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 그리고 심판
남은 자 그리고 심판
살아오면서 배워야 하는 최대의 교훈 중 하나는 삶의 길이 불공평하다(unfair)는 사실에 있다.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들이 몰아닥친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반대로 악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순진무구한 어린 생명에게,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너무 작아서 별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이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어느 누가 수용할 수 있겠는가? 왜 저들이 당치도 않는 일을 감내하며 당해야 하는가?
베들레헴의 어린 영아들처럼 많은 무죄한 어린이들이 무참하게 죽어간다. 순결한 소녀들이나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미 투” 했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하는 일이 우리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다. 언론의 거짓 선동으로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현실을 보라. 불의한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사람들의 눈을 속이면서 나라를 끌어가는 세상을 보라. 악이 이 나라를 장악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단은 증오심을 증폭시켜 가면서 사람들을 육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병신으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평생에 잊지 못할 상처를 입히고, 급기야 죽이는 일을 하게 한다. 이 무너뜨리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은 차단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지나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승 발전되어 가는 이 악의 탁류가 벗겨질 것 같지 않아 보여 절망감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제 그만해라”고 거룩한 분노를 표출하실 때가 언제입니까 하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악이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또한 작은 신앙공동체 안에는 힘겹게 살면서도 친절을 베풀며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 자기 욕심을 버리고 이타적으로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남은 무리들이다. 교리적으로만 남은 무리들을 정의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세기고, 예수의 증거를 자기 생명 안에 지닌 사람들의 참 모습이 이 시대의 남은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시간과 재물을 바쳐 이 사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투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각종 재난이 몰려 올 때, 악이 기승을 부릴 때 일어나서 세우는 자, 돕는 자로 나선다. 남은 무리는 자기에게 그런 악한 일이 몰아닥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고 감사하는 사람들로 안주하기를 부끄러워한다. 풍파를 당한 가족들에게, 실직한 사람들에게, 암 투병을 하는 분들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나서는 세우는 사람들이 진정한 남은 무리들이다. 그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악한 시대에 연꽃 같은 그들의 헌신적 행위에 생기를 느끼며 찬사를 보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fair)인가. 그들은 언페어(unfair)한 시대에 페어(fair)한 사람들이다.
정의가 실종된 불공평한 삶의 현장에서 공평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이런 백성들을 구축하여 역사적 대 단원을 마치실 것이다. 고통이 편만하고 고난이 엄습해 오는 세상에서 악한 인간들이 조소를 하며, 제 멋대로 움직여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들의 행사를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신다. 곧 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각 사람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그 날 완전한 정의와 완전한 사랑이 득세할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메시야가 열어주시는 새 세상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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