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새해 원단 여행 소묘

 

우리 내외는 20181231일 밤 일찍 자고 새벽 2시가 채 못 되어 기상, 수락산교회로 향하였다. 교회당에서 밤을 보낸 교우들과 함께 2:40 경에 경의유도관장 내외가 준비한 소형 버스를 타고 동해시로 향하다. 강원권에 접어들어서는 새해 원단을 동해의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하여 가고 있는 차량들로 고속도로가 꽉 차 있어 느린 흐름에 맡겨야 했다.

 

우리 내외는 밤낮으로 같은 집 안에서 날마다 맴도는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겨져 1월 중순에 자녀들이 살고 있는 미국 동부, 서부, 동남부 여행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아내가 겨울 철 너무 긴 여정에 자신이 없다고 하여 포기했었다. 그러나 포기한 아쉬움을 삭힐 작은 변화를 찾아 나서야 해야 했다.

 

아내와 나는 수락산 15명의 교우들과 함께 2019년 원단 738분 예정된 새해 첫 해돋이를 동해의 望祥 백사장 해변에서 맞게 된 것이다, 바람은 세찼고, 파도는 쉼 없이 넘실거리는 망산 해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멀리 수평선 저쪽에서 힘차게 떠오를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녘 긴 해안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희망의 태양을 기다리는 저들이 모두 바알주의자일까? 나도 옛날 바알주의자들의 길을 걷고 있지나 않는가? 마음 속에 이는 이런 질문을 풀어야 했다. 그렇다고 온 밤을 추위에 떨면서 아침에 안겨주는 따사로운 볕을 간절히 사모하는 원시시대 사람에 속한가? 멀리 서울권에서부터 잠도 못자고 달려 온 저들이나 나나 바알주의자들은 아닐 것이다. 다가 온 새해를 새로운 희망으로 채우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 바램이 사람들에 따라서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초점은 영원한 소망으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21:11~12).

 

늘 이스라엘에 적대적이고 침략을 서슴지 않았던 에돔 족속이 바벨론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어둔 밤이 지나고 구원의 때가 속히 도래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심정이 배어있는 본문이다. 이 본문은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하루의 구조 속에서 역사의 어둠과 밝음을 내다보면서 종국적인 구원을 예언자의 심정을 헤아리게 한다.

 

나는 젊은 시절 배운 박두진의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라는 민족의 명시로부터 저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라는 상형문자를 통하여 어둠의 역사를 가르고 동쪽 하늘로부터 내려 오시어 영원한 구원을 안겨주는 의의 태양의 오심을 앙망하고 있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어둠, 달밤, 골짜기, 칡범, 짐승이라는 상형문자가 나타낸 악의 통치가 무너지고, 어둠을 물리칠 환히 밝아오는 세상을 구가한 해가 하늘의 수평선을 가르고 솟아올라야 한다. 골짜기에 어슴푸레 한 골짜기 같은 세상에 들끓고 맹수들이 도망가고, 사슴이 뛰놀며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청산을 비취는 환한 해가 솟아올라야 한다.

박두진의 시의 맥락은 말라기 예언자가 그리는 새 시대 이미지와 통한다. 시인과 예언자의 맥박은 흡사하다.

 

鎔鑛爐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驕慢하는 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4:1).

 

이 용광로 같은 불로 오시는 의의 태양이 누구에게 떠오르는가?

 

내 이름을 敬畏하는 너희에게는 公義로운 해가 떠올라서 治療하는 光線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4:2).

 

망상(望祥)이란 한자어 표기가 상서로움을 바란다는 뜻이어서 새해의 진짜 상서로운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기에는 딱 어울리는 좋은 표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한글 망상 어감이 한문 망상(妄想)과 교차되어 다가오는 부정적 연상 때문에 한글만의 표기에 아쉬움을 갖게 된다.

 

모든 육체는 희망에 거한다(2:26). 희망은 인간에게 의지를 심어주고, 용기를 키워주며, 불행을 치료해 준다.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신앙이며 반드시 이뤄지게 하는 적극적인 신념도 된다. 따라서 희망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런 이가 있다면 그는 존재하는 것이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진짜 상서로운 바람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이다. 영어 표기 hope를 희망이나 또는 소망으로 번역하고 있다. 두 단어는 일반적으로 동의어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적으로는 구별된다. 희망은 내가 바라는 것인 것에 비하여.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인간의 희망은 그저 막연한 동경으로, 그 성취가 안 될 수도 있다. 그 특징은 일반적으로 세상적인 것에 속하고 인간적인 것을 탈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확실성을 믿는 것이다소망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들어 있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신자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약속을 선물로 받고 있으며, 장차 완성될 소망을 기다리고 있다. 신자는 이 소망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소망을 확신하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강원 동해시는 19804월 명주군 묵호읍과 삼청군 북평읍이 합하여 탄생한 시다. 동해시는 해발 1000m가 넘는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가 서남쪽에 소재하여 태백산지 分水界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동쪽에는 망망한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망상해변은 강릉~삼척 사이에 있는 해안 관광지로 묵호항에서 북쪽으로 3쯤 떨어져 있다. 망상에는 연장 1.4의 넓은 명사십리 백사장과 수평선이 펼쳐지고 있어 매력적이다. 인근의 묵호항과 더불어 강릉~삼척을 잇는 해안 관광지 중 하나이며 오징어, 소라, 해삼, 멍게, 광어 등의 풍부한 해산물로 풍요로움과 넉넉함이 묻어난다. 특히 요즘은 대게 철이어서 수산물 시장에 깔려 있다. 1m 가까이 되어 보이는 곰치를 처음 보고 사진에 담아두기도 했다.

망상 해안은 청정한 해수, 얕은 수심(경사도 2~4, 평균 물 깊이 0.5 ~1m) 등 동해안 해수욕장 중 가장 넓고 쾌적한 환경을 갖추었으며, 오토캠핑장, 야영장, 샤워장, 공중화장실 등과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국제적인 명소로 비쳐진다. 인근에는 천곡 자연동굴, 무릉계곡과 추암(湫巖) 촛대바위 명소들이 있다.

 

우리 일행은 수중의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촛대바위와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비경에 감탄하면서 둘러보았다. 촛대바위, 형제바위의 일출은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도 나오지 않았던가! 촛대바위와 주변 기암 괴석군을 둘러싼 바다는 수시로 그 모습을 바꾼다. 거북바위, 부부바위, 형제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 등 기암괴석들이 우리가 갔던 날에는 흰 거품을 날리는 거친 파도에 자주 휩싸이는 모습이었다.

 

우리 여행단은 귀로에 돌아가며 복음 노래나 귀에 친숙한 가곡들을 부르며 신앙 간증을 하여 새해 첫날 은혜 위에 은혜가 풍성하였다. 고속도로의 정체 현상 시간대는 성도의 친교의 시간대를 넓혀주었으며 축복의 문호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은 선교의 가교가 된다. 여행에 동참 한 분 중에는 가끔 교회에 나왔던 분도 있었다. 그가 그동안 교회에 나올 때 얼마나 낯설어 했는가를 담담하게 이야기 할 때 우리의 마음의 근시성을 깨우쳐 주었다. 80대 중반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온 딸이 있었다. 그를 돕는 분이 온천욕 할 때 친히 몸을 닦아 주며 시종 손잡고 인도하며 보살피는 형제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비쳐졌다. 가출 청소년 지도에 평생을 바쳐 온 타 교파에 속한 분도 있었다. 이 분은 우리에게 자기의 삶을 통한 헌신의 모습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그 지평을 더 크게 보여 주었다. 우리들은 이렇게 피차의 교제를 통하여 더욱 가까워졌으며 나눈 신앙적 체험으로 새해의 삶을 더욱 알차게 가꾸어 갈 수 있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 새해 원단의 여행은 걸으면서 배우는 인생과 신앙에 관한 하늘 독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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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HN0211