는 시누(남편동생)에게 전화왔는데 좋은 소식이 될 것 같아서 올립니다.

목요일날 효도여행 관광버스 운전기사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시누의 구역반에 운전기사 부인(여집사)이 같이 활동하는데, 남편(운전기사)이 삼육대학교회 효도여행을 기사로 다녀와서 완전히 변했다고 했답니다. 그분이 운전기사를 몇십년 해오셨는데 이런 삼육대학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 없다고 하면서, 예를 들면 차안에 휴지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자리를 깨끗하게 하였으며, 차안에서 시끄럽게 하지도 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고 했답니다. 확실히 삼육대학 사람들은 다른 교회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퇴계원 지역에 만나는 지인들에게 삼육대학은 특별하다고 이야기 하며, 교육은 삼육에서 시켜야 한다고 전도(?)하고 다닌답니다.“

 이번 안식일(62)에도 아침에 남편이 먼저 교회가자고 해서 부인되는 여집사님이 여태 까지 억지로 교회에는 몇 번 따라왔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너무 감사하다고 안식일 날 시누에게 이야기했답니다. 시누이 이야기로는 이분들이 본래 우리교인이 아니었는데 퇴계원교회에서 전도를 하여 교인된 분들이고 외아들도 삼육교육을 시켜서 결혼했답니다.

효도관광에 참여해 주신 교회 어르신들의 훈훈한 말씀과 따뜻한 배려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번 여행을 통하여 한 영혼(운전기사님)이 감동을 받고 안식일 날 교회에 스스로 참석하도록 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김xx> - “사모님들의 숙고와 헌신으로 좋은 결과가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좋은 여행이었다고 제가 모시고간 선생님내외분도 감사하다고 말씀 하셨어요. 저도 감사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 내외분들을 초청하여서 우리의 시간 여행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경청한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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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