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진리>인 Advent

종말 : 2018. 9. 4. 21:19

역사의 진리 Advent

 

폴 리쾨르(Paul Ricœur, 1913~2005)의 프랑스 남동부 발랑(Valence) 시에서 출생, 그는 신앙적으로 프랑스에서 혹독한 박해 대상이 되었던 비주류 작은 신앙 공동체 위그노 프로테스탄트 가정 출신이다. 특히 성경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가정의 영향을 받았으며 박해 받은 위그노의 비폭력주의가 그의 생애를 관통하였다.

 

두 살 때 1차 대전에서 영어 교수였던 아버지가 실종, 후에 살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조부모와 숙모의 슬하에서 자라며 외로운 유년 시절을 책 속에 묻혀 지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에서 만난 스토아 철학자 로랑 달비에즈의 영향으로 철학에 눈을 뜨게 된다. 1934년 무렵 장학생으로 소르본에서 공부하고, 1935년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리쾨르는 여러 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일하던 중 1940년 군대에 징집되어 전장으로 보내졌으나 포로가 되어 독일 동부 수용소에서 5년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수용소 내에 도서관을 만들고 임시 대학을 세우는 등 지적 활동을 이어갔다. 훗날 리쾨르는 이 5년 동안의 수용소 생활이 독일 현상학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술회하였다. 그가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겪으면서 깨달은 역사 속에서 인간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었기에 우리에게 소중한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철학, 정신분석, 문학비평, 종교학, 역사학, 언어철학, 정치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사상적 업적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 현상학자, 해석학자, 언어철학자, 역사철학자, 신학자, 윤리학자 등 다양하게 칭하여 지고 있다. 그 중에도 현상학에 해석학적 과정을 결합시킨 철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신화, 정신분석학, 메타포 이론 등을 통한 설화 이론을 세워 성경해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소르본대학교와 스트라우스대학에서 철학교수로, 낭트대학(현 파리대학) 학장을 각각 역임하였다. 당대 그는 자기 제자 자크 데리다, 위르겐 하버마스와 더불어 살아 있는 3대 철학자로 꼽힐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러한 명성의 배경에는 그만의 독창적인 철학방법론, 즉 대화철학(혹은 변증법)의 사용이 있었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그는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철학자들과의 대화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들 속에 담긴 삶의 의미와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다양한 층위에서의 해석들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중재할 줄 아는 대화의 철학자였다.

폴 리쾨르는 <역사와 진리>에서 "역사의 의미에 대한 문제에 실제로 전반적인 답을 제시하려는 것은 허풍 떠는 일에 불과한 것" 이어서 역사의 의미를 여러 층의 많은 답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각각의 답을 하나로 묶어 그는 역사를 통한 현상의 의미를 투시하고 있다. 그의 철학적 사상이나 현상학적 해석학이 암시한 귀결을 다음 몇 가지로 유추해 본다.

 

1. 합리적 기술진보의 역사  

역사에는 여러 다양한 지평이 동시에 존재한다. 신앙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첫 번째로 발견되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합리적 진보(progress)의 지평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진보는 계속 발전되어 온 역사의 기술적(技術的) 차원이다. 인간의 역사에 기술은 계속 발전해 왔고 또한 발전해 갈 것이다. 시간대에 걸쳐 지식의 축적과 확대라는 기술문명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왔고 또한 많은 과학기술과 지식을 발전시켜 왔다. 2. 폭력과 부조리와 불합리의 역사

다음으로 인간의 정신문화의 역사의 갈피갈피에는 어둠의 역사, 즉 폭력과 부조리라는 도덕적 타락이 짙게 깔려있다. 이는 인간의 합리적인 역사지평이다. 인간의 도덕의 역사는 타락의 역사이다. 윤리적 차원에서 보면, 거의 아무런 발전도 이루어졌다고 할 수가 없다.

진정한 사랑(charite)은 자주 비인간적인 정의와 위선적인 사랑을 통해서 조롱당한다.” 인간의 교만과 욕망은 올곧은 안티고네를 죽인 크레온 왕, 자신의 딸을 죽이고 트로이 전쟁을 떠난 아가멤논, 자기의 모든 손자들을 죽이고 여왕이 된 아달랴 같은 인간들과 전혀 다름이 없다. 인간성은 진보되지 않았다. 그것은 모호함(ambiguity) 속에 남아있다.

 

이는 인간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은 필요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 변화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3. 초합리적 은혜의 경륜 역사

마지막으로 앞으로 전개될 초합리적 역사 지평이다. 인간이 기술적으로 진보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지만, 윤리 도덕적으로는 더욱 타락하여 가는 역사를 퇴행시켜 왔다. 오히려 말세의 마지막에 이르도록 인간의 품성은 더욱 피폐되어 가고 있다. 인간으로서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때가 차면 역사의 제어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죄악의 역사에 기적적, 초합리적으로 개입하여 이 나타나실 것이다. 죄악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끝날 것이다. 2천 년 전 역사 속에 개입하신 성육신하시어 십자가로 구원의 지평을 여신 하나님은 부활과 승천으로 소망을 심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비밀이다.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1:26).

 

절망적인 세상 역사(Historie)는 그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Advent 소망이라는 초자연적 개입이라는 참 역사(Geschichte)가 전개될 것이다. 이 비밀한 소망의 포로가 된 우리는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다(6:19). 그래서 어거스틴이 역사를 두고 하나님의 비밀”(divine mystery of history)라고 했다. 타락한 인간의 역사가 비관적이긴 하지만 초월적인 분의 개입으로 영광스러운 미래가 전개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폭력과 부조리라는 불합리성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역사가가 말하는 진리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문명과 문화의 주제들을 다루면서 인간들의 구체적 행위 속에서 진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방식을 자문한다.

Advent !!!이 죄악의 역사가 하나님의 오심으로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새 세계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은소망이야 말로 하나님의 교향악으로서 역사”(divine symphony of history)일 것이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마라나타!

 

'종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언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 이야기  (0) 2019.01.07
재림을 준비하는 믿음  (0) 2018.11.15
바벨론 붕괴  (0) 2018.08.09
바벨론과 교황권  (0) 2018.07.13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본문 해석  (0) 2018.06.22
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