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 이야기

 

어린 시절 잊을 수 없었던 일들 가운데 한 가지는 해가 바뀌면 사람들이 점치는 자에게 다가 온 해에 자기와 자기 가족들에게 일어날 들을 물으러 가는 일이었다. 조선 시대의 헌법이라고 볼 수 있는 경국대전에는 과거시험을 통해 명리학자를 뽑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운명 감정사가 사회 제도화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일은 첨단 과학이 발전해 온 오늘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인터넷이나 신문을 통한 무료 운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이 같은 관심은 특히 음력 설날을 전후하여 더욱 많이 나타난다. 지구촌이 하나로 묶이어 온갖 문제들이 복잡하게 엉키어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대 동적 사회에서는 언제든지 내게, 또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재난이나 불행이 불어 닥칠지 모르는 불안의 뭉게구름이 뒤덮이게 마련이다. 사주, 관상, 점술 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들 또한 많다.

특히 체제 자체의 대 변혁이라는 쓰나미가 초래할 개연성이 큰 기해년을 맞아 한반도를 뒤덮어 오는 먹구름은 무엇일까? 이 나라의 대중들의 관심은 안보와 경제에 쏠려 있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은 더욱 심상치 않는 검은 구름이 짙어 몰려 올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은 구름이 짙어 갈수록 그만큼 점치는 일을 하는 분들의 예언자적 풀이가 더욱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미래에 전개될 사건들을 알게 된다면 좋은 일을 위하여 해야 될 일도 챙길 것이고, 나쁜 일들을 피할 궁리도 할 것이다. 기해년 황금 돼지해가 축복을 가져 올 것인가? 불행하게도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 트럼프는 제2의 고레스일까?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이 1948년 다시 한 나라로 회복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셨다고 기뻐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였을까? 201712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되었다. 그리스도교인들 상당수는 이 일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며 환호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도널드 트럼프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 이전 지지가 성경 예언의 성취로 이어질까? 트럼프 미대통령의 예루살렘 서쪽 벽 방문과 거기서 기도하는 자세는 대단한 사건으로 비쳐졌다.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결심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못하였던 뉴스거리로 부각 되었다. 이것을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 시대에 성경의 예언을 성취되는데 쓰임받은 고레스같은 인물이라며 많은 그리스도교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과연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일까? 유대인들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이 성전재건으로 이어질 것인가. 그들은 통곡의 벽에서 애통하며 성전 재건을 염원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준비도 거의 마쳤다고 한다. 과연 제3성전의 재건이 하나님의 뜻일까?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미 대사관 이전을 문자적 예언 성취로 풀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오늘 복음주의 신학의 예언의 틀로 하여금 그 날개를 펴게 하고 있다. 예루살렘 서벽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된 트럼프를 두고 이사야 45:1의 예언에 나오는 열국을 항복하게 하는 현대판 고레스로 풀이하는 자들이 상당하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列國降服하게 하며 내가 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들을 열고 城門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45:1).

 

바벨론이 유대인들을 놓아 보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고레스를 당신의 선택한 도구로 삼았다. 그는 538/539 BC에 유대인들을 해방, 성전 재건을 할 수 있는 칙령을 반포하였다. 고레스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마쉬아흐 mashiach)"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는 므로닥과 그 밖의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명백한 임무 수행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자이다. 이사야서의 위 본문 구절은 마쉬아흐가 어떤 임무를 위하여 선발된 자 혹은 "선택된"(바하르) , 특별히 구원하는 자, 즉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지에서 구원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자로 지목한 예언으로 풀이 되어 왔다. 여기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의 마쉬아흐는 이상적인 왕, 즉 경건하고 의로운 왕이 아니어도 택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맥에 입각한 정통적인 해석에 추가하여. 2차로 트럼프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문맥을 벗어난 해석으로 비쳐진다. 심지어 Donald Trump 이름을 수비학적 게마트리아 방식으로 풀어, 히브리어 수자로 환치하여 다윗의 집을 위한 모시악(moshiach for the House of David)” 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트럼프의 이 결정은 예루살렘에 제3성전의 건축을 이루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자의적이며 짜 맞추기 식으로 비쳐진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구약-이스라엘 대 신약-교회라는 이중 구조로 푸는 문자주의는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지상적 아내로 보며, 교회를 어린양의 하늘 신부로 보게 되어 이스라엘과 교회를 그 목적과 약속을 분리시켜버리게 한다. 이런 이원론적 풀이는 성경 예언의 표상학적 해석을 배척으로 나가게 마련이다. 요컨대, 세대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이스라엘”(6:16)을 교회로 보는 신구약의 통일적 해석을 거부하는 결정적인 문제성을 안고 있다(Hans K. LaRondelle, The Israel of God in Prophecy, 48-59).

그러나 트럼프를 요한계시록 제13장에 나오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속성을 구현해 가는 세력의 일환이 되는 맥락으로 적용시키는 것까지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북한의 핵 협박이 예언 성취일까?

여러 해 전부터 북한은 핵무기를 준비하여하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의 한 유명한 신비철학자 (kabbalist)가 북한이 구속사 과정에서 최후의 전쟁의 핵 열쇠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일이 있엇다. 라삐 나흐마니(Levi Sa’adia Nachmani)는 일찍이 1967년의 6일 전쟁과 1973년의 욤 키푸르 전쟁을 예고한 일이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대 원수를 두고 그 것은 시리아, 페르시아(이란), 리비아의 가다피, 또는 이라크(바벨론)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최대 원수, 최대 위협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실체를 한국이 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는 성경의 다음 예언을 북한의 핵 협박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嫉妬(jealousy)를 일으키며 虛無한 것으로 내 震怒를 일으켰으니 나도 百姓이 아닌 로 그들에게 猜忌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民族으로 그들의 憤怒를 일으키리로다. 그러므로 내 憤怒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She’ol),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所産을 삼키며 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32:21-22).

 

나흐마니는 이 본문을 근거로 북한의 서울에 대한 핵 공격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하였다. 그는 “She’ol” 이라는 히브리어에 근거해서 신명기 예언의 실 머리를 풀었다. , 히브리어인 이 스올(She’ol)”이 한국의 수도 Seoul과 같은 글자와 거의 유사한 발음으로 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사실상 북한이 핵무기 시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한 의도가 핵전쟁의 가능성과 의도를 비친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는 핵전쟁이 북한이 서울을 핵으로 공격하는 일로 시작 될 것이지만, 급기야는 역사의 마지막 최후 전쟁으로 확전될 것으로 내다 본 것이다(출처: Breaking Israel News. “What One Rabbi Predicted 22 Years Ago About Korea’s Role in End-of-Days Will Shock You” By Adam Eliyahu Berkowitz April 24, 2017 , 11:30 am).

많은 유대인 주석가들은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23:13; 1:5, 6)라는 성경절을 인용하여 신명기 구절을 갈대아인에 의한 첫 번째 성전 파괴에 적용시켰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 위해 그들을 일으키시기 전까지는 갈대아인들이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논증은 역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사도 바울은 32:21을 유대 민족이 메시야 영접하기를 거절함으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된 것에 적용시켰다(10:19; 살전 2:15, 16). 또한 마 21:43, 44에 비추어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멸망을 두고 한 말씀과도 상통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음부 깊은 곳문자적으로는 스올의 깊은 곳”(개정표준역(RSV)), 무덤의 깊은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스올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유대인 주석가들은 산들을 두고 예루살렘이 산 위에 건설되었고 또한 산들로 둘러싸였다고 말하며(125:2), 부분적으로 이 예언의 성취로서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가리키기도 하였다(왕하 25:1~7).

신명기 32:17 이하 문맥을 보면 선민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예배 의식 중에서 가장 가증스런 것은 그들의 자녀들을 귀신들에게 제물로 드리는 일을 하고 있어 그들 스스로가 파멸을 자초하고 있는 것을 예언하고 있어, 택한 백성이 아닌 북한에 적용시키는 풀이는 문맥과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핵전쟁 협박은 이스라엘 라삐의 억지 해석 아닌, 종말론적 현상으로 얼마든지 해석 할 수 있다. 특히 엘렌 화잇의 불덩어리예언은 핵 전쟁의 양상과 오버랩되어서 다가온다.

EGW1904년 계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밤의 이상 중에 매우 감명 깊은 장면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거대한 불덩이가 어떤 아름다운 저택들 사이에 떨어져 순식간에 그것들을 태워버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지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고통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들은 알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는가? 우리는 전혀 몰랐다.” 사방에서 이 같은 비난의 말을 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9T 28).

유사한 예언이 1906년 계시(서신 278, 1906)에도, 1886년 계시(5BC 1122)에도 나온다.

그러나 EGW은 시편 91편에 나오는 약속의 메시지가 각 시대 하나님 백성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3BC 843)고 하였다.

이동복 씨는 조갑제 닷컴을 통하여 미국의 대북 군사 공격 시나리오를 201915일자 The National Interest 에 수록한 미국은 어떻게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How Would The U.S. Attack North Korea)?”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북핵 문제를 놓고 또 다시 외교적 해결이 아닌 군사적 해법에 관한 논란이 다시 대두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대상을 향하여 안보의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평화를 구걸하는 현 정권을 향한 충고라고 볼 수 있다. 검은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이 나라는 세계의 주목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민중은 평화가 온 것처럼 꾸민 거짓 소문에 최면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 리브가의 방법이 예언 성취의 길일까?

이삭이 40세 되었을 때 리브가를 아내로 맞았다(25:20). 그리고 자녀를 낳기까지 20년을 기다려야 했다(25:26). 그는 첩을 두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임신을 못하니 기도하였다(25:21). 아버지가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아내 태를 여신 것을 눈 여겨 보았던 이삭은 아내가 임신을 못하니 기도하였다(25:21).

이삭의 기도와 리브가의 기도의 목표는 달랐다. 이삭은 아내를 위한 중보기도이었고, 리브가의 기도는 두 아이가 태 안에서 폭력적 투쟁, 즉 주먹질하는 것을 두고 그 이유를 하나님께 묻는 기도이었다.

 

그 아들들이 그의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國民이 네 胎中에 있구나 두 民族이 네 腹中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族屬이 저 族屬보다 하겠고 큰 가 어린 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5;22-23).

 

하나님의 응답은 신속하였다. 1) 두 아이는 두 민족을 대표하고, 두 백성이 자궁에서 나온 때로부터 분리될 것이다. 2) 한 백성이 다른 쪽 보다 더 강할 것이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리브가는 태속에서 싸우고 있는 두 아이 에서와 야곱에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을 잊을 수 가 없었다. 그런데 남편 이삭이 큰 아들 에서를 여호와 앞에서”(27:7) 축복코자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명한 것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급히 서둘러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 야곱에게 다음 명을 내린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하여 그가 즐기시는 別味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에 네게 祝福하기 하여 잡수시게 하라 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로 보일지라 姑捨하고 詛呪를 받을까 하나이다 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詛呪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別味를 만들었더라 15 리브가가 집 안 自己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衣服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自己가 만든 別味와 떡을 自己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27:9-16).

 

어머니 리브가는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 어머니는 속이는 계략을 모자 합동으로 막아 나간 것이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킨다는 시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 행각을 한 이 계략은 사실상 여호와 임재”(27:7)를 무시한 것이다. 오히려 어머니는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하는 대로”27:8) 하라고 예언자적 권위로 명하였다. 이 명령 어투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어투와 닮았다(2:16; 12;28, 50).

이러한 비도덕적 방식과 계략은 예언 성취를 오히려 더디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자간에 사별의 쓰라림까지라 불러 왔다. 그리고 야곱의 생애가 사기라는 악순환 굴레로 빠지게 하였다. 그리스도교 역사는 수많은 박해와 처형을 합리화시켰던 이 방식이 가져온 피비린내를 증거하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킬 수 없는 것이다.

 

⦿ 예언 성취의 진정한 길

성경의 예언은 예언 문맥으로부터 그 해석을 뽑아내야 한다. 솔라 스크립투라가 예언 해석의 참된 방법이 된다. 예언 본문에 자기 견해를 주입하여 풀어 대중의 인기 영합적 자세나 선정적으로 푸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코람 데오, 즉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도하며 풀어가야 하고, 만일 풀려지지 않으면 기다려야 한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70년 예언 기간을 두고,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통하여 통회 자복하면서 재난을 면해 달라고 간청하였다(9:1-19). 재난을 앞둔 이 나라 재림신도들은 다니엘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탄원해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가롯 유다가 목매달아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야 시편 구절들에 나타난 예언의 진상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兄弟들아 聖靈이 다윗의 입을 하여 예수 잡는 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聖經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本來 우리 가운데 參與하여 이 職務의 한 部分을 맡았던 ... 20 詩篇記錄하였으되 그의 居處荒廢하게 하시며 거기 하는 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職分他人하게 하소서 하였도다”(1:16-20).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에 운다는 말이 있다. 일련의 사태가 지난 후 되돌아 볼 때 그 진상이 분명해 진다.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종말론적 묵시적 예언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져 갈 것인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 나서 달리는 것 같은 성급한 판단을 는 일은 금물이다.

 

재림신도는 여자의 남은 자손, 즉 예언된 백성이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면서 그 날을 사모하여(재촉하여) 예언을 이루어 가야하는 백성들이다.

 

사랑하는 들아 께는 하루가 千 年 같고 千 年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約束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께서는 너희를 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滅亡하지 아니하고 다 悔改하기에 이르기를 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物質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行實敬虔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하기를 바라보고 懇切思慕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物質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約束대로 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앞에서 도 없고 도 없이 平康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의 오래 참으심이 救援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 3:8-15).

 

위 본문에서 간절히 사모하라재촉하라, 하나님의 날의 도래를 촉진시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자신의 죄를 고백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 날을 재촉하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바쳐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그분의 나타나심을 위해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COL 69).

 

재림의 예언을 이루어 가야 될 사명을 지닌 백성들은 영적, 도덕적 준비가 급선무이다. 무엇보다도 예언을 이루어 가야 하는 이 시대 백성들의 심령에는 샛별이 되는 그리스도로 꽉 차있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예언 백성들의 진수가 된다.

 

또 우리에게는 더 確實豫言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注意하는 것이 옳으니라”(벧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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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