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의 전승 연설을 읽으면서
장제스의 전승 연설을 읽으면서
中日전쟁을 지도하였던 蔣介石(장제스)은 1945년 8월15일 戰勝(전승) 연설에서 수백 만 명의 중국인을 죽인 일본인들에 대한 보복을 금지시켰다. 그의 연설문에는 찬란히 빛나는 이런 놀라운 명문 대목이 나온다.
'우리 중국 동포는 '舊惡(구악)을 기억에서 지우고 사람들에게 善을 행한다'는 것이 우리 민족 전통의 지고하고 고귀한 덕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관되게 일본국민을 敵으로 삼지 않았고, 다만 武力을 행사한 軍閥(군벌)만을 敵으로 생각한다고 明言하여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동맹국과 함께 敵軍을 타도하였습니다. 그들이 투항의 조건을 전부 충실하게 실행하도록 엄격하게 독려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복하여선 안 됩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汚辱을 가해선 안 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죄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나치스적 軍閥에 의하여 우롱을 당하고 선동당한 점에 대하여 우리는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대할 뿐입니다. 만약 과거 敵이 행한 폭행에 대하여 똑같은 폭행으로 대하고, 그들의 우월감에 대하여 노예적 굴욕을 가한다고 한다면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부르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수행해온 仁義의 전쟁이 목적한 바가 아닙니다. 이 점을 우리 국민 동포 일동은 오늘에 즈음하여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我中国同胞们必知「不念旧恶」及 「与人为善」为我民族传统至高至贵的德性。我们一贯声言, 只认日本黩武的军阀为敌, 不以日本的人民为敌; 今天敌军已被我们盟邦共同打倒了, 我们当然要严密责成他忠实执行所有的投降条款, 但是我们并不要报复,更不可对敌国无辜人民加以污辱, 我们只有对他们为他的纳粹军阀所愚弄所驱迫而表示怜悯, 使他们能自拔于错误与罪恶。要知道如果以暴行答复敌人从前的暴行, 以奴辱来答复他们从前错误的优越感, 则冤冤相报, 永无终止, 决不是我们仁义之师的目的。这是我们每一个军民同胞今天所应该特别注意的)。
크리스천인 장제스는 이 연설문 서두에서 그리스도의 산상보훈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을 자기 몸처럼 대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상기시켰다. 그런 후 이어서 위에 인용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인들에 대한 보복을 금지시켰다. 그는 이 연설문에서 자국민들에게 침략자 일본에 대하여 용서하고, 포용하며, 보복하지 말라고 하여 도량이 큰 정치가(stateman)로서의 면모를 풍겼다. 그래서 그의 연설문은 人口에 膾炙(회자)되리만큼 유명하게 되었다. 그가 전후 중국 대륙의 지도자로 자리를 굳혔다면, 중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는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처음에 공산당 세력을 제압하는 일에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국공합작이라는 그물에 걸려들어 오히려 소수 마오쩌둥 등 紅軍 세력의 교활한 작전에 넘어지고 만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 원인을 크리스천 지도자로서 인자를 베푼 것이 빌미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931년 9월 본격적인 일본의 만주 침략이 시작되자 동북군 지휘관은 장쉐량(張學良)은 근거지를 잃고 장제스에게 의탁하였다. 장제스는 장쉐량을 중국 중부지방에서 홍군과의 내전을 하는 부사령관으로 삼았다. 그러나 장쉐량은 홍군과의 접촉을 통해 좌익의 영향을 받았고, 대 일본 전쟁에 소극적인 장제스의 난징정부의 "선 통일, 후 저항" 정책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기미를 간파한 장제스는 장쉐량을 경질하고 토벌군사령관을 교체할 계획을 세웠고 동북군의 핵심세력을 제거하고 홍군 토벌에 찬성하는 장군들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장쉐량은 동북군, 서북군의 합동사단장회의를 소집하고 본격적인 반란에 돌입하여 장제스 총통과 그 참모진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결정했다.
1936년 12월 12일 동북군 총사령관 장쉐량은 국민당 정권의 총통 장제스를 산시 성의 성도(省都) 시안(西安) 화청지에서 납치하여 구금하고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지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요구한 이른바 시안사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국민당 군과 홍군은 국공 내전을 중지하고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져 함께 대 일본 전쟁을 수행하는 파트너가 되었다.
시안사변은 중국의 합법적인 2인자였던 장쉐량이 1인자 장제스를 무력으로 감금하고 협박한 사건이었다. 두 사람은 시국을 보는 눈을 달리 했다. 장쉐량은 이른바 홍군, 즉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단하고 국·공 양당이 합작해 침략자 일본과 전쟁을 해야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반면에 장제스는 공산당을 소탕한 후에 일본과 일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옌안에서 마지막 숨을 허덕이던 공산당은 장쉐량의 시안사변 때문에 기사회생했다. 장제스도 후계자로 여겼던 장쉐량에게 큰 망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공산당까지 자신을 최고지도자로 옹립하는 국공합작 바람에 그의 위상은 시안사변 전보다 더 올라 갔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을 뿐이다. 크리스천 지도자의 관대함은 유물론자들의 먹이 감이 되기 마련이다. 시안사변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이렇게 바꾼 것이다.이 중국의 현대사 물꼬를 바꾼 사건은 오늘 한국 정치가들의 타산지석이 되지 않을까? 이른바 과거의 적폐를 응징하는 일로 권력을 공고하게 하는 일 보다 용서하고, 석방하고, 민족이라는 미명을 내세워 유엔의 제제를 넘어서는 남북공조라는 것으로부터 갈 길을 찾는 일에 집착하는 대신 도량 큰 리더십을 보여 준다면 국민들은 더 환영할 것이며 지지의 성원을 보낼 것이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덧붙인 소감 한 마디 (0) | 2018.09.11 |
---|---|
남은 자 그리고 심판 (0) | 2018.09.07 |
반딧불이의 빛 신호 (0) | 2018.07.11 |
폼페이(Scavi di Pompei)의 폐허를 거닐면서 (0) | 2018.06.22 |
효도관광 스케치 (2) | 2018.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