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 요일은?
십자가 처형 요일은?
[어제 8월 18일 안식일 점심 식탁에서 <하나님의 피로 세운 안식일>이라는 책자를 받고 내용을 대충 살펴보았습니다. 작위적인 도표들이 여기저기 나열되었는데 이들은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일 것입니다. 지난주에 <이스라엘 안식일과 절기>를 읽으면서 저자의 주관적인 도표들이 많이 나열된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요일을 이해하여야 할 것인지 정리하고자 다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문제성을 지닌 계산 방법
유대 모든 절기들은 월삭을 기점으로 산출 확정되었다. 하딩(Leslie Hardinge) 박사는 이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후 산헤드린은 매월 29일 성전에서 초생달 목격자들의 보고를 기다렸다. 초생달을 본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고 그들과 대담한 자들이 수긍하고 나서야 축제를 공포하는 나팔을 불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전달과 같은 날을 그 달의 마지막으로 잡고 30일이 다 찬 것으로 간주하였다(로쉬 3.1). 모든 절기들이 월삭에 의존되어 있었다. 월삭을 기점으로 봄 절기, 즉 유월절이 정해지고 유월절 다음에 오는 16일에 오는 첫 이삭을 요제로 드리는 무교절, 50일 후에 오는 오순절이 정헤졌다. 가을절기도 마찬가지로 정해졌다(레슬리 하딩, 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413, 414).
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된 일자를 확정 짓기 위해서 A.D. 30년 전후에 니산월 보름달이 언제 있었는가를 알아내는 일에 관심을 기우려 왔다. 그래서 역사적인 자료들과 논의들 보다는 천문학자들이 정리한 도표 자료들을 선호하여 왔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의 자료들은 정확성을 지녔겠지만,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이 만들어 사용한 자료들을 반영시킬 수 없는 문제성을 지녔다. 당시 유대인들이 정한 월삭의 기점은 육안에 의한 천문 식별에 그 토대를 두고 있어서 고정된 월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그것도 예루살렘 중심의 월삭에 관한 육안 식별 결과를 감람산에서 봉화 신호로 알려 주변에 알렸다. 그러나 육안 식별은 오늘날처럼 정확하지 못하여 구름이 낀다든지 우천 시 등 천문 상황에 따라서 예루살렘 지역에서 즉각적으로 월삭 식별이 안 되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럴 경우 다른 지역에서 월삭 도래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들을 기다려야 했다(Ricciotti, The Life of Christ, 164)..
따라서 오늘날 컴퓨터로 유월절 만월 시기 산출 방식을 제1세기 유대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전산 방식에 의한 계산 자료들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미래주의자들이 컴퓨터 처리로 니산월 14일을 수요일 또는 목요일로 특정하는 것은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더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 한 날을 산출해 내지 못한 것은 그 기산점(444 B.C. 니산 1-445 B.C. 니산 1)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찾아 낸 것은 기껏해야 A.D. 33 니산 10-A.D. 32 니산 10)이라는 승리의 입성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1년이라는 기간의 오차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만큼 현대 유대인들이 채택한 유월절 때 계산을 A.D. 1세기에 적용하는 일은 무리인 것이다.
판단 기준
성경, 특히 복음서의 관련 본문들을 중심으로 십자가 처형일을 특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표상학적 연구와 70주일 예언 연구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복음서의 기사들의 공통점
1.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마지막 만찬을 나누었다.
2. 예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 내내 무덤에 게셨다.
3. 예수께서는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부활하셨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의 차이점
1. 공관복음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의 마지막 만찬을 “유월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2. 요한복음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다음날 밤에 유월절 만찬을 먹었다고 한다.
따라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진술들이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비평적인 주석가들은 분명 요한이나 공관복음서 기자들 중 어느 한 쪽이 잘못 기록했을 것으로 보아 넘긴다. 그러나 성경의 영감성을 믿는 자들은 그런 궁색한 비평적 설명을 배격하고, 그 대신 이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안한다. 이런 해결책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월절의 시간과 상징적 의미 그리고 마지막 만찬과 십자가 사건에 연관된 시간 요소들에 대한 성경과 성경 외 자료들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유월절의 시간
1. 유월절 양은 니산월 14일 늦은 오후 정규적인 저녁 제사 후에 잡았으며, 그날 저녁 일몰 후 (니산월 15일의 이른 시간)에 누룩을 넣지 않은 떡과 함께 먹었다(출 12:6~14, 29, 33, 42, 51; 13:3~7; 민 9:1~5; 33:3; 신 16:1~7; Josephus War ii. 14. 6; iii. 10. 5; xi. 4. 8 [311, 312; 248, 249; 109, 110]; War v. 3. 1 [98, 99]; vi. 9. 3 [423]; Philo De Septenario, sec. 18; Mishnah Pesah.im 5. 1, Soncino ed. of the Talmud, 287). 니산월 15일은 절기 안식일이며 또한 무교절의 시작을 나타냈다(출 12:8, 18, 34, 39; 레 23:5, 6; 민 28:16, 17; 신 16:3, 4, 8; Antiquities iii. 10. 5 [249]; ii. 15. 2 [318]).
2. 유월절(무교절) 절기의 둘째 날인 니산월 16일에는 첫 열매의 요제단을 성전에서 드렸다(레 23:10~14; Antiquities iii. 10. 5 [250, 251]). “유월절”이란 용어는 본래 니산월 14일에만 적용되었으나 그리스도 당시에는 무교절을 지칭할 때도 가끔 사용되었다(Antiquities ii. 14. 6; xi. 4. 8; xiv. 2. 1 [311~313; 109~111; 21]; xvii. 9. 3; War ii. 1. 3; v. 3. 1 [10; 99]). 이와 마찬가지로 무교절이란 용어도 유월절을 포함하는 말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눅 22:7; 행 12:3, 4; 참조 행 20:6).
3. 주님의 봉사 기간 중 매 유월절 보름 날짜를 오늘날의 일자로 변환시킨 일람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문제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유월절 시기 산출을 보여주는 모든 일람표는 현대 유대인의 산출 방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음력을 양력으로 조정했는지 현재 알 수 없으며, 그 방면에 대한 소위 학문적인 연구는 모두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의 봉사 기간에 해당하는 유월절들이 어느 요일, 심지어 어느 달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결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요일 십자가 처형설 근거
1. 십자가에 달린 해의 유월절 보름에 해당하는 날짜를 오늘 이 시대에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이 방식의 문제성을 지적했다.
2. 히브리어의 관용적인 표현인 “3일 3야”는 완전한 72시간을 나타낸다. 그러나 1세기 때의 유대인들은 하루의 일부분도 온전한 하루로 간주하였다. 삼상 30:12에 “낮 사흘, 밤 사흘을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라” 라고 한 구절에서 “낮 사흘, 밤 사흘”을 13절에 나오는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에 비추어 사흘 전 어느 시점에 버림받았고, 사흘 후 어느 시점에 다윗을 만난 것으로 시사하고 있어서 반드시 72시간 일 필요가 없는 용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예비일(금요일)의 일부, 안식일(토요일) 모두, 그리고 일요일(주일 첫날)의 일부 동안 무덤에 계셨기 때문에 3일 동안 무덤에 계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 12:40의 “밤 낯 사흘 동안”은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무덤에서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일요일 이른 아침까지 지낸 시간을 언급하고 있는 점이 이를 지지한다. 요나의 표적은 72시간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3일 3야”를 유대인의 개념에서 사흘을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요나 표적의 강조점은 예수의 죽으심, 장사, 부활에 있다.
72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주장에 양보한다 할지라도 금요일 처형을 전제로 해서 설명이 가능하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와 “때가 이르렀사오니”(요 17:1)라는 수난 주간에 하신 고백에서 보듯이 이미 그리스도를 살해하고자 계획을 세운 원수들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굳이 금요일 오후 3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시점 이전에 이미 희생양이 되신 것으로 보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3. 마 28:1의 헬라어 표기가 부활이 안식일 오후에 있었다. 뒤에 이 점을 분석 비판한다.
유월절의 표상적인 의미
유월절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 즉 우리를 위해 “희생”될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고전 5:7)를 예표했다. 마찬가지로 무교절의 흔들어 드리는 곡식 요제단은 사망의 권세를 흔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 23)를 표상했다. 부활하실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요제단은 일요일 부활일을 확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마지막 만찬과 십자가에 달림
다음의 연대기적인 진술들은 복음서의 이야기에 명백하게 나와 있거나 암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성경 학도들에게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것들이다.
1.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 예비일[전날]”, 곧 니산월 14일에 있었다(요 19:14; 참조 Talmud Pesah.im 58, Soncino ed., 288; Sanhedrin 43a, Soncino ed., 281; 출 12:6; 각 시대의 대쟁투, 399).
2. 그리스도의 죽음은 금요일 오후(막 15:42~16:2; 눅 23:54~24:1; 요 19:31, 42; 20:1), 저녁 제사 드릴 무렵에 있었다(시대의 소망, 756, 757,; 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399).
3. 그러므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해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도록 지정된 날 곧 니산월 14일은 금요일에 들었으며, 따라서 유월절 예비일(전날)은 제7일 안식일(밤)을 위한 예비일과 일치했다(참조 요 19:14, 31, 42; 20:1). 그러므로 니산월 15일 곧 무교절의 절기 안식일은 제7일 안식일과 일치했다(참조 레 23:6~8; 막 15:42~16:2; 눅 2:5~24:1).
4. 마지막 만찬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있었는데(마 26:17, 20, 26, 34, 47; 27:1, 2, 31; 막 14:12, 16, 17; 눅 22:7, 8, 13~15; 요 13:2, 4, 30; 14:31; 18:1~3, 28; 19:16; 참조 시대의 소망, 642; 각 시대의 대쟁투, 399), 그것은 니산월 14일의 시작 부분에 속한 시간들이었으며, 따라서 목요일 밤이었다.
5. 공관복음은 마지막 만찬을 유월절 만찬이라고 부른다(마 26:17, 20; 막 14:12, 16, 17; 눅 22:7, 8, 13~15; 참조 시대의 소망, 642, 652,; 각 시대의 대쟁투, 399).
6. 요한의 설명에 의하면 유대인의 공식적인 유월절 만찬 의식은 주님의 마지막 만찬보다 24시간 후에 있었으며, 따라서 십자가에 달린 날에 곧이어 오는 금요일 밤, 제7일 안식일의 이른 시간들(요 18:28; 19:14, 31; 참조 시대의 소망, 774) 즉 니산월 15일에 거행되었다.
7. 최후 만찬 때(요 13:1), 심문이 진행되던 동안(마 26:5; 막 14:2; 요 18:28; 19:14; 참조 시대의 소망, 703, 723,) 그리고 갈보리로 가시던 도중에도(참조 시대의 소망, 742) 공식적인 유월절 의식은 아직 미래의 행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8. 예수는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 무덤에 있었는데(마 27:59~28:1; 막 15:43~16:1; 눅 23:54~24:1; 요 19:38~20:1) 그 안식일은 니산월 15일이었을 것이다.
9. 예수는 니산월 16일 일요일 이른 아침에 무덤에서 살아났다(마 28:1~6; 막 16:1~6; 눅 24:1~6; 요 20:1~16; 참조 막 15:42, 46 주석; 각 시대의 대쟁투, 399; 시대의 소망, 785, 786,).금요일 처형의 성경적 근거
예수께서 예비일 되는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성경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막 15:42).
이 구절은 예수께서 안식일 전날(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그 안식일이 주 중(週 中)에 오는 이른 바 절기의 안식일(무교절 첫날)이 될 여지가 없다. 예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2.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1).
이때는 아마도 AD 30년 늦은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메시야로서 당할 고난을 예고하신 것이다. 여기서 자신이 부활할 “제 삼 일”은 “삼일 째(on the third day)”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무덤에서 72시간의 온전한 세 번의 낮과 밤을 지내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3. 누가도 이런 시각에서 삼일 째 되는 날 부활하신다는 그리스도의 예고를 진술하고 있다.
(1)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 9:22).
(2)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눅 24:20-21).
(3) “안식 후 첫날” “그 날”이란 일요일이다. “그 날”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이 십자가에 처형된 그리스도 사건을 두고 슬퍼하면서 엠마오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한 낯선 분이 다가 와 슬퍼하는 사연을 물었을 때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를 십자가에 못 박은 지 ‘사흘째“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 따라서(고전 15:4) 부활하신 날은 제 삼 일이 되는 일요일이다.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 되어 절기의 안식일과 제칠일 안식일이 겹쳐지는 날이 된다(요 19:31). ”큰 날“은 그 안식일이 무교절의 첫날이기도 했으므로 “큰 날”이라고 불렀다(레 23:6). “큰 날”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당시 유대인의 문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예수가 니산월 15일에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주일 안식일이 요제절(레 23:9-14)과 겹쳤기 때문에 그 안식일이 큰 날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는 표상의 정확한 성취로서 첫 열매가 드려진 날에 부활하였다,).
문제 성구 이해
수요일이나 십자가 처형설 주장자들이 내걸고 있는 몇 성경절들을 보자.
1. 마 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여기서 “안식 후 첫날, Ὀψὲ δὲ σαββάτων (opse de sabbaton)”이란 구가 안식일 늦은 시간대를 시사하고 있는가? 재림교회 성경주석은 이 구절을 설득력있게 풀고 있다.
마가복음 13:35은 ‘opse’를 “저물 때”로 번역하고 있다. “저물 때”는 일몰 때로부터 저녁 9시까지를 가리킨다. 옵세에서 파생된 옵시아(opsia)는 신약에 좀 더 자주 나타난다. 옵시아는 항상 “저물 때”, “해 질 때” 또는 “저녁”으로 번역되었다. 마 8:16; 막 1:32에서 이것은 구체적으로 일몰 이후의 시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 있다. 마 14:23; 막 6:47; 요 6:16에서도 이것은 해 진 이후의 시간을 나타낸다(DA 377, 380,).
J. H. 물턴(J. H. Moulton)은 28:1에 나타난 옵세라는 단어에 “후에”라는 의미를 부여한다(A Grammar of New Testa- ment Greek, 1권, 72). “안식일이 지난 후, 주일 중 첫째 날이 동터 올 무렵에”라는 번역은 이 성경 구절에 나타난 시간 진술에 대한 개정표준역(RSV)의 번역이다. E. J. 굿스피드(E. J. Goodspeed)는 2세기와 3세기의 저자들 가운데 옵세를 “후에”라는 의미로 사용한 사람들을 인용한다(Problems of New Testament Translation, 43). 그는 “이 성경 구절의 분명한 의미는 ‘안식일이 지난 후, 주일 중 첫째 날이 동터 올 때’”라고 결론짓는다(Problems of New Testament Translation, 45).
2. 막 16:1, 2에 따르면, “안식일이 지나매” 즉 해 진 후 토요일 밤에 여인들이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갔다. 마가의 말은 분명하고 확실하며, 따라서 그것은 마 28:1에 언급된 것과 동일한 무덤 방문에 대한 언급임을 의심할 만한 실질적인 이유가 없어 보인다. 또한 안식일 여행에 대한 유대인의 규정(출 16:29)은 약 1,07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무덤을 방문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막달라 마리아의 집이 예루살렘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베다니에 있었으므로, 만일 그녀가 안식일을 베다니에서 보냈다면(눅 23:56),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는 무덤으로 가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미아 삽바톤(mia sabbaton)”에서 “삽바톤”이라는 단어가 여기서처럼 복수 형태든지, 단수 형태든지 모두 제7일 “안식일” 또는 “1주일”을 의미한다. 이는 눅 18:12; 고전 16:2 등 용례에서 확인된다. 복수라는 것에 의존하여 “주일‘이라는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을 복음서 기자들의 용례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다.
3.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 19:14).
여기서 “예비일” 은 헬라어로 파라스큐에(paraskeue-)인데 이 단어는 금요일을 뜻한다(막 15:42; 눅 23:54). 특히 이 용법은 현대 헬라어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즉, 파라스큐에가 금요일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참고 Gleason L. Archer, Encyclopedia Bible Dificulties, 375).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던 해에 유월절의 파라스큐에는 안식일의 파라스큐에 즉 “예비일”과 일치한다(19:31, 42). “유월절 예비일 παρασκευή τοῦ πάσχα”은 랍비들의 문헌에서 니산월의 제14일을 가리키는 말로, 흔하게 나오는 히브리어 에렙 합페사흐(‘ereb happesah.), 즉 “유월절의 저녁”에 해당하는 말이 확실하다(Mishnah Pesah.im 4. 1, 5, 6; 5. 1; 10. 1, Soncino ed. of the Talmud, 243, 271, 273; 287; 532; Pesah.im 1. 1, 3; 3. 6; 4. 7; 5. 4, 9; 7. 9, Soncino ed. of the Talmud, 1, 46; 232; 275; 317, 318; 430).
William Shea가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예수께서 봄철 유월절 금요일에 돌아가셨다(눅 23:56)”는 논지를 펴고 있다(“The prophecy of Daniel 9:24-27," 70 Weeks, Leviticus, Nature of Prophecy, 102).
그러므로 요한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던 날을 니산월 14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날이 니산월 15일에 일어났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유월절의 예비일”이 유월절 주간의 금요일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러한 용법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입증되지 못한다.
“제 육시”를 두고 흔히 유대식으로 환산하여 낮 12시로 보지만, 여기서는 로마식 시간 표기로 보아야 한다. Daniel Augusburger는 The Life and Words of Jesus에서 공관복음은 히브리식 시간 계산 방식을 따랐지만, 요한복음은 로마식 시간 계산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p. 184). 이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는 W.E. Read의 “The Sixth Hour of the Three Synoptics" (Ministry, April, 1949)을 참고하라.
요점 정리
사복음서는 한결같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마지막 만찬을 나누었고, 그가 안식일이 지나도록 무덤에 계셨으며, 일요일 이른 아침에 살아난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공관복음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의 마지막 만찬을 “유월절”이라고 부르는 데 반해, 요한복음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다음날 밤에 유월절 만찬을 먹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유월절과 관련된 사건들의 가능한 순서를 아래와 같이 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1.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해에, 유대교의 자유파와 보수파 사이 논쟁의 결과 때문인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다른 상황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월절을 이중으로 지키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2. 다른 보수적인 유대인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공식적으로 니산월 14일의 이른 시간인 목요일 밤에 마지막 만찬을 먹었으며, 그 마지막 만찬은 진짜 유월절 식사였다.
3. 예수는 니산월 14일 금요일 저녁 제사 시간이면서 유월절 어린양들을 잡는 때쯤에 십자가에서 운명했다.
4.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해에 공식적인 유월절 기념 식사는 십자가형이 시행된 후 금요일 밤에 있었다.
5. 예수는 안식일에 무덤에서 안식했는데, 그 해에는 절기 안식일 즉 연중 안식일인 니산월 15일 곧 무교절의 첫째 날과 제7일 안식일이 일치되었다.
6. 예수는 요제절 곧 부활을 표상한 곡식 단을 성전에서 흔들어 드리던 날인 니산월 16일 일요일 이른 아침에 무덤에서 부활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저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니산월 14일(금) 오후 3시에 죽으셨다가 니산월 16일(일) 새벽에 부활하셨다.
참고: 재림교회 성경주석 및 기타 인용 서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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